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입제의 전근대성 -(소유권의 대·내외의 분리)
(1) 차량소유 명의이전으로 인한 지입차주의 재산권행사 제약
종래 판례가 취하고 있던 관계적 소유권이론은 재단법인 출연재산의 귀속, 부동산 명의신탁, 양도담보 등에
적용되었다가, 부동산 명의신탁에 관하여는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관한법률이 제정되면서, 양도담보에 관하여는 가등기담보등에관한법률이 제정되면서 입법적으로도 그 적용범위가 축소된 점을 고려할때,
소유권의 형식과 실질이 분리되는 현상은 지입제 이외에도, 부동산등기 명의신탁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여러 탈법과 위법행위의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남용되는 것이어서 많은 문제가 있었고, 지입제에 있어서도 대내적 소유와 외부적 소유명의가 분리되어 이를 악용하는 위법행위가 발생하고, 이는 고스란히 지입차주의 피해로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금융실명제법 역시 시행되어 왔는바, 지입제에 대해서도 형식과 실질을 일치시키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아끼지 않을 필요 있을 것이다. 지입계약은 실질적으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차주가
외부적으로는 자동차를 운송사업자 명의로 등록하여 운송사업자에게 귀속시키기로 하는 내용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는 법적 관점에서 차량의 소유명의가 차량 소유를 위해 경제적으로 출재한 자와 일치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대외적 소유권을 보유하지 못한 지입차주가 자신의 재산권에 대한 온전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지입차주는 운송사업자의 협조 없이는 자기 소유의 차량을 마음대로 매매는 물론, 그 담보가치조차 활용할 수 없다. 오히려 운송사업자의 채권자로부터 운송사업자의 책임재산으로 간주되어, 과실없이 소유권이 박탈당하기까지 한다.
특히 세무관계에서는 국가가 지입차주의 실질성을 인정해 그에게 납세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면서(지방세법 제7조 제1항, 제10항)도, 민사상 관계에서는 그의 재산권에 대한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은 법리적 모순이라 볼 수 있다. 즉, 국가가 지입차주로부터 세금을 걷고도 그에 부합하는 국가적보호는 이유 없이 외면한다는 것이다.
(2) 운송사업자의 권리남용
운송사업자가 자신의 허가권을 양도하는 경우 이에 따라 발생하는 양수도 비용을 지입차주에게 전가 시키는행위, 지입차주의 동의나 승낙없이 지입차량을 매도하거나 저당권을 설정하는 행위, 지입차주의 경영활동을 제약하는 거래상대방 제한 행위, 경미한 계약위반에 대해서도 계약을 해지하거나,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심지어 차량을 강제로 회수하는 등의 횡포를 부리는 행위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지입차주가 자신의 재산권을 운송사업자의 협조 없이는 행사할 수 없다는 점과 더 나아가 지입차주가 운송사업자에 대하여 이른바 ‘을’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자동차의 소유명의가 운송사업자 앞으로 되어 있다는 점은 지입차주의 동의 없이도 운송사업자가 차량을 처분할 수 있는 빌미가 되는데, 이러한 빌미는 운송사업자의 ‘갑’의 지위와 결합해 지입차주에 대한 권리남용의 행태로 나타났다.
3. 지입제의 전근대성과 과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은 운송사업자로 하여금 실제 운전을 담당하는 운전종사자(지입차주도 해당)에 대한 각종 관리감독의무를 부과하고있다. 이것은 운송사업자가 운전종사자를 자신이 고용한 경우를 전제로 한 규정이지만, 운송사업자와 지입차주간에는, 운송사업자의 지입차주에 대한 관리감독권으로 전환된다.
또한, 행정청의 허가운송사업자를 감독해야 할 의무 역시, 지입제에 의해 운송사업자가 지입차주에 대해 허가유지와 관련한 위법여부를 감독하는 형태로 치환된다.
즉, 행정청의 고권적 관리감독권이 지입계약을 통해 사인간의 관계에 투영되어 계약당사자 일방이 고권적 지위에 서게 되는 관계가 되는것이다. 국가가 국민에 대한 고권적 권한을 행사할 때는 법치주의원칙에 의한 통제가 이루어지나, 일반개인이 국가권력을 ‘사실상’ 대행하게 되는 경우 이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이루어지길 마냥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러한 특성을 종합해 보면, 오늘날의 지입계약은 형식상으로는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계약이나, 그 실질은
지입차주에게 극히 불리한 계약으로서, 지입차주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전무하여 운송사업자에 극단적 종속성을 지닌 계약관계로 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비유하면, 지입계약은 마치 신분에서 계약으로 진전되었다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전근대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법치주의가 확립된 오늘날, 이와 같은 전근대적 특성이 남아 있는 계약형태가 업계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전근대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취해야만 하는가이다.
III. 지입제의 전근대성 제거를 통한 지입차주 보호
1. 궁극적 대안 모색의 한계
지입제의 전근대적 성격을 제거하고 이를 대등한 당사자 사이의 계약으로 자리잡도록 하기 위한 가장 간명한 방법은 화물자동차운송사업 허가를 실질에 맞게 지입차주 개인에게 직접 인정해 주는 것이다. 화물연대 등 지입차주로 구성된 단체는 이러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기존 운송사업자의 허가를 취소하고 이를 지입차주에게 부여하는것은, 운송사업허가가 재산권으로 인정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의 이러한 논리는 운송사업자가 허가받은 대수(T/E)를 줄이고 그것을 지입차주에게 인정해 줄 경우 발생하는 문제(즉, 추가 공급이 없음을 전제로 한 것)로서, 추가로 지입차주에게 운송사업허가를 부여해 주는 방법에 의한다면 기존 운송사업자의 재산권침해 논란을 완화할 수 있다. 다만, 이처럼 추가 공급을 하는 경우에는 운송사업자가 시장 수요를 초과해 공급이 이뤄져 과잉공급, 시장질서가 혼란해질 수 있다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2003년 화물연대의 파업이 일어난 근본원인도 등록제 도입으로 인해 화물운송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입차주들에게 개인면허를 인정하더라도, 지입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면 일부 차주들은 자신이 받은 허가를 웃돈(‘프리미엄’)을 붙여 되팔고 다시 지입차주가 되려고 하는 자들이 생길 수 있으며, 기존의 운송사업자들도 신규 지입을 받음으로써 지입제의 순환고리가 여전히 남는다는 문제도 있다. 이처럼 지입차주에게 개인면허를 부여하더라도 이로 인해 발생할수 있는 새로운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여러 방면에서 심도 있게 검토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이 방법은 장기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단기적으로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지입계약의 전근대성으로 인한 폐단을 일부라도 제거 또는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크게 지입차주가 자신의 경제력으로 출연한 차량
에 대한 재산권을 보장하는 방법과 지입계약의 체결과 이행 과정에서 지입차주가 운송사업자와 대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미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도 지입제를 합법화한 이래 지난 수년간의 개정을 통해 이를 위한 입법이 이루어졌는바, 아래에서는 지입차주를 보호하기 위한 현행법상의 제도를 살펴보고 이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2. 재산권 행사 보장
(1) 운송사업자의 임의처분 금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지입차주의 재산권 보장을 위해 운송사업자는 원칙적으로 위·수탁차주가 현물출자한 차량을 위·수탁차주의 동의 없이 타인에게 매도하거나 저당권을 설정하지 못하되, 다만, 보험료 납부, 차량 할부금 상환 등 위·수탁차주가 이행하여야 하는 차량관리의 의무해태로 인하여 운송사업자의 채무가 발생하였을 경우에는 지입차주에게 저당권을 설정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통지하고 그 채무액을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저당권을 설정할 수 있다.(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제11조 제15항). 동 규정을 위반한 경우 국토교통부장관은 운송사업자의 허가를 취소하거나, 영업정지를 명하거나(동법제19조 제1항 7호),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동법 제70조 제2항 5호).이 조항은 운송사업자의 지입차량에 대한 임의처분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으로서, 운송사업자의 횡포로부터 지입차주의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점에서의미가 있다.
그런데,운송사업자가 위 규정을 위반하여 지입차량을 처분한경우 그러한 처분의 사법적 효력까지도 무효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생각건대, 법령위반행위에 대하여 처벌규정만이 있고 그 사법적 효력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이 없는 경우, 그 규정이 효력규정인지, 단속규정인지 여부는 그 법률행위의 효력을 무효ㆍ유효로 함으로써 생기는 사회경제적 영향을 고려하여, 그 입법취지가 법률행위의 금지인가 아니면 그 행위의 금지에 있는가에 따라서 결정할 수밖에 없는데, 지입계약에 의한 자동차운송사업이 사실상의 사업형태로서 광범위하게 운영되고 있는 현실정에 비추어 그 위반행위의 사법상 효력까지 부정한다면 특히 자동차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는 지입회사에게 결과적인 이득을 주게 되어 지입차주의 불이익이 현저히 크므로, 지입계약 자체를 무효로 보는 것은 사회정책상 문제점이 있다고 볼수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지입계약의 성질상 계약내용에 필연적으로 이미 포함되어 있는 운송사업자의 의무와 동일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그 사법적효력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 규정 자체만으로는 계약위반에 대해 행정적 제재를 부과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이 조항은 운송사업자 본인의 처분행위만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운송사업자의 채권자가 지입차량을 운송사업자의 책임재산으로 파악해 강제집행 등으로 처분하는 것까지 금지하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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