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예전 개랑 돼지를 잘 안키웠던 이유가 사람하고 먹는게 겹침. 그래서 일 시킬수도 있고 먹는게 겹치지 않는 소를 주로 키움.
말도 사람이랑 먹는게 겹치지 않음. 아직도 말을 통해 무역을 하는 중국 소수 민족도 이동간에 풀등 말 먹을걸 그때 구하지 말식량을 따로 가지고 다니지 않음. 따로 챙기는건 소금정도.
저건 안맞는 말인 듯.
우리나라가 예전 개랑 돼지를 잘 안키웠던 이유가 사람하고 먹는게 겹침. 그래서 일 시킬수도 있고 먹는게 겹치지 않는 소를 주로 키움.
말도 사람이랑 먹는게 겹치지 않음. 아직도 말을 통해 무역을 하는 중국 소수 민족도 이동간에 풀등 말 먹을걸 그때 구하지 말식량을 따로 가지고 다니지 않음. 따로 챙기는건 소금정도.
저건 안맞는 말인 듯.
개랑 돼지 안키운적없음.. 음식 겹치니 잔반으로 키울수있어서 이득
개랑 돼지에 왜 다른 동물한테 안붙는 '똥'자가 붙는지 알아요? 똥 먹여서? 놉
똥개랑 똥돼지는 똥생산자임 즉 비료생산자임 그래서 토종돼지는 살찌는게 아니라 많이 싸는 형태로 개량되어왔음.. 뇌피셜은 근거를 가지고 말하길
그거보다 20세기 초반 왜인들이 조선의 생산요소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그 시기가 더 절망적이었다는... 정작 이 땅의 주인이 극소수의 이주민의 머슴살이를 했으니...
다만, 이주 왜인보다 친일로 영달을 유지한 조선내 그그그극소수 고관대작들이 총독부와 친분을 유지하며 최상류층을 유지했다니... 이것이 더 슬픈 일.
근대사 교육은 36년이나 구멍이 나 있으니 다들 자기에게 유리한 소설만 써대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20세기 초반 뿐만아니라 중후반 모두 왜곡된 역사만 수두룩... 그나마 후반기 역사는 사료가 풍부하며 중립적으로 정리하여 기술만 하면 되지만... 그 앞의 70년은 역사학적으로도 비극적인 시기 ㄷㄷㄷ
@teriwin
일제때 왜구들이 식량 수탈을 위해서 간척사업하고 저수지도 더 확충하여 이전보다 식량생산이 늘어난건 맞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호서와 호남은 곡창지대의 역활을 충분히 하고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가장 온화한 남쪽지역의 날씨와 전체 면정의 절반정도의 충정토가 가장 넓게 발달한 곳이 전라도와 충청지방입니다.
고려의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가장 중요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나주 지역의 호족이 었던 나주오씨가 왕건에게 붙으면서 매우 강력한 지원군을 얻게 되었는데 바로 이지역이 최고의 곡창지대이자 수로를 통해서 왕건에게 세금을 납부할 수 있어서 군량미 확충에 결정적인 역활을 한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는 나주 향교의 대성전은 조선시대 한양 중심의 성균관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바로 나주가 곡창지대로 식량이 풍부하기에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기에 이런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겁니다.
평야가 많고 기온이 온화하며 인구가 많아 식량 생산이 많았다는 곡창대를 설명하는데 엉뚱한 역사적으로 강성했던 것을 논하는건 전혀 결이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끝까지 지켜낸 수많은 장수들과 민초들이 있었고
말도 사람이랑 먹는게 겹치지 않음. 아직도 말을 통해 무역을 하는 중국 소수 민족도 이동간에 풀등 말 먹을걸 그때 구하지 말식량을 따로 가지고 다니지 않음. 따로 챙기는건 소금정도.
저건 안맞는 말인 듯.
말도 사람이랑 먹는게 겹치지 않음. 아직도 말을 통해 무역을 하는 중국 소수 민족도 이동간에 풀등 말 먹을걸 그때 구하지 말식량을 따로 가지고 다니지 않음. 따로 챙기는건 소금정도.
저건 안맞는 말인 듯.
개랑 돼지에 왜 다른 동물한테 안붙는 '똥'자가 붙는지 알아요? 똥 먹여서? 놉
똥개랑 똥돼지는 똥생산자임 즉 비료생산자임 그래서 토종돼지는 살찌는게 아니라 많이 싸는 형태로 개량되어왔음.. 뇌피셜은 근거를 가지고 말하길
가면서 약탈 안하나?
ㄷㄷㄷ
근데.내용이 뭐였쥬?
심지어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끝까지 지켜낸 수많은 장수들과 민초들이 있었고
그거보다 20세기 초반 왜인들이 조선의 생산요소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그 시기가 더 절망적이었다는... 정작 이 땅의 주인이 극소수의 이주민의 머슴살이를 했으니...
다만, 이주 왜인보다 친일로 영달을 유지한 조선내 그그그극소수 고관대작들이 총독부와 친분을 유지하며 최상류층을 유지했다니... 이것이 더 슬픈 일.
근대사 교육은 36년이나 구멍이 나 있으니 다들 자기에게 유리한 소설만 써대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20세기 초반 뿐만아니라 중후반 모두 왜곡된 역사만 수두룩... 그나마 후반기 역사는 사료가 풍부하며 중립적으로 정리하여 기술만 하면 되지만... 그 앞의 70년은 역사학적으로도 비극적인 시기 ㄷㄷㄷ
일제때 왜구들이 식량 수탈을 위해서 간척사업하고 저수지도 더 확충하여 이전보다 식량생산이 늘어난건 맞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호서와 호남은 곡창지대의 역활을 충분히 하고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가장 온화한 남쪽지역의 날씨와 전체 면정의 절반정도의 충정토가 가장 넓게 발달한 곳이 전라도와 충청지방입니다.
고려의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가장 중요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나주 지역의 호족이 었던 나주오씨가 왕건에게 붙으면서 매우 강력한 지원군을 얻게 되었는데 바로 이지역이 최고의 곡창지대이자 수로를 통해서 왕건에게 세금을 납부할 수 있어서 군량미 확충에 결정적인 역활을 한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는 나주 향교의 대성전은 조선시대 한양 중심의 성균관 다음으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바로 나주가 곡창지대로 식량이 풍부하기에 그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기에 이런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겁니다.
평야가 많고 기온이 온화하며 인구가 많아 식량 생산이 많았다는 곡창대를 설명하는데 엉뚱한 역사적으로 강성했던 것을 논하는건 전혀 결이 맞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감이라고 노대하 발기력연구소장님께 배웠습니다.
적군이 퇴각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는대
문제는 도성에서 전투부대 꾸려서 올려보내는거지 개인이 근무지 발려받아가는거는 큰 문제 안됨
저렇게 된다는 거죠
말만 바꿔주는 그런걸 뭐라 부르더라
역참과 주막에서 돈으로 해결하는 것도 불가하고...ㅋㅋ
말 한마리 한달 건초값이 40~50만원 언저리란 말을 들은적 있음.
이순신장군께서 해상 보급로 끊어준게 정말 컷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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