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2월 20일 독일폭격 임무를 띄고 출격하여 임무수행 도중 극심한 피해를 입은 채 기체를 달래가며 영국기지로 귀환하던 미 제8공군 소속의 B-17F, "Ye olde pub"의 기장 찰즈 브라운 소위는 멀리서 다가오는 독일 전투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1944년 10월 라인강 방어작전에 사용되었던 JG 27 전투비행단 1연대의 Bf 109K-4, 한때 북아프리카에서 용명을 떨치던 부대였지만 이 무렵에는 역전의 에이스들이 대부분 전사하고 햇병아리 조종사들만이 남아 막강한 연합군의 항공전력에 맞서고 있었음.)
그 독일 전투기에는 JG27 의 지휘관인 프란츠 스티글러 중령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시실리 기지에 도착, 이제 막 자신의 기체에서 내리고 있는 프란츠 스티글러.
프란츠 스티글러 중령은 B-17기와 거리가 가까워져도 B-17의 방어기관총에서 사격이 없고 그 폭격기가 이미 피해를 많이 입은 상태라는 것을 알고는 호기심에 폭격기에 가까이 접근합니다.
B-17기에 근접하여 미군 폭격기를 살피던 스티글러 중령은 겁에 질린 채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미군 승무원들을 목격합니다.
(기체에 그려진 마크로 폭격임무 14회 수행 , 독일기 4기 격추의 킬마크 , 15회째 비행 완수 후 귀환 중 낙오된 적 폭격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까운 아군 비행장으로 유도하는 것도 아니고 에스코트 후 경례라니... 지옥 문턱에서 다시 살아난 폭격기 조종사와 그 승무원들은 내일 또 다른 폭격기를 몰고 독일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릴 거라 생각한다면 어쩌면 보고도 믿겨지지 않는 상황이죠.)
그 폭격기는 이미 왼쪽 수평미익이 거의 떨어져 나가고 수직미익도 큰 손상을 입은 채 엔진 1개는 멈췄고 나머지 엔진도 손상을 입은 상태여서 스티글러 중령이 기관총 사격을 잠시만 가해도 격추되어 버릴 상황이었지만 스티글러는 사격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스티글러 중령은 사격을 가하는 대신 Ye olde pub이 영불해협을 건널 때까지 나란히 비행하며 항로를 유도하고 영불해협에 다다르자 정중히 경례를 보내며 그 폭격기를 보내 주었습니다. 이는 발각되면 바로 이적행위로 군법행위에 회부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Ye olde pub의 기장 찰즈 브라운 소위는 그 독일 전투기의 기체에 표시된 마크와 넘버 등을 기록, 보관하고 남은 전쟁기간동안 무사히 임무를 수행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브라운 중위는 보관하고 있던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자신을 에스코트 해 준 독일 전투기 조종사를 찾기 시작,
마침내 50여년이 1990년, 미 제8 공군에서 복무했던 노병들의 모임에서 백발의 노인이 된 브라운 소위와 스티글러 중령은 다시 한번 재회하게 됩니다.
2004년 7월 '윙스 오브 더 노스' 에어쇼에서. 파란 점퍼 차림의 프란츠 스티글러. 가벼운 수트 차림의 찰리 브라운
서로 적으로 만나 치열한 전투를 치뤄야 하는 전쟁터에서도 때때로 인간애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일화이고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양심과 심성을 지닌다면 애초에 전쟁이란 것도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도 하게 해줍니다.
프란츠 스티글러 (Franz Stigler)
찰리 브라운 소위 (2nd. Lt. Charlie Brown)
2nd Lt. Charlie Brown & his B-17F Flying Fortress named “Ye Olde Pub”
2 ND Lt. Charlie Brown was a B-17F Flying Fortress pilot with the 379 th
Bomber Group at Kimbolton, England. His B-17F was called “Ye Olde Pub” and
was in a terrible state, having been hit by flak and fighters. The compass
was damaged and they were flying deeper over enemy territory instead of
heading home to Kimbolton. Most of the tail & half of the stabilizer were gone.
After flying over an enemy airfield, a pilot named Franz Stigler
was ordered to take off and shoot down the B-17F. When he got near
the B-17, he could not believe his eyes. In his words, he “had never seen a
plane in such a bad state”. The tail and rear section was severely damaged,
and the tail gunner wounded. The top gunner was all over the top of the
fuselage. The nose was smashed and there were holes everywhere.
Despite having ammunition, Franz flew to the side of the B-17
and looked at 2 nd Lt. Charlie Brown, Lt. Brown was scared and
struggling to control his damaged and bloodstained plane.
Aware that they had no idea where they were going, Franz waved
at Charlie to turn 180 degrees. Franz escorted and guided the stricken
plane to and slightly over the North Sea towards England. He then saluted
Charlie Brown and turned away, back to Europe.
When Franz landed he told the C.O. that the plane had been shot
down over the sea, and never told the truth to anybody. Charlie Brown and
the remainder of his crew told all at their briefing, but were ordered
never to talk about it.
More than 40 years later, Charlie Brown wanted to find the
Luftwaffe pilot who saved the crew. After years of research, Franz was
found. He had never talked about the incident, not even at postwar
reunions.
They met in the USA at a 379 th Bomber Group reunion, together
with 25 people who are alive now - all because Franz never fired his guns
that day.
Research shows that 2 nd Lt. Charlie Brown lived in Seattle and Franz
Stigler had moved to Vancouver, BC after the war. When they finally met,
they discovered they had lived less than 200 miles apart for the past 50
years!
찰리 브라운과 그의 승무원들은 모두에게 사건개요를 브리핑을 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프란츠는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종전 이후 전우모임에서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합니다.
(무덤 속까지 가져갈 생각이였던 거죠.)
나중에 379 비행대 모임에서 25명이 생존해 서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고
종전 후 찰리브라운 소위는 시애틀로, 프란츠 스티글러는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하는데
서로에게서 불과 320km 떨어진 곳에서 50년간 살아왔다는 걸 알게됩니다.
(찰리 브라운 소위는 종전 후 자신을 살려준 루프트바페 파일럿을 그렇게 찾아 헤맸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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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조종사의 행위는 인간적으론 이해가 가지만
그 상황에서 쏘아 떨어뜨리지 않은 군인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공격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경례하고 이탈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온전히 살려보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B-17이 독일군에 투항했다면 모를까...
아직 귀환'임무'중 이었다는 걸 고려한다면...
살려 보내면 내일 다른 폭격기를 몰고와서 자신의 고향에 폭격을 할 것이 뻔하고...
전쟁에서 군인은 사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비인간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밖에 없다는 건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죠.
당시 상황에서 쏘았다고 해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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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장에선 믿기 힘든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자신들이 '하늘의 기사'란 생각은 1차세계 대전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고 여겨지지만 말이죠.
최근 공개된 영화 '허리케인'을 보면 영국 공군에 소속돼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우는 폴란드 공군 이야기가 나오는데...
베일아웃한 독일기 조종사 곁을 근접비행, 낙하산을 뒤집어버려 그대로 추락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심정이 아주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죠.
온 가족이 몰살 당한 채 자신만 간신히 빠져나와 영국에 오게 된 상황,
공중전 도중 눈 앞에서 동료가 죽어가는 걸 본 뒤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릴 수도 있겠죠.
(사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낙하산으로 탈출하는 적 조종사를 사살하는 경우는 흔했습니다.)
베트남 전 때도 북베트남 미그 조종사들이 미군 전투기나 폭격기를 떨구고 베일아웃하는 조종사들을 악에 받쳐 맞추곤 했다고 합니다.
해상이 아니라 지상에 떨어지면 어차피 포로가 될 게 뻔한데도 말이죠.
이건 애니메이션에도 묘사돼, AREA 88 85년판을 보면 남베트남 출신 구엔이 탈출한 적 조종사를 20mm로 날려버리다가 마지막에 자기가 그렇게 당하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의족의 에이스 더글라스 베이더도 적 조종사 사살에 대해 환영했다죠.
"전쟁은 경기가 끝나고 서로 악수를 나누는 크리켓 게임이 아니다."
하지만 베이더는 나중에 갈란트와 서로 악수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됩니다.
(갈란트는 탈출한 적 조종사 사살에 반대한 인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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