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얘기 | gt36cw
먼저 간단하게 협궤열차의 의의와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철도는 대부분이 일제식민지시절에 건설되었습니다. 건설비가 많이 드는
표준궤(1435mm)의 절반인 762mm로 건설한 철도가 협궤철도입니다. 북한지역에도 많이 건설
되었고 현재도 운행중인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남한은 협궤로 건설했다가 표준궤로 다시
건설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여선이 개통되고 이어 수인선이 개통되면서 여주,이천의 쌀은 곧바로 인천항으로 향할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또한 인천지역의 소금이 수원을 거쳐 전국으로 운송할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중에는 물자수송용으로도 요긴하게 이용되었지만 이후 영동고속도로의 개통과
국도의 발달로 손님이 대폭줄었고 설상가상으로 73년 수해로 수여선은 결국 폐선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수인선은 그후로도 운행을 계속하다가 95년에 운행을 중지하여 남한에서의
협궤철도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간단한 협궤철도의 역사입니다. 용어중에 '구배33..'은 1000미터를 갈때 30미터를 올라가는
기울기를 뜻합니다. 도로가 100미터에 얼마를 가지고 기울기를 말한다면 그보다 훨씬 조건이
취약한 기관차는 천분율로 기울기를 나타내며 1000분의33퍼밀의 기울기면 중앙,태백선의
특수구간에서 볼수 있는 기울기로 매우 가파른 기울기입니다. 물론 무척 위험한 구간입니다.
수인선은 그정도의 언덕은 없지만 수여선의 경우엔 제법 높은 구배(언덕)이 있어서(용인-신갈)
열차운전이 매우 어려웠고 종종 인명피해를 동반한 사고도 났다고 전해집니다
'혀기'라는 단어는 협궤의 일본발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적도 있는데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최대속도가 70 이나 되지만 실제로는 그정도의 속도를 낼곳은 없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73년 수여선 종운식의 사진. 혀기2 13이라는 글자가 선명합니다. 오랜동안 운용을 해온만큼
기관차의 상태가 매우 허접스러워보입니다
수인선과 수여선의 위치가 잘 나와있습니다. 수인에 비해서 수여선의 노선이 의외로 제법 길다는
것을 알수 있고 위의 중앙선이나 경인선과 비교하면 상당히 장거리 노선이기도 합니다.
수여선은 원주와 연결을 하려던 계획이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노선은 영동고속도로의 노선과도 정확하게 일치하여 오히려 수여선의 몰락을 가져오게
합니다.
덤으로 경인선에서 소사역에서 갈라져 김포로 가는 노선이 눈에 띕니다. 80년대 초반까지도 존재했던 김포선입니다.
용인 신평리에 살고계시는 큰아버님의 고교시절 수여선사진입니다(어렵게 구했습니다^^;)
역은 정확히는 모르겠고 맨왼쪽분의 머리부분에 있는 탄수차에서 철도마크가 보입니다.
그리고 기관사님이 찬조 출연하셨군요. 용인역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큰아버님은 6.25참전용사이므로 적어도 전쟁 전 사진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몰래 사진을 들고와서 여쭙지 못하고 이렇게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철도박물관에 보관중엔 혀기2 13호기관차입니다. 사진에서 보던 너절함에 비교하면 그래도 비교적
잘 보관되어 왔음을 알수 있습니다.
협궤용증기기관차는 그럭저럭 숫자가 꽤 많았지만 대부분이 폐차되고 차적에서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몇대만이 살아서 형태나마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좀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보존방법을 강구해야 할듯 합니다.
그래서 철박에서 찾아볼려고 했지만 기관차만 있을 뿐이지 기록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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