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돈 더 달라는 이야기지, 뭐…."
"미군 반대하는 개념없는 반미주의자!"
자주붙는 댓글의 대표적인거다....
7일 오전 회사에 출근하니 다시 평택으로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겼다. 평소 나에게 "네가 현장에만 가면 왜 피터지는 싸움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던 고위 간부(?)의 취재 지시는 이러했다.
"이젠 피터지는 싸움 말고, 네 기사에 달린 독자들의 댓글에 답변을 해야 하지 않겠니?"
7일 오후 3시 15분 서울역에서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평택으로 향했다. 먼저 평택시청 이전대책과를 찾았다. 한 관계자와 주한미군 평택 이전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이 관계자는 "이주 못 하겠다는 노인분들 모두 직업 운동권에게 이용당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오래 버티면 돈 더 준다고 꼬시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노인분들이 속아서 남아있는 거에요"라고 했다.
"보상금? 어떤 급살맞을 놈이 그런 소리를 해"
이렇게 해서 나는 또 하나의 숙제를 안고 시청에서 나왔다. 시청 관계자와 일부 독자들의 말을 종합해 정리하면 이렇다.
미군기지 확장이전 부지로 정해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도두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늙은 농부들은 모두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욕심쟁이고, 귀까지 얇아 과격한 운동권에게 속아넘어간 개념없는 반미주의자다.
정말 그런가? 이 의문을 안고 대추리에 들어섰다. 안성천이 가로지르며 흐르는 대추리 평야는 넓고 황량했다. 마을 바로 옆의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에서는 군용 헬기가 연신 오르내리고 있었다. 의문을 어디서 어떻게 풀지 몰라 난감했다. 먹이를 찾는 배고픈 짐승처럼 황량한 들을 이리저리 헤맸다. 무려 3일 동안.
나는 할머니들 틈에 슬쩍 끼어 앉았다. 그리고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대신 물어봤다.
- 할머니들, 돈 더 많이 받으려고 마을에서 안 떠난다는 말이 있던데요?
"(할머니들 일제히 나를 바라보신다. 순간 돌던 화투패가 멈췄다.) 뭐? 어떤 놈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거여. 급살맞고 싶은가베. 그거 기자양반 생각 아녀? 그런 말하러 왔으면 여기서 당장 나가. 사람들이 못하는 말이 없어. 말도 가려가며 해야지…."
- 그러면 정말 왜 안 떠나는 거에요?
"(김영녀 할머니. 81세) 내 땅이랑 내 집 놔두고 왜 우리가 나가? 이 나이에 나가면 어디서 뭘 먹고 살어? 우리가 쌀을 달라 했어, 돈을 달라 했어? 다 필요없으니까 제발 그냥 살게 내비 둬. 지금 우리보고 나가라는 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하고 같은 말이여.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늙은이들한테 지금 뭐하는 짓들이여.
원래 대추리는 지금 미군부대 있는 자리에 있었어. 전쟁통(52년)에 미군부대 짓는다고 이 쪽으로 다 쫓겨온 거여. 근데 우리더러 또 나가라는 거여. 우리가 무슨 죄를 진 것도 아닌데, 왜 우리만 못살게 구는 거여."
- 그래도 국가에서 시키는 일인데, 따라야 하지 않아요?
"한 번 물어봅시다. 기자 양반은 국가가 시키면 옳고 그른 것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배운거여? 그리고 민주국가에서 어째 주민하고 한 마디 상의없이 그런 결정을 하고 그런디야. 지들끼리 결정하고, 지들 마음대로 주민들 나가라 하고, 이젠 우리 땅까지 지들 마음대로 공탁을 걸어놨어. 아주 환장하겄어. 높은 양반들은 늘 그렇게 지들 마음대로인가베. 그러니까 노동자 파업하는데 골프치러 가고, 여기자 가슴이나 덥썩 만져쌌지."
- 주민들은 원하는 게 뭐에요?
"(김순득 할머니)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여? 원하는 거 없어. 내비 둬. 그냥 우리 살던 대로 살게.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묻히고 싶어. 고향 천안에서 여기 대추리로 시집와서 47년을 살았어. 그런데 상의도 없이 갑자기 돈 몇 푼 쥐어 주고 나가라면 말이 되는 거여? 왜 이 좋은 땅에 미군기지를 짓겠다고 하는지 모르겄네.
여기 평야를 다 우리가 만든 거여.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우리들이 지게로 흙 짊어지고 날라서 막은 거여. 뻘이 미끄러워 신발에 짚을 칭칭 동여매고 다녔어. 그 때 튼튼한 미군들 삽질 한 번 하지 않았어. 이제 소금기 빠지고 좋은 땅 맹그러 놓으니까, 지들 군부대 짓겠다고 하니 미친놈들 아녀? 분하고 원통해 죽겄어."
"바라는 것 없어. 여기에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어"
시간이 오후 6시가 조금 넘자. 할머니들은 "저녁 밥하러 간다"며 한두분씩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만 더 이야기하자"며 간신히 할머니들 네 분을 만류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기자들 오면 만날 똑같은 이야기하는데, 달라지는 건 없다"며 인터뷰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한 할머니는 "난 대추리에서 38년 밖에 살지 않아서 사정을 잘 몰라"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다행히도 한 할머니가 노인정 부엌에서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려 오셨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실 맘이 안 좋지. 수십년 동안 함께 농사짓고 살았던 이웃인데, 그렇게 떠나니까 마음이 아프지. 솔직히 많이 원망스럽고 밉기도 하지. 하나도 이사가지 않고 모두 힘 합쳐 싸웠어봐. 우리가 벌써 이겼지. 빈 집 보면 쓸쓸하고 슬퍼. 농사만 짓던 사람이 도시에서 잘 살랑가 몰러. 속상하고 밉기도 하지만 잘 살았으면 허지."
- 외부에서 대추리로 이사와 미군기지 확장 반대하는 사람들 어떻게 생각해요? 할머니들을 이용한다는 말도 있는데.
"빈 집에 들어와 사니까 우리야 고맙지. 그 사람들이 있으니께 그나마 좀 힘이 되는 거여. 우리 노인들이 무슨 힘이 있어. 이쁘고 고마우니까 가끔 쌀이랑 김치도 주고 그러는 거여. 누가 우리를 이용한다고 그려? 하여간 시청 직원 놈들은 우리한테 무슨 원한이 맺혀서 그런지, 미운 말만 골라 헌다니께."
- 공권력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데 불안하지 않으세요?
"왜 안 불안해…. 항상 신경쓰이고 무섭지. 가슴이 콩딱콩딱 뛰어서 아주 병날 지경이여. 작년에 죽은 OO 아버지도 우리가 봤을 땐 홧병으로 죽은 거여. 모조리 다 손해배상 청구해야 혀. 저놈들이 우리를 모두 홧병으로 죽여 씨를 말릴 참인가베."
-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나중에는 강제 철거도 할텐데.
"어떻게 하긴, 농사 지어야지. 곧 한참 바쁠 시기인데, 맘이 불안해서 일이 잘 안 돼. 의욕도 없고 일이 손에 잡혀야 말이지. 국방부가 기를 쓰고 우리 농사 못 짓게 할텐데 큰 일이여. 강제 철거 들어오면 드러누워야지. 여기서 죽으나 나가서 죽으나, 같은 거 아니여? 우린 죽을 때까지는 못 나가니께 높은 양반들한테 가서 그렇게 전해."
대추리에게 숙제를 넘긴 것은 아닐까
각자 집으로 돌아갔던 할머니들은 저녁 7시 30분께 다시 대추분교에 모였다. 운동장에 설치된 비닐하우스 안에서 555일째 촛불시위를 벌였다. "오는 미군 막아내고, 올해에도 농사짓자!"라고 외치며 오른팔을 올리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의 모습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방부와 경찰 쪽은 어떻게든 올해 농사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누구에게나 수십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외부 강요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주한미군 문제가 결부된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이전은 보상금 규모만으로 해결될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어쩌면 '뜨거운 감자'인 주한미군 이전 문제를 대추리 농민들에게 떠넘긴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외국 군대가 떠난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말이다. 독자들을 대신해 대추리에 고작 3일 동안 머물렀던 나의 느낌은 그렇다.
이들 중 일부는 원해서든, 원하지 않든 보상금을 받고 대추리를 떠날 지도 모른다. 물론 일부는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혹자의 주장처럼) 정말 한푼이라도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미군기지 확장이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대추리는 이미 이전의 대추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밤 10시께 차를 몰아 대추리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피곤했는지 졸음이 쏟아져 애를 먹었다. 그 때마다 "급살맞고 싶은가베"라는 할머니의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미군기지 확장이전 문제가 어떻게 결론 내릴지 나는 기약할 수 없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자신들의 공동체를 잃었던 사람들의 삶은 제발 더 이상 '불행'이 아니기를...
한미 양국은 지난 2004년 7월 23일 워싱턴 DC 미 국방부 청사에서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 (FOTA) 회의를 열고 용산 미군기지 이전, 미 2사단 재배치 계획 등 연합토지관리계획(LPP) 수정협상을 타결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오는 2008년 말까지 용산 미군기지 이전을 완료하기로 했고, 주한미군은 부지 5167만 평을 반환하는 대신 평택지역 349만평을 한국으로부터 공여받기로 했다.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정에 따라 한국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부지매입비 1919억원, 군부대 건설비 3조 7652억원을 합해 모두 3조 9571억원. 또 미2사단 이전과 LPP에 따른 군소기지 이전비용까지 합하면 6조원을 넘어선다(국방부 추산).
현재 국방부는 부동산 감정에 따라 농지 평당 최고 15만원을 평택주민들에게 보상하고 있다. 2004년 11월 기준 미군기지가 들어설 예정인 팽성읍 일대 주민등록상 세대 수는 535세대. 이중 40% 정도가 이주를 했거나, 앞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6월14일부터 8월31일까지 56일간 협의매수를 실시해 기지이전 예정부지 전체 349만평(팽성:283만9천평, 서탄:65만1천평) 가운데 65%인 226만 9천평(국·공유지 53만평 포함)을 매수했다. 국방부는 협의매수를 하지 못한 미군기지 예정 터를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법원에 공탁하고 강제수용 절차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