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왔습니다. 그란투리스모4 안내책자에 담겨있는 인터뷰 내용입니다.
공존경쟁....GT-R 개발 드라이버가 말하는 뉘르부르크링
자동차는 길이없으면 달릴 수 없다. 하지만 때론 이것이 자동차를 강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명차를 탄생시킨다. 바로 스카이라인 GT-R과 뉘르부르크링의 관계가 이와 같다.
독일에 위치한 이 지상최강의 난코스야 말로 GT-R을 이땅에 탄생시킨 어머니라 할 수 있다. GT-R과 함께 자동차 역사를 걸어온 개발 드라이버, 카토 히로요시 씨에게 15년에 걸친 발자취를 들어보았다.
카토 히로요시
1957년 일본 출생, 76년 닛산자동차에 입사한 아래, 차량운동성능을 평가하는 실험부에서 스카이라인, 페어레이디 Z등의 차량을 담당해왔다. 현재는 700명에 이르는 닛산 테스트 드라이버의 최고 지위에 서있다. 그 정확한 평가능력은 신의 손을 가진 남자라고 불릴 정도로 저명하다. 뉘르부르크링의 깊이를 가장 잘 아는 일본인이다. 2003년 일본 후생성이 탁월한 능력을 인정하는 명장 칭호를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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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닛산에 입사한 아래 차량실험만을 담당했던 제가 뉘르부르크링을 달리게 된 계기는 R32 GT-R 개발 때문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 닛산 사내에서는 901운동이라 불리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90년대 중에 조정안정성에서 세계 제일이 되자라는 일종의 노력 목표였는데, R32 GT-R 개발을 통해서 저도 이 901 운동에 관여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R32 GT-R의 4WD 제어 시스템인 ATTESA E-TS의 제어프로그램 지도 제작을 하고 있었는데, GT-R 완성이 슬슬 가까워지면서 세계의 유명차량과 같은 환경에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라는 의견이 사내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엇습니다.
우리는 R32 GT-R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역시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무대가 아니라면 조정 안정성 세계제일 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 무대로 지목된 곳이 바로 뉘르부르크링였던 것입니다.
뉘르부르크링을 처음 방문한 것은 R32를 발표하기 1년전으로, R32 GT-R의 겉모습을 S13 실비아처럼 위장해서 가져갔습니다. 그때 까지 시찰을 위해 닛산 사원이 뉘르부르크링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테스트를 위해 찾아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포르쉐 944가 8분 30초 정도의 기록을 마크하고 있었고 ‘우리차는 그보다야 빠르겠지’ 라는 가벼운 마음이 솔직히 있었습니다.
5km 만에 터빈 과열
헌데, 이 첫 원정에서 저와 우리 차는 완전히 KO 당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뉘르부르크링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벨기에 닛산 사무소에 있던 테스트 드러이버에게 운전을 부탁하고 옆에 동승했는데, 달리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제가 엄청난 곳에 왔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때가 잊쳐지지 않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코너를 빠져나와서는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내리막길을 180km/h 의 속력으로 질주하니, 처음 경험하는 저에게는 공포 그자체였습니다. 자동차는 자동차 대로 점점 가열되더니 5km 도 가지 못해 내부온도가 120도를 넘어섰습니다. 바로 속력을 줄였지만 이미 터빈이 과열된 상태여습니다.
20분 정도 걸려 겨우 한바퀴 돌아들어와서는 바로 R32 GT-R 실험 담당자인 와타나베씨에게 따졌습니다. ‘이런 곳을 어떻게 달리라는 겁니까?’ 하고 말이죠.
처음에는 위장해서 가져온 자동차로 슬슬 달려보고 밥이나 먹으러 갈 예정이었는데, 달려보고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기 때문에 벨기에에서 조달한 부품으로 터빈을 교환했는데, 사원수가 10명도 되지 않아 철야작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9분을 돌파해서 8분 45초라는 최종 랩타임이 나왔습니다. 물론 드라이버는 현지 사람이었고, 저는 코스 외우는데 정신이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어쨌는 첫 체험은 이렇게 강렬했습니다. 우리가 위태위태하게 달리고 있을때 포르쉐나 벤츠가 아무렇지도 않게 옆을 쓰윽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추월하지 못하고서는 901 운동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임을 통감한 첫 원정이었습니다.
차량 파손만은 안 돼 !!
제가 뉘르부르크링에서 처음으로 핸들을 쥔 것은 1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91년경 드라이버 트레이닝 프로그램에서 200바퀴 정도를 달려보면서 슬슬 코스를 기억하게 됐을때 쯤 R33 GT-R 개발이 시작 되었습니다. 저의 테스트 드라이버 생활과 뉘르부르크링 테스트 시기가 운좋게 딱 맞아 떨어졌던 것이죠. R33 GT-R은 뉘르부르크링을 7분대에 주파하겠다는 목표아래 개발된 차량이었기 때문에 정말 사정없이 달렸습니다. 물론 무섭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어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엄청난 코스 구조에 질렸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없는 테스트를 만들어가면서 차에서 내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중략)
하여간, 그이후에 이어진 테스트에서는 시속 180km 로 블라인드 코너를 질주한다든가, 시속 230km상태에서 서스펜션에 충격을 주는 뉘르부르크링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했습니다. 이것은 개발자 입장에서도 극히 드문 경험이었스며 이 문제들을 하나하나 뛰어넘으면서 GT-R은 비로서 성숙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뉘르부르크링 공동체
GT-R이 뉘르부르크링에서 얻은 큰 수확중 하나로 차체 강성 향상을 들 수 있습니다. R32보다 한계치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타이어의 강성을 받아낼 정도의 강인한 차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BMW나 벤츠의 차체가 우수한 것이 이 때문이라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면서 처음으로 실전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였을겁니다. 뉘르부르크링을 홈그라운드로 삼으며 달리는 BMW나 포르쉐 사람들로부터 ‘닛산도 꽤 하는데...’ 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 말입니다. R34의 테스트 시기가 마침 BMW 의 구형 M5개발이 한창이던 때였는데 서로 성능을 겨룰 만큼의 좋은 관계를 그 때 쌓게 됐습니다.
뉘르부르크링은 포르쉐와 BMW가 서로 불꽃을 튀기고, 카레라 GT와 멕라렌 SLR이 서로를 추월하는 그런 곳입니다. 공존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곳이죠. 닛산이 그런곳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GT-R이 뉘르부르크링에서 거둔 큰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류가 R34 GT-R의 최종버젼...‘스카이라인 GT-R R34 V-spec II 뉘르’를 탄생시킨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R32 GT-R이 처음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던 시절에는 폭스바겐 골프조차 길을 비켜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실력을 끊임없이 어필하고 또 어필해서 닛산 GT-R이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닛산이란 브랜드를 그들에게 인지시키는 데에만 무려 5년이 걸렸습니다.
단순히 달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격돌하는 자동차메이커 사이의 공동체가 뉘르부르크링에는 존재합니다. 그 일원으로 인정받을 만큼의 역사를 쌓아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크나큰 자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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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르부르크링 북쪽코스
연장 20832.0m
고저차 300m
최대직선거리 2135m
코너수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