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9년 전에 담임을 했을 때 한 아이에 대한 글입니다.
문제아
중학교 시절에 나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호기심과 성적이 비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성적은 좋았다. 호기심이 많다는 건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다른 쪽의 호기심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친구나 새로운 사람에 대한 호기심 말이다.
호기심도 많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는지, 아님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줄곧 반장을 해서 그랬는지, 그것도 아니면 뭔가 강해 보이고 싶어 하는 중학생 특유의 객기가 있어서 그랬는지 내 친구들 중에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들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내놓은 문제아들도 있었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요즘 말로 일진 같은 아이들에게 다가가거나 친해지는 것을 꺼려하지만 나는 시험 기간에는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때로는 일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곤 했다. 그러면 공부 잘하는 일진쯤이 되는 것인가? 사실 지금의 일진과 그 당시 일진과는 일일이 설명하긴 번거롭지만 다른 점이 많다.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에 소위 문제아가 한 명 있었다. 무얼 잘못했는지 아침마다 불려 나가서 담임한테 두드려 맞았다. 담임은 이제 갓 부임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수학 선생님이셨는데, 반장이었던 내가 보기엔 우리 반에 그런 아이가 있는 것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평소 아이를 볼 때는 벌레 보듯이 하고, 아이를 팰 때는 개 패듯이 팼다. 마치 이렇게 맞으면서 뭐 하러 학교를 나오느냐는 느낌이었다. 손바닥으로, 주먹으로, 몽둥이로 가릴 것 없이 흠씬 두들겨 맞고 조회 시간 내내 교실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던 그 아이의 표정이 기억난다.
어느 날 방과 후에 그 아이의 집에 놀러 갔다. 아이가 자신의 엄마에게 나를 반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반색을 하시며 너무나 잘해주셨다. 친구의 아버지는 돌아가셔서 안계시고, 어머니가 두부 공장을 하시며 하루 종일 두부를 배달해야 하니 친구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잘 돌봐달라고 내 손을 꼭 붙잡고 부탁을 하셨다.
친구는 중학교 3년 내내 말썽을 부리고 사고를 쳤지만 간신히 중학교는 졸업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가서는 적응이 안됐는지 일찌감치 퇴학인지 자퇴를 하고는 지방으로 내려가서 돈을 벌었다. 지방 국도에서 차들의 통행량이 적은 야간에 전기선을 매설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어느 날 작업을 하던 늦은 밤중에 친구를 보지 못한 운전자의 차량에 치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친구들에게 전화가 왔다. 충남 서산에 있는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본인 확인을 해야 하니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맞을까봐 혼자서 내려가기가 겁이 난다고 친구들과 같이 내려가자고 했다.
차가운 시체 보관실에서 꺼내진 시체는 비록 사고로 여러 군데가 터져 꿰매져 있긴 했지만 친구가 맞았다. 바닥에 쓰러져 오열하는 친구의 어머니와는 달리 친구의 얼굴은 평온했다.
중학교 2학년 때도 우리 반에는 문제아가 있었다. 사실 문제아라는 단어를 쓰기가 싫지만 딱히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 친구는 1학년 때의 친구와는 달리 학교를 자주 나오지 않았다. 학교에 안 올 땐 무슨 일인가 한다고 들었는데 그때는 잘 몰랐고,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학교에 나올 때면 집에 엄마가 안계서서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다.
보통 소설이나 영화에선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가 수돗물로 배를 채운다든지, 그를 본 반 아이들이 자신의 도시락을 나눠준다든지 하는 미담으로 그려지곤 하지만 이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에 오는 날 포크만 들고 와서는 점심시간에 돌아다니면서 다른 아이들 도시락을 다 뺏어 먹었다. 반장이었던 나의 도시락에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 역시 그 아이가 만만하지는 않아서 다른 아이들 도시락을 뺏어 먹는걸 뭐라고 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담임한테 이르지도 못했다. 맨날 뺏기는 게 억울한 한 아이가 뭐라고 욕을 하자 들고 있던 포크로 머리를 찍어버리는 걸 봤기 때문이다.
학교에 나오면 화장실에서 본드를 불고, 예쁜 여자 선생님 수업 시간에 잠바를 덮고 자위행위를 하다가 걸려 여자 선생님은 울고, 담임한테 교실 앞에서 복도 끝까지 따귀를 맞았다.
그 아이는 툭하면 정학을 받다가 결국 2학기 때 퇴학을 당했다. 중학교가 의무 교육과정이 아니었을 때라 퇴학이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의 담임과 달리 2학년 때 담임이 교실에서 그 아이를 때리는 건 거의 보지 못했다. 학교를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듣기로는 도망가지 못하게 어디다 가둬놓고 때린다고 했다. 담임한테 맞다가 대들어서 염라킹이라 불리던 덩치 큰 체육 선생님한테 맞고 실신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담임은 그 아이가 얼마나 지긋지긋 했던지 결국 퇴학을 당하자 큰 골칫덩어리 하나를 덜어낸 눈치였다. 퇴학 후 표정이 밝아진 듯 보인 건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내가 스물일곱 나이에 교직에 발령을 받고 가을쯤 되었을 때였나 보다. 결혼을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학창 시절을 보냈던 동네인 서울 봉천동에 살고 있었을 때였다. 그 아이가 제법 규모가 큰 동네 유흥주점에 있다고 얘기를 들어 어떻게 변했는지 찾아가 봤다. 중학교 때나 어른이 된 후나 호기심은 변하지 않았나보다. 들어가서 웨이터한테 친구 이름을 대고 만나러 왔다고 하니까 복도를 따라 한적한 룸으로 안내했다.
5분쯤 기다렸을까? 문을 열고 친구가 들어온다. 한눈에 봐도 뭐하는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친구는 조폭이 되어 있었고, 그 단란주점이 자신이 관리하는 나와바리(구역)라며 반가워했다.
잠시 후 들어온 웨이터에게 맥주를 몇 병 가져오라고 해서 내 술잔에 맥주를 따라주는데 새끼 손가락이 하나 없었다. 중학교 때 친구지만 명색이 조폭인데 물어보기가 좀 겁이 났다. 묻지는 못하고 옛날 얘기를 하면서 맥주를 따라 줄 때마다 힐끗힐끗 봤더니 얘기를 해주었다. 조직을 옮기면서 손가락 하나를 자르고 나왔다고 했다. 무슨 느와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를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했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나더러 뭐하냐고 묻기에 올해 선생이 되었다고 하니 자신의 중학교 때 얘기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 자기에게 조금만 관심을 주고 잡아 주었다면 자기는 나쁜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당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맞아 집을 나가고 아버지도 매일 술을 먹고 자기를 때리기에 집을 나가 동네 형들과 어울려 살았다고 했다. 평소에는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판에서 일을 하다가 비가 오거나 일이 없을 때 학교를 갔었다고 했다. 그런데 학교를 갈 때마다 담임은 그간 어떻게 지냈냐는 얘기 대신 이런저런 이유를 삼아 두들겨 팼다고 했다.
담임한테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결국 퇴학을 당해 보호자도 없이 혼자 학교를 걸어 나오면서 사회에 대한 악이 생겼다고 하면서 나에게는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의외였다. 평생을 깡패로, 건달로, 조직폭력배로 살아온 놈이 이런 부탁을 한다는 것이.
내가 지금 있는 학교에 부임을 한 건 3년 전이다. 전임 교에서 5년간 체육부장을 하던 나는 6년 만에 담임을 맡았다. 보통은 당해 학년 담임들이 모여서 학급을 제비뽑기 같은 방식으로 뽑는데, 뽑기도 전에 학급이 다 정해져 있었고, 나는 2학년 3반 담임이라고 했다.
얼마 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2학년에서 가장 힘들게 하는 아이가 우리 반이었고, 나는 새로 전입을 온 남교사, 게다가 과목도 체육이기 때문에 그 아이를 맡으라고 3반 담임으로 배정을 했던 것이었다. 학교를 밥 먹듯이 안 오고 어깨에다 호랑이 문신을 했다. 중학교 2학년이 문신을 했으면 더 말해서 무엇 하랴.
아이는 첫날부터 무단결석이었다. 어머니께 전화를 매일 걸자 며칠 후 학교에 모습을 나타냈다. 덩치 큰, 짧은 머리의 담임이라 그런지 아이는 의외로 고분고분했다. 그러나 수업 듣는 것을 지겨워해서 공강 시간에는 내가 교무실에서 데리고 있다가 수업을 갈 때면 상담실에 보내곤 했다.
난 나의 중학교 때 담임처럼 이 아이를 내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 아이를 감싸 안으면 다른 부모님들한테 원망을 살지도 모르지만 이건 이 아이의 인생이 달린 문제였다. 아이 자체에 잘못이 있어 비뚤어진 아이는 없다. 거의 다 잘못된 부모로 인해 아이들이 비뚤어진다는 게 짧지 않은 교직 기간 동안 얻은 믿음이었다. 자신을 감싸주고, 사랑을 주는 담임을 만나야 아이가 사회에 악을 품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을 교직에 처음 들어오던 해 조폭 친구를 통해 얻게 되었다.
매일 데려다가 상담을 했고, 학교를 안 오고 PC방에 가 있으면 잡아 오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고 다닐 무렵 며칠 동안 연락이 끊기는 일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는 며칠 동안 선배 형들에 의해 모텔에 감금되어 있었다고 했다. 감금된 채 두드려 맞고, 나쁜 짓을 시켜서 억지로 하다가 경찰 신고에 의해 발견되었다.
아이를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아이와 어머니를 설득해서 대안학교에 보냈다. 주로 학교폭력으로 인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기숙형 대안학교였다. 아이의 새로운 담임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아이는 적응해서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름방학 때 집에 온 것이 화근이었다. 여름방학 내내 집에서 지내며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2학기가 되어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는 것이 싫었나보다. 아이 뿐 아니라 어머니까지 그냥 우리 학교에 다니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매주 데려다 줄 사람도 없는데 거리가 너무 멀고, 기숙사 사감이 때린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는데 대안학교를 억지로 보낼 수는 없다. 설득에 설득을 했지만 내가 학교에서 이 아이를 맡는 게 부담스러워서 대안학교를 보내려고 하는 건 아니냐는 어머니의 말씀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2학기에 들어와서 아이는 다시 다니게 된 학교에 재미도 붙이고 심지어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달라진 아이의 모습에 연일 칭찬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돈 문제로 집에서 아버지와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아이의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였고, 아이는 아버지와 살고 있었는데 추석 때 친척들이 준 돈을 달라고 하는 아버지와 안 준다고 버티는 아이가 서로 언성을 높여 싸웠다고 했다. 아이가 말을 안 듣고 대들자 아버지가 몇 대 때렸는데 아이가 같이 주먹을 휘두르자 아버지는 근처에 보이는 연필깎기로 아이의 머리를 내려쳐서 아이의 머리가 찢어졌다. 피를 보고 흥분한 아이가 덤벼들자 아버지는 그 길로 집을 나갔고, 경찰에까지 신고한 아들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연을 끊었다.
아.. 아버지가 조금만 참았다면, 요즘 수업도 열심히 듣고 공부도 하기 시작한 아이였는데 너무 안타까웠다.
그 날 이후로 아이는 온갖 말썽과 비행을 저질렀다. 학교에서는 내가 있어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문제는 학교 밖이었다. 학교 밖까지 내가 따라 다닐 수는 없었다. 폭행, 패싸움, 절도, 장물취급, 퍽치기 등 보호관찰 중에도 수없이 말썽을 저질렀고, 결국 소년 재판을 받고 3학년에 올라가서는 소년원에 수감되었다. 검찰에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수감되기 전에 아이는 오히려 죄 값을 치르게 되어 홀가분하다고 했다.
소년원에서 아이는 정해진 시간에 컴퓨터 사용이 허락이 되어 페이스북으로 나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규칙적으로 밥을 먹어서 그런지 살이 엄청 찐 아이는 생활하기 괜찮다고 하며 웬일로 보고 싶다고 편지도 보내왔다.
그렇게 8개월 수감 후 아이는 다행히 중학교를 졸업했고, 미용을 배우겠다며 고등학교에 갔지만 페이스북을 보니 여전히 학교에 잘 다니고 있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하지만 난 믿는다. 지속적으로 관심과 사랑을 주는 선생님이나 어른이 주위에 있다면 아이는 사회에 악을 품지 않을 것이다. 비록 아버지한테는 버림을 받았지만 모든 남자 어른이 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며칠 전, 외로웠는지 페이스북에 같이 영화 볼 사람을 찾는다고 올린 글을 봤는데 오랜만에 만나 영화나 한 편 보여줄까 하다가 그 날 회식이 있어 지나쳤던 것이 후회가 된다. 외로울 때 옆에 있어주는 옛 담임을 만나면 아이가 세상의 따듯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조만간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먹으며 고등학교 생활 얘기도 들어봐야겠다.
2년 정도가 지나면 같이 술도 한잔 할 수 있겠지.
그 나이가 되면 자신이 얼마나 철없는 시간을 보냈는지 알게 될 지도 모르겠다. 부디 그 전에 철이 좀 들어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좋은 선생님.
좋은 직장동료.
여기서의 좋다는 그냥 사전적 의미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게..
누군가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두고두고 기억되시는 분이 되시길~^^
정이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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