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보유대수가 1,900만대에 육박하고 있다. 인구 2.6명당 1대에 달할 만큼 생활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교통문화를 바꾸자는 움직임은 꾸준히 전개돼 왔다. 그러나 ‘자동차문화’ 측면에선 여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이에 따라 오토타임즈는 국내 자동차문화 선구자를 자처하는 이들을 찾아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자동차문화를 바꾸자는 조그만 노력을 일환이다. <편집자 주>
릴레이 인터뷰 세 번째 인물은 연기자 임대호(49) 씨다. 허준, 주몽, 광개토대왕 등 굵직한 사극을 통해 잘 알려진 연기파 배우다. 연극영화과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연예인 축구팀의 부단장을 맡을 만큼 성실함도 매력이다. 현재는 작품을 끝내고 차기작을 준비한다는 그를 수소문해 만났다. 덥수룩한 수염에 모자를 푹 눌러 쓴 첫 인상은 털털하고 우직한 옆집 아저씨를 떠올린다.
인터뷰를 하기 전부터 ‘SUV 또는 RV 등 큰 차가 어울리는 것 같은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SUV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수더분한 웃음과 함께 말문을 연다. "1999년부터 타는 차가 있어요. 그게 국내 RV로는 처음 나온 차가 아닐까 싶은데, 현대차 '트라제'입니다. 굉장히 오래됐죠. '무슨 차를 그렇게 오래 타느냐'는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오래 됐다고 바꿀 필요 있나요? 고장 안 나고, LPG라 유지부담 적고, 9인승이어서 내부도 넉넉하니 당분간 계속 탈 생각입니다."
하지만 정작 트라제가 그의 오랜 동반자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연'이었다. "트라제는 제가 한창 드라마 '허준'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릴 당시부터 함께 해온 애마라 정이 많이 가요. 매니저 없이 혼자 다닐 때여서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주행 누적거리만 35만㎞에 달합니다. 말 다 한 거죠?(웃음)"
RV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다. 축구와 여행을 좋아한다는 활동적인 그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타보고 싶은 차가 있냐고 물으니 이번엔 트럭에 관심을 보인다. "얼마 전 미국에 사는 지인을 방문했어요. 딱히 브랜드에 얽매이는 편은 아니지만 그때 닷지 '다코다'를 보고 반했죠. 저한테는 승용차보다 픽업 트럭이나 짚이 어울리는 거 같아요(웃음). 짐 실을 일도 많고, 지방 출장도 잦으니 활용 측면에서도 월등하죠. 시승해보니 의외로 브레이크나 가속페달도 부드럽더군요."
가족 얘기가 나오니 역시나 딸 자랑하기 바쁜 '딸 바보' 아빠다. "가족끼리 여행을 할 때도 9인승 RV는 언제나 함께였어요. 운전은 제가 하고, 뒷좌석엔 아내가, 마지막 3열에는 딸 아이가 누워 자곤 했죠. 세 명이 넉넉하게 각자의 공간을 갖고 편안하게 여행하길 원했거든요. 특히 어린 아이들은 막힌 고속도로를 참는 게 힘들잖아요. 차 안에 있는 시간도 여행의 일부라는 생각에 즐길 수 있도록 해준 것이죠. 이제는 딸이 커서 직접 차를 운전할 때가 됐어요. 딸에게는 나이와 용도에 맞는 차를 사주고 싶네요."
그에게 국내 바뀌어야 할 국내 자동차문화를 물었다. 복잡한 도심 속에서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주저 없이 그는 '양보'를 꼽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양보를 받았을 때 태도라고 힘주어 말한다. "누구나 베풀기만 하는 일은 없어요. 특히 도로 위에서 그저 지나치는 경우는 더욱 그렇죠. 베푸는 게 당연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필요해요. 눈짓 한 번, 손짓 한 번, 고마움의 표시만 해줘도 교통문화가 달라지는 겁니다. 그게 다음 사람으로 이어지면 하나의 문화가 자연스레 만들어지겠죠."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개인주의도 올바른 자동차문화 정착을 위해선 배제해야 할 항목이라고 말한다. "신호등이 없어도 자동차 흐름이 원활한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홀로 바쁜 사람이 많아요. 교차로에서 꼬리물고 늘어서는 일이 줄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죠. 교차로 꼬리 물기로 연간 손실액이 100억에 달한다고 들었어요. 분명 다음 신호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했다면 그러지 않아야 할텐데 말이죠. 공통체 안에서 개인주의는 별로 이득될 것이 없습니다. 꼭 사라져야 하는 행태죠."
운전 경력 20년 이상의 배테랑 운전자인 그는 매일 아침 하루 일과를 정리한다. 시간 활용만 잘하면 안전 운전도 어렵지 않다는 것.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짜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약속시간이 월요일 9시고, 차로 40분 거리라면 8시20분에 출발합니다. 이런 식의 계획을 잡을 때 중요한 건 평소 도로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월요일에는 길이 막히니까 20분 먼저 출발하는 것 말입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시간적 여유를 두는 거예요. 그러면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과속할 필요 없고, 끼어드는 운전자 봐줄 수 있는 여유도 생기게 됩니다."
꾸밈없는 모습만큼이나 그의 대답은 솔직했다. 자동차를 과시용이 아닌 '탈 것'으로 여기는 자세는 배울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양보하면 됩니다. 그리고 양보를 받았으면 고마움을 표시하고요. 그러면 서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문화가 정착되면 운전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지 않겠어요?" 넉넉한 그를 보며 여유로움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오아름 기자 or@autotimes.co.kr
출처-오토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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