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뭐라건 내가 타고 싶은 차를 갖고 싶어서 선택한 모닝 터보.
그간 자의와 달리 비교적 크고 편한 차들만 타왔기에 장난감이 갈급했던 시기...
중형차 구입을 생각했던 예산으로 모닝 터보를 출고하고
남은 금액으로 맵핑, 일체형 서스펜션, 하체보강, 배기, 인치업, 커스텀 드레스업등...
온전히 나의 구상대로 많은 튜닝을 진행했지만 딱히 보람을 찾기 어려웠다.
나는 레이서도 아니고 전문 튜너도 아니기에 내 만족을 위한 비교가 필요했고,
고민 끝에 찾아간 곳이 임진각(=자휴)이었다.
잘 알고 있었다.
자동차 매니아들의 성지이자 고급차들이 우글거리는 그곳에서 백날 용써봐야 내 현실이 어느정도 일지..
그렇기에 처음은 선택이 필요했다.
문발 IC 에서 쥐 죽은 듯 대기하며 1600cc 국산차들을 기다렸다.
1600cc 차를 무시하는건 결코 아니지만 그나마 내 차와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판단이 있었기에...
물론 공도다보니 그냥 지나가는 차들이 아닌 제법 빠른 속도로 달리는 비범한 차들이 그 대상이었고,
타이밍에 맞춰서 풀악셀로 따라가다 둘만이 느낄 수 있는 묵언의 배틀이 형성되면
최대한 쫓아가며 하나하나 배우고, 조금씩 실현 해보기를 언 2년...
나는 2년간 매주 금요일 밤을 그곳에 쏟았다.
유일한 재미였고,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창구였으며
남들은 비웃는 모닝을 나만의 Z 로 만들어 준 실험실이자 놀이터였다.
" 너 어제 뭐했냐? "
" 응? 나 임진각 갔다왔어.. "
" 너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
" 주말이잖아, 답답하기도 하고 달리고 싶어서... "
" 그래서 어제는 또 누구랑 달렸는데?? "
" 어제? 스팅어랑 이름 모를 bm...... "
" 뭐? 스팅어랑 bmw?? 구라까고 있네~ "
" 진짠데... "
" 그래서 그 차들을 이겼다고? "
" 뭐 꼭 그렇다는건 아니구.. 하이페이스 같았는데 도착은 내가 먼저 했으니까... "
" 야 정신차려 그 차들이 봐준거야! "
" 설마.. 정말 봐준건가... "
이런 형식의 대화가 2년간의 일상이던 어느날,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그들의 말처럼 나만의 망상과 착각으로 그곳을 찾았을지 모른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곳이 최적의 도피처였으니...
그곳을 찾기 위한 나만의 명분이 필요했고, 그 명분이 나를 착각안에 가둔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동안 셀 수 없이 그 길을 달렸고, 셀 수 없이 많은 차들을 만났는데...
그 차들은 과연 나를 봐준 것일까... 나 혼자만의 망상이었던 걸까...
나는 항상 언더독이었고 대부분 나보다 고배기량, 최소 1.5배 이상의 출력을 가진 차들이었는데
내 생각과 2년간의 경험들이 착각이 아니라면,
우숩지만 그에 대한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고
2년이란 시간에 자그만한 의미라도 부여하려면 답이 있어야만 했다.
내 차는 누가봐도 초라한 고작 3기통 1000cc 짜리 경차..
주먹만한 터빈이 들어간 순정 터보 경차.. 무게 970kg..
맵핑.. 출력업.. 휠마력 110대.. 제로백 7초대.. 최속 gps 210...
뭐 하나 내세울게 없는 현실을 마주하니 나 역시 혼란스러웠다.
적지않은 나이에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인정 받을 수도 없는 길바닥에서 정말 난 2년을 버린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2년동안 나와 달려준 그들을 찾아다니며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의 나를 기억하냐고.. 그때 날 봐준거냐고.. 하지만 뭐하나 또렷한 상대가 없었으니 그럴 수도 없었고
누군가에겐 말 같지도 않고, 말도 안되는 고민으로 나는 세상 가장 멍청한 일주일을 보내고 있었다.
어김없이 시간은 흘렀고 금요일은 다시 찾아왔으며
2년간 자연스레 몸에 밴 루틴 탓에 나는 또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의식을 뛰어넘는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허나 달리고 싶지 않았다.
가양대교를 건너 자유로에 오르자마자 90km/h 에 크루즈를 걸었고
페달에서 발을 뗀 채, 팔을 창에 기대어 그저 지나가는 차들만 바라보았다.
나는 정말 착각을 한 것일까... 나는 결코 빠르지 않았던 것일까...
뭐가 어떻든간에 빠르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난 왜 2년동안 미쳐있었을까...
언더독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에 중독돼 삐뚤어진 집착을 하고 있었던건 아닐까...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며 평소의 반도 안되는 속도로 나와 모닝은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덧 저 앞에 자휴가 보인다.
금요일이면 일수 찍듯 항상 들리던 곳이었는데.. 그곳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왠지 비웃음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90km/h 에 고정 된 바늘을 눕히지 않고 그곳을 지나쳤다.
2년간 수없이 달리며 몸이 기억해버린 그 자신있던 길들이 너무나 차갑고 매섭게 느껴졌다.
끝이 정해지지 않은 길을 나홀로 달리는 기분 같았다.
노란 가로등 불빛에 취해 시야는 점점 흐릿해지고 아무 것도 못보며 달리고 있었나 보다.
갑자기 타이어에서 굉음이 들려온다.
갓길로 흘러서 가드레일과 충돌하기 직전에 간신히 핸들을 잡아챘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손이 떨려왔다.
차를 세워야 할 것 같았다.
비상등을 켜고 여유 공간이 있는 갓길에 차를 세웠는데.. 이상한 기분이 몰려왔다.
2년전, 그저 나 그리고 내 차를 테스트 해보고 싶은 마음에
갓길에 숨어 하염없이 1600cc 차들을 기다리던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달랐는데...
그때는 그냥 나와 모닝 뿐이었는데...
그때 달리고 싶었던 이유는 승부가 아니라 순수한 비교 그 자체였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고 마치 쇠망치로 뒤통수를 한대 후려맞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오늘, 내 고민의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엑셀 페달에 다시 발을 옴기려던 순간
흰색 아반떼 한대가 쏜살 같이 내 옆을 지나친다.
"임진각... 갓길... 1600cc..."
마치 짜여진 각본 속 오마주 같았다.
이건 분명 해답을 찾을 기회였다.
정신을 부여잡고 세차게 엑셀을 밟았다.
속도를 올려가며 간격을 좁혔다.
처음 보는 차였고 이곳이 익숙하지 않아보였지만, 빨랐다.
송촌대교를 지날 무렵 풀스로틀 상태로 최대한 인코스를 따내는데 앞에서 빨간 불빛이 깜빡인다.
경험상 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게 되는 구간이다.
예상이 맞았다. 빠르지만 이 길이 익숙치 않은 사람이었다.
풀스로틀로 1차선 인코스를 최대한 사수하며 패스.
이제 내가 앞이다. y02 마크.
내 차는 결코 빠르지 않다.
계기판을 한참 꺽어내고 GPS 로 210 을 달리면 남들은 모닝이 그 정도면 대단한거라며 치켜 세우지만
요새는 딱히 대단할 것 없는 아주 기본적인 성능일 뿐이란 걸 나는 잘 인지하고 있었다.
경량의 차가 가지는 빠른 재가속과 2년간 경험하며 쌓인 숙련도를 빼면 사실 난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직빨 구간에서 따이고, 브레이크 불빛이 들어오는 코너에서 다시 추월하길 반복하며
결국 선두를 뺏긴 채 도착했다. 졌다.
정상적인 멘탈이 아니었다는 핑계가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100% 수긍 할 수 있었고,
먼저 들어오지 못했지만 즐거웠다.
바퀴를 멈추고 110도 넘게 치솟은 미션오일 온도를 낮추려 본넷을 열기 위해 내리자
함께 달려 온 아반떼에서 내린 상대방이 다가온다.
2년동안 수없이 달렸지만 같이 달려온 상대 차주와 독대하긴 처음...
그도 그럴 것이 난 원래 혼자가 편한 사람이었으니.. 그저 함께 달려보는 것이 목적이었을 뿐,
사람들과의 어울림은 내 취향과 달랐기에 스스로 피하곤 했으니 어색 할 수 밖에...
하지만 다가오며 반갑게 인사하는 그분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었고,
선한 인상을 가진 분에게 굳이 날을 세우고 싶지도 않았기에
나 역시 반갑게 인사를 건내고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렇게 빠른 경차 처음 봤다고..
근데 그보다 이렇게 잘 타는 경차도 처음 봤다고..
이곳이 어색하긴 하지만 본인도 홈타운에서 제법 달려 본 사람인데
출력이 비슷했다면 따라오지도 못했을거라고..
겸손하게 나를 치켜 세우며 즐겁게 달렸고, 좋은 경험 시켜줘서 고맙다며 악수를 청해오는 그 모습에
칭찬에 대한 뿌듯함은 커녕.. 부끄러움이 더 크게 밀려왔고 초심을 자각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그때, 그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이기고 지고, 내가 빠르고 니가 빠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정확한 핵심은 그냥 자동차가 좋았고, 달리는게 좋았을 뿐이었다.
너무나 간단하고 명쾌한 답을 가진 물음 앞에 혼자 쓰잘데기 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후로도 나는 경차라며 조롱 받을 것이고,
빠름을 인정 받지도 못할 것이며,
더 비싸고 빠른 차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겠지만,
그래도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진짜 시배목다운 글이 올라왔는데
추천이 13 ??
일욜 오후라 그런건가요??
너무 잘봤습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추천드립니다..
http://m.bobaedream.co.kr/board/bbs_view/battle/1255413/1/8
그날 그곳에 있었던게 맞고 스팅어와 530을 만난 것도 맞지만 혹시나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훨씬 빠르고 훨씬 잘 타는 고수분들이 훨씬 더 많아요.
아무쪼록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에
진짜 시배목다운 글이 올라왔는데
추천이 13 ??
일욜 오후라 그런건가요??
너무 잘봤습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추천드립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개시켜드릴게요
부담없이 연습하러 갈만한 곳이 딱히 없기도 하구요...^^
'
캬.. 필력 쩌네요..ㅎㅎ
일본 애니 아키라 같이.. 무슨 철학적인 느낌..
귀에다 "넬"이 "부른 기억을 걷는 시간 " 들으면서 글을 읽는데...
내가 자유로에 있는듯 했습니다.. ㅊㅊ
정말 감사합니다..^^
"나를 되돌아본다" 라는 과정을 정말 잘 서술하시네요~
3번 되풀이 읽었습니다.
건승하세요 ^ ^
우리다같이 멋진 카라이프 즐깁시다
그랑프리백화점님도 즐거운 카라이프 되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재밌게 즐기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제가 글은 좀 과장되게 적긴 했으나
잘 타시더라구요 ㅎ
다음에 자휴에서 뵈요ㅎ
본문 내용은 그동안의 경험을 모두 서술 할 수 없어서 예시로 적었을 뿐,
특정 대상을 지목하기 위해 언급한 것이 아니오니 혹여나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구요.
다음에도 혹시 뵙게 된다면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럽습니다.
혹시 수동입니까? ㅠ_ㅠ
부러븐 카라이프입니다. 안운하세요^^
이쁘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록보이님도 항상 안운하시기 바라요^^
좋은 차가 중요한 것도 아니구요.
호갱인증님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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