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민감한 내용이고 신빙성이 전혀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겁니다.
광주사건 당시 무장폭동으로 확대시키고 광주 점거 성공시 여세를
몰아 수도 서울로 진격하려는 남파간첩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가 긁어온 내용은 미국 한인 언론에서 정식으로 공개되었고
증인도 공개된 내용에 작성자 개인의 가정이 포합되었고
단순히 거짓이라고 넘기기엔 증언자들의 증언 자체의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었다는 점은 꼭 믿어주시기 바라며
희생된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더럽힐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밝힙니다..
북진통일 또는 흡수통일시켜 비밀문서를 확인하기 전에는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까지 증언되고 나타난 현상들로 침투한 赤犬들의 숫자를 대충 추산해 볼 수 밖에 없다.
증언록을 작성한 탈북인들은 총 15명.
침투조의 가족이거나 인과관계로 인해 직접 당사자로부터 들은 내용은 내용을 분석해보면
증언 1의 교사 출신이 들은 1개조는 11명이지만 보통의 경우 12명이 1개조이다.
증언록을 위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총인원은 115명, 32명 답변거부, 질문 1과 2에 중복으로 답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질문 내용은;북한에 살 때 1980년 5월1 8일 광주폭동( 원문은 봉기..그러나 폭동이 맞는 표현)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하였다는 말을 누구로부터라도 들은 적 있습니까?
답변 1); 광주에 직접 왔다 간 당사자로부터 들었습니까?
(예) 13명 (아니오) 70명
답변 2),친척이나 친구로부터 들었습니까?
(예) 61명 (아니오) 22명
115명중 74명이 (전체 64%)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중복 답했어도 의미가 없는 중복이다)
#이 74명이 각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것으로 가정하여
1개조 11명 (또는 12명)을 계산하면 74명X11(12)=814(888)명이 된다. -------------- **(1)
#이 74명에게 알려준 사람이 중복될 수도 있으며 탈북인 15.000명을
기준으로 중복되지 않았다고 가정 계산하면 15000명x64%x11명=105600명-------- **(2)
#증언자들의 경우 각 군부대나 출신지가 비교적 정확하여
전혀 중복되지 않았으니 이들만 기준으로 계산하면 13x 11(12)= 143(156)----------**(3)
#이제 증언자들의 증언을 구체적으로 점검해보면..
증1) 함남장진군 거주, 침투당사자로부터 직접 들었음
11명 1개조 와 11+? 의 제 2조 및 기 침투해 있던 7명=29명+?
(이 증인에게 증언한 당사자는 광주에서 아군끼리 오인사격 또는 눈먼 총에 맞아 죽는 경우도
허다하며 광주폭동 1~2개월 전에 적지않은 인원들이 광주에 파견되어 있었다고 말하였음)
증2) 함북무산군 거주, 침투자로부터 직접 들었음..... 11 (12)명
무장폭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북에서 침투한 공작원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자서전에 기록
증3) 여성고사포중대 중대장..아버지로부터 들었음.... 11(12)명
자신의 아버지의 부하가 침투 광주에서 사망
증4) 함남함흥시 거주 친구 아버지가 광주 침투 ......11(12)명
증5) 북한군 하사관 친구로부터 ..........11(12)명
직접침투자....................11(12)명
또 다른 침투자................11(12)명
증7) 서해안방어부대군관 조직부지도원...............11(12)명
정치부소장.................11(12)명
첩보요원...................11(12)명
증9) 노동자 직장동료로부터.............11(12)명
제대군관.................. 12명
증10) 함남신포시 직장동료............. 12명
증11) 함남 함흥시 거주 침투자로부터............ 23명(침투 중 복귀)
침투자로부터.친구처삼촌... 11(12)명
증12) 함흥시 거주......친구아버지가 침투.......... 11(12)명
증13) 함북 경성군 친구로부터................. 11(12)명
증15) 남포시 거주.......직장상사로부터............ 11(12)명
207(221)명 --**(4)
# 설문에 황해남도 신천군 소재 정철국 70,71,72대의
각 부대별 광주 침투인원은 40명 이상이라는 진술 (영등포구 이 모씨 45세) ..
3개대대X40명..120명+?--**(5)
증5)에서 서술된 61,62 저격여단의 소부대가 침투한 인원, 534 부대 등의 인원은 고려되지 않음.
#반드시 고려해야할 방산업체 아시아 자동차를 일거에 습격해 300대 이상의 트럭을 탈취하고
장갑차 4 군용트럭 대형버스 등 합 328대를 탈취할 때 탈취에 나선 인원
당초 시위대는 짱돌을 던지는 선이었고 그 당시 시위양상은 그 선 이상은 없었으니
신분이 탄로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무기를 탈취하자는 선동을 시위대에 할 수 없었을 것이고
무기를 탈취하러 갔었다는 광주시민들의 증언은 없다.
전남 일대( 목포 무안 송정 해남완도..등)에 흩어져 있는 38곳의 무기고를 328대가 분산 습격했을 테니
대당 최하 2~3명은 탑승했을 것이다.
이를 간접 증명하는 것으로 광주폭동 당시 탈취한 화력은
가..기관총,카빈,M-1 등 총기류.. 5.403 정
나..수만 발의 실탄
다..8t트럭 분의 다이너마이트
라..폭약 2500여 상자 35만개의 뇌관, 4만m도화선 등이다.
이 총기류 폭약 실탄 등을 옮기고 싣는데 대당 1명만 탔을 경우 한 지역당 328/38= 8.63명이 되니
시간이 지연되면 공수의 반격을 받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대당 1명만 탔을 리는 만무하다.
운전 중 사고나 만일의 사태를 고려하여 운전병 외에 경계 내지 전투병이 탔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가정이 맞을 경우 328x2(3)= 656 (984)명.......(6)
방산업체를 습격하러 간다고 광주시민을 정부와 이간질하여 교란할 임무를 띤 자들까지
자리를 비우지 않았을 것을 가정하면 656(984)명+? 이어야 한다...(7)
자유북한연합의 임천용회장의 진술(한국논단 취재시..) 최소 450........(8)
이 (1)~(8)에서 가정 불가능한 (2)번- 105,600명은 고려대상에서 제외
증언된 숫자는 (4)와 (5) ... .[207(221)+?]+[120 +?]..327(341)+?..(9)
여기에서 추가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증언자들이 주로 함남지역과 함북지역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자유북한군인연합에 확인한 바 함남,함북지역이 두만강을 건너기 가장 좋은 지역이라
탈북자가 많다는 증언을 고려하면 함남 함북을 제외한 자강도,양강도.강원도 등의
북한 동포가 듣거나 경험한 사례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으므로
무조건 (9) 2배 이상의 숫자가 나와야 한다.
북괴의 광주무장폭동에 침투한 침투조가 한 임무를 보면
장기공작조........ 유학생 가장 학생 등을 포섭하고 대중 등에게 공작금 지원
고정간첩 . .땅굴 인근, 서울 장기거주자로 북지령 이행
미모의 여성 침투조... -선무공작 방송
사전 침투조 ............. 무기고 등 폭동 현지 조사
외곽지원조.. ............ 무장 폭동성공시 외곽지원
무장폭동 조...... 선동 교란키 위해 진압군보다 시위자들을 주로 사살
활동보고조....현장의 잔인하고 끔직한 장면을 촬영 북에서 매일 방송토록 함
기타..... 목포 등 외곽에서 광주 현장상황을 파악보고
등등으로 구분되는데 여성 선무조의 숫자나 기타의 숫자는 빠져 있다.
김성주,김정일놈이 광주무장폭동이 잔압되지 않았다면 이 폭동을 서울로 진격하려 했고
이 때를 틈타 전 군을 비상대기 시켜 놓은 인민군을 밀고 내려와 무력적화시키려 한 점을 고려해야 하고
(증5에서 공문을 체계적으로 배포 했고 광주 폭동시 밀고 내려오려 했다고 증언)
증1)에서 눈먼 총알에 맞아 죽는 경우가 허다하고 아군끼리의 오인사격으로 죽을 (정도로 많이 침투했다는 것이고),
1~2개월 전 적지 않은 숫자가 사전 침투했다는 진술
증10)에서 장갑차 탈취 때 알만한 사람들을 적지 보았다는 진술.
증12) 등에서 수없는 군인이 죽어 돌아오지 못했고 (천마산에 가짜묘 강원도 김화등 전국에 침투조의 묘지가 산재)
알지도 못하는 공화국 영웅들이 많이 배출됐다는 진술
등을 참고하면 희생자 없이 광주폭동 성공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고
진압군을 이기고 서울로 진격하려 했다면 (반란폭도들만으로 불가능)
진격시 국군과의 교전을 염두에 두었을테니 소수로는 절대 무리라는 점과..
북한은 우리 자유대한과 달리 거주이전의 자유가 극히 제한된 사회임에도
인민군 특수부대의 광주폭동 침투조를 구체적으로 안다는 점이다.
단순히 몇 십명에 그치면 방송을 보고 광주에 침투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구체적인 사실과 당사자들을 쉽게 알거나
만날 수 없다.박대통령의 월남파병시 당초에는 몇명이 월남에 갔다더라..는
카더라방송에 그쳤으나 점점 파병숫자가 늘어나면서 누구 형, 누구 사촌, 어느 마을 이장 아들,...등으로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된다.
이제 이러한 정황을 고려해 숫자를 꿰맞춰 보면
(9)의 2배이상의 숫자... 654(682) 명...............A
트럭과 장갑차 탈취에 나선 빨갱이들 (6) 656(984) 명, + 현장 세력(선무공작,살해조 촬영조 ,,등)= ??? ... .. B
(8)의 자유북한군연합 임천용의 추측.. 최소 450명.. C
중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인 바
C 의 경우 자신들도 숫자를 모르는 상황이며 트럭 장갑차 탈취에 나선 놈들과 기타를 고려하면 불합리하므로 제외
A의 경우 함북.함남을 제외한 지역 탈북자 진술이 거의 없으므로 참고만 할 사항,
B의 트럭 장갑차 탈취 무기고 습격을 위해 나섰던 숫자는 탈취된 트럭과 무기고 습격시 반드시 있어야 할 숫자에
기타 인원이 고려되어야 하므로 추정가능한 객관적 사유가 되고
A 의 경우와 기타 인원을 참고하면 최소 700명 ~ 1.000명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아세아 자동차에 몰려간 인원이 600명이라는 최근의 기록을 참고하면 700명 이상 침투 했다는 추정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시청앞에서 행하는 기독교인 보수단체 연합집회에 참가하는 인원이 평균 30만이며
광주 폭동시 20일 집결한 인원은 25만 이 25만명에 천명 내외가 흩어져 활동하면 표시도 안나는 숫자임.
(1000명이 침투하여 동시에 시위군중에 분산 침투했다고 가정하면 광주 시위자 250명 당 1명 꼴..)
=
이제 제 의견입니다.
육사 출신 육군 장성을 외조부로 두고있는 저는 5.18이란 단어 자체를 전혀 알지도
못 할 시절부터 상기 내용과 관한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고 대중이가 정권을 잡고 갑자기 대두된 내용이 5.18 입니다.
상기 내용은 실제 탈북자의 증언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직접 찾으시겠지만 전 이정도면 대충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요점은 이렇습니다.
당시는 크던 작던 전국에서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중 특히나 탄압받던 지역이 호남역이었습니다.
호남의 가장큰 도시라면 역시 광주가 되겠지요..
북한 공작조에 의해 대규모 시위를 선동하고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을때 무장봉기에 나서게 됩니다.
군부대와 경찰서를 공격하여 무기를 확보하고 실탄 사격이 시작됩니다.
당시 군사 정부의 대응이 과했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누가 누구인지도 전혀 알 방법이 없고 무기를 들고 공격하는
시위대는 북한 공작원임이 거의 확실한 상황과 공황상태와도 같은
상황에 군의 발포허가는 굉장히 늦었습니다.
대규모 시위가 이루어졌을때 흥분한 군중을 상대로
무장 시위를 누가 선동했는지 그게 어디사는 누구인지 분명 광주시민은 아무도 증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쓸데 없는 말은 줄이겠습니다.
군의 정보와 판단에 의해 초강력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위아래에서 당하는게 자명했던 상황입니다.
민주화운동 이전에 김정일이 김일성이가 기습남침으로 수도 서울을 전복시키려는 분명한 상황이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쿠데타때도 미군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고 쿠데타 세력은 미군과 모종의 합의가 있었기때문에
군을 움직여 쿠데타를 실행 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맹락으로 국내 문제에 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제압하기 위해선
미군의 동의가 있어야합니다. 지금도 그 문제로 연평도 사건 이후
강경 대응과 관련한 규정에 대해 국방부 장관 지명자가 '자위권'을 운운하는 겁니다.
단순히 국가 내부의 시위를 무력으로 제압하는데 미군국이 자국에서 뿐만 아니라
주둔지에서도 어떤 정치적 치명타를 받을 지 모르는 문제를 흔쾌히 동의할수는 없습니다.
미국은 표면상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국가여야하니까요.
즉, 북한군의 동향도 분명했기에 군사작전이 가능했습니다.
군사작전으로 국민을 무참히 살육했다는 오해가 바로 여기서부터 입니다.
1. 실제 광주시민을 선동하여 시위를 일으킨 세력은 북한 특수공작원이다.
2. 단순 시위라는 개념을 갖기 힘들 정도로 각 공관과 시설의 제압이 빨랐다.
3. 누군가 주도적으로 무기를 탈취하였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광주시민 중 아무도 모른다.
4. 실제 탈북 주민들의 증언에 의거해 거짓으로 판단하기에 무리가 있을 정도로
자세한 작전내용과 광주사태의 내용을 속속들이 북한 주민들이 알고있다.
5. 광주를 기점으로 광주 점령이 성공시 수도 서울로 시위대를 이끌고 진격한다.
6. 군의 대치를 기회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북한은 기습 남침을 시도하여 서울을 점거하려했다.
이중 3번의 내용은 과거 대중이 시절 시사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엔 이 증언 내용을 군이 먼저 공격을 하였고 민중이 무장을 하여 대항했다고 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군 투입 이전에 무장이 되어있었다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직접 자료를 찾아보시면 언론이 비확실한 내용은 정권에 유리하도록 방송하였음이 드러납니다.
사실에 근거하여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대남침투 훈련을 받은 특수공작원을 상대하기에 일반 보병은 벅찹니다.
솔직히 얘기하겠습니다.
시민이 총을 들고 무장했다고 특수부대가 대응 할 필요가 없습니다.
즉, 특전사의 투입은 광주사태 내에서 북한공작원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것이 조직적인 무장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으로 확신을 얻었으며
대응을 위해 그와 상응하는 특수전병력의 투입으로 진압하려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당시가 군사정권 시절이라도
전국민의 대규모 민중봉기가 일어난다면 전두환도 어쩔 방법이 없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제 스스로의 5.18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 의해 치밀하게 준비된 북한특수공작부대의 작품입니다.
광주민중은 지역적 이유에서의 불합리한 대우와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의 민주주의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북한의 대규모 남파특수공작원의 선동으로 그러한 광주시민의 마음에 불이 붙었습니다.
정말 이런 말씀드려서 인생 매장 당할 각오까지 해야겠지만...
광주시민은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에 의한 치밀한 작전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민주주의를 갈망한 희생된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더럽힐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밝힙니다..
이건 제 거짓 없는 말입니다.
여기서 퇴출되도 좋습니다.
온라인의 무서움이죠?
제 신상 명세 털린다하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전 이것과 관련하여 북한의 대남공작의 상당한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가슴속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북한을 절대 용서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친북성향의 인간들이 글을 올리고 비아냥 거리죠?
전 그런 인간들을 찢어 죽이고 싶습니다.
공개되지 못하고 의혹만으로 끝내려하는 분명한 진실을 알고있기에
재미삼아 그런 행동을 한다 하여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도대체..
광주사태로 얼마나 많은 인명이 희생됐죠?
그걸 모두 특전사가 짊어져야 합니다.
실제적인 증언과 증인이 있음에도 대다수의 국내 언론은 그것을 묵살합니다.
그렇게 공개한 진실에 의해 엄청난 반발로
인생이 끝난다 생각하면 언론인이나 정치인이나 겁나겠지요..
저 역시 이정도 싸이트에 글 올리기도 겁납니다..
세번째로 다시 한번 강조드리지만..
민주주의를 갈망해 희생된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더럽힐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반드시 재조사 하여야 합니다 찬성합니다
시간이 더흘러 진실이 어느정도 밝혀 질날이 오겟죠.
홍어족만 부정해부린당게 ㅋㅋㅋ
당시 일부 공수부대원들 또한 심각한 정신적인 후유증으로 평생을 사람구실
못하며 약으로 남은 여생을 연명하며 보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이 있는것이죠 민감한 사항이라 더이상의 언급은
않겠습니다 특전사님의 용기에 갈채를 보냅니다 ..
언론이 너무 바람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진실은 누구도 모르지만, 희생자들만 다시 희생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 같네요
민주화 항쟁이 이어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고문을 당하고 죽음을 당했습니다.
광주사태는 말씀드린것과 같이 북한의 치밀한 작전에 의해서
남파된 특수공작원의 선동으로 엄청나게 커져버린 사태입니다.
김대중은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그리고 성공하였으며
광주사태의 숨겨진 진실에 관한 내용과 증언 증거는
미국한인언론을 통하여 직접 찾아보세요.
그러나 광주사태에서 희생된 분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폄하 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정치군인과 정치인이 한거지!!
병신삽다리가트니라구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못하고 벌어진 상황에서의 작은 것들로만 잔인하네 어쩌네
말토닥질 한다면 한국사람 맨날 당하고 삽니다. 자질구레한 가지들만 가지고 왈가불
가 한다면 근본적인 나무기둥을 놓치는게죠
물론 이런 말 들으면 "난 서울사람인데, 난 경상도 사람인데 5.18민주화 운동이라 생각한다"라는 말을 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들중 상당수는 전라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겠죠.
국민들 상당수가 생각하는 5.18은 김대중과 북한이 치밀하게 계획한 반정부 내란폭동입니다.
거기에 이용되고 희생된 시민들만 안타까울뿐이죠.
저는 물론 광주 토박이이며 아직도 광주 살고 있습니다
제가 39이니 그때 9살이였겠네요
아직도 그때 그일이 생생하니 기억납니다
우리동네에서도 총격전이 벌어졌고 아버지가 경찰관이셔서 일반인들보다 자세한 사항을 잘알고 있습니다
일단 북괴가 간첩을 보내서 선동했다고 하신분들 있는데 광주사람들이 들고일어서니 그때 간첩들이 활동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발단
당시 진정으로 민주화민주화 말대로 했다면...김영삼?김종필?김대중?...누가 정권을 잡고 안전정적으로 국정을 끌어나갔을까요??..
무정부 상태여서라고 말씀하실수도 있는데 먼저 부마항쟁처럼 군인을 투입하면 잠잠해질거라 생각하고 공수부대 투입후 광주사람들을 무자비 하게 구타하자 그때 광주시여서 인구도 적은 동네에서 한다리건너면 다들 아는 광주를 타지에서 온사람들이 많은 부마항쟁과 같은생각으로 탄압한겁니다
이에 광주 사람들이 총기로 무장하기로 결심하고 예비군총기창고에서 총기를 탈취하게 되었고 이에 경찰들은 같은 시민들과 총격전을 벌릴수 없다면서 각 경찰들에게 피신한후 소요가 진정돼면 다시 집결하라는 명령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저희 아버지도 죽어도 같이 죽자며 온가족들이 집에 모였고 바깥출입을 자제 하였죠. 일부 회원들이 말하는 간첩들 폭동이였다면
그때 첫 사상자는 경찰관 두명이 시민들이 몰고 돌진했던 시내버스에 치어숨진게 첫 사장자 였습니다. 특전사대원이 납치 강간이라는 근거가 있다면 자료가 분명 존재할것입니다...그게 아니라면..그게 유언비어이고 선동질 이라는 겁니다...
내가 처음으로 광주에 투입된 병력중에 한사람 이라서 광주 사건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6군단님은 어릴때니까 잘 모르실거라고 생각이
드네요.
저희집이 주택이였는데 한번은 시민군과 공수부대가 야간에 동네에서 총격전을 벌였는데 집에서 기르던 큰세퍼트가 짖을까봐 아버지와 제가 개 입을 틀어막고 있었습니다 다른동네에서 개가 짖자 시가전하던 공수부대가 그집에 수류탄을 던져거든요
그리고 예전 청문회때 어떤 인사가 나와 이런말을 하더군요
어떻게 일반시민들이 3일만에 군장갑차와 전차등을 조정하며 총기를 잘다룰수 있겠는다 이건 분면 간첩들이 안도와주면 못한다고 하던데 광주 사람들은 군대 안다녀 왔
해마다 광주에서 5.18태권도 전국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때 와서 염주체육관 가시면 외국기자가 찍은 5.18 비디오와 살해당한 시민들( 전투화에 짖이겨져서 얼굴도 못알아보는 사진,총검에 찔린여자가슴사진등등) 볼수 있습니다
저는 해마다 대회운영때문에 가서 보는데 볼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또 제글에 댓글 다시는분들 계시겠지만 직접겪어보지도 않고 이런저런말 하지 말아주시길 바라며 위에 글올리신분도 본인이 겪어보지 못한
일단 시민들이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가 용납이 안됨. 뒤에서 조종하는 새끼없이 시민들 스스로가 무장을 했다면 더더욱 말이 안됨. 분명 북에서 사주한놈이 있는겁니다.
님의 말씀이 다 옳다고 칩시다.
군인도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명령을 받아야하는 하위 장교들 및 사병들 역시 마찬가지구요.
그들은 처음 진입당시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역시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군인이고 일반인이고 떠나 똑같은 사람이였으며 , 내동료하나가 죽으니 복수를 한거고 상대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전쟁 / 전투 안격어보셨죠??
최소한 주변에 머리에 뇌가 있는분들중 월남전이라도 참전하신분 분들 있으시면 함 물어보세요.
피보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나.
소설은 그만 쓰시구요.
말씀하신것처럼 제가 만약 진압군이였다도 명령에 따라을것입니다
제가 말하는것은 왜 간첩들에 의한 시민들의 폭동으로 생각을 하냐 이겁니다
그리고 전쟁경험은 님도 없을것 같고 제경험은 예전 연천예비군 포탄폭발때 가서 피뭍은시체 찢어지부분들 수습 해봤으며 제대 한달 앞두고 김일성 죽어서 전부대원 삭발하고 일주일동안 전투준비 상태로 전투화도 못벗은채 생할은 해봤네요
왜 시민들 스스로 무장을 하면 안돼나요?
그때 분위기는 공수부대는 광주시민을 빨갱이로 알고 왔었고 광주 시민들은 전통이 광주 씨를 말릴려고 공수부대를 보냈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습니다
공수부대나 광주시민이나 둘다 피해자 라고 보면됩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광주시민들을 폭동이라고 아직까지도 생각하시는분들이 계신것 같아 제가 이글을올린겁니다
꼭 사회가 불안할때 한번씩 이런글들이 올라오던데 이게 괴뢰정권이 원하는데 아닐까요? 예전에 꼭 전라도 사람 욕하고 타지역사람들 우월하다고 글올리는 사람들 있어서 어떤사람들일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사람들이 적의책동에 휘말리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이런글들이 안올라왔으면 하는 바램으로 두서없는글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기톱사용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요
집단강간은 평시에도 민간인들 사이에서도 있고 미군이 이라크에서도 있었고 수많은 전쟁에서도 집단 강간은 있었습니다
그당시 공수부대원들은 광주 시민을 빨갱이라고 교육받고 내려 왔었는데 집단 강간이 없었을거라 생각합니까?
그리고 적후방에 침투해서 이뤄지는건 심리교란 작전이죠..광주사태가 후방침투 작전입니까? 대치상황에 다 노출되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광주사태를 잡으려고 한 명분...
만약..북한공작이었다고 칩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두환씨는 광주사태진압의 명분이 더 짙게 깔려져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공수부대는 그냥 윗대가리들 입놀음에 움직였을뿐....
시위대를 향한 군개입을 정당화 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광주시민은 민주화운동을 목적으로 일어난건 맞습니다.
북한의 계획된 작전에 민중이 휩쓸려 너무나 잔혹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제가 특전사 출신이라 특전사 옹호하는건 아닙니다.
우리 동네에 보이지 않는 살인마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나고 살해당한
시체들이 발견되면 옆집 사람도 믿기 힘들고 수상하면 누구나 의심됩니다.
바꿔서 그냥 놔뒀으면 어땠을거 같습니까?
막아서 안벌어진 일이고 민주항쟁이니까 관두자고요?
안됩니다.
맞는건 맞는거고 아닌건 아닌겁니다.
아니들.. 북한의 특수공작부대가 작업했다는 사실에 명백한 증언과
직접 작전에 투입된 탈북자와 가족의 증언들이 있음에도
왜 그런 사실에는 눈과 귀를 막고 믿고 싶은 것에만 관심을 두시죠?
광주사태를 가장 크게 조명하고 국민속으로 끌어들인게 누구죠?
김대중 입니다.
호남의 힘으로 그자리에 올랐으니 호남 사람들이 원하는 걸 줬어야했죠.
광주사태 청문회때도 안기부의 대북첩보를 통한 북한특작대의 내용은
제출도 못되었습니다. 그때 이미 사회분위기가 정권이 바뀌었다는 충격으로
누구도 김대중에게 대적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관련 내용은 은폐되게되어 있었죠.
그러나 그때 제미교포들 사이에선 특작부대와 관련한 내용이 공개되었습니다.
분명히 군이 투입되기전에 경찰서가 털리고 무기고가 털렸습니다.
그걸 기억하는 광주시민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연하죠.
광주시민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기때문입니다.
정확히 군의 첫 발포시각에 대해 당시에 굉장히 논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광주시내에서 총성이 언제 제일 처음 울렸는지는 명확합니다.
특전사가 진압을 시작하기도 한참전입니다.
젊은 시민들을 이끌고 공장을 털고 무기고를 털고 경찰서를 제압했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누군가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민들이 동참하여 자발적으로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면
분명 누군가는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모릅니다.
각각의 시민들이 굉장한 우연의 일치로 일거에 공장을 제압하고
각종 소총등의 무기로 중무장을 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전 광주시민의 민주화 열망이 낳은 광주사태에서 시민의 열정과 희생을
깔아 뭉갤 생각은 아직도 전혀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광주시민은 민주화 운동을 벌였으나
그걸 원하고 이용한 세력은 전두환이 아니라 김일성과 김정일의 북한이라는 겁니다.
이점이 기정사실화 된다고 광주사태로 희생된
광주시민들의 명예가 회손되리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분명 민주화를 원했던 대한민국 투사들이기때문입니다.
이건 절대로 아니죠.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 두가지를 똑같이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민주화 운동은 맞고 그분들의 희생은 고귀합니다.
그리고 그뒤에서 가장 즐거워했던 악마는 김일성과 김정일 입니다.
두가지의 사실을 공일화 시켜
민주화운동을 아니게 만들게 될거 같으니
북한 특수공작대 개입에 대한 진실까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아십니까?
특전사 대원이 저격당했다는것을요?
시를 포위하고 각 길목을 차단하고 있을때 어디선가
총탄이 날아와 대원 다수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 진실에 대해서는 누가 대변해줄겁니까?
광주시민이 그랬다고 하실겁니까?
말씀처럼 북한 특작대가 있었다는게 거짓이라면 광주시민들의 행위가 맞겠네요?
거짓말이라 생각되십니까?
분명한 희생자가 있는데 거짓이라고 하실겁니까?
군이 군인을 죽일리 없습니다.
광주시민이 먼저 군을 공격 할리 없습니다.
그럼 답은?
전후의 모든 정황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음에도
눈앞의 사실마저 부정하고 있다면 스스로사 스스로의
정당성을 버리는 결과입니다.
오히려 특전사 뿐만 아니라 군인이라는단어를 무척 좋아합니다(제아뒤만 봐도 아시겠지요)
대원들 저격에 관한 얘기 하셨는데 만약 그런일이 있었다면 간첩이 아니라면 시민군중 저격병 출신이사격했겠지요
그리고 화순논에서 놀것있는 얘들 달리는 차안에서 누가 맞추나 내기 사격한것도 공수부대원들이구요
그당시 광주는 현재 이라크와 같은 상황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전후으 모든 정황은 님도 자세히 모르
공수부대원들도 사망 하였지만 광주 시민들이 훨씬더많이 사망하였다는것을 잊지 말아주십시요
님도 님말이 정답인것처럼 얘기하시는것은 모순입니다
만약 전사님이 쓰신글이 그냥 순위에 안올랐고 오해하는댓글들이 안올라 왔다면 저는 댓글을 달지 않았을겁니다 다만 아직도 간첩들에 의한 폭동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으신것 같아 제가 댓글을 단겁니다
광주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져 다시한번 진압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명령을 수행합니다.
전 명령에 죽고사는 군인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때와 같은 명령이 본인은 물론 후배들에게도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느 진압 공수부대원의 대답입니다.
민간인들도 윗상사가 명령하면 당연히 따르지요
내년에 마흔인 저도 아직도 윗분들이 밤에 집합시키면 긴장하고 나가는데 군인은 명령에 죽고 사는것은 아주 당연한거겠지요
제가 웬만하면 댓글을 안다는데 벌써 논쟁의 시작이 되는것 같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온국민이 정부가 밉든곱든간에 뭉쳐야 한다고 봅니다
님하고 상관없는 말이지만 얼마전부터는 지역감정 부추기는 놈들은 국론을 분열하려는 빨갱이로 보이더군요
역시나 제 얘기의 본질을 흐리시는데
시민특 입장만 옳다고 확신을 갖고 계신듯하네요.
분명 군이 단 한발의 총도 쏘기전에 이미 시가지에서 총성이 울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더 많이 죽었고 누가 먼저 시작했다의 의미로 주장 할 생각 없습니다.
제 뜻은 광주사태는 북한의 개입이 확실한 정황증거와 증인의 증언이 있다는 겁니다.
이걸로 분열된다? 왜죠? 그것이 사실로 증명된다고
희생되신 광주 시민들의 숭고한 정신이 퇴색됩니까?
한가지만 묻죠? 전사님 이미 시가지에서 총성이 울렸다고 확신하시는데 님이 거기 계셨나요? 김정일 한테 북한이 간첩보냈다는 확증 받았나요? 광주 사태라고 하는 말부터 바꾸시지요.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 하신다면서 광주 사태라니요? 증인 있다구요? 님이 증인 세우실겁니까? 분열이 안된다 .. 님이 말한것은 확실치 않은 증거로 광주 시민은 간첩들에게 조정당해 국가에 대한 반란식으로 얘기 하시는데 그당시 당사자에게 잊혀져가는 얘기를들먹여 다시 논란을 일으키는일이 분열을 일으키는 행동이
다시 한번말하는데 광주 시민을 간첩들에게 조정당했다는식의 글은 더이상 용납이 안됩니다. 광주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봉기 하고나서 간첩이 그상황을 이용할려고 했다는것은 그랬을수도 있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처음 부터 그랬다는 님의 생각에 기가 찹니다
군인은 명령에 따르고 명령에 죽는 집단 아닙니까?
오해가 있다는 자체도틀리지요 죽이라면죽이고 찢으라면 찢어야지요
머가 오해라는거지요
또말하지만 그때당시 공수부대는 광주시민을 간첩집단으로 알았고 광주시민은 공수부대를 선량한 시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진압군으로 보였다는 겁니다
. 내가 말하는것은 님이 말한것처럼 간첩의 선동에 의해서 봉기 하였다는말이 듣기 싫다는겁니다
이제 그러니 이에 대해 왈가 왈부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광주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광주사태라는 말부터 고치세요!
예를들어 지금한국에 군조직이 없다.김정일하고 김정은이하고 한국장악하고 청와대에서 만찬을하고 있는데 일반민간인들이 투철한애국심으로 똘똘뭉쳐 아주 신속하고조직적으로 소총과 무기를 입수하여 서울로 진격할 가능성이 있을까나? 근데 고도로 훈련된 특전사나 군인들이 리드를 하면 게릴라전은 해낼수 있을거 같어?
이제 가실분들도 다 가셨고 북한과 통일되는것도 틀린거 같고 우리세대아닌 다음세대 쯤에서는.................
몇일 전에 평온하던 게시판이 시끌벅적 하내요~ ^^;
이거야 원 은거지에서 안나올래야 안나올수가 없네요
일단 사건의 발달을 보아하니...
밑에 특전사 관련 다른글에 어느 님께서 살짝 비아냥 거리는듯 한 어투로
전혀 게시판 전개와 상관없는 민감한 과거의 얘기로 우리 특전사후배님 이 이에 반론을 제시하신거 같은데...
지금 이문제는 단지 군대라는 관점으로는 풀수없는 문제거늘...
다들 너무 에너지 낭비들 하시거같아 안타깝습니다~
꼭 물흐리는 한두명 때문에 조용하던 게시판이...참...
다들 너무 정치적인 해석만 하시는듯...
역사란 어차피 승자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고, 과거 군부정권을 지나 좌퐈를 거쳐 오늘까지 왔으니 한세대 후에는 정말 진실이 밝혀지리라 봅니다.
우리의 현대사가 격동의 세월을 지나왔기에 아직 풀리지 않은 얽힌 실타래지만,
정말 냉정한 평가가 다시 이루어질겁니다.
군사정권 시절엔-광주사태
좌파정권 10년을거쳐-광주민주화 운동,,,
후배님 말씀대로 민주화를 열망했던 무고한 광주의 다수시민들이 다 폭도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날의 시민군쪽의 모든 분들이 다 민주열사는 아닐것 입니다.
특전사가 그때의 공로로 축배를 든적도 없거니와 훗날 그사건으로 후광을 입은건 더더욱 아닙니다...단지 당시 작전을 하였단 이유하나로 그 꼬리표를 아직까지 달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면 그또한 잘못된 일이라 봅니다.
무었때문에 그일로 몇세대가 지난 지금의 특전사 자체를 매도하는건지...
무슨 열등감이라도 있으신건지 타군관련글에 비아냥섞인 글들은 대채 뭡니까.
다들 저마다 몸담았던 곳에서 불꽃같은 한때를 보내셨던 분들일터인데, 자신의 모군에 명예 만큼이나 타군의 명예또한 그러하다는거 생각하시고 댓글 달아주셨음 합니다. 정확한 근거없이 어디서 주어들은 풍월로 글싸질러 봤자 논쟁꺼리 밖에 되지않습니다.
누군가 편파적인 의견만을 제시하는측의 입장만 고려했다면
제 입에서 광주시민이 아니라 광주폭도라고 했을겁니다.
내용을 정확하게 접한건 재미교포 사업가를 통해
참여정부때 알게되었고 나름대로 루트를 통하고
개인적으로 열심히 찾아본 자료를 통해 많은 자료를 얻었고
머리속에서 정리하다보니 사실이 맞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런 내용이 광주시민을 까려는 의도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협한 뇌구조가 이해되지 않을뿐입니다..
대선배님들이 절대 옳은 행동이었다는것도 아닌데..
이젠 일일이 토 달기도 힘듭니다.
http://insertcoin.tistory.com/232
전사님도 인터넷을보고 글을 찾았을거이니 저또한 인터넷에 있는 글과 사진을 올려봅니다 님이 말한것처럼 광주 시민을 까려는 의도가 없듯이 저또한 모군을 까려고 올리는글이 아니니 이점 참고 하세요
그리고 비호님 말처럼 저는 여기서 논쟁을 끝낼것입니다
하지만 님글이 있는이상 누가와서 보든지 보겠지요
지금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알고있는 김대중이 시절의 공개내용..
그렇군요..
대단히 죄송합니다!
특전사 개새끼들이라!
정치적 이득을 톡톡히본 한측 입장만 주구장창 믿고 계시기바랍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개뿔도 모르는게 나대서요.
제글 읽어보면 알겠지만 일부러 현재의 특전사를 욕한게 하나라도 있나요
같은뜻이겠지만 일부러 현재의 명칭인 특전사대신 공수부대원이라고 글을썼지요?
말을 또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데 그런일이 있었다고 해서광주사람들이 특전사를 싫어한다는 글 보셨나요?
군은 군일뿐입니다.
사안인데, 용감하게 올려주셨군요..
사실 저건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는점에 일부지역출신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호감적인 사건이죠..
저당시 제대로 진압못했으면 우리나라 난리났을듯합니다만...
뭐.. 현 정권도 저거 건드릴 용기는 없어보이고, 눈치만 슬슬볼뿐..
훗날 누군가 다시 평가하겠죠
저역시 한 시민으로써 단지 언론플레이만 믿고 자기가 생각하려 한대로
믿으려 했기때문에 깊게 생각해 보지도 못했으며 생각하더라도,
광주 민주화운동? 때 공수부대가 잔인하게 진압했다 정도로만 기억될 일이죠..
이참에 관심갖고 요목조목 알아보고 다른사람들의 의견도 물어보고..
글을 읽으며 전사님의 말도 듣고보니...
틀리지 만은 않은 말 같군요.
제가 보는 관점에서 전사님의 글에 약간의 동의가 가네요.
서로 싸우지 마시고 지금 우리나라 전역에 걸처 보이지
활동하며 선동질하던 간첩들을 생각하니 치가 떨리는 군요.
6군단님은 감정좀 자제하시고 전사님의 의도를 잘 이해해주시기 바래요.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흘렀으니 재조사하여 민주화 운동도 한격 높이고
왜곡된 사실또한 증인들이 살아계실때 국가 차원에서 재수사하여
바로 잡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저도 정말 사실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추천 갑니다.
벌써 30년이 흐른 사건인데 이제 그만 가슴아픈 일에 대해서 누가됐던지 안다뤘으면 하는 제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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