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그렇게되지 않게 반민족 후손들도 모든 권리를 빼앗아한다.
쪽바리가 왜 안중근의사의 차남을 끌고 다니며 사과를 시키고 비루한 삶은 살게했을까.
한국인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임.
독립운동을하면 거지꼴 못면한다는걸.
지금도 그 연장선이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늘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그랬습니다. 필요할땐 모른척 남인척 하다가 후에는 판단하고.. 역사는 늘 되풀이 되었습니다. 국가가 위기시절에는 국민들에게는 목숨을 바치라 하고 위정자들은 살기 급급하고 후에 판단으로 죽이라하고.. 일제시대처럼... 에휴 말할려니 먹먹하다. 제발 정치 좀 잘 좀 해라!!!! 쓸데없는거에 밥그릇쌈 하지 말고
우리 국민 수준이 딱 그 수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극히 감정적이고 이중적이죠. 촛불혁명으로 이뤄낸 정권교체?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냥 한 놈이 나서서 떠들면 그냥 몰려갑니다. 그게 정의인 줄 알고 그걸 따르는 자기야말로 깨시민이라고 착각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은 중2병. 딱 그 수준. 개, 돼지 맞습니다.
뭘 잘못했나요?
끝까지 정치에 나서길 거부했고(새세상은 새로운 인물이 이끌어야 한다 하셨죠), 자신의 유명세? 이름값? 이 통일에 보탬이 된다면 어떠한 위험도 감내한 분입니다.
북한행? 그게 쉬운 길이었을 것 같나요?
공산당인 김일성에게 민족주의자며 민족의 영웅인 김구 선생의 방북이 달가운 일이었을까요?
그분이 뭘 잘못했나요? 어떠한 평가가 미화되었나요?
엄청난 비약과 음모론을 한번 풀어보죠....
전 이 모든게 이승만 때문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자금을 횡령하고 어마어마한 모금액을 탕진한 뻬돌린 이승만
덕분에 임정과 독립군은 무기는 커녕 끼니도 못챙기고 독립운동은 커녕 살아가기도 힘들었습니다.
중국 장개석이 지원을 대폭 늘리기 전까지 임정과 독립군은 못먹고 못입고 무기조차 없는 그러면서도 목숨걸고 활동한 위인들입니다.
그 자식분 가족분들을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임정의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사정을 알았을 겁니다. 변절 이해도 했겠죠....하지만 독립운동 상황에서 위인의 변절자 아들을 일본이 홍보에 이용하는데로 이해한다고 놔둘수는 없었을 겁니다. 정말 마음이 있었다면 못죽였을까요? 일왕 및 일왕 일가에 대한 암실시도와 성공사례도 있습니다. 못했을까요?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 입니다. 정말 쓰레기 같은건 가족을 아이를 정치에 이용하고 탄압하고 억압한 일본이죠....
통령 자리를 주지않으면 참여하지 않겠다 하여, 임정의 수반이 된 후 모금된 자금의 대부분을 횡령하고 탕진하여 종국에 임정의 경제적 기반을 박살내 버린 이승만이죠.......
그것들이 나쁜겁니다.
이승만이 독립군 자금을 횡령하고 슈킹을 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셔야 할 것은 당시 김구가 공산주의자 서영해의 꼬임에 빠져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합니다. 처음엔 찬성을 했으나 남북한을 통틀어 총선거를 하면 선생님이 대통령이 되실 텐데 왜 이승만이 주도하는 남한만의 선거에 참여하려 하느냐. 김일성도 김구 선생을 대통령으로 모시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라고 집요하게 설득하는 바람에 변심하게 된 겁니다. 이건 뇌피셜이 아니라 김구의 추종자였던 조경한의 증언입니다. 님이 그렇게 증오하는 이승만 때문에 우리나라만이라도 조선인민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하나 더. 다른 건 몰라도 이승만의 치적은 딴 거 없어요. 한미상호방위조약. 주한미군 주둔입니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 발전의 토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김구에 대해서는 참 할 말이 많지만 그만하겠습니다. 다만, 흔히들 알고 계실 김구.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 말만 드리겠습니다.
@소돼지와아이들 열심히 뒤져 봤으나, 님의 글의 근거를 모르겠습니다.
세사람의 이름을 키워드로 조합 아무리 검색해도 근거가 없네요...
백범 선생님을 비판 꼭 비판해야 한다면 좌익 테러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으며, 백색테러의 배후로도 지목받고 있다는 점 특히 테러 방법에서 무관한 사람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한 점에서는 저도 문제가 있다 생각합니다.
더불어 극렬한 반일 노선이었으나, 친일파 청산에는 소극적이었다는 부분에서는 저 역시 아무리 경제적으로 친일파 출신들의 지원이 없이 생활 및 활동이 힘들었어도 아닌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미군의 평가, 님이 언급하신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의 최근 발굴된 자료 등에서 알수 있듯이 김구 선생은 극렬한 반공주의자였고, 신탁통치와 남북 분할 정권 수립에 매우 극렬히 반대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 : 프랑스 외무부 아주국장의 문건에는 서영해는 “김구는 격렬하게 한국의 통일을 추구하며, 전력을 다해 미국과 소련 군대의 철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평양회의(남북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회 연석회의)에 간 것은 김구의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
93년에 돌아가신 독립운동가 조경환 선생이 어떤 증언에서 어떤 자료에서 그런 언급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근거 없는 설로 보입니다.
한창 이승만 추종자들이나 근자까지 보수라고 칭하는 적폐의 일부가 김구선생을 폄하하기 위해 주장했던 설중 김일성에 이용당한 설, 좌익으로 돌아 섰었다는 설 등이 있으나 전부 짜맞춘 설로만 보입니다.
그리고 독재자 이승만이 아니었어도 반미 정치인만 아니었다면 미군의 한반도 주둔과 한미 방위조약은 당연한 결과 입니다. 당시 국제관계(이념대립, 소련과 미국과의 대립) 등 어떤 정세를 봐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 입니다.
이승만이 미국에 기댈수 밖에 없었던 것도 당시 정치인이 반미가 아니었다면 누가 국가 수반이었어도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올바로 아세요 임정의 파리 외교관 역할을 했던 서영해 선생이 49년 실종되기 까지 어떤 공산주의 행보가 있었나요? 이승만의 비리는 기록과 증언이 있는 사실입니다. 김구 선생의 비판할 점은 위에 언급했고 거의 확실시 되죠 그러나 님의 주장의 뒷받침할만한건 찾을 수 없군요...
법이 참 뭣같죠.
법이 정의를 세우는게 아니고, 분쟁을 막고 최소한의 보상을 하는데,
법을 집행하거나 분쟁을 따질 때는 상식이 아니라, 법전의 조항만 따지고 있으니,
나쁜 놈들이 법을 연구해서 합법적으로 나쁜짓하고, 자신의 나쁜 행동을 정당화하는 용도로 법을 사용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건 아닐까요?
상식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인정하고 적절한 보상과 대접을 해주는 세상은, 법이나 구4화의원 정권이 만들어주는게 아니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책임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목소리를 내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몇 일 전에도 보배에서 쓰레기 짓하는 놈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한 마디씩 하니, 캡쳐해서 다 고소하겠다고 하더니, 사람들이 계속 욕하니 글을 신고해서 못 보게 해놨더군요.
그리고 밀양사건으로 아직도 고소를 당하는 회원도 생기고...
사람들이 정의를 말하고 세상을 바꾸려하면,
경제와 먹고사는 걸로 늘 공격을 하니, 국민소득의 2배, 3배, 10배, 100배를 버는 사람과 기업에 북유럽처럼 세금을 절반가량 붙여
국민 누구나 기본 생활을 걱정하지 않는 세상부터 만들어야 하지
두번다시 경제가 힘든데, 하루 3끼도 못 먹는데
무슨 정의냐? 나 먹고 살기도 힘들다 는 말로 관심을 돌리는 루틴이 그만 니오지 않을까 싶네요.
사람들이 기본 생활이 문제 없으면 결혼과 자녀를 안 낳을까요? 어느 대통령 때 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겁니다.
이 글이 사실이라면 저는 안중근의사의 자녀분을 이해 하렵니다.
단순 친일파와 달리 대한민국의 최고 애국운동자인 안중근 의사는 국가의 짐을 짊어지고 희생하였는데, 결국 얻어진 것은 가난과 핍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돌보지 않고 가족은 떠돌이 생활만 하는게 작금의 독립운동 후손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누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비단 독립운동을 떠나서 군인,소방,경찰등 위험과 맞닥드린 업무를 하는 공무원에게도 순직 요건이 굉장히 까다로워 국가유공자 지정도 꽤 험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나라를 위해 일 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미국애들이 역사도 짧고 인종도 다양한데...
걔들은 남의나라 전쟁터에서 죽어도 몇십년이 흘러도 유해발굴해서 본토로 가져간다.
이게 별거 아닌것같지만 걔들이 목숨걸고 싸울수 있는 믿음을 주는거다 내가 여기서 뒤져도 시체는 가족에게 갈수있다는 믿음...
솔직히 백범선생이 할말이 없어야 맞는거지...
안중근 선생이 거사를 성공하고 처형되고 그 가족들은 보살펴주었어야 한다고 본다.
독립운동하신 분들의 자손들은 어렵게 살고 친일파 후손들은 잘사는 이 엿같은 현실...
6,700여명의 민족반역자들에 대한
사형집행을 명령한 드골.
부역자 처벌을 통해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는다 하더라도 또 다시 프랑스를
배신하는 국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국가가 주는 이런
강력한 메세지가 없죠.
제1야당이라는 자유당은 일본 대변인
노릇이나 하고 있어도 굳건히 30프로의
지지층을 형성하고..
누굴 탓하고 원망할 자격이 없어요. 우린
@아나볼릭스테로이드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한 타민족이고 북한은 장기적으로 보듬어야할 통일한국 수립의 대상입니다. 비교할걸 하셔야지. 현 야당 및 이전정권들의 장기적 목표도 통일이었고 이를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현정권에서 바톤터치받아서 본인들의 성과가 되질 않으니 종북 이념놀이 다시 시작하네요. 단순 무식한 소렌ㅡ린 그만합시다.
조작 자료 입니다 선동되지 마세요
누가 만든 자료인지가 궁금해질 정도로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자료입니다. 무슨 안준생이 먹고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변절한게 아니죠.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진행 할 당시 이미 그의 가족이 보복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안중근의 모친과 부인 아들 형제들이 모두 국외로 피신하였고 그의 처자식들을 책임진 유승렬이란 후원자까지 있었습니다. 그 후원자의 아들이 안중근 의사의 체포 직후 함께 체포되기까지 하는 희생을 하며 안중근의 일가와 처자식 모두를 연해주로 피신 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후 도산 안창호 선생 등의 도움으로 땅과 농장을 지원 받아 생계를 꾸렸을 정도죠 당시 연해주에 "안중근 유족 구제 공동회"가 결성 되어 이들 유가족을 지원했는데 무슨 버려졌단 말이 나오는지요??
안중근의 맏아들이 그런 보호 속에서도 일본 밀정의 침투로 독살 당하는 비극이 발생한 후 해당 지역이 위험에 노출되었기에 안중근 유가족은 다시 러시아 니콜리스크로 이주하였고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결정이 되자 안중근 유가족들은 모두 상해로 이주하여 임시정부의 보호아레 생활했습니다. 이때도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해 임시정부의 지원이 지속되었죠. 때문에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은 김구 선생의 오른팔로 임시정부에 투신한 독립 투사로 활동 했을 뿐만 아니라 안중근의 일가 친척 모두 임시정부에서 일하며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중일전쟁으로 상해가 일본군에 함락되며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피신 할 때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이 자신의 일족이기도 한 안중근의 유가족을 먼저 안챙기고 김구선생을 모친을 챙겨서 피신하였을 때 김구 선생이 안중근의 유족을 안공근이이 먼저 보호하여 피신 안시킨것에 크게 분노하여 질책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젊은 가장이 의로운일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 그 가정은 파탄날 수 밖에 없음. 그나마 안중근은 이름이라도 크게 남아서. . .
시골 우리마을의 경우에 마을의 선조 장정들이 40대와 20대에 임진왜란때 의병활동하다 돌아가신 후 집안이 기울어서 몇백년 동안 회복 못함. . . 국사책에 나오는 유명한 대장도 아니고 . . . 그나마 700명중의 일부라 비석하고 홍살문을 받아서 남아있는 것이지만, 나 자랄 때 까지도 인근 마을 중에서 제일 가난한 마을로 쳤음. 옛날에는 집안이 한번 넘어가면 복구가 안됨
조선의 지배계층은.. 전세계역사에 유례없는 쓰레기들이었고 결코 일본에 수탈보다 백성을 덜 핍박하지 않았다.... 결국 이 나라가 지들나라지 백성에 나라인가..... 나라를 지킬라면 지들이 지키고 백성인 나는 절대 나라따위 지키는데 몸바치지 않겠다...
이나라가ㅡ지들나라지 내나라냐!
쪽바리가 왜 안중근의사의 차남을 끌고 다니며 사과를 시키고 비루한 삶은 살게했을까.
한국인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임.
독립운동을하면 거지꼴 못면한다는걸.
지금도 그 연장선이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회가 왔을 때 수단방법 안가리고 잡아라. 그게 가장 큰 메시지인 듯.
그냥 침략하고 약탈한건데
518을 그리고 독재하려는데 말 안통하니까 학살 한건데
그리고 518을 부정하는 사람들 보고 사과하라는 것은
"518 자체가 사실이 있고, 부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뭘 알고나 부정하는게 나국썅이 말하는 것 처럼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개소리나 하는 거지
그냥 사실이라고 부정할 대상이 아니라
어쩌다...
일본으로 부터 해방되었는데, 빨갱이 치하가 웬말이냐..
518이 살인폭동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는것은
바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을 찬양하기 때문에 유공자가 되는것이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면 대한민국은 적국이라는소리고
대한민국이 맞다면 518은 살인폭동이다.
518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지 택하라
독립유공자의 후손에 대한 책임을 하지 않았으니 정부의 역할로써 배임이며,
살해협박을 받는 안준생에게 어떠한 구호조치를 하지않고 방치하였으니 처벌할 자격이 없다
안중근 의사 의거는 1909년.
자신의 출세를 위한 굴복은 다르다.
솔직히 북한가다 안죽었으면 이승만이랑 같은 등급으로 분류될듯
끝까지 정치에 나서길 거부했고(새세상은 새로운 인물이 이끌어야 한다 하셨죠), 자신의 유명세? 이름값? 이 통일에 보탬이 된다면 어떠한 위험도 감내한 분입니다.
북한행? 그게 쉬운 길이었을 것 같나요?
공산당인 김일성에게 민족주의자며 민족의 영웅인 김구 선생의 방북이 달가운 일이었을까요?
그분이 뭘 잘못했나요? 어떠한 평가가 미화되었나요?
전 이 모든게 이승만 때문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독립자금을 횡령하고 어마어마한 모금액을 탕진한 뻬돌린 이승만
덕분에 임정과 독립군은 무기는 커녕 끼니도 못챙기고 독립운동은 커녕 살아가기도 힘들었습니다.
중국 장개석이 지원을 대폭 늘리기 전까지 임정과 독립군은 못먹고 못입고 무기조차 없는 그러면서도 목숨걸고 활동한 위인들입니다.
그 자식분 가족분들을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임정의 분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사정을 알았을 겁니다. 변절 이해도 했겠죠....하지만 독립운동 상황에서 위인의 변절자 아들을 일본이 홍보에 이용하는데로 이해한다고 놔둘수는 없었을 겁니다. 정말 마음이 있었다면 못죽였을까요? 일왕 및 일왕 일가에 대한 암실시도와 성공사례도 있습니다. 못했을까요?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 입니다. 정말 쓰레기 같은건 가족을 아이를 정치에 이용하고 탄압하고 억압한 일본이죠....
통령 자리를 주지않으면 참여하지 않겠다 하여, 임정의 수반이 된 후 모금된 자금의 대부분을 횡령하고 탕진하여 종국에 임정의 경제적 기반을 박살내 버린 이승만이죠.......
그것들이 나쁜겁니다.
세사람의 이름을 키워드로 조합 아무리 검색해도 근거가 없네요...
백범 선생님을 비판 꼭 비판해야 한다면 좌익 테러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으며, 백색테러의 배후로도 지목받고 있다는 점 특히 테러 방법에서 무관한 사람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한 점에서는 저도 문제가 있다 생각합니다.
더불어 극렬한 반일 노선이었으나, 친일파 청산에는 소극적이었다는 부분에서는 저 역시 아무리 경제적으로 친일파 출신들의 지원이 없이 생활 및 활동이 힘들었어도 아닌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미군의 평가, 님이 언급하신 독립운동가 서영해 선생의 최근 발굴된 자료 등에서 알수 있듯이 김구 선생은 극렬한 반공주의자였고, 신탁통치와 남북 분할 정권 수립에 매우 극렬히 반대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 : 프랑스 외무부 아주국장의 문건에는 서영해는 “김구는 격렬하게 한국의 통일을 추구하며, 전력을 다해 미국과 소련 군대의 철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평양회의(남북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회 연석회의)에 간 것은 김구의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
93년에 돌아가신 독립운동가 조경환 선생이 어떤 증언에서 어떤 자료에서 그런 언급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근거 없는 설로 보입니다.
한창 이승만 추종자들이나 근자까지 보수라고 칭하는 적폐의 일부가 김구선생을 폄하하기 위해 주장했던 설중 김일성에 이용당한 설, 좌익으로 돌아 섰었다는 설 등이 있으나 전부 짜맞춘 설로만 보입니다.
그리고 독재자 이승만이 아니었어도 반미 정치인만 아니었다면 미군의 한반도 주둔과 한미 방위조약은 당연한 결과 입니다. 당시 국제관계(이념대립, 소련과 미국과의 대립) 등 어떤 정세를 봐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 입니다.
이승만이 미국에 기댈수 밖에 없었던 것도 당시 정치인이 반미가 아니었다면 누가 국가 수반이었어도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올바로 아세요 임정의 파리 외교관 역할을 했던 서영해 선생이 49년 실종되기 까지 어떤 공산주의 행보가 있었나요? 이승만의 비리는 기록과 증언이 있는 사실입니다. 김구 선생의 비판할 점은 위에 언급했고 거의 확실시 되죠 그러나 님의 주장의 뒷받침할만한건 찾을 수 없군요...
안응호(33년생/안중근손자)는 1952년 미국으로 유학
안준생은 아들 안응호가 의사가 되는것을 못보고 죽은것으로 판단됨
법이 정의를 세우는게 아니고, 분쟁을 막고 최소한의 보상을 하는데,
법을 집행하거나 분쟁을 따질 때는 상식이 아니라, 법전의 조항만 따지고 있으니,
나쁜 놈들이 법을 연구해서 합법적으로 나쁜짓하고, 자신의 나쁜 행동을 정당화하는 용도로 법을 사용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건 아닐까요?
상식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인정하고 적절한 보상과 대접을 해주는 세상은, 법이나 구4화의원 정권이 만들어주는게 아니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의 책임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목소리를 내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몇 일 전에도 보배에서 쓰레기 짓하는 놈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한 마디씩 하니, 캡쳐해서 다 고소하겠다고 하더니, 사람들이 계속 욕하니 글을 신고해서 못 보게 해놨더군요.
그리고 밀양사건으로 아직도 고소를 당하는 회원도 생기고...
세상은 작은것 부터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제와 먹고사는 걸로 늘 공격을 하니, 국민소득의 2배, 3배, 10배, 100배를 버는 사람과 기업에 북유럽처럼 세금을 절반가량 붙여
국민 누구나 기본 생활을 걱정하지 않는 세상부터 만들어야 하지
두번다시 경제가 힘든데, 하루 3끼도 못 먹는데
무슨 정의냐? 나 먹고 살기도 힘들다 는 말로 관심을 돌리는 루틴이 그만 니오지 않을까 싶네요.
사람들이 기본 생활이 문제 없으면 결혼과 자녀를 안 낳을까요? 어느 대통령 때 부터,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겁니다.
쥐새끼들....
단순 친일파와 달리 대한민국의 최고 애국운동자인 안중근 의사는 국가의 짐을 짊어지고 희생하였는데, 결국 얻어진 것은 가난과 핍박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돌보지 않고 가족은 떠돌이 생활만 하는게 작금의 독립운동 후손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누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비단 독립운동을 떠나서 군인,소방,경찰등 위험과 맞닥드린 업무를 하는 공무원에게도 순직 요건이 굉장히 까다로워 국가유공자 지정도 꽤 험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나라를 위해 일 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한이 맺혔을듯요.
가족은 지켜줘야지..
아들이 진정한 남자구만
위안부한테도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하는게
개한민국인디
걔들은 남의나라 전쟁터에서 죽어도 몇십년이 흘러도 유해발굴해서 본토로 가져간다.
이게 별거 아닌것같지만 걔들이 목숨걸고 싸울수 있는 믿음을 주는거다 내가 여기서 뒤져도 시체는 가족에게 갈수있다는 믿음...
솔직히 백범선생이 할말이 없어야 맞는거지...
안중근 선생이 거사를 성공하고 처형되고 그 가족들은 보살펴주었어야 한다고 본다.
독립운동하신 분들의 자손들은 어렵게 살고 친일파 후손들은 잘사는 이 엿같은 현실...
사형집행을 명령한 드골.
부역자 처벌을 통해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는다 하더라도 또 다시 프랑스를
배신하는 국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국가가 주는 이런
강력한 메세지가 없죠.
제1야당이라는 자유당은 일본 대변인
노릇이나 하고 있어도 굳건히 30프로의
지지층을 형성하고..
누굴 탓하고 원망할 자격이 없어요. 우린
간디도 1차대전때 인도인들에게 영국의 편에서서 독일과 싸우라고 독려하고 영국군에 입대했지만 그를 민족반역자라고 하나요?
제가 중국에 갔을때 참전하신 원로교포분과 술자릴 가지게되었을시 그분말이 민간인에게 절대로피해를 입히면 바로 군법에의거 처벌받았다하네요.강원도 춘천시 군자리쪽 오래사신 주민노인분의 증언에 의하면 미군이들어오면 하도 강간을 많이당해서 여성분.부녀자들은 얼굴과 옷에 소똥을 바르고 뭍히고 다녔다고 합니다.이후 중공군에게 재탈환당했은땐 걱정없이 다녔다고 증언하였네요. 가끔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가배운 반공은 허상일수도있구나...북한보다 우리가 잘살지만 자존감은 북이 우월할듯...친일파 이승만과 그수하들이 나라를 개같이 운영해서 ...그래도 지금은 민주정권이라 그나마..
내가 일제시대에 살고 있고 자녀들이 있다면 과연 나는 친일파가 되지 않았을까.. 정말 냉정히 깊이 생각해본다면.. 솔직히 친일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참 많이 욕먹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봐도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의사, 열사, 지사 분들을 가슴 깊이 존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착외구당 앞세워서...
잡아서 처형이라니..임시정부도, 김구선생도 그런말 할 자격 없다고 본다.
진짜 지금이라도 친일청산 해야됨.
누가 만든 자료인지가 궁금해질 정도로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자료입니다. 무슨 안준생이 먹고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변절한게 아니죠.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진행 할 당시 이미 그의 가족이 보복을 당할 것을 염려하여 안중근의 모친과 부인 아들 형제들이 모두 국외로 피신하였고 그의 처자식들을 책임진 유승렬이란 후원자까지 있었습니다. 그 후원자의 아들이 안중근 의사의 체포 직후 함께 체포되기까지 하는 희생을 하며 안중근의 일가와 처자식 모두를 연해주로 피신 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후 도산 안창호 선생 등의 도움으로 땅과 농장을 지원 받아 생계를 꾸렸을 정도죠 당시 연해주에 "안중근 유족 구제 공동회"가 결성 되어 이들 유가족을 지원했는데 무슨 버려졌단 말이 나오는지요??
안중근의 맏아들이 그런 보호 속에서도 일본 밀정의 침투로 독살 당하는 비극이 발생한 후 해당 지역이 위험에 노출되었기에 안중근 유가족은 다시 러시아 니콜리스크로 이주하였고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결정이 되자 안중근 유가족들은 모두 상해로 이주하여 임시정부의 보호아레 생활했습니다. 이때도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해 임시정부의 지원이 지속되었죠. 때문에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은 김구 선생의 오른팔로 임시정부에 투신한 독립 투사로 활동 했을 뿐만 아니라 안중근의 일가 친척 모두 임시정부에서 일하며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중일전쟁으로 상해가 일본군에 함락되며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피신 할 때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이 자신의 일족이기도 한 안중근의 유가족을 먼저 안챙기고 김구선생을 모친을 챙겨서 피신하였을 때 김구 선생이 안중근의 유족을 안공근이이 먼저 보호하여 피신 안시킨것에 크게 분노하여 질책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대체 누가 안중근의 유족과 처 자식을 버렸다는 주장이 성립하는지요?
시골 우리마을의 경우에 마을의 선조 장정들이 40대와 20대에 임진왜란때 의병활동하다 돌아가신 후 집안이 기울어서 몇백년 동안 회복 못함. . . 국사책에 나오는 유명한 대장도 아니고 . . . 그나마 700명중의 일부라 비석하고 홍살문을 받아서 남아있는 것이지만, 나 자랄 때 까지도 인근 마을 중에서 제일 가난한 마을로 쳤음. 옛날에는 집안이 한번 넘어가면 복구가 안됨
힘을 기르자.
지금도 미제놈들이 좉나게 뺏어간다.
소한민국이 되자.
니미뽕이건 양키건 모두 한국 오리지날 총으로 살해하자.
소한민국 만세!
이나라가ㅡ지들나라지 내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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