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손님도 없고 파리만 날리기에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자 아득히 먼 예전의 첫 시승기를 올려볼까합니다.
성년이 막 지난 어느날, 뭐든 집어 타고 달려보고 싶던 혈기 왕성한 시절,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하며 애꿎은 5형제만 줄기차게 혼내고 있을 즈음 아는 선배의 자금조달로 인해 그동안 쌓여왔던 모든 것을 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선배는 나의 시승 장소를 청량리역쪽으로 잡았다.
얼충 2만원. 둘이 4만원쯤으로 예산을 짠 뒤에 짧은 시승식을 해보기로 했다.
우선 시승 차량을 골라야 했다.
난 시승은 처음이라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배테랑이 된 선배는 능숙히 날 끌고 성능 좋은 차를 골라 주기 위해 그들의 억센 손아귀를 뿌리치고 깊숙히 깊숙히 디스플레이 되어있는 명차를 찾아 빨간 불빛이 가득한 진열장을 바라보며 전시관을 음미하면서 전진해 나갔다. 형님이 말하기를 "좋은 차일 수록 깊숙히 있는 법이야. 나만 믿고 따라와"
그렇게 멋진 시승을 기대하며 어렵게 전진해 가는 중 갑자기 강한 손아귀에 낚아채져 예상치 못한 4륜 구동의 오프로드용 차들 마냥 우락부락한 한무리의 그들에게 끌려 한 업소로 들어가게 되었다.
앞에서 헤집고 나가던 선배를 바싹 뒤쫒다가 한발짝 쯤 뒤떨어지자 마자 그들이 날 낚아 챈거였다.
선배 마저 날 구하고자 몸을 날렸으나 같이 잡힌 신세가 되었다.
시승이 끝나야만 풀어 줄 것 같은 협박에 위기감을 느끼며 5000원이라도 아낄 셈으로 둘이 3만 5천에 배팅을 해봤다.
그들은 2만원 짜리는 거시기에 금테 두른 거냐며 우리 요구가 묵살됨과 동시에 시승차량을 고를 엄두도 없이 각자의 장소로 가서 억지 시승을 하게 되었다.
남들의 시승기 무용담을 부러움에 침까지 질질 흘리며 들을때인 고딩때부터 선배의 시승식 권유 순간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며 이론을 쌓아오면서 첫 시승식은 훌륭한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가 겸비된 6기통의 최고급 세단을 시승해보리다던 꿈이 산산이 박살 남을 느꼈다.
그래도 뿌리치기엔 키를 집어든 순간 시동을 걸고 시승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 부서져 버린 꿈의 아픔을 느낄 틈 조차 주질 않았다. (그래…난…혈기 왕성했으니까.)
더욱 어두침침하고 붉그스레한 부스에 들어온 나는 마주선 시승용 차량의 스펙을 따질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다.
어떻게 시동을 걸었는지도 모르게 시동은 이미 걸려있었고 내부 편의 장비의 그 어떤 것도 느낄 겨를이 없었다.
풋브레이크나 엔진브레이크를 이용한 속도 조절이나 그동안 갈고 닦으며 이론으로 습득한 기교를 부릴 틈도 없이 그저 풀 악셀만 디립다 밟았다.
곧이어 퍼질러진 엔진, 시동을 건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렇게 퍼질러 졌단 말인가. 허망했다.
그러나 분명히 들었던 비록 연출된 소리였을지라도 간간히 들려오던 저음의 엔진음. 간드러진 비음 섞인 소리가 아니라 온갖 공해오염 등으로 찌든 칼칼칼 거리는 시끄러운 듯 곧 퍼질러질것만 같았던 디젤 차량의 엔진음을 지녔던 시승차량의 기억만이 아득한 첫 시승의 악몽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상 허접한 초보 시승기 였습니다. 마저 남은 더위 잘 헤쳐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