https://v.daum.net/v/20261018085956391



[우리 안의 극우]36. 살인범 일베 유저의 편지로 본 남성계 서사
‘호구남’ ‘스윗남’이 ‘루저’ 취급 당하는 현실 각성… 여성에 대한 증오와 폭력 정당화

모텔 손님을 살해한 뒤 주검을 훼손해 한강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장대호(38)가 2019년 8월21일 오후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하루 전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장대호의 실명과 얼굴,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보통 ‘남성계’(男性界)로 번역되는 ‘매노스피어’(manosphere)는 ‘man’과 ‘sphere’의 합성어로서, 비교적 젊은 세대의 남성들이 반페미니즘과 남성권리 등 이른바 ‘빨간 알약’(red pill) 세계관으로 대표되는 특징적 담론을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가리킨다. 매노스피어라는 단어 자체는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부터 사용됐는데 학술적 연구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검토된 것은 2010년대 후반이다.1

여기서 ‘빨간 알약’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키고 나면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되는 알약이다. 남성계에서 말하는 ‘빨간 알약’은 여성들이 극소수의 잘난 남자, 곧 ‘알파 메일’(alpha male)만 선호하기 때문에 대다수 남자는 열등한 존재로 무시·착취당할 뿐이라는 ‘잔혹한 진실’을 함축한다.

한국에서 남성성(masculinity)에 대한 연구는 상당 기간 축적됐다. 최근에는 연구의 중심이 온라인 담론으로 이동해 남초 극우 커뮤니티나 남성권리운동, 온라인 여성혐오 담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이에 따라 사회적 배경 및 요인도 분석됐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의 절정기였던 2014년, 혐오의 정당화 논리로서 능력주의를 최초로 제기한 글이 나왔다.2 2019년에는 청년 남성 25.9%가 극단적 반페미니즘 정체성을 가졌다는 설문조사가 보도됐다.3 2023년에는 일베가 아닌 우익 성향 커뮤니티를 능력주의 개념으로 분석한 논문이 등장했다.4 2026년에는 청년 남성 극우화를 입증한 메타분석이 나왔다.5 하지만 2026년 현재까지 한국에서, 남성계를 직접 키워드로 명시하거나 남성계 담론을 종합한 연구는 여전히 드물다.


이 글에서는 2019년 모텔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이자 일베 유저였던 장대호의 글을 통해 남성계의 서사를 추적한다. 장대호가 육필로 쓴 수백 쪽의 원고는 오늘날 남성계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전형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이 어떻게 증오와 폭력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극단적 남성성에 대한 탁월한 사례연구 자료다. 이어서 2011년 노르웨이에서 77명을 폭탄과 총기로 학살한 극우 테러리스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일지 ‘2083: 유럽 독립 선언’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극우 남성의 증오와 폭력을 추동하고 정당화하는 논리 구조를 해명한다.


외모가 계급이 되는 ‘정글의 법칙’

장대호는 체포 직후 취재진 앞에서 “이번 사건은 흉악범이 양아치를 죽인 사건이며 상대방이 죽을 짓을 했기에 반성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자신만만하고 과시적인 언행으로 주목받았다. 이후에도 그의 이례적 행동은 계속됐다. 장대호는 2020년 3월 최초의 ‘회고록’을 지인을 통해 일베에 게시했다. 살인과 주검 유기 과정이 상세히 서술된 범행 일지였다. 글 말미에는 “장대호 일베 닉네임 ‘슨자’ ‘진빌리(문워크 아재=장대호)’라고 적혀 있었다.6 그동안 장대호가 일베에 게시물을 올려왔을 뿐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를 모욕한 사실은 언론 취재로 재차 확인됐다.7 이렇게 장대호의 돌출 행동과 글이 널리 알려지자, 일베를 비롯한 극우 성향 커뮤니티들은 그를 “빅타이거 형님” “코리안 조커” 등으로 부르며 열광하게 된다.8



몇 달 뒤, 108쪽과 120쪽의 두 파트로 나뉜 총 228쪽 분량의 자필 편지 ‘장대호 저작물’ 피디에프(PDF) 스캔본이 온라인에 공개됐다. 2026년 현재 전문을 게재한 블로그가 존재하나 정확한 유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9장대호는 장문의 기록을 쓴 이유에 대해 “출판 목적으로 작성됐다가 계약 불발로 무료 배포하게 됐”으며 “이 원고를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어떤 집필도 하지 않을 생각”이라 밝혔다. 이 글에서 다루는 장대호의 서술은 주로 이 ‘장대호 저작물’ 1·2편에 한정된다.


장대호는 ‘정글의 법칙’ 제목의 글에서 나이트클럽에서 일했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그것을 “외모가 곧 계급인 또 다른 세상”으로 묘사한다. 나이트클럽은 “원시시대의 본능 따라 계급과 서열이 매겨지는 승자독식 구조”이며 “못생긴 여자와 키 작은 남자는 돈만 쓰고 나와야 하는 곳”이다. 장대호는 “불리한 경쟁에는 참여하지 않는 게 이기는 것일 수 있다”며 ‘게임 불참’을 제안한다. 그런데 나이트클럽 밖으로 가면 그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는 것을 장대호도 이미 알고 있다. ‘결혼 못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그는 사람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로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른 비교우위”를 꼽는다.


“장대호밖에 모르던 시절에는 장대호가 표준인 줄 알았는데, 미디어를 보니까 장대호보다 잘난 애들이 떼거지로 나와서 나를 막 감동시켜. 걔네들 보다가 장대호를 보니까 너무 실망인 거야.”


‘투쟁 영역의 확장’과 그 고통

1994년 출간된 미셸 우엘벡의 소설 ‘투쟁 영역의 확장’은 오늘날 남성계를 이해할 단초가 담겼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다. 소설 화자는 회사 동료인 라파엘 티스랑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의 문제는 너무나 못생겼다는 점이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땅딸보’. 그리고 탈모증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티스랑은 애타게 여자를 갈망하며 끊임없이 그녀들에게 접근하지만 끝끝내 “여자들과 자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소설 내내 티스랑의 ‘도전과 실패’는 처절할 정도로 자세히 묘사된다. 화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완전히 자유로운 경제 체계에서, 어떤 이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실업과 가난 속에 허덕인다. 완전 자유 섹스 체계에서 어떤 이들은 정말로 다양하고 짜릿한 성생활을 즐기지만, 다른 이들은 자위행위와 외로움 속에 늙어간다. 자유주의 경제는 투쟁 영역의 확장이다. 그 사회의 모든 연령층, 각계각층으로의 확장이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섹스는 투쟁 영역의 확장이다. 그 사회의 모든 연령층과 각계각층으로 자신의 투쟁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경제적 차원에서, 라파엘 티스랑은 승자이지만, 섹스 차원에서는 패자이다. 어떤 이들은 그 두 가지 다 성공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두 가지 모두 실패한다.10


소설 제목 ‘투쟁 영역의 확장’은 결국, 시장경쟁 원리가 성애의 영역에 침투하면서 소수의 승자가 성적 쾌락을 독점하는 반면, 다수의 패자가 소외와 절망의 고통에 처하는 현실을 가리킨다.


각성의 순간: ‘호구남’에서 ‘나쁜 남자’로

장대호의 글에 자주 언급되는 것 하나는 자신의 외모, 특히 키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글에서 그는 “10대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질문한 뒤 이렇게 답한다. “그것은 바로 키 크는 것이고 공부는 그다음이다.”


장대호는 언젠가 ‘키 작은 남자는 루저’ 발언을 해서 논란을 일으킨 여성을 언급하며 짐짓 ‘쿨’하게 반응한다. “당시 그녀의 발언은 나처럼 키가 작은 다수의 한국 남성을 자극했지만, 정작 키 162㎝인 나는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에서 상처 입은 내면을 그만 노출하고 만다. “만일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키 작은 루저한테 대가리 깨져보실래예?’라고 받아치며 서로 희희호호 웃으면서 분위기를 일단락시켰을 것이다.”


남성계 서사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할 뿐 아니라 폭발적 호응을 얻는 이야기가 있다. ‘각성 서사’(awakening narrative), 즉 ‘빨간 알약’을 먹고 ‘호구남’(cuck)에서 깨어나는 이야기다.11온라인 극우 남성을 연구해온 커뮤니케이션학자 야콥 요한센 역시 “‘빨간 알약’을 먹고 세상의 진실에 눈을 떴기 때문에 남성분리주의자가 되었다고 강변하는 사람이 많다”고 밝힌다.12 이는 말하자면 남성계로 진입하는 통과의례이자 일종의 성장서사로서, ‘알파 메일’이 되기 위한 자기계발 논리와도 이어진다.


장대호의 글에도 이 서사가 나타난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 글에서 그는 “서른 살 이전까지는 세상천지 여자 때리는 놈을 제일 쓰레기로 여기면서 학교에서나 회사에서 늘 여성들을 위해 힘을 쓰고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고 회고한다. 즉, 과거의 그는 ‘호구남’ 혹은 ‘스윗남’(여성에게 친절한 남성)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보답’은 주어지지 않았다. “고백하면 차이기 일쑤였고 여자친구는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루저녀’ 사건이 터졌고, 장대호는 “그때서야 그동안 내 주변 여자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들은 나를 남자로 취급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무서워하는 여자로 만들어라”

그때부터 장대호는 ‘나쁜 남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여자들을 남자 대하듯이 하고 다녔다. 그랬더니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자신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장대호는 이제야 ‘진실’을 깨닫는다.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나쁜 남자들은 모두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권고한다. “남자들이여. 무시당하느니 두려움의 대상이 되자. 나를 무시하는 여자가 있다면, 나를 무서워하는 여자로 만들어라.” 마침내 어리숙한 과거에서 완전히 탈피한 장대호는 엄숙히 선언한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 이렇게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은 개인의 표현 자유로 인정해줘야 한다. 다만, 실생활에서 나를 콕 집어 키가 작다고 무시하는 느낌이 들면 절대 참지 마라. 반드시 힘의 차이를 보여주어야 한다.13


장대호는 옛날에 “여자 때리는 놈을 제일 쓰레기로 여겼”다. 이젠 더는 아니다. 폭력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그는 ‘빨간 알약’을 먹었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1. D. Ging, ‘Alphas, Betas, and Incels: Theorizing the Masculinities of the Manosphere’, Men and Masculinities, 22(4), 638~657쪽, 2017


2. 박권일, ‘공백을 들여다보는 어떤 방식: 넷우익이라는 보편증상’,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자음과모음, 15~61쪽, 2014


3. 천관율·박한울, ‘20대 남자 그들은 누구인가’, 시사IN 2019년 4월15일


4. 김선영,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로 살펴본 ‘이대남 현상’’, 한국언론정보학보 118, 34~75쪽, 2023


5. 김창환·최성수, ‘한국 청년 남성 극우 성향의 구조와 분포: 성·연령 인구 집단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사회학 60(3), 53~111쪽, 2026


6. https://archive.vn/umczk


7. 한동오, ‘장대호는 일베 회원이었다…세월호 희생자 모욕까지’, YTN 2019년 8월25일


8. 전현진, ‘살인범은 어쩌다 영웅이 되었나’, 경향신문 2020년 4월4일


9. https://blog.naver.com/dogstylist/222049455254


10. 미셸 우엘벡 지음, 용경식 옮김, ‘투쟁 영역의 확장’, 열린책들, 119쪽, 2003


11. ‘cuck’은 원래 불륜 아내를 둔 남편을 뜻하는 ‘cuckold’의 줄임말이지만, 지금은 의미가 확장돼 여성에게 잘해주면서 손해만 보는 만만한 ‘호구남’이란 의미로 통용된다.


12. 야콥 요한센 지음, 김정은 옮김, ‘온라인 청년 극우의 성차별, 인종주의, 여성혐오의 정신분석’, 학지사, 43쪽, 2025


13. 장대호, ‘키 작은 남자는 루저’, ‘장대호 저작물’ 1, 50~51쪽,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