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시속 330km의 700마력대 포르셰 911 터보의 느낌은 어떨까.’
기자는 9월 2일 500마력과 700마력으로 출력을 올린 911(코드명 996) 터보 2대(모두 자동변속기)를 동시에 시승하는 행운을 얻었다. 최고급 스포츠카의 오너들은 웬만해서는 키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키를 주기 전에 한 번 시승해보고 싶다고 먼저 요구하는 것도 큰 실례다. 더구나 튜닝으로 출력을 올린 슈퍼급 스포츠카라면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키를 건네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시승의 기회를 준 두 분의 오너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튜닝 포르셰 911 터보 2대와 만남▼
운전을 잘 한다고 해도 고출력 스포츠카는 차종마다 컨트롤하는 방법이 달라 처음 운전대를 잡고 무리하게 운행을 하면 자칫 사고를 낼 수도 있다. 특히 일반 차의 트렁크 위치에 엔진이 있는 RR(Rear engine-Rear Wheel Drive) 방식의 포르셰는 운전실력이 뛰어난 프로라도 처음 대한다면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시승한 2대 중 1대는 ECU(엔진제어컴퓨터)와 머플러 튜닝을 통해 420마력인 순정 출력을 500마력으로 끌어올렸고 머플러는 카그래픽社 것으로 바꿨다. 또 다른 1대는 하드코어 튜닝을 진행 중이었다. 현재 700마력 전후의 성능을 보이고 있으며 500마력 대응인 테크아트社의 머플러를 붙이고 있었다. 곧 750마력 대응 머플러로 바꾸고 ECU를 재조정해 20~30마력을 더 올릴 것이라고 한다.
기자가 지금까지 경험한 포르셰는 993 카레라 컨버터블, 996 카레라 자동, 997 카레라와 4S, 박스터와 박스터S, 카이엔 터보 등이다. 일반 도로와 트랙에서 다양하게 몰아봤지만 모두 시승한 시간이 길지 않고 포르셰의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낼 운전실력도 없어 ‘This is porsche’라고 정의할만한 수준에 올라있지 않다는 것을 독자들은 감안하기 바란다. 참고로 911시리즈는 1964년 1세대의 코드명이 901로 탄생했다가 다른 메이커에서 901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911로 명칭이 바꾸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그 이후 964 993 996 997(최신 모델) 등으로 진화해왔다. 모두 911로 부르지만 구분하기 위해 코드명을 부르는 경우도 많다.
같은 서스펜션이지만 700마력 포르셰(좌측)의 차고를 낮게 세팅했다.
▼시속 200km를 12초 만에▼
먼저 700마력 포르셰에 올랐다. 대용량 터보터빈과 하이캠이 들어가는 등 뜨거운 튜닝이 이뤄졌다. 엔진과 자동변속기도 높아진 성능에 맞도록 가공됐다. 먼저 가속력 테스트. 911터보는 항시 4륜구동(AWD)이기 때문에 퀵 스타트 방법이 일반 차종과는 다르다. 토크가 높은 전륜 혹은 후륜구동 차들은 RPM을 너무 높여서 출발하면 타이어가 스핀하면서 제자리를 맴돌기 때문에 타이어의 온도와 노면상태, 습도, 외부기온 등에 따라 출발 RPM을 잘 맞춰야 좋은 기록이 나온다. 타이어의 표면 온도를 높이기 위해 번아웃(타이어에서 연기가 나도록 휠스핀을 시키는 작업)을 먼저 하기도 한다.
그러나 911터보 같은 AWD 차종은 여기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4바퀴에 구동력이 배분돼 웬만큼 출력이 높아도 출발할 때 타이어가 헛돌 확률이 낮다. 996터보 자동변속기 모델의 경우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아 2000rpm정도에 맞춘 뒤 브레이크페달에서 신속히 발을 떼면 된다. 수동도 스타트 RPM을 2륜 구동에 비해 높일 수 있어 가속이 안정적이다.
‘스타트~~’ 부다다다당~~~
어? 왜 이렇게 안나가나. 잔뜩 어깨에 힘을 주면 가속페달을 밟았는데 생각보다 스타트가 빠르진 않았다. 1단 3500rpm까진 뭔가 막힌 듯한 느낌을 주다가 갑자기 시트가 강하게 등을 때린다. 토크(엔진이 뿜어내는 힘)가 급상승하며 미사일이 발사되듯이 달려나간다. 마치 새총에 장전돼 있던 돌이 발사되는 느낌이다. 1단에서 2단으로 바뀌면 가속력은 공포의 수준으로 바뀐다. 헤드레스트에 붙어버린 머리를 떼려면 목근육에 상당한 힘을 줘야 했다. 전륜이 살짝 들리면서 시야도 약간 흔들린다. 긴 과정 같지만 2단이 끝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5초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3단으로 바뀌면 한숨을 돌릴 수는 있지만 맹렬한 가속력은 계속 이어진다. 컬컬하면서도 쉰목소리같은 '포르셰 노트'도 이 때서야 귀에 들어온다. 스톱워치와 장비로 번갈아 측정한 제로백은 4.65초로 같았다. 순정제원의 4.8초보다 빠르긴 했지만 출력에 비해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0->200km/h는 제원 16.1초보다 훨씬 빠른 12.2초가 나왔다. 0->400m기록은 12.3초로 통과속도는 시속 201km. 즉 400m만에 시속 200km를 내는 셈이다.
잠시 200km/h를 유지한 뒤 다시 가속페달을 끝까지 눌렀다. 일반 3000cc급 세단들이 100km/h에서 급가속하는 느낌과 비슷한 양으로 속도가 붙어나갔다. 400마력에 차량중량 1800kg인 BMW M5(e39)나 517마력에 차량중량 2260kg인 벤츠 S클래스 만해도 200km/h에서 급가속을 하면 튀어나간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지만 이 놈은 정말 꿈틀거리며 가속을 해나갔다. 속도계는 금방 250km/h를 넘어섰고 계기판의 바늘은 330km/h에 이르러서야 정지했다.
하지만 700마력 포르셰의 튜닝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우선 3500rpm 이하의 토크가 상대적으로 너무 낮아 초반에 충분한 가속력을 얻지 못하는 점이 문제였다. 배기량에 비해 터보차져의 용량이 너무 크고 배기 캠샤프트까지 바뀌어 RPM이 낮을 때 충분한 힘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4000RPM을 넘어서면서 토크가 급상승해 초반에 손해본 기록을 나중에 만회하는 식이었다. 6단 수동변속기라면 이런 핸디캡을 어느 정도 극복했겠지만 각단의 기어비가 멀찍이 떨어진 5단 자동변속기로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700마력 911터보는 82근짜리 관우의 청룡언월도와 같았다. 한 번 휘둘렀다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하는 검(劍)이다. 그러나 너무 무거워서 마음대로 휘두르기 쉽지 않기 때문에 무기로서의 활용도는 떨어진다. 터보차져의 용량을 약간 줄이고 ECU를 다시 정밀하게 프로그래밍해서 낮은 RPM대의 출력을 회복한다면 아더왕이 사용하던 전설의 명검 엑스칼리버가 될지도 모른다.
▼500마력 포르쉐▼
곧이어 ECU만 프로그래밍한 포르셰를 몰고 나갔다. 동력성능에 대한 튜닝은 ECU외에 머플러가 전부다. 직선로에 섰다. 700마력과는 어떻게 다를까. 가속해나가는 짧은 순간에 몸으로 입력되는 정보들을 최대한 받아들이기 위해 몇 초간 눈을 감고 신경세포들을 최대한 가동시켜켰다. 자~~ 출발. 부드럽고 매끈한 가속이 시작됐다. 700마력처럼 머리가 헤드레스트에 붙어버리는 맛은 없지만 출력의 질감은 고급스러웠다. 속도계는 100...200...250...300...310...320에 바늘이 멈췄다.
보통 자동차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가속력이겠지만 토크가 급상승하는 700마력을 먼저 탄 뒤여서인지 가속느낌이 밋밋했다. 그러나 측정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로백이 4.6초대로 700마력 포르셰와 거의 같았다. 0-200km/h은 13.7초, 0-400m는 12.6초(통과속도 191km/h)가 찍혔다. 먼저 탄 911에 비해 최고출력이 200마력이나 낮은데 비해서는 근소한 차이였다.
출력의 최대 크기도 중요하지만 최대 출력을 향해 가는 과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즉 낮은 RPM에서부터 두터운 토크로 차를 힘있게 밀어주고 최대 토크가 나오는 지점이 2500RPM정도로 낮으면서 이를 5000RPM까지 끌고 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또 최대 토크지점을 지나서도 한계 RPM까지 너무 급격하게 토크가 떨어지지는 않아야 한다. 말은 쉽지만 대부분의 튜너들이 간절히 바라는 지향점이고 그만큼 이루기도 힘들다. 700마력 포르셰는 곧 배기계통을 비롯해 세팅을 다시 할 예정이어서 더 진화된 모습으로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테스트에 앞서 점검을 받고 있는 두 대의 포르셰와 M5
▼마력(馬力)은 마약이다▼
기자가 직접 기록을 측정한 300마력 이상 고출력 세단의 0-200km 가속력을 보면 BMW 545i(333마력) 20초, 아우디 A6 4.2(335마력) 22초, E39 M5(400마력) 18초, 벤츠 S600(517마력) 17.6초 렉서스 GS350(307마력) 25초 등이다. 일반 세단이 제로이백을 20초 안쪽에 들어오려면 350마력 이상이 필요하다.
기자가 처음 200마력대를 경험한 것은 아카디아. 1995년 우연히 아카디아를 고속도로에서 타보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가속력은 무서울 정도였고 부드럽고 정숙한 엔진음과 깔끔한 핸들링도 경이로웠다. 당시 102마력짜리 스쿠프를 타고 다니다 출력이 2배가 되는 차를 탔으니 어련했으랴. 결국 몇 년 뒤 꿈에 그리던 아카디아를 손에 넣었지만 1년 정도 타고 나서는 오히려 출력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300마력 전후의 시승차들을 자주 경험했으니 200마력은 모자랄 수밖에. 280마력 BMW 740i로 갈아 탄 뒤 몇 달간은 그 갈증이 풀리는 듯도 했다. 그러나 대형세단에 280마력은 지금 기준으로 볼 때 그다지 넉넉한 출력은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1년여만에 740i는 기자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사라져야만 했다. 다음으로 선택한 것이 400마력의 BMW M5다. 4도어 세단에 튀지 않는 외모, 재미를 주는 수동변속기......
기자가 원하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사실 아직도 400마력을 마음껏 다룰 능력에는 못 미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M5가 그다지 짜릿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력이라는 마약에 제대로 중독돼 버린 것이다. 이제는 500마력, 700마력의 포르셰를 몰아봐도 ‘잘 나가는군’하는 생각은 들지만 아카디아를 처음 몰았을 때의 충격은 느껴지지 않는다.
마력이 증가할수록 한계효용의 법칙처럼 만족도는 줄어든다. 100마력 차에 200마력 엔진을 올리면 체감성능이 급상승한다. 400마력 M5를 500마력으로 올리면 차가 약간 가벼워졌다는 느낌만 줄 뿐이다. 특히 공기저항은 제곱의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에 초고속에서는 100마력이 증가해도 최고시속은 10~20km정도 올라가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자동차에 있어서 심오한 부분은 멋진 핸들링과 코너링을 만들어내는 서스펜션이다. 여기에 승차감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지면 서스펜션에 대한 해석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유희하는 수준의 철학경지와 비슷해진다. 순수이성비판을 쉽지만은 않게 읽은 기자였기에 911터보의 ‘핸들링과 코너링 비판’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그나저나 기자의 체세포에 입력된 700마력의 기억은 마력중독을 심화시켜 두고두고 기자를 괴롭힐 것 같다.
출력의 끝은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가 쫓는 파랑새처럼 공허할 뿐이다. 남매가 키우는 파란빛의 비둘기처럼 여러분의 주차장에 있는 150마력짜리 파란색 중형차가 더 가치있을지도 모른다.
석기자님 말이 마력은 뽕 같은것이랍니다~
달릴수록 더날고 싶고 맞을수록 더 중독되어 나중에는 폐인되는것처럼~
오늘도 동공이 풀려서 촛점을 잃어가며 도로를 질주해봐야 남는것은 텅빈기름통과 안구선 핏줄 뿐입니다~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덛더더더더더더....... 우당탕퉁탕~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