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ddanzi.com/index.php?docunemt_srl=1024350&mid=ddanziNews
------------------------------------------------------------------------------
2013. 03. 18. 월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화내는 법을 잊은 줄 알았다.
내 소중하고 섬세한 감정의 선이, 가카 치세 5년간 하도 자극에 단련되어 마치 펄펄 끓는 사막의 모래밭에서 단련한 아랍 수컷 왕족들의 거시기처럼 감정의 굳은 살들이 덕지덕지 붙어 아예 무감각해져 버린 줄 알았다.
거기다가 이제서야 좀 살아볼 수 있겠나 싶어 기지개를 일그람 켜볼까 말까 하다가 또다시 호되게 뒤통수를 맞으면서 여왕님과 함께 하는 5년 추가요~ 라는 소리를 듣고 완전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 줄로만 알았다. 감성적 죽음의 상태라고나 할까.
그래도 또 다시 화가 난다.
어떤 일들은 듣는 순간 화가 팍 났다가, 5초 후부터 사그라들기도 한다. 씨바, 세상이 다 그런거지 뭐, 하면서.
하지만 어떤 일은 듣는 순간에 이미 세상이 다 그런거지 뭐, 하면서 한숨부터 나오다가 말린 오징어 세번째 다리 씹듯이 질겅질겅 곱씹으면서 점차로 더 화가 증폭되는 일이 있다. 지금 이 사건이 딱 그래.
처음에는 여기에서 출발 했거든.
원세훈이 너 어쩌냐?
이명박 정권에서 정보하곤 전혀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인간이 무려 국가정보원의 수장을 맡아 떵떵거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완전 끈 떨어진 모양이다. 쫓겨날 날만 기다리고 있겠구나.
참 권력도 무상하다, 그치? 그러게 왜 그랬냐. 기어도 적당히 기어야지, 가는 님께서 뭘 그리 많이 챙겨줄 거라고 끝까지 악랄하게 그랬냐 말이다.
뭐, 이런 정도의 생각으로 심드렁 했지만, 이게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저 십이지장을 지나 소장과 대장이 만나는 언저리에서부터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잠시 화를 멈추고 도대체 뭔 일인지 간단히 정리해 보기로 하자고.
-------------------------
작년 대선 선거운동이 한참이던 와중에, 사건이 하나 터졌다. 이른바 셀프 감금 사건.
당시 후보는 문재인 현 일개 의원 나부랭이. 대선 토론 방송에서는 이 사건을 일컬어, 민주당이라는 공당이 한 젊은 여성을 스토킹하면서 주거지에 감금해 버린 비인간적 사건이라고 규정을 하였다.
근데 그 사람이 알고보니 국정원 직원이었고, 재택근무 형태로 인터넷 댓글알바질 하던 중이었던 거잖냐. 결국 경찰은 이 사건 수사를 시작하기는 개뿔, 접수하자마자 "증거는 하나도 없다네요~ " 라는 우수 경칩에 튀어나온 개구리 땀띠날 소리나 하고 있었고 말이다.
<당시 조선일보 홈페이지. 지난 12월 17일자>
증거가 없긴 뭐가 없어, 그 직원의 존재 자체가 증거지.
그러더니 선거는 끝나버리고, 선거결과를 납득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타겟을 잃고 엉뚱한 아젠다를 잡고 매달린다. 하필이면 왜 그 분노를 케케묵은 전자개표기 시비에다가 쏟아 부었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쉬움이 아주 많고 크다.
아 진짜, 거기가 아니었다고. 거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여기였다니까.
물론 개표부정 의혹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략적으로라도 개표부정보다는 국가 정보기관이 직접 나서서 선거에 개입한 사건, 기울어진 운동장 수준이 아니라 심판들이 저쪽 편과 함께 뛰는 그 운동장, 그 심판들이 문제였던 거라니까. 선거 자체가 잘못 치러졌는데 "개표" 과정의 문제를 걸고 넘어져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 대통령의 3대 권력기관 중 하나. 검찰, 국세청과 함께 세상을 주물럭 거릴 수 있는 핵심 권력기관.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거라니까!
억울하게도 이 아젠다 역시 사회적으로 불붙어 타오르지 못하고 시들시들해지고 말았다. 식도 바로 밑까지 치받쳤던 울화는 다시 꾹꾹 눌러 되삼키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러다가 화병에 일찍 죽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국정원의 직접적인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한 수사가 그냥 흐지부지 끝나 버리지는 않았다. 민주당도 그렇게 바보들만 모인 것은 아니었나 보다. 여러모로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 과정에서, 신설된 미래부 관련 사항에 민주당이 양보를 하면서 그 대가를 하나 잡아내긴 했다.
바로,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검경의 수사에만 맡겨 두는 것이 아니라, 수사가 종료되는 대로 국정조사를 하기로 조건을 걸었고, 그걸 관철시켜낸 것이다. 이 사안의 관점에서는 나름 큰 진전이었던 것이다.
잘하면 뭔가 좀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약 3초간 머리를 치며 지나갔지만, 그 국정조사라는 거, 만날 졸라 싸우면서 해 봐야, 뭐 남는 거 하나도 없는 생쑈였던 기억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면서, 역시 그거 해 봐야 뭔 소용이 있겠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비록 허무하더라도 뭔가 조타고 외치면서 소고기 사먹을 날은 진짜 오지 않는 것인가.
------------------------------
요즘 저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서 도대체 뭐하는지도 모르겠는 민주당에서, 혼자 일개 정당의 몫을 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 초선 의원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우리의 호프 선미 누나. 민주당 비례대표 진선미 의원. 절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없어져 버린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뽑았던 진,선,미하고 혼동하면 안된다.
너무나 훌륭해서 뭐라 말해줘야 하는지 생각이 안 날 정도의 진선미 의원실에서 크게 한 건 올렸다. 너무 고맙고 기뻐서 탱구(편집자 주 : 물뚝심송이 키우는 개)를 안고 펄쩍펄쩍 뛰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니까. 모 언론에서 전 국정원 직원 제보 인터뷰를 따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그거야 뭐, 배신자의 악의에 찬 모함이라 해 버리면 할 말 없으니까 말야.
세상에 말 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문서가 필요하잖아, 문서가. 그게 종이건 PDF건 말이다.
그런데 그 문건을 무려 25건이나, 그것도 무려 이름도 거창한 "원장님 지시,강조말씀" 이라는 제목의 국정원 내부 인트라넷 게시판에 올라온 내용으로 캐냈어. 이 게시판은 심지어 바로 지난주까지도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었던 살아있는 게시판이고, 국정원 직원이라면 모두가 열람할 수 있었던 공개 게시판이었다는 거야.
기간은 2009년 5월 15일부터 2013년 1월 28일까지 올라온 게시물 25건. 뭐? 엊그제까지?
한마디로 쩐다. 쩌는 일이었다.
그 내용들이 무엇이었을까? 환절기에 직원 여러분 건강 조심하세요, 근무 시간에 농땡이 치지 말고 일 열심히 하세요, 경비처리 영수증은 제때 제출하세요, 뭐 이런 내용이었겠냐?
1. 여론을 조작하라.
2. 종북좌파들을 까라.
(실제로 문건에 "종북좌파" 라는 말이 나온다.)
3. 주요 국내정치 현안에 댓글알바질 해라.
4. MB를 칭송하라.
5. 4대강 사업을 홍보해라.
이런 것들이었단 말이다.
이게 뭐냐 도대체. 이게 한 국가의 정보 보안 체계를 총괄하는 국정원, 미국 같으면 CIA, 이스라엘 같으면 모사드, 007 월급주던 MI6, 이미 사라진 KGB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할 국정원에서 할 일이야, 이게?
정치고 뭐고 떠나서 내가 제일 화가 나는 것은, 저 지시사항을 보고, 수행을 하고, 결과를 보고해야 했던 국정원 직원들이 불쌍해서였다. '오늘의 유머에다가 종북 좌파글 파묻기 위해 뻘글 50개 올렸고, 찬성 반대 각 200개씩 찍었고, 트윗상에서 리트윗 200번 했어요', 라고 보고했어야 하는 국정원 직원들 말이다.
폼나는 에이전트 생활을 기대하며 나름 엘리트라는 자부심으로 국가 최고 정보기관에 입사했더니 이건 무슨, 월급은 제때 줘서 좋긴 한데 시키는 일이 댓글 알바야.
근데 이런 치졸한 일을 으슥한 휴게실로 불러서 조용히 귓속말로 지시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직원이 사용하는 인트라넷에 이름만 들어도 삼엄한 "국정원장"이 공식적으로 떡~ 하니 올려.
이게 사는 건가,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고 나는 누구인가, 싶었을 거잖아.
-----------------------------
내용들을 조금 더 살펴보자. 아마 조금 더 울화가 치솟게 될 것이지만 알아는 봐야지.
- 심리전단이 보고한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은 내용 자체가 바로 우리원이 해야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 (2010.7.19)
이게 뭔 소리야. 국정원 내부에 무려 "심리전단"이라는 조직이 존재해. 그 조직이 보고한 내용이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이야. 그 강화방안이 바로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이래.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