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좌파의 '박정희 사랑'
▣ 출처 : 매일경제 2006년 1월19일
▣ 글쓴이 : 전병준 특파원 bjjeon@mk.co.kr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킨 칠레에 가면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빠른 것에 놀란다. 남미대부분 국가와는 사뭇 다르다. 그만큼 활기가 있고 의욕적이다. 20년 가까이 좌파가 집권하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계층 사이의 이질감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 이유는 여타 남미 국가에 비해 '수탈의 역사'가 덜하기 때문이다.
칠레는 스페인의 식민지 중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었다. 대서양을 건너 남미에 이르러도 칠레로 가려면 대륙을 횡단해 안데스 산맥을 넘어야 했다. 요즘 개념으로 치면 운송의 어려움으로 경제성이 약한 나라였다. 여기에다 변변한 자원마저 부족했다. 스페인으로서는 수탈보다는 오히려 지원을 해야 할 판이었다. 내부적으로는 '나눠먹지 않으면 공멸'이라는 절박함이 있었다. 서로 가진 게 없으니 사회적 갈등도 그만큼 적었다.
피노체트의 철권통치는 국민의 기본권을 크게 후퇴시켰지만 사회의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데는 기여했다. 피노체트를 싫어하는 국민들도 '사회를 맑게 했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 이면에는 개방화 전략이 있었다.
지금도 전세계에서 자동차 가격이 가장 싼 곳이 칠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칠레 좌파들이 '박정희식 경제모델'에 경외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요체는 어떻게 30년도 안된 기간에 삼성전자와 현대차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직후 칠레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관리들은"가장 큰 고민은 국가의 성장동력이 미약하다는 점"이라고 솔직히 시인했다. 경제 개방화도 필요하고 깨끗한 사회도 중요하지만 성장여력이야말로 한 나라 발전의 핵심임을 그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만큼 정부관리들의 주요 업무는 기업들 도와줄 것을 챙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개혁적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노무현 정부가 서구 모범 좌파들의 진정한 고민이 무엇인가를 칠레에서 배웠으면 한다.
[뉴욕 = 전병준 특파원 bjjeo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