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의 대한민국에는 여성에대한 불합리한 문화와 제도가 분명히 존제했다.남아선호사상이 만연했고, 회사에서도 고졸여직원이라는 고용체계를 운용하며 임금과 직급체계를 달리가져갔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한민국에는 위에서말한 사회적불합리성이 남아있지 않다. 남아선호사상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되어버렸고, 오히려 여아를선호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기본적인 체계가 갖추어진 회사에서 여성과 남성의 직급체계를 달리운용하는 회사는 당연히 없다. 그것은 이미 위법이다.
그런데왜? 한반도에서 역사상 유래가없는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21세기에 ‘양성평등’을 울부짖는 페미가 득세하는 걸까? 이는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이는 마치 21세기에 민주화운동을 하는 꼴이다. 페미가 봉기하려면 70-80년대에 하는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하지만 당시에 페미니즘같은 사상은 없었고, 그것이 없이도 대한민국 사회는 자연스레 양성평등의 사회로 진화해 왔다. 그런데 진화가 끝난 이시점에 왜 대한민국은 페미가 득세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을까? 그 이유에대해서 나름의 썰을 풀어볼까 한다.
70-80년대의 20-30대 여성들은 자신이 사회적약자로 남아있는것에 대해 사회탓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 또한 여성들이 받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지했고, 이로인해 여성은 남성이 배려해줘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 배우자를 찾을때 굳이 여성의 직업을 고려하지 않았고 결혼이후에 여성에게 경제활동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저조한 사회진출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때문에 남녀차별을 모두가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여성들은 나름의 위로 를받으며,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20-30대 여성들은 그 누구도 여자라고 차별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가정이든 학교든 회사든 단지 그대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하는 곳은 없다. 차별없는 교육을 했으니 당연히 여성에게도 경제활동을 요구한다. 남성이 배우자를 찾을때도 당연히 여성의 직업을 중요시 여긴다. 그런데 어쩌나?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여전히 남성보다 높고, 자연스레 남녀간 임금에도 차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더이상 사회의 탓을 할 수 없다. 차별을 받지않았으니 탓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탓을 하는것도 쉬운일은 아니다. 자신의 탓을 해버리면 그문제의 해결책은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로 귀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력이란 너무나 고통 스러운 일이다.
이때, 구세주가 등장했다. 바로페미니즘이다. 그들은 실의에 빼진 20-30대여성들이 듣고싶은 말을해준다. ‘니탓이 아니야. 이사회는 아직 여성에게 아주 불합리해. 그러니 우리가 이세상을 바꿔야해!’. 이에 노력이 하기싫은 20-30대 여성들은 열광한다. ‘그래, 내탓이 아니었어! 이건 사회탓이야. 그러니 난 노력할 필요가 없어’ 라고말이다. 그리고 왜 여성에게 불리한지에대한 명분은 ‘성폭력 가해자의 대부분이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다’ 따위의 것들에서 찾는다. 그리곤 뜬금없이 ‘여성할당제’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할당제는 노력없이 사회적지휘를 획득할 수 있는 가장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성폭력과 할당제가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어찌됐건 그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게다가, 여성할당제는 필연적으로 남성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그 ‘희생’을 ‘당연’으로 만들기 위해서 남성혐오는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된다.
결국, (매우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들은 그 누구보다 남성의 보호속에서 살고싶은 집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속엔 백마탄왕자가 없다. 아니 있긴있으나 페미니스트와 연결될 가능성 은없다. 애시당초 백마탄 왕자님이 좋아할 만한 여성은 페미니즘에 빠질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은 이 사회가 백마탄 왕자역할을 해 주길바란다.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선언하는 정치인을 백마탄왕자로 치환하는 망상은 어쩌보면 그들에겐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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