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다리셨죠? 저희가 왔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 현장 동반 취재
조사·발굴·감식 전문가와 1개 대대 참가
1년중 8개월은 산에서 구슬땀
“나라 위한 희생에 최소한의 도리”
“찾았습니다.”
무전기에서 들려온 말에 강재민(37) 유해발굴팀장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100여명의 눈길이 그가 향하는 곳으로 쏠렸다.
이곳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 현장이다.
작업 아닙니다, 작전입니다
9월 6일 오전 11시. 유해발굴 현장에 가기 위해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중리 샛돌전원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 근처 나무에 걸려있던 태극기가 이곳이 유해발굴 현장임을 알려줬다.
발굴팀은 늘 현장에 태극기를 건다. 조국에 헌신한 분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내거는 것이다.
산길에 오른지 30분이 지나 발굴 현장에 도착했다.
강 팀장을 비롯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8명과 육군 23사단 병사 100명이 흙을 퍼내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작업복에는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라는 문구가 박혀있다.
이들은 6·25 전사자의 유해를 찾는 중이다.
1950년 이곳에서 연곡·사천지구 전투가 있었다. 북한군 766 특수부대와 국군 8사단이 전투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전사자의 시신을 마을주민이 임시로 매장했다.
그 주민이 2009년 국방부에 이같은 사실을 제보해 유해발굴팀이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했다.
그해 11구의 유해를 찾았고 2017년 6구, 올해는 9월 5일 첫번째 유해를 발견했다.
유해를 찾고 있는 병사들
출처 : jobsN작업이 순조로운지 묻자 강 팀장은 “작업이 아니라 작전”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휴전상태입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투중 사상자를 수습하는 일도 전쟁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작전입니다. 전사자 유해를 모두 유가족에게 돌려드리기 전까진 전투에 임하는 각오로 발굴을 하자는 의미로 작전이란 용어를 씁니다.”
강 팀장은 유해발굴 전문가다. 3년간 10개 작전에 참여했다.
1년중 8개월은 유해를 찾기 위해 거의 매일 산으로 출동한다.
한국전쟁 격전지 대부분이 산이었기 때문이다.
땅이 얼어 유해발굴이 어려운 겨울엔 전사자 유해 매장지에 대한 제보를 다시 검토하고 작전 계획을 세운다.
강재민 팀장
출처 : jobsN강 팀장의 말대로 발굴 현장은 엄숙한 가운데 침묵이 흘렀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먼저 지뢰가 있을 가능성에 대비해 작전 개시 전 공병이 지뢰탐지기로 주변을 탐색한다.
발굴팀과 병사들은 2~3일에 걸쳐 삽으로 2.5m 높이의 구덩이를 파내고 유해를 찾는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이날, 가지나 나뭇잎 위로 땀방울이 떨어졌다.
구덩이 안은 좁아 장병들이 허리 한번 펴기도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운 손길을 멈출 줄 몰랐다.
전사자 유해 발굴에선 유해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 뼈는 모두 207개인데 전사자 유해가 온전한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팔뼈, 다리뼈 등이 조각나 있다.
오랫동안 흙에 묻혀있던 탓에 부식이 심해 살짝만 건드려도 뼈가 모래처럼 부서진다.
흙 알갱이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굴삭기 대신 삽과 호미를 사용한다.
그래야 유해를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수습할 수 있다.
강 팀장은 “유해발굴을 할 때마다 과거 치열했던 전투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작전 개시 4시간만에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발굴지 북쪽에 땅을 판 지역에서 유해로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는 무전이다.
강 팀장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곧장 발견 장소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흙더미에서 팔뼈가 보였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아들, 형제일 국군 장병이 그곳에 있었다.
옆엔 녹슨 철모와 탄피 3점도 놓여있었다.
전사자의 팔뼈와 철모 일부가 보인다.
출처 : jobsN즉시 경계 테이프를 두르고 강 팀장과 발굴병 2명이 ‘개체’에 다가갔다.
유해라고 확정하기 전엔 개체라고 부른다. 침이 튀어 DNA감식을 방해하지 않도록 마스크를 썼다. 발굴병은 조심스레 붓질을 했다.
개체 하나당 최소 1만번의 붓질을 한다. 붓질로 유해에 붙은 흙알갱이와 이물질을 제거해야 손상 없이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
또 다른 발굴병은 실측도를 그렸다.
한양대 인류학과를 다니다 발굴병에 자원했다는 구민석(22) 상병은 “발굴 후 수습 기록지를 잘 써야 감식에 유용하다”라고 말했다.
이날 발굴팀은 유해 1구를 수습했다.
수습한 유해들을 관에 안치한 후 약식 제례(간단히 갖춘 제사)를 지내고 작전을 종료했다.
강 팀장은 유해를 찾아서 기쁜 한편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혹 내가 전사하더라도 나라가 끝까지 찾아줄거란 믿음을 줘야 한다. 전사자가 ‘그들’이 아닌 원래 이름으로 불릴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굴토가 어려운 땅일수록 신중히 파야 유해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출처 : jobsN나라를 위한 일
국방부는 2007년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을 만들었다. 현재 발굴팀은 8개다.
매년 전국 80여개 지역에서 연간 10만여명의 야전부대 장병들이 함께 참여한다.
여기에는 육군뿐만 아니라 해병대도 포함이다.
발굴병은 대학교에서 1년 이상 고고학, 문화재보존학 등을 전공한 인원중에서 선발한다.
선발 이후엔 발굴준비에서부터 문화재발굴기법을 이용한 정밀발굴, 입관 및 약식제례 등의 과정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
단순히 추정만으로 예산과 장병을 동원할 순 없다.
과거 전투기록 및 참전용사 증언청취 등을 통해 발굴 가능지역을 선정하고, 현장 조사 및 탐사를 거쳐 최종 결정한다.
감식관은 발굴팀이 수습한 유해의 DNA를 분석한다.
지뢰 탐지기로 위험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출처 : jobsN발굴팀은 GPS·통신장비·DSLR·캠코더·삽·호미·벌목도·관을 가지고 다닌다.
1인당 약 10kg 짐을 지고 하루 왕복 1~2시간씩 산을 오른다.
발굴방식은 현장상황에 따라 전면 발굴·개인호 발굴·제보지역 발굴 등으로 나뉜다.
발굴팀이 수습한 유해는 인근에 위치한 임식감식소로 옮겨진다.
기초 감식후 국유단 내 중앙감식소에서 정밀 감식한다.
성별·나이·인종 등을 구분하고 국방부 조사과에서 DNA를 분석한다.
유해의 DNA와 유가족의 DNA를 비교분석하는 것은 신원확인을 위해 매우 중요한 절차다.
이후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국립현충원에 안장한다.
병사들이 유해를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현장에 사진을 걸어둔다.
출처 : jobsN다른 국적의 유해를 발견하면 본국에 송환한다.
지금까지 UN군 유해 17구( 미군 14구, 영연방 국적 3구)를 돌려보냈다.
또 국군의 날인 10월 1일엔 미국과 북한이 공동 발굴한 북한지역 국군 전사자 64위(位)가 하와이를 거쳐 조국으로 돌아온다.
한편 유해발굴사업엔 어려운 점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교전 지역을 찾는 게 쉽지않고, 찾는다해도 이미 개발된 지역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도 파주다. 파주는 격전지였는데 신도시 개발지역으로 발굴하는데 있어 제약이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유해발굴사업 지원에 적극적이다.
올해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유해발굴 사업은 국가의 책무”라고 말했다.
수습한 유해를 관에 봉헌하는 모습
출처 : jobsN국유단은 9월 6일 경남 통영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열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고(故) 김정권 이등중사의 유해와 단추·칫솔· 버클 등의 유품을 아내 이명희(89)씨에게 전했다.
이날은 김 이등중사의 아들 김형진(69)씨와 손자의 생일이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국유단 김대수 대위는 "김 이등중사와 유가족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힘들게 유해를 찾더라도 유가족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유해발굴작전을 마치고 봉헌관을 옮기는 모습
출처 : 국방부 제공국방부는 현재까지 전사자 유해 1만1000여구를 찾았다. 이중에서 국군 전사자는 1만여위다.
신원 확인이 끝난 사람은 130명, 제보를 받거나 조사를 끝냈음에도 아직 수습하지 못한 유해가 약 12만 3000구에 달한다.
김 대위는 “보건소에서 시료 채취 키트로 간편하게 DNA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 중 한 명만 채취해도 유해와 DNA 비교가 가능하니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국방부는 2019년 4월부터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공동유해발굴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발굴전문인력 48명을 확충할 예정이다. 또 유가족 DNA 확보를 위해 전담인력을 40명으로 늘린다.
여전히 산 속에 잠들어있을 호국영령들에게 지금이라도 편안한 안식을 드리는 것이 목표다.
글 jobsN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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