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5 제공호 제작 사업의 출발점
1974년 정부에서 처음으로 전투기 생산 문제가 거론되었습니다. 1977년부터 미군 철수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여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1978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 회견에서 “방위 산업의 육성으로 헬리콥터는 이미 생산을 개시, 양산 체제를 갖추었고 80년대 중반에는 전자 병기와 항공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개발 능력을 키워 나가겠다”고 밝힙니다.
1978년 8월 26일, 제1차 방위산업진흥확대 회의에서 기존 계획을 앞당겨 연내에 항공기 제작 사업에 착수하도록 지시 합니다.
1978년 11월 항공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자 교통부 관장 업무를 상공부로 이관시키고 상공부 안에 전담 부서를 설치 합니다.
1978년 연말에 <항공기 및 기기류의 국산화, 기술 개발 및 계열화, 자료 지원 등에 대한 항공공업진흥법>이 국회를 통과. 항공기 제조를 위한 광범위한 여건 조성과 지원책이 마련됩니다.
기종 선정과 착수
항공기 제조사업 기반을 다지던 1979년 7월,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인 조중훈 사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나는 80년대 중반까지 최신예 전투기를 우리 기술로 생산하겠다고 국민과 약속했소. 자주국방을 위해서 조 사장이 이 일을 해 줄 수 있겠소?”라고 하자, ‘3년 안에 반드시 전투기를 출고시키겠습니다.’ 라며 전투기 생산을 약속하게 됩니다.
조중훈 사장은 ‘FX계획반’을 구성하고 도입 전투기의 기종으로 결정된 미국 F-5E/F 모델을, 1979년 9월부터 노드롭 사와 협상을 시작합니다.
1980년 10월 24일 미국 정부와 한미합의각서(MOU)를 교환하고, 1980년 11월 14일 노드롭사와 국방부 사이에 판매 및 면허 계약 체결 합니다.
대한항공은 1980년 12월 27일 항공기 생산업체로 국방부 조달본부와 항공기 납품 계약을 체결 합니다.
TASK 팀 확대 추진 팀을 <항공우주사업본부> 내에 설치하고, 제공호 사업 추진팀은 1979년 9월부터 1981년 10월까지 2년간 생산 준비를 위한 제반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F-5F 제공호 1호기 출고
1982년 9월 9일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 김해공장에서 첫 국산 전투기 ‘제공호’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시아에서 일본, 중국, 인도,대만에 이어 다섯번째로 전투기 생산국이 되었습니다.
제공호(F-5E/F) 제작사업은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수행하면서 국내 생산이 어려운 항공기 기자재, 기술자료, 치공구등은 정부가 항공기 원제작사로부터 직구매하여 관급으로 제공하였으며, 대한항공은 시설 및 장비의 확보, 기술인력의 활용, 해외 기술 교육을 통하여 전투기를 국내 생산하였습니다.
F-5 제공호는 총 68대(F:20, E:48)를 생산했습니다.
박정희 반대자는 자주국방....박정희 추종자는 UAE 밀실파병.
안보는 새누리? 자한당? 친일매국에 간첩질까지...홧팅~!
지난 1982년 F-5F의 출고식 때 처럼 서울 아시안 게임이 열렸던 1986년 그해 가을, 모든 4대 일간지에서 "최신예 F-16기 도입" "공군 OO기지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긴급 발진 명령에 따라 2명의 조종사가 신속히 기내에 올라 수분만에 활주로를 박차고 올라" 역시 이런 기사를 본 기역이 나네요.
박정희 반대자는 자주국방....박정희 추종자는 UAE 밀실파병.
안보는 새누리? 자한당? 친일매국에 간첩질까지...홧팅~!
그 당시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하여 조립을 국산기술생산이라고 과장된 홍보했었죠^
가장 아까운 것은 A-7을 놓쳤다는겁니다. 이것만 쥐고 있었어도 진짜 아깝죠.
그리고 차선택으로 f5로 갔다면 차기기종은 당연히 같은 계열의 f18로 갔어야했구요,. 이 두번의 삽질로 대한민국의 전투기 기술은 엄청 후퇴하게 되죠.
그마나 3세대 전투기 중 가격이 저렴하고 후진국, 저개발국가에 대량으로 제공이 가능했던 기종이 그 당시로써는 F-5 계열 밖에는 없었을 겁니다. 이런 와중에 1978년에 미공군을 시작으로 1979년에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브르크,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이 F-16을 직도입 또는 라이센스 생산으로 도입하기 시작하니 박정희 정권으로써는 다시 한번 국방력 강화를 위해 카터 행정부에게 F-16 A/B의 판매를 요청하지만 역시 거절 당하고 말지요. 거절에 대한 보고를 부하 직원을 통해 청와대 집무실에서 받고 그 자리에서 담배 재털이를 집어 던졌다는 일화도 있더군요. A-7E 외에도 토네이도와 스웨덴제 JA-37 Viggen도 도입 검토 대상 기종들이였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 생각에 미국산중 고른다면 격투전 최강이라 일컬러지던 F-8 이가 가장 적당 하다고 보는편인데..미국외에서 기종을 찾으면 프랑스제 미라쥐 계열들 스웨덴 비겐 등이 도입 가능햇죠
박통이 당대 최고라 일컷던 팬텀을 선호 햇으나 팬텀은 너무 고스펙 하이급이라 우리실정에 럭서리 해서 필요한 만큼 수량을 못 맞춤니다..
글고 팬텀이가 알려지다시피 격투전에서 그렇게 좋지가 못해서 ,,월맹 전투기 상대로 베트남전 하늘에서 내내 고전 했었죠
A-7과 A-8 모두 원래는 미해군/해병대용으로 개발되었지만 차츰 외국 공군에게도 제공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만약 한국이 토네이도, 사브비겐, 미라지 중 하나를 선정하려 했다면 미국 정부가 대단한 정치적 압력, 방해 공작을 가해 한국 정부로써는 견디기 힘들 었을 거라 보여 집니다.
MiG-21 비교해서 최고속도나 상승력수치에서 한단계 아래 기쳄니다
모 잡지에 실려지기를...우리 조종사 말로는 이 전투기가 저고도에서 기동이 둔해지고 비행 조종성이 안좋다 합니다..형상으로는 중고고도에서 적합 공력 설계한 유형이죠
박정권 후반기에 보우트사측이 자기네가 만들고서 중단한 A-7의 생산 기반을 모두 한국에다 넘겨서 직접 한국에서 생산 하게금 서비스를 제공 하겟다해서 상당히 진척되어 가던중 미국행정부 승인까지 받앗으나 미연방의회에서 반대해서 결국 중단 됬다지요 ,,,연방의회 반대 이유가 무려(?) 한국이 전투기 산업 기반 가지면 어떻하느냐!!!! 엿다더군요
헌데 역시나 애매한게...보우트사 A-7 도 순수 공격기라서 당시 대북한 열세엿던 우리공군에 당장 필요한 기체는 아니란점이죠
KF-5F 제공호 --> 한국에서 조립,(생산이 아니고 조립임 조립, 부품을 직수입해서 조립만 함 ), 복좌형 훈련기!!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