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tantin Eduardovich Tsiolkovsky
로켓에 의한 우주여행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였고 "소련 로켓공학의 아버지" 라 불리는 치올코프스키는 1857년 9월 17일 러시아 이제프스코예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9세 때 청홍열로 청력을 잃었고, 16세 때 보청기를 사용하며 모스크바에서 공부를 하였다. 1878년 러시아연방 칼루가 보로프스크에서 교사가 되었고, 이 곳에서의 연구활동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물리학회의 회원이 될 수 있었다. 1883년 3월 28일 압축가스를 채운 통으로 반작용 이론을 실험, 배기가스의 압력을 조정하여 통의 운동을 조정할 수 있음을 알았다. 1895년 "Gryozy o zemle i nebe" (지구와 하늘의 꿈) 이란 책을 냈고, 다음해인 96년 다른 행성거주자들과의 통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1898년 첫 반작용추진모터의 설계를 마쳤다. 다음해 과학 아카데미에서 연구자금으로 470 루블을 지원받았으나, 실제 로켓은 제작하지 않았다. 1903년 "Naootchnoye Obozreniye" 란 학술지에 로켓기관 사용에 대한 이론적인 문제를 다룬 "Issledovanie Mirovykh Prostranstry aktivnymi Priborami" (반작용장치에 의한 우주탐험) 이란 제목의 그의 로켓관련 논문이 실렸다. 그는 이 논문에서 액체 추진체를 사용하여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하였고, 우주공간에서의 비행에 대한 연구를 설명했다. 같은 해 그는 첫 로켓을 설계했다. 이 로켓은 액체산소와 액체수소의 혼합물을 연소시킴으로 고온, 고압의 가스를 발생시키고 노즐을 통과한 배기가스가 높은 속도의 추력을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뒤이어, 우주비행을 위한 다단로켓을 구상했다. 이 로켓은 길이 약 500 피트에 폭 12 피트 정도로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린 Saturn V보다 약간 작은 크기였다. 3단 로켓이었으며 대기권 비행시의 높은 열로부터 기체를 보호하기 위해 내열재료를 사용한 것이었다. 또한, 20세기 중에 반작용이론에 의해 인류가 우주로 나갈 것임을 확신했다. 1919년 나중에 소련 과학아카데미로 이름이 바뀐 사회주의 아카데미에 선출되었고, 1925년부터 1932년까지 소련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주비행, 천문학, 기계, 물리, 철학에 대한 연구를 했고, 1935년 9월 19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