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Hutchings Goddard
고더드는 세계 최초의 액체연료 로켓을 발사했고, 액체연료 로켓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여 "근대 로켓 과학의 아버지" 라고 불린다. 그는 1882년 10월 5일 미국 메사추세츠 주 우스터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H.G.Wells 의 "War of the Worlds" 와 Jules Verne 의 "지구에서 달까지" 같은 공상과학 소설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1902년 고등학교 시절에 "Popular Science News" 란 잡지에 "The Navigation of space" 란 제목의 로켓과 우주여행에 관한 글을 썼고, 치올코프스키가 구상했던 것과 같은 다단 로켓에 대한 내용의 글을 쓰기도 했다. 고더드 역시 반작용 이론으로 우주여행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1908년 우스터 과학기술 종합학교를 졸업하고 클라크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1911년 이 곳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물리학을 강의하면서 액체연료 로켓엔진에 대한 여러 연구를 하여 치올코프스키와 마찬가지로 액체산소와 액체수소의 혼합물이 가장 이상적인 연료라는 것을 이론화 했다. 이 이론은 1912년부터 1913년까지 프린스턴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면서 개선되었고 연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일찍이 1914년에 오늘날 로켓의 연소실, 노즐, 연료공급 시스템, 다단로켓 등으로 각 분야에서 특허를 땄다. 비슷한 시기에 우스터 근처에서 화약을 이용해 로켓을 발사하여 약 500피트의 고도까지 상승시켰다. 1916년 스미소니언 연구소에 로켓실험을 위한 재정지원을 요청하여 1917년 1월 5천달러를 지원받아 고고도 로켓연구를 시작하였으나,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하면서 그는 육군에서 로켓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여기서 2차대전 때 미국이 사용했던 바주카와 같은 작은 휴대용 로켓포를 개발했다. 1918년 9월까지 육군 통신대 (Army Signal Corps)에서 참호에서 발사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로켓포를 개발했다. 1918년 11월 7일 매릴랜드 주 애버딘 시험장에서 55피트 길이 2인치, 3인치 구경 로켓포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으나, 며칠 후 1차대전이 끝나자 생산계획이 취소되었고 고더드는 클라크 대학으로 돌아왔다. 1919년 그 때까지의 연구와 우주여행의 가능성에 대한 내용은 다룬 책 "A Method of Reaching Extreme Altitudes" 를 펴냈다. 그러나, 이 책은 학계에서 무시되었고, 일부 언론에서는 그의 연구를 비웃고 그에게 '달 사나이' 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이런 비평으로 인해 그는 대중앞에 나서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1920년부터 1923년까지 해군에서 로켓추진 수중폭뢰와 장갑관통로켓 개발에 참여했고, 이 기간동안 액체연료 로켓모터의 연료로 액체산소와 가솔린의 혼합이 가장 실용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후에 우스터에 돌아와 로켓의 액체, 고체 연료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고, 로켓의 안정과 유도 시스템에 대한 실험도 시작했다. 1924년까지 로켓에 사용될 작은 액체산소 펌프와 엔진을 제작하여 개량을 거듭한 끝에 1925년 10월 6일 클라크 대학 물리학 실험실에서 액체 산소 엔진의 지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엔진은 24초 동안 작동했고, 약 12초 동안 자체 중량을 들어올렸다. 몇차례의 실험실 테스트 후 메사추세츠 주의 어번에 있는 그의 에피 숙모의 농장에서 야외 실험을 시작했고, 1926년 3월 8일 지상 테스트를 했다. 같은해 3월 16일 10피트 길이의 세계 최초의 액체추진 로켓이 발사되어 2.5초 동안 최고고도 41피트, 평균속도 60mph,180피트를 비행했다. 세계 최초의 액체연료 로켓의 발사였다. 4월 3일 두번째 액체연로 로켓이 발사되어 4.2초 동안 50피트의 거리를 비행했다. 고다드는 다음 실험에서 더 큰 로켓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1927년 1월 18일 흐름 조절장치, 다중 액체주입장치, 압력계와 추력계를 개선한 로켓을 완성하여 지상테스트에 성공하였다. 1927년 9월 3일 연료주입장치를 개선한 로켓제작을 시작하여, 4번의 발사 시도를 했으나 점화 후 로켓이 뒤집히면서 실패했다. 1928년 12월 26일 로켓은 발사에 성공하고, 세번째 액체연료 로켓 발사로 기록되었다. 로켓은 204.5피트를 비행했고, 최고속도 60mph를 기록했다. 이후에 연소실의 냉각과 비행안정 문제에 대한 실험이 계속되었다. 1929년 7월 17일 온도계와 기압계, 카메라를 탑재한 4번째의 액체연료 로켓이 발사되었다. 로켓은 18.5초의 비행동안 고도 90피트, 비행거리 171피트를 기록했고 탑재된 장비는 낙하산으로 회수되었다. 이 발사에서 발사할 때의 큰 소음과 섬광으로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소동이 벌어져 고더드는 어번 지역에서의 로켓 발사를 금지 당했다.
1929년 11월 23일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찰스 A 린드버그가 고더드를 방문했다. 린드버그는 고더드의 연구를 접한 뒤에 그의 연구와 로켓의 가능성에 감동되어 후원자가 되었다. 린드버그는 고다드에게 재정지원을 했고 항공학 발전을 위한 5만 달러의 다니엘 구겐하임 기금이 고다드의 연구활동 자금으로 클라크 대학에 지원되었고, 카네기 학술 연구기관에서 연구시설 건설자금을 지원받아 뉴멕시코 주 로즈웰에서 높은 고도에 도달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했다. 1935년 초음속 액체연료 로켓 발사에 성공했고, 1945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후두암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