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 2교대 근무를 하고있습니다.
퇴근하고 씻고 딸래미들 밥차려주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집사람은 출근 했습니다ㅎㅎ)
일단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신 형님들 친구들 동생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댓글 하나하나 전부다 읽어봤습니다 (일일히 답댓글 못드린점 죄송합니다)
너무 많은 응원과 격려에 저도 힘이 조금 납니다 ^^ 감사합니다 ^^
제가 성인이 되고 공장에 취직하고 난후
2009년 23살 까지 근무를 하였습니다 .
근무를 하는도중 그만두었다가 다시 오신 형님이 계십니다 .
그형님과 저는 같은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
같이 붙어서 일을하다보니 금방 친해졌던것 같습니다
어느날 제가 그 형님께 여쭤보게 됩니다..
"형님은 여기 다시 오시기 전에 어디서 근무 하셧어요?
거기 일은 어떻고 급여는 어떻게 받으셧어요?"
라고 질문을 했고 형님 께서 답변을 해주신게
"거제도 삼성중공업에 취부를 했고 월급은 400만원 정도 받았고 다시 오기전에 7000만원 이란돈을 모아서 아파트를 매입하고
친구가 다시 불러서 왔다 "
라고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
저는 그당시 일요일 특근 주말없이 근무 주야2교대 잔업이 100시간이 넘어가도
2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타고 있었거든요
그형님 말에 혹해서 저는 2009년 공장을 퇴사하고 진해에 위치한 STX중공업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옆에서 딸래미가 쳐다보네요 ^^;; 부끄럽게..)
그당시 조선소라는 곳은 뭐하는곳인지도 어디에 위치한 곳인지도 몰랏고
어떻게 입사를 하는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입사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건강검진후 건강검진 승인이 나면 그후 안전교육 8시간을 받고 (회사내)
출입증 발급후 현장배치 되는 그런 시스템이였습니다.
당연 저는 취부가 아닌 도장을 했던놈이라 도장쪽으로 취직을했습니다,
선박 도장이란 힘이들기전에 너무 위험하고
기량자(사수) 들이 텃세가 너무 심하고
정말 힘이든 직업이였습니다..
저는 공장에서 도장(스프레이)을 했기때문에 조선소에 가서도 당연히 스프레이를 할줄 알았지만
스프레이 라는것은 "사수" 들만 할수있었고,
신규 입사자 (초보자) 는 보조역할을 하는거였습니다 ,
★여기서 보조란 스프레이 사수가 스프레이를 하게 될경우 뒤에서 줄이 꼬이지 않게끔 줄을풀어주며
스프레이 사수가 원하는 모든것을 들어주는 잡부 입니다 .
스프레이 사수란 건(총)을 들고 뿌리는 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
저는 스프레이를 하다가 조선소에 취직을 하였기때문에 뒤에서 줄을 잡으면서 속으로
"아..저 정도는 나도 할수있는데 "
라고 혼자 만의 생각을 가지며 보조역할을 하였습니다 ,
정말 스프레이를 하려면 스프레이 선임사수들에게 접대를 하지 않고서는 절대 잡을수 없는 구조였거든요 ,,
그래서 저는 무조건 잘보이고 무조건 스프레이를 해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절대 건(총)을 주지는 않더군요 ..
여기서 중요한건 면접볼때는 저에게 "일당 12만원을 주겠다 OT는 시간당 1만5천원 이다 "
라고 저는 면접을 봣고 입사를 해서 일을 하였는데
첫 월급날이 되던날 일당 7만원을 계산해서 주고 심지어 70%만 지급하고..
2개월째 월급을 받고..
저는 와~~ 조선소란 절대 일을해서는 안되는 곳이구나 라고 생각을하고 퇴사를하게되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선박 진수가 걸리거나 출항(딜리버리)이 걸리면 몇일이고 밤을새서 일을했거든요)
그당시 저와 제 여자친구 ( 현와이프 ) 는
창원시 진해구 이동 1200- ** 번지에 원룸을 얻어놓고 살았습니다
원룸 계약을 1년 계약을 맺은지라 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방을 빼겟다고 하니
방에 사람을 구해놓고 나가라고 주인께서 말씀을 하시길래 아,, 그냥 여기서 1년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저는 이제 뭘하고 먹고살아야하나 어떻게하지? 라고 생각을하던 찰나에
택배기사 구인광고를 보게되었습니다
면접을 보고 지입차량을 하게되면 가져가는 돈이 많을것이다 라는말에
제가 타던 차량을 가지고 부산강변에 있는 중고차 매매단지로 가서 바로 1톤 탑차와 대차를하고
바로 택배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택배회사는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불철주야 밤이고 낮이고 배송만 했습니다
지리조차 모르는 진해구 "이동" 이란곳을 제가 담당구역으로 배정을 받게 되었고
지도 한장들고 저와 제여자친구 (현 와이프 . 이제부터 집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와 같이 배송을 밤12시 넘어서 까지 계속 했습니다
이때 당시 명절이 낀상황이라 12시 넘어서 배송을 해드려도 수취인분들께서 짜증한번 안내시고 오히려 저를 기다리는 상황이였습니다,,
아침에 집사람이 도시락을 싸고.
저는 내려가서 차시동걸고 짐정리하고.
전날 못돌린 택배는 다음날 최우선적으로 돌려야함으로 앞으로 빼놓는 정리를 하고..
집하장으로 차를 끌고 가면 저와 제와이프는 항상 제일 늦게 출발..
제일늦게 퇴근.. ( 정말 힘들었습니다 )
배송하는것 자체가 힘든게 아니고 지리를 잘모르는게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ㅎㅎ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말씀드릴것은 제가 돈이 하나도 없이 시작을 했기때문에
만약 택배 배송을 하겠다고 하면 제가 물건을 받고 박스 크기를 보고
가격 측정을 하고 현금을 그자리에서 받고 퇴근할때는 집하장 사무실 가서 돈입금 시키는 그런 시스템이였습니다
(입금을 안시켜도 됩니다 . 다음달 월급날 그만큼 까서 나오거든요 )
돈이 없던 찰나 매일 현금이 들어오니 어린 나이에 집사람과 배송하고 집에들어가기전 소주한잔하는데에 썻드랫죠,,
(여기서 중요한건 원룸건물 1층에 삼겹살집이 있었습니다 ㅠㅠ.. 사장님께서는 영화 "친구"에 조폭역할으로 등장을 하신분 이였습니다)
이게 현금이 매일 매일 들어오다보니 우와 우리 이러다가 집사겠다.
아파트 이사가자 하며 모은다는게 어린나이에 잘되질 않더라구요..
반복적인 생활에 월급이 없어지고 택배도 너무 힘이들고 (당시 집사람이 임신 초기 였습니다)
돈을 버는것이 아니라 쓰는게 더많아지고 때마침 원룸 계약도 끝날무렵이였습니다
원룸 계약만기일 집을 빼라는 주인 .
저와 집사람 은 가진것이라곤 1톤탑차와 원룸 보증금 100만원 .
100만원도 이것저것 고장 낫다며 깎아서 60만원인가 받았던걸로 기억합니다
저희 총 전재산은 60만원과 1톤탑차 한대 뿐이였습니다
오갈때가 없었습니다 ..
당시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진해STX중공업에서 일을할때 짧은 시간이나마 저를 챙겨주시던 이모가 생각이나서
전화를 드려 이런 저런 상황을 드렸더니 이모집으로 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시 이모집이 울산 이였습니다 )
1톤탑차에 얼마 안되는 짐을 싫고 울산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때가 2010년 2월 인가 그런것 같네요.. 엄청 추웠거든요 ,,
울산도착 .
도착한 이모집은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 이였습니다
역시 조선소에서 도장을 하다가 만나게된 이모라 도장일을 하고계셨습니다
이모님께서 자기 집에 지내면서 일자리를 소개해 줄테니
기반잡아 나가라 ,
한 두어달 이면 안되겠냐 .
정말 너무 감사했습니다 ..
매일 밥도 차려주시고 이것저것 다 챙겨주시고
어떻게 보면 제가 지금 현재 살게끔 해주신 분 이였죠..
그렇게 하여 저는 울산 방어진에 위치한 OOOO조선에 입사를 하게되었습니다 ..
역시나 도장일을 했습니다 ,.
두번다시는 안할려고했던 조선소 도장 을 다시 하게된것이였죠
안할수 없었습니다
집사람 산부인과가서 초음파도 찍고 검사도 받고 해야하는데 돈이 필요하니깐요.
그래서 참고 일을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경상남도에 속한 조선소와 울산광역시에 속한 조선소는 같은 배를 만들면서도
일하느 스타일이 정말 틀렸습니다)
와 나도 이제 아빠가 된다 라는 생각에 꾸준히 열심히 일을하다보니
이제 저도 이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는지 ..
조장 이란 직책을 주더군요..
그후1년.. 조장..반장..직장..
(조선소에서는 조장→반장→직장→소장→사장 으로 직급이 나뉩니다 )
제기억으로는 24살인가 25살인가 반장 진급을하고
한 반을 맡으며 반원들을 이끌어 가며 선박한척을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을 했던것 같습니다
저는 남들보다 유리했습니다 .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승진을 했기때문에
제가 상대할 선주감독관 (선박 회사에 속한 검사원) 분들 그리고 QM (회사에 속한 검사원) 분들
저는 무조건 다 형님 이라고 부르며 검사를 속속 ok 받고는 했습니다 .
★★여기서 중요한건 조선소 도장이란
1 . 원청에서 협력업체에 0000호선 배정
2 . 협력업체 에서 나름 일잘하는 반장 또는 직장 배정
3 . 협력업체 작업시작
4 . 작업종료후 선주 감독관 & QM & MAKER( PAINT회사 ) 3명의 검사관이 업체 작업해놓은 것을 검사.
5 . 검사종료 (Comment) 코멘트를 달거나 아니면 (Reject) 리젝트
6 . 검사 합격시 다음달 기성분 통해 원청에서 협력업체에 기성(돈)을 지급 .
7 . 관리자 & 작업자 월급지급 (나머지는 회사 운영에 쓰겠죠^^;)★★
너무 어린 나이에 그 빡시다는 조선소에 서 관리자를 했으니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습니다
특히 조선소에 근무를 하고계시는 분들께서는 연령대가 4~50대 분들 이였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이끌고 작업을하고 작업완료후 검사수행까지 했습니다 ..
승승장구 였습니다 .
네.. 한달 월급 500 이였습니다 .
그생활을 2010년2월~2015년 5월 까지 했습니다
(조선소에서 어떻게 근무를 하였고 어떻게 진급을 하였는지는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겠습니다)
2015년 5월이 되었습니다.
그전 3월부터 급여가 밀리기 시작하더니 4월은 물론이고 5월 회사가 폐업을 하게되었습니다..
제 인생은 정말 그래프가 심하게 요동을 쳤네요..
폐업전 월급을 못받고 당시 월세를 살고있던 저는
모아둔 돈으로 월세 내고 이것저것 공과금내고
(이때는 둘째까지 태어난후 입니다)
아이들 밑으로 들어가는돈 저희 생활비 충당하다 보니 남는게 한푼도 없었습니다 ..
돈을 많이 벌면 많이 버는대로 많이 쓴다는 말이 맞습니다
워낙에 돈이 없이 살았기 때문에 돈을 써보는게 소원이라 돈을 펑펑 쓴것도 있었습니다 .
회사폐업.
폐업후 못받은 월급.
못받은 퇴직금.
총계산해보니 5000만원가량 되더군요 ,
한푼도 못받았습니다 .
이때 고용노동부에서 월급을 못받은 분들에게 해주는 제도를 알게되었습니다
"채당금"이라는 제도 인데요.
이 채당금이라는 제도도 접수되고 이것저것 조사하고
임금을 지불 받지 못한 근로자들에게 채당금이 지급되는데 까지 걸린 기간이 1년정도 걸리더군요
저 받아야 할금액 5천만원 입니다
고용노동부 ooo감독관 님께서 말씀하십니다
OOO씨 올해 20대 이시네요 ~ 나라에서 정한 금액이 20대 는 최대금액이 300만원 입니다.
네?? 제가 받을금액이 5천인데요..........
아니요 OOO씨~~ 나라에서 정한법이 그래요~~ 20~30대는 다시 일어설수 있는 나이라 금액이 그것밖에 안되요~
40~50~대는 못받은 금액에 70~80%는 받을수 있구요..
하,, 저는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립니다 ..
신용가드값 차할부값 보험비 방세 유치원비 핸드폰요금 전기세 가스비 분유값
다적으려면 너무 많아서요..
아무것도 못했어요
제일큰게 분유살돈 이였어요 이였어요 그리고 가스비 핸드폰요금
당연히 저는 월급도 못받고 퇴직금도 못받고
카드연체 핸드폰 연체 신용불량자 등록이 되었죠.
카드 핸드폰이 중요한게 아니였어요
둘째 분유값이 중요했어요 저희는
하,,,,,, 정말 그때 생각하면 ,,,
글이 너무 길어 죄송합니다
아직 쓰려면 이것보다 몇배나 더써야하는데 딸래미들이 자꾸 놀이터 가자고 옆에서 ㅠㅠ
오늘 야간도 출근해야하는데 여기서 글 마치고 딸래미들이랑 조금더 놀고
내일 퇴근하면 다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
아참 저는 어떠한 도움을 받고자 받으려고 이글을 쓰는게 아닙니다 .
쪽지로 정말 진심어린 조언과 응원과 행복을 빌어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이런글을 쓰는 의도가
어제글에도 말씀드렷다 싶이
저같은놈도 살고있습니다 다들 힘내세요
라는 뜻에서 글을 쓴것이지
절대적으로 금전적이나 생필품 도움을 받고자 글을 쓰는것은 아닙니다 .
단지 저는 제가 살아온 인생을 하염없이 넋두리 하고자 글을 쓰는것입니다 ..
마음만 받겠습니다 ^^;
저를 아시는분도 그냥 글을 읽어주시고 지나쳐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ㅠㅠ
아참.. 수정한번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여쭤보시기에 답변해드립니다..
저는 학력이 초졸입니다 중퇴 입니다 ..
감사합니다 ..
☆★☆★ 역시 .. !!! 보배는 사랑입니다 ★☆★☆
존경합니다
존경합니다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행복하자구요~^^
앞전글과,지금글 잘 읽었습니다
제 인생이 부끄러워지는 삶을 사셨네요
부디 앞으로의 길에 영광과 환희가 함께 하기를 빌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둘과 오래오래 행복한 인생 사시길 바랍니다
저도 딸둘이라 더 애가 쓰이는거 같기도 하네요
항상 화이팅 입니다
많은 시련과 고난끝에
현제에 살고있기에
조용히 응원하고 갑니다
님 앞에 행복과 안정만이
펼쳐져있길 기도하겠습니다
네버 기브 업
담담하게 털어놓으시니
더 짠-합니다
좋은일만 있으시길..
님 인생을 응원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 꾸리시길 바랍니다.
힘내시고요~
현실에 대응하는 만큼 세상은 열리는거 같아요.
진짜 어려을때 쪽지한번 남겨주세요.
볼수도있고 못볼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시절인연 따라 가겠지요.
화이팅~ ^_^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울산지역 이름 나오니 친근감이 드네요
언니들이 거기 살거든요
하시는일 모두 잘 되시길 바랍니다
정말열심히 사신게 글에서느껴집니다
한가지 확실한건 젊을때 그노력은 어디안갑니다 다 내몸에 아로 세겨지지요
분명 보상받을날이있을겁니다
열심히살아봅시다 홧팅~~^^
훌륭하게 살아 오셨네요.
이제 다 잘 될겁기다.
자녀분들 보시면서 힘 내세요
앞으로도 따님들을 보면서 힘들겠지만 포기 하지 마시고 화이팅 하시기를 마음으로나마 기원 하겠습니다.
정말 좋은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건강 생각하시면서 가정을 생각하시기를 이렇게 말로 나마 기원해 봅니다.
화이팅~~~
고생 진짜 많이 하셨네요.
조선소 중공업 쪽이 엄청 힘들다고 하던대...
앞으론 더 잘 되실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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