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라는 것이 시장의 자연스러운 요구보다는 환경이나 교통, 주차 등 공공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의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세그먼트이고, 21세기 들어 그런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더욱 강해지고 있으므로 경차는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의 중요한 기반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황순하, "자동차 문화에 시동걸기", 이가서, 2005.04.20.,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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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의 경차규격(+일본)
우리나라의 경차규정은 1983년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일본의 경차규정을 참고해 에너지 절감 차원의 "국민차 보급 추진계획"을 추진하며 정해졌습니다.
당시 정부 방침은 "2~300만원대로 배기량 800cc급 국산 국민차를 만들라"는 것이었는데, 낮은 수익성이 예상됐기에 대부분의 자동차업체들이 참여를 꺼렸고, 대우자동차만이 유일하게 스즈키 알토를 개량해 "티코"로 1991년에 출시했습니다.
처음의 국내경차규격은 "길이 3500mm 미만, 폭 1500mm 미만, 높이 2000mm 미만, 배기량 800cc 미만"을 모두 만족해야 했습니다.
대우 티코, 마티즈, 마티즈2, 올뉴마티즈, 라보, 다마스, 현대 아토스, 기아 비스토, 타우너까지가 바로 이 초기의 경차규격에 맞춰 만들어진 차들입니다. 그런데 이 경차규격이 유럽의 소형차(A세그먼트)에 비해 작아 수출경쟁력이 낮으므로 경차규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에 의해, 2003년 말에 기존보다 확대된 경차규격이 발표되었습니다. 바로 지금의 경차규격이기도 한
"길이 3600mm 미만, 폭 1600mm 미만, 높이 2000mm 미만, 배기량 1000cc 미만을 모두 만족할 것"이지요.
기존보다 길이와 폭이 각각 10cm씩, 배기량은 200cc가 늘어났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작은 "길이 3400mm 미만, 폭 1480mm 미만, 높이 2000mm 미만, 배기량 660cc 미만을 모두 만족할 것"을 기준으로 하는 일본경차는 유럽에 수출할 경우, 차체사이즈와 배기량을 키운 모델을 별도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상 다른 차가 되는 거죠. 한국의 경차규정은 그래도 처음부터 지금의 일본 경차규격보다 크기에(그나마 지금의 일본경차규격도 이전보단 많이 커진 겁니다. 1976년까진 길이 3m, 폭 1.3m, 높이 2m, 배기량 360cc미만을 모두 만족하는, 정말 말도 안되는 크기였습니다. 스마트 저리가라죠), 아토스/비스토는 수출용에 1000cc 엔진을 달기만 하면 됐습니다. 마티즈는 800cc 그대로 수출했죠.
아무튼, 확대된 경차규격에 맞춘 경차 "모닝"을 기아차가 2004년에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GM대우는 기존의 "길이 3500mm 미만, 폭 1500mm 미만, 높이 2000mm 미만, 배기량 800cc 미만"규격에 맞춘 "올뉴마티즈"를 개발하고 있었던 거죠. 2005년에 출시되었으니 그 사이에 설계를 변경할 시간이나 자금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신 경차규격을 2008년부터 적용하도록 유예기간을 줬습니다. 2004년에 출시된 모닝은 2008년까지 경차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형차"였고, 판매는 저조했습니다. 그런데 2008년부터 모닝도 경차가 되면서 중고차, 새차 모두 판매가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구 경차규격의 올뉴마티즈보다 실내도 한결 넓고, 출력도 더 나았기 때문이죠.
여기서 정리!
우리나라의 구 경차규격
: 길이 3500mm 미만, 폭 1500mm 미만, 높이 2000mm 미만, 배기량 800cc 미만을 "모두" 만족할 것
우리나라의 현 경차규격
: 길이 3600mm 미만, 폭 1600mm 미만, 높이 2000mm 미만, 배기량 1000cc 미만을 "모두" 만족할 것
일본의 현 경차규격
: 길이 3400mm 미만, 폭 1480mm 미만, 높이 2000mm 미만, 배기량 660cc 미만을 모두 만족할 것
그냥 작다고, 배기량 1000cc 미만이라고 다 경차인 게 아닙니다!! 위의 엄격한 기준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만족해야만 경차입니다! 나라에서 그렇게 정한 겁니다!!
2. 경차규격에 대한 논란
그런데, 기존보다 커진 신 경차규격도 요즘들어 다시 논란이 되기 시작합니다.
구 경차규격이 논란이 된 원인은 수출경쟁력이었던 반면, 신 경차규격 논란의 원인은 수입 소형차의 경쟁력, 그리고 FTA가 체결된 상황에서의 무역장벽 의혹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길이, 너비, 높이, 배기량을 일정한 수치로 제한하여 그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차에만 각종 혜택을 주는 경차제도는 세계에서 일본과 우리나라 두 국가만이 유일합니다.
일본 경차는 애초에 크기가 말도 안되게 작기 때문에 일본에서 수입차는 심지어 스마트 포투조차 "폭 1500mm 미만" 조건을 초과해서 경차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차규격은 일본의 상황과는 다릅니다. 폭스바겐 Up!, 르노 트윙고, 시트로엥 C1과 같은 "A세그먼트" 소형차들의 크기는 기아 모닝, 쉐보레 스파크와 별 다르지 않습니다. 모닝과 스파크는 유럽에서 A세그먼트 소형차들과 대등하게 경쟁합니다. 그런데 유럽의 A세그먼트 차량들은 한국에선 모닝, 스파크와 경쟁할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A세그먼트의 대표적인 차 중 하나인 폭스바겐 Up!을 봅시다.
Up!의 길이는 3540mm, 높이는 1489mm이며, 배기량은 999cc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충분히 경차가 될 것 같지만,
Up!의 폭은 1641mm로 우리나라의 경차규격을 41mm 초과합니다.
다른 유럽산 A세그먼트 차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규격은 그래도 만족하는 경우가 많은데, 폭만큼은 스마트 포투를 제외하곤 모두 1600mm를 초과합니다. 유럽은 일본이나 우리나라같은 경차제도가 없기 때문에 굳이 그 정도로 폭이 좁은 차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전까진 이는 그저 무시할만한 문제였습니다. 수입차 업체들은 수익성이 낮은 경차시장에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폭스바겐 폴로가 대박을 내며 수입차 업체들이 소형차 시장도 염두에 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EU FTA가 맺어졌습니다.
FTA는 "국가 간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모든 무역장벽을 제거하는 협정"인데, 경차규격이 무역장벽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고, 우리나라 정부는 이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일본의 경차규격도 무역장벽이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소형차를 잘 만들지 않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일본의 경차규격이 무역장벽이라는 논조의 글을 싣기도 했으니까요. (http://www.autoblog.com/2013/12/20/japanese-kei-cars-trade-barrier/)
3. 제안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여기서 제가 이 글 서두에서 쓴 내용을 다시 복붙하겠습니다.
"경차라는 것이 시장의 자연스러운 요구보다는 환경이나 교통, 주차 등 공공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의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세그먼트이고, 21세기 들어 그런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더욱 강해지고 있으므로 경차는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의 중요한 기반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황순하, "자동차 문화에 시동걸기", 이가서, 2005.04.20., 53쪽.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책입니다. 여러분께도 권해드릴만 합니다.
아무튼, 이 책에선 경차제도의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대도시가 다 그렇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교통체증과 주차난, 대기오염, 그리고 수입에너지 의존 등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입장에선 국민들이 큰 차보다는 작은 차를, 기름 많이 먹고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차보다는 기름 조금 먹고 오염물질 적게 배출하는 차를 이용하도록 권장할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대우 티코는 그 본질에 충실한 차였습니다. 정말 작아서 개구리주차도 되고, 기름냄새만 맡아도 달린다고 할 정도였죠.
그런데 경차규격이 커지고, 차체강성을 향상시키고 각종 안전장비와 편의장비 등이 추가되면서 지금의 경차는 티코보다 무려 300kg정도 더 무겁습니다. 액센트 급과도 무게 차이가 그리 많이 안나죠. 1000cc 엔진은 이 무거운 차를 이끌기엔 역부족이라 오히려 연비가 더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경차는 본래 경차의 목적에서 "교통난과 주차난 해소를 위한 작은 크기"를 제외하고는 꽤 벗어나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FTA하에서 무역분쟁의 소지도 있으니 현재의 경차규격엔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런데 경차규격을 바꾸더라도, 환경이나 교통, 주차 등 공공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의지라는 경차의 본질은 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저는 복합적인 조건들을 고려한 경차규격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경차규격에 고려할 조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차체크기 - 차가 작아질수록 도로엔 더 많은 차가 달릴 수 있으며, 더 많은 차가 주차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한 작은 크기를 장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길이, 너비, 폭을 모두 엄격하게 정하면
무역분쟁의 소지가 있으므로 좀 더 유연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②CO2 배출량 - 연료를 많이 소비하면 CO2도 자연히 많이 배출됩니다. 오염물질 배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CO2배출량은 훌륭한 기준이 되며, 마침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부터 CO2배출량을 기준으로
신차구입시 "탄소배출부담금"을 (CO2배출량이 일정기준보다 많을 경우)내거나,
(CO2배출량이 일정기준보다 적을 경우) 지원받는 제도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CO2배출량에 따른 규정에 관해서, 프랑스의 2014년 탄소배출부담금 제도 기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프랑스는 신차구입시 CO2배출량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받거나, 과징금을 내는 제도를 처음으로 실시한 국가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탄소배출부담금 제도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주행거리 1km당 CO2배출량 91~130g을 기준으로, 그 미만이면 보조금을 받고, 초과면 과징금을 부담합니다.
여기서 "CO2배출량 91~130g"은 중립구간으로서, 별도의 과징금을 내지 않는 마지노선입니다.
그럼 일단, 제가 제안하는 경차규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길이(mm)와 너비(mm)와 CO2배출량(g)을 곱한 값이 691,200,000 미만일 것"
748,800,000라는 숫자가 나온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경차규격의 길이인 3600mm와 너비 1600mm, 그리고 EU 자동차 탄소배출량 규제의 궁극적 목표인 120g을 곱한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3600 X 1600 X 120=691,200,000
높이 2000mm를 뺀 것은, 높이 2000mm를 넘는 경차가 등장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스타렉스도 높이 2000mm를 넘진 않으니까요.
아무튼, 제가 제안하는 이 경차규격을 따르면 기아 모닝, 쉐보레 스파크도 여전히 경차입니다.
길이나 폭이 조금 길어 경차혜택을 못받던 유럽 소형차들도 CO2배출량이 적으면 경차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폭스바겐 Up!은 3540 X 1641 X 108(75마력 버전 기준) = 627,387,120이므로 저 기준에 충분히 해당됩니다.
폭스바겐 폴로는 기존 경차보다는 훨씬 큰 차지만, 저 기준에 의하면 CO2배출량이 103g 미만일 경우 경차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폴로의 경우 디젤 수동을 제외하곤 CO2배출량 103g 미만인 차가 없습니다. 수동이 잘 안팔리는 국내에선 거의 소용없습니다)
다만 레이의 경우 CVT모델을 제외하고는 모두 CO2배출량이 120g을 넘어 저 기준에선 경차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미 경차로서 레이를 구입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신 경차규격을 소급하여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조건을 또 걸어, 이 신 경차규격이 도입되기 전까지의 경차들에 한해 앞으로도 경차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하이브리드카처럼 CO2배출량이 아주 낮은 차들이 문제입니다.
도요타 프리우스의 경우 길이 4480mm, 폭1750mm로 준중형급의 큰 차지만 CO2배출량이 77g이므로 저 공식에 의하면 아주 너끈히 경차가 되버립니다. CO2배출이 적은 차를 권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주차난, 교통난 측면에서 경차는 작아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는 경차의 본질에 어긋납니다. 그러므로 이런 차들에 대한 혜택은 저공혜차 혜택제도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또 예외규정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위의 규정을 만족하는 동시에 길이 4m미만, 폭 1.7m 미만을 모두 만족할 것"처럼 말입니다. 아주 느슨하게라도 크기 제한을 만들긴 해야 합니다. 이 정도면 폭스바겐 폴로 정도의 크기이기에 유럽 메이커들도 불만이 없을 것입니다.
4. 결론
그래서 이 모든 조건들을 종합하면,
"길이(mm)와 너비(mm)와 CO2배출량(g)을 곱한 값이 691,200,000 미만이며,
길이 4m 미만, 폭 1.7m 미만을 모두 만족할 것"
그리고 이 경차규격은 소급하여 적용하지 아니한다
가 됩니다.
현재의 국산 경차도 만족시키고, 유럽의 A세그먼트 소형차도 만족시키며, 공공성을 위한다는 경차의 본질에 맞습니다.
길이/너비/높이/배기량 4개의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규정을 조금 완화하여
이 4개 중 3개만을 만족시키면 경차로 인정하는 등의 방안도 가능합니다. 이게 훨씬 간단하긴 하겠네요;
폭이 1600mm를 초과해도, 길이 3600mm/높이2000mm/배기량1000cc 미만을 만족하면 경차로 인정해주는 식으로요.
이렇게 해도 폭스바겐 Up은 경차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르노 트윙고는 1000cc 미만 엔진을 달면 경차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여긴 페북 아니니까.
그냥 길이/너비/높이/배기량/CO2 5개 기준 중에 4개 이상을 만족하도록 하는게 가장 간단하고 좋지 않나 싶습니닷.
아..뭐하러 글 길게 썼지...
올ㅋ 뭐 소급하여 적용하지 아니하면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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