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순전히 밑에 "마린즈627" 니 눔 땜에 쓰는거다..ㅎㅎ
너무 오래된 얘기고 가물 가물 기억 나지만 삶에 활력소라 생각하고 글을 써보죠..!
이제 나이 38 , 두딸의 아빠
세월이 이렇게 빨리 갈줄 몰랐네요.
이 글을 읽는 젊으신 분들이나 군대 입대를 앞 두신 분들은 지금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잘 모르실 껍니다.
청춘은 그리 길지 않으니 하루 하루 소중하게 보내세요..
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지나치듯 시간도 그렇게 흘러 갑니다..
89년 9월 7일..
서울 뺀질이가 그 먼 포항까지 기차로 내려 왔다.
내려오기전 당시 한참 유행했던 우정의 무대를 보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진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던 프로가..
택시운전을 하셨던 아버지가 " 잘 갔다와라 " 한 마디 툭 던지시고 나가신다.
난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분명히 봤다.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눈물을 보이시지 않으려고 애쓰고 계신 모습을..
지금은 먼 하늘 나라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한테 너무나 많은 불효를 한 자식같다.
자식을 낳보니 부모의 천분지 일 그 마음인 것을..
토끼같은 두 딸들을 못 보시고 젊은 날 떠나신게 내 평생의 마음 짐인것을 어떻하리...
아버지 먼 곳에서 편안 하세요...필승!!
우리 아버지 무적해병 124 기 시다..
얼핏 생각나는데 아버지 돌아 가셨을때 직장 동료분중에 해병대 후임이 계셨다.
장례식 장에 군복입고 오셔서 거수 경례하고 군가 부르시고...
정말 엄청 우셨던 기억이 난다.
키 185정도에 산같은 체격... " 나 해병 의장대 출신이야. 이눔아"
" 박정희 하고 이 손으로 악수도 했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 자부심과 긍지 , 자랑스러움...
친구들과 헤어진 후 부대문을 들어서고 배웅하는 사람들이 안 보이니 바로 본색이 나타났다.
" 이 새끼들... 너들 죽어바.. 기어가 이 새끼들아 "
나 순간 이 지랄같은 곳을 뭐가 좋다고 지원을 했는지....
밥을 먹는데 츄라이(식기)가 플라스틱이다.
진짜 거짓말 안하고 똥밥이다.
" 이 새끼들이 안 쳐먹어.. 배 때기가 불렀네.."
" 30초내 다 못 먹는 새끼 함 바바"
입에 들어 부었다.
시범 케이스로 한명 걸렸다.
사람이 저렇게 많이 맞는건 첨 봤다.
집에 가고 싶었다.
그날 저녁...
" 집에 가고 싶은 놈 있으면 나와"
진짜 손이 어깨 위까지 올라 갔다 내려 왔다..
휴... 30개월 동안.... 앞이 안 보였다.
신체검사 떨어진 놈 집에 가고 자신없는 놈 집에 가고 다 추스려 지니 지금까지는 예고에
지나지 않는다.
" 니들 다 죽었어.. 이 깐 놈들이 해병대를 지원해 "
" 좋아 내 해병으로 만들어 주지 "
아.... 무슨 조폭 두목도 아니고 조교(DI)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오금을 절이게 했다.
담날 부터 삼청 교육대 라 생각 하면 된다.
목봉체조 , 야밤에 자갈연병장 뛰기, 총검술.. 등등
죽어도 다시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뭔가가 틀려 진다.
우린 지원해서 왔다.
끈끈한 동기애가 생겨 나기 시작했다.
몇 주 지나니 내가 군인 아니 해병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그 맛없던 똥 밥을 게눈 감추듯 먹는다.
웬만한 선착순은 숨도 차지 않는다.
발바닥이 곰 발바닥 됐다.
공기가 뭔지 안다. (우린 화생방 교육시 방독면 없었다. 지옥이 뭔지 안다)
지옥같은 6주가 지나고 수료식을 했다.
아버지 , 동생 , 친구 들이 왔다.
날 보시던 아버지가 눈물을 죽 흘리셨다.
쉬어빠진 목소리로 우렁차게 경례했다.." 필승!"
이 날의 감정은 수 많은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생생한 느낌...
신병 6주 교육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는다.
이 지랄같고 다신 오고 싶지 않은 교육대가 그리워 진다.
쌈질도 엄청하고 욕하던 동기놈들이 따나간다.
누구랄것 없이 다 눈물을 흘린다.
" 잘 지내라 이 새끼들아..."
우리 627기를 반 죽여 놨던 DI 들도 눈물을 흘린다.
" 실무 생활 잘해 이 새끼들아 "
나 비로소 해병이 된것이다.
........................................... 해병 627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