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2시 대추리에서 열리기로 한 범국민대회가 연기되면서 대추리 일대는 모처럼 '조용한' 하루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아직도 시민단체 회원 100여명과 주민 100여명 등 200여명이 남아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이들은 대추분교 근처 마을회관을 근거지삼아 다시 모이고 있다.
6일 오전 이들을 만나러 대추리로 가는 길, 평택에서만 20년 가까이 택시를 몰아왔다는 최아무개씨를 통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평택 시민들의 생각을 들여다봤다.
"철조망 치고 끝난 줄 알죠? 두고 보세요"
택시가 평택 시내를 빠져나오자 먼저 말문을 연 건 최씨였다. 멀리 팽성읍 신궁리 쪽에서 경찰버스 4대가 줄지어 대추리로 향하는 게 보일 때였다.
"쟤들(정부를 지칭)은 학교 부수고 철조망만 쳐놓으면 끝난 걸로 알지만 큰 오산입니다. 이 곳 사람들 만나보면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두고 보세요. 국방부에선 6월까지 대추리 주민들이 전부 퇴거해야 한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나 나갈지요."
최씨는 전날 평택터미널에서 만난 한 손님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70년 전 대추리에 정착해 빈손으로 8천평의 땅을 일군 한 농부에 관한 얘기였다.
"어제도 평택터미널에서 50년 넘게 대추리 인근에서 농사만 짓고 살았다는 주민 한 분을 태웠습니다.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추리에서 뼈를 묻고 말겠다고 합디다. 자신도 살만큼 살았지만 이렇게 이 곳을 떠날 수는 없다고 하더군요. 자꾸만 밖에서 '보상이다, 이념이다' 내세우는데 그 분한테서 보상이며 이념 따위가 무슨 소용있나요."
실제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반대하며 대추리에 남아 있는 주민 100여명 가운데 80명 가량은 위의 경우처럼 50년 넘게 대추리에서 살아온 이들이다.
조상 대대로 대추리에서 살았다는 노인회장 정태화(71)씨는 이날 범대위 주최 기자회견에서 "이곳에 남아 있는 주민들 모두는 보상과는 상관없이 그냥 예전처럼 이 곳에서 살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택시는 신궁리를 지나 원정리로 접어들었다. 택시가 지나간 가로 변에는 짓다 만 빌라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미군기지 이전에 맞춰 미군 가족들에게 세를 주기 위해 지은 건물들이다. 최씨는 그 빌라들을 바라보며 씁쓸한 듯 말을 이었다.
"저게 다 뭐야. 미군들 살자고 땅 빼앗고, 집 지어주고, 참내 이래놓고도 우리 정부인지…."
택시가 팽성읍 원정3거리에 이르자 경찰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대추리로 들어가는 길목인 이 곳의 경찰 경비는 대추분교 강제 철거가 이뤄진 지난 4일보다 더 견고했다. 전날 시민단체 회원 등 2000여명이 철조망을 끊고 진입한 기습 시위에 허를 찔린 경찰이 더욱 삼엄한 경비에 나선 것.
빗줄기는 택시가 평택역을 빠져 나올 때보다 더 굵어졌다.
택시가 원정리를 지나 안정리로 들어서자 최씨는 안정리 주민들 얘기를 늘어놨다. 최씨의 말에 따르면 언뜻 안정리 주민들은 미군기지 확장을 환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멍이 들대로 들어있었을 터였다.
"이 동네 사람은 차라리 보상이라도 받아서 나가고 싶어 합니다. 차라리 미군기지 확장 지역으로 포함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에요. 그건 인근의 미군부대 때문에 썩는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죠. 미군에 의해 발생하는 범죄가 해마다 늘고 있어요."
최씨는 지난 주말 안정리 한 상가 앞에서 당한 일을 회고했다.
"잠깐 가게에 들렀다 나오니 술에 취한 미군이 택시 본네트(앞덮개)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거에요. 예전에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었지만 나가서 뭐라고 하지도 못해요. 어디 이뿐인가요. 주말이면 안정리 일대에서 술에 취한 미군들이 상가 셔터를 발로 걷어차고, 연탄재를 던지면서 난리를 피웁니다."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지 몰랐다고 하자 최씨는 "기자양반 뿐 아니라, 정부 관계자 등 그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쳐다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어요. 그 분들한텐 그게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군기지 확장을 환영하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도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최씨는 손사래를 쳤다. 사람많은 게 가장 '호재'인 택시기사들도 대부분 미군기지 이전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에선 지역경제 활성화를 운운하는데, 미군이 늘어난다고 해서 이를 좋아할 사람은 안정리 부근의 일부 상가 사람들 뿐이에요. 저희 택시기사들도 모두 반대합니다. 돈 안 내고 도망가고, 심지어는 택시 안에다 볼일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폭격맞은 듯 폐허된 학교, 미군가족을 위한 빌라들
"외부세력이 농민들을 버려놨다고 하는 손님들도 더러 있어요. 그러나 그 분들 얘기를 길게 들어보면 그렇게 주장하는 아무런 근거가 없어요. 여기에다 이념까지 들씌우는데, 가끔은 저도 참 답답할 때가 많아요. 그냥 살던 곳에서 살게만 해달라는데 그게 무슨 이념과 상관 있다는 건지…. 우리가 봐도 시민단체가 자기들 이익 때문에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택시는 캠프 험프리 미군기지 앞 철조망을 지나 대추분교로 향했다. 멀리로 폭격을 맞은 듯 폐허로 변한 대추분교 건물더미 사이로 펄럭이는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평화'란 두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는 기자의 귓가에 최씨의 한 숨 섞인 목소리가 맴돌았다.
"이게 무슨 사람 사는 곳이야. (5.18 당시의) 광주지, 광주. 작은 광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