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배 유머/엽기 게시판에도 있더군요.....참고하세용
4. 아쉽네
“...정액...싸네요.”
그것이 처음으로 그녀가
먼저 내게 건넨 말이었다.
고작 한토막도 안되는 말 한마디에
왜 나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입도 열지 못했을까.
나와 대화를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으며
겨우 그 한마디를 내뱉고는
다른 두 여자를 따라 이내 문을 열고 나섰다.
그후로 그녀들과
다시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다.
내게 그 말을 건넨 다음날부터
내가 출근하면 이미 그녀들은
언제나 앉는 그 자리에
벌써 자리를 잡은 채
막 출근하여 가게 안을 점검하는 내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오전 6시쯤에는
자신들이 사용한 자리를 정리하고
조용히 카운터에 카드만 내밀고
말없이 문을 나설 뿐이었다.
내가 야간정액을 권했기 때문에
그녀들을 마주할 기회는
오히려 적어진 셈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어느덧 나는 알바를 시작한지
한달째를 이틀이나 넘기고 있었다.
그동안 그녀들과
대화 한마디 나눠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녀들에 대한 내 관심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근무시간 중에도
몇 번이고 그녀들이 앉은 자리를 쳐다보며
야간알바의 무료함을 달랬으니까.
......
...스토킹한거 아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경림의 말에 의하면
그녀들은 늘상 오후 9시경이 되면
가게로 들어와 야간정액을 끊고
그때부터 컴퓨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하루도 빠짐없이
피씨방으로 출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이라고 해도 별 상관은 없을 듯하다.
내가 알바를 하는 한 달 동안
그녀들을 보지 못한 것은
고작 두 차례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매일을 그녀들과 함께 하면서
뭐랄까,
약간은 특이한 행동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될 만한
그녀들의 행동을 발견했다.
일단 12시까지는 별다른 특징을 보이지 않았으나,
12시가 넘어가면
한 사람씩 자리를 비우기가 일쑤였다.
처음 며칠간은 그저
화장실을 간 것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런 행동들이 한 달 동안이나 지속되면서
조금씩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셋 중의 한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세 여자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의문점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그렇게 한 명이 자리를 비우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적어도 1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리를 비우면서 그녀들은
한번도 내게
잠시 컴퓨터를 정지시켜달라는 요청을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정액시간을 다 쓰지 않고 가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을 지도 모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야간정액을 권하기 이전부터
그러한 행동을 해 왔던 것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 식으로 자리를 비운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는 없었으므로
이내 경계를 풀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내가 알바를 하는 동안
누가 몇 번씩 자리를 비우든
나갈 때에는 꼭 셋이 함께였던 것이다.
뭐...
그녀들은 그녀들이고
이제 내 얘기로 다시 돌아오자면
나는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간신히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월급을 받은 바로 다음날은
하루 쉬겠다고 사장에게 요청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처음 알바 면접을 할 때에는
분명 한 달에 두 번의 쉬는 날을 주겠다고 했으나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내가 쉬겠다는 요청을 할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대며
내 요구를 기각해버리기 일쑤였다.
물론
그 이유는 뻔한 거겠지만 말이다.
주간타임 및 저녁타임 알바생은 모두 여자들이고
주말주간과 저녁을 같이 하는 남자알바생 또한
새벽이면 이 피씨방에
조폭들이 득시글거린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으므로
섣불리 대타를 뛰어줄 리가 없었다.
또한
약아빠진 이 피씨방 사장이
나에게 쉬는 날을 주고
자신이 직접 새벽에 카운터를 볼 리는
더욱 만무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어느새 한달이 넘도록
나는 하루도 쉬지 못한 채 야간에 일을 해야 했고
이제는 나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기에
사장에게 강경하게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사장님, 저 다음주 하루 정도는 좀 쉬면 안됩니까?”
“하하 이녀석...그게 말이야...너도 뻔히 사정 알잖냐.
나도 쉬게 해주고는 싶다만...대타뛸 사람이 없어서 말야.”
“저도 그건 알지만...너무 힘들어서요. 뭐 제 입장에서도 쉰다고 해봐야 그다지 할일은 없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다가는 다음주쯤이면 병원에서 쫌 오래 쉴거 같은데요.“
“......”
“......”
......
“...협박...하는거냐?”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
나는 그렇게 간신히
악덕사장으로부터
단 하루의 휴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내가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겨우 첫 번째 월급을 받게 된 것은
그 일주일간의 급료를
인질로 잡아놓은 탓이다.
이 피씨방 야간알바는
다른 피씨방보다 조금 더 힘들기 때문에
혹시나 한 달을 채운 알바생이
월급을 받자마자 잠적할 가능성이 컸으므로.
주간알바생이나 저녁타임의 경림에게는
한 달이 되는 날에 정확히
월급을 지불한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곳 ‘사이버리아’의 사장은
이 정도로 철두철미한 인물이다.
새벽 두 시가 넘어가자
사장이 퇴근할 준비를 한다.
금고와 장부를 확인하고
소지품을 모두 챙긴 사장은
금고 밑바닥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서 내민다.
“한 달 동안 수고했다. 이번 달 월급이니 한번 세봐라.”
“아, 감사합니다. 세보긴요 무슨. 어련히 알아서 주셨겠죠 하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장이 퇴근하는 순간 잽싸게 세어볼 생각이었다.
그래도 돈 관계 하나는 확실한 사장이긴 했지만
첫 월급을 받을 때만 해도
그다지 믿음이 가는 인물은 아니었으므로.
“뭐 어쨌거나 수고 많았다. 내일은 푹 쉬고. 창수녀석이 내일 대타 안 뛴다고 하니 내일은 내가 밤 새야겠는걸?”
......
...그렇게 말해봤자 소용없다.
당신의 속셈은 훤히 들여다보인다.
“어이쿠, 이거...사장님 힘드시겠는걸요? 뭐 내일 쉬고나면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자신의 책략이 먹혀들지 않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허허...그...그래. 잘 놀다 오거라...하하...”
웃으면서 말은 하고 있지만
이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구나.
쯔쯔,
이왕 쉬게 해주는거
그냥 포기하고 곱게 보내줬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을.
역시나 삐진 것일까.
사장은 말도 없이 휭하니 퇴근해버린다.
저런 밴댕이 소갈딱지하고는.
자, 이제부터 내 세상이구나.
어디 한번 놀아볼까나.
잽싸게 메인컴퓨터의 인터넷에 접속하고는
이리저리 항해를 시작한다.
사장이 없을 때는 게임이라도 해주는 것이 도리이겠으나
확실히 퇴근했음이 확인되지 않고서야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치밀하다.
또한
우리 사장은
그것보다도 더 얍삽하다.
나는 만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사장이 퇴근한 지 한 시간이 지날 동안
얌전히 카운터를 떠나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어가고 난 뒤에야 드디어
카운터에서 가까운 컴퓨터 한 대를 켜고
게임을 시작한다.
나는 원래가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므로
게임을 한다고 해도 한 시간 정도면 질린다.
그래서
새벽 4시쯤에는 컴퓨터를 끄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 앉는다.
이제 곧 조폭형아들이 들이닥칠 시간이다.
뭐
이 동네 각 주점 사장님들과 이하 종업원들이
매일같이 이 피씨방에 들르는 것은 아니다.
고작해야 일주일에 3~4번 정도?
한달로 치자면
한달의 절반 정도만
영업이 끝난 후에 우리 피씨방에 들러
자기네들끼리 신나게 게임을 즐기고 간다.
어제와 그저께
이틀씩이나 방문하지 않았으므로
오늘은 당연히 올 거라 믿고
그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형아들 요즘 무슨 일 있으신가?
오늘도 오지 않는가 보다.
5시.
가게 안을 둘러보니
역시나 남은 사람이라고는 그녀들 뿐.
어라?
그러고보니 귀염녀가 보이질 않는구나.
이번엔 그녀 차례인가.
어디를 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이 한 명씩 자리를 비우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
몇 차례인가
가게 안에 나와 그녀들 셋만이 남은 적은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조폭형아들이 오지 않는 날에는 으레 그러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그녀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으나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특히나 첫 마디를 실수하고 난 뒤부터는
말을 걸려고 하면 두려움부터 앞선다.
따라서 오늘도 그냥 보내야되는구나.
자,
그럼 청소나 시작해볼까?
손님도 없으니
오늘은 화장실 청소부터 해야겠다.
원래 화장실 청소는
퇴근할 때쯤 해서 교대자가 오면 시작했으나
내일은 쉬는 날이므로
좀 일찍 퇴근하고 싶거든.
가게 안에는 그녀들 중 귀염녀를 제외한 두 사람뿐.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하여 금고를 잠그고
화장실로 들이닥친다.
가게 안에 있는 화장실이므로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 듯 하면
곧바로 나와볼 수도 있다.
우선은 청소도구를 챙기기 위해
여자화장실로 향한다.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은 나란히 있긴 하나
분명히 구분은 되어 있다.
하필이면
내가 출근하는 바로 전 타임의 알바생이
바로 경림이었으므로
청소도구들은 언제나
여자화장실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도 여자라고...
아 이건
그냥 여담인데
내가 그래도 24년간 살아오면서
여자화장실이란 곳은 처음 들어가봤거든.
초딩 때도 남자는 남자화장실 청소만 시켰다고.
중고딩 때는 남중남고 나와서
아예 여자화장실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여자화장실 청소하면서
여자에 대한 환상이 참 많이 깨지더군.
여자화장실도
남자화장실이랑 똑같이 드러워.
어쨌거나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청소도구를 챙긴 나는
아무 생각없이 칸막이 문을 열어제꼈다.
“......”
“......”
“...어...어...엄마얏!”
“으허억;”
여자화장실 입구와 가까운
첫번째 칸 안에는
그녀가
귀염녀가 앉아 있다.
소리도 지르고 있다.
“아앗...시 실례합니다...괘 괜찮나요? 주...주의하겠습니다. 야간정액은 싸요.”
“나...나...나가! 아 아니...문이나 빨리...! 저 정액 싸네요...꺄악!”
둘 다 공황상태가 되어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녀 쪽이 더 놀랐을걸.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잽싸게 문을 닫고
여자화장실을 뛰쳐나왔다.
나는...
왜 이럴까...
물론
그녀의 얼굴 말고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으니
워낙 심하게 놀라
무언가를 보고말고 할 것도 없었으니까.
......
......
그러고보니...
좀 아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