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ude (개발 스토리)
때는 1986년이였습니다. 신군부가 만든 악법인 자동차 산업 합리화 조치가 폐지될 조짐이 보였고 기아자동차는 승용차 생산이 1987년부터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기아차는 당시 북미 시장에서 소형차를 팔기위해 협상중이던 포드와 마쯔다와 접촉, 포드가 요구하는 단가에 맞춰 생산하게 됩니다. 당시 GM에 대항마가 필요했던 포드, 대미수출 규제로 걱정하던 마쯔다, 승용차 생산이 필요한 기아 이 3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자동차 한미일 연합이 탄생하게 되죠.
기아는 이로서 승용차를 생산하게 되었지만 당시 현대자동차는 이미 고유 모델을 보유하고 있었고 대우자동차, 심지어 쌍용자동차까지 고유모델을 개발하고 있던 상황에서 기아차는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프라이드는 마쯔다가 설계한 차이기에 생산과정에서 기술 습득을 하였지만 제한적이였고 기아차만의 고유 모델 개발을 하기로 합니다. 당시 타 회사들이 이미 개발된 플랫폼을 베이스로 개발하는 일명 스킨체인지로 접근하던 상황에서 기아차는 무모할 정도로 모험적인 결정을 하게 됩니다.
국내 최초로 언더바디까지 독자개발한 세피아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기아 프라이드의 북미 수출 버전인 포드 페스티바에 V6 엔진, 후륜구동으로 변경한 페스티바 쇼군
이때 기아자동차는 도심형 SUV 개발 의향이 있던 포드에 공동개발을 제한, 훗날 기아 스포티지가 될 UW-52 개발을 진행하게 됩니다. 기아산업 시절인 1962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기아에 웬만하면 협조적이던 마쯔다의 태도돌변을 보고 기아자동차는 이대로는 승용차 생산이 불가능 할수도 있다는 판단에 포드와 소형 SUV 개발을 진행한것이죠. 근데 UW-52 개발에 갑자기 변수가 생깁니다. 포드의 경영진이 완전히 새로운 차를 개발하는 대신, 기존 차량을 기반으로 익스플로러를 개발하기로 결정하면서 UW-52 개발에 철수하고야 맙니다.
기아는 UW-52 프로젝트를 홀로 떠안게 되었지만 개발을 지속, 이 과정에서 자동차 플랫폼 개발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이왕이면 마쯔다로 부터 퇴자 맞은 파밀리아급 승용차 개발을 결정, 프로젝트 명 S-Car을 진행합니다. 1988년 6월부터 개발비만 1,200억원을 들여 극비리에 개발을 진행한 S-Car는 1991년 10월 26일 열린 도쿄 모터쇼에서 스포티지와 함께 처음 선보여 많은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10개월의 연구 검토와 도쿄 모터쇼에서 얻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개선, 드디어 92년 9월 22일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선보이죠. 이에 앞서 기아자동차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아산공장에 세피아 전용 라인을 700억원에 증설, 연간 15만대 규모의 설비를 갖추게 됩니다.
S-Car의 등장
세피아는 등장부터 엄청난 돌풍을 이르키게 됩니다. 당시 준중형 라인업은 엘란트라가 독보적이였는데 남성적인 디자인이였던 반면 세피아는 여성스러운 분위기에 상하폭 89mm의 초슬림형 헤드램프,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 일체형 리어 피니셔 설정으로 볼륨감이 넘치는 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끝나지 않고 보닛과 슈퍼 컴퓨터를 이용한 설계를 통해 주요 부품에 고장력 강판을 30% 적용하고 동급 최대 윤거를 통해 당시 국산차로서는 뛰어난 주행성능을 발휘해 '공공 도로의 제왕'이란 별칭까지 얻게되었습니다.
4륜 디스크 브레이크 옵션을 국산 준중형차로는 처음 제공했고 충돌 안전성을 위해 펜더에 프레임을 장착, 엔진룸과 인패널이 추돌시 실내에 출입하는걸 막기위해 T자형 프레임을 장착했습니다. 측면 충돌에도 대비, 도어 임팩트 바를 이중 보강했고 또 문이 손상되어 탈출이 불가능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논재밍 타입 설계를 적용, 탑승객의 생존율을 높였죠.
NVH에도 신경을 써 MBSP와 IS을 장착해 소음을 줄였고 충격흡수식 핸들(EASC)와 엔진감응형 파워핸들, 쇽업소바 미저속밸브도 장착하여 운전의 피로도를 줄인것도 특징중 하나입니다. 정비성까지 생각하여 국내 최초로 엔진을 10도 경사를 주어 탑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당시 국산차로는 파격적일 정도의 안전설계로 인해 미국 도로교통안전국 (NHTSA)에서 실시한 모든 충돌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다만 IIHS에서 시행한 40% 오프셋 추돌시험에서는 불합격을 받기는 했어도 당시 자동차에서는 상당한 안전성을 자랑했습니다.
내부에도 상당한 혁신이 이루어졌는데 일례로 VFD(형광표시판) 디지털 계기판이 최상급인 GLX Image에 장착되었고 실내온도를 자동으로 감지해 조정하는 세미 오토 에어컨에 동급 최대의 6단 조절식 공조기도 장착되었습니다. 중앙집중식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운전자가 필요한 정보를 한눈에 볼수있도록 하였고 충돌시 2차 부상에 대비해 벨트 압박감을 기존의 1/2으로 경감시키는 ELR 안전벨트도 옵션으로 존재했습니다. 오디오 성능도 굉장히 신경썼는데 초창기에 판매된 GLX에는 2단 컴포넌트 및 이퀄라이저가 장착되었고, 이후 생산 모델은 파격적인 성능의 인켈 3DIN 7밴드 이퀄라이저에 CD 플레이어가 들어간 오디오를 장착하였습니다.
국산차로서는 높은 완성도와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 그리고 안정성도 당시 차량중에는 높은 차량이였던 세피아는 판매개시 7개월만에 11,091대를 판매해 승용차 10만대 돌파 최단기간의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거기에 1993년에는 기아자동차가 대전 엑스포의 스폰서로 참가, 기아 세피아는 공식 차량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대전 엑스포에서는 일반 세피아 이외에도 세피아를 베이스로 많은 컨셉카 및 시험용차를 선보였는데 그게 바로 세피아 EV와 컨버터블, 그리고 변신 로봇 세피아였죠.
세피아 컨버터블
세피아 EV
세피아의 높은 달리기 성능은 물론 선진설계 기술을 적용한 차체 구조와 준중형차에서는 볼수 없었던 앞선 서스펜션 기술이 있었죠. 전륜이야 당시 현대 엘란트라나 대우 에스페로에도 장착되던 맥퍼슨식 스트럿이였지만 후륜에서는 그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세피아의 후륜 서스펜션은 듀얼링크가 장착되었는데 이는 토션빔을 장착한 엘란트라나 컴파운드 링크를 장착한 에스페로에 비해 훨씬 진보한 기술이면서 승차감, 주행성능까지 높여주었습니다. 당시 멀티링크는 뉴그랜저 혹은 브로엄 같은 고급차나 적용되던 방식이였고 같은 고급차이던 기아 콩코드는 맥퍼슨 스트럿 방식을 고수했는데 듀얼 링크는 맥퍼슨 기반이긴 하지만 쫌더 진보한 방식이지요.
세피아 하체. 듀얼링크와 맥퍼슨 스트럿의 조화에 서브프레임 방식 차체. 출처https://m.blog.naver.com/charbell/221301724808 (문제가 될시 삭제하겠습니다)
엔진
장착된 엔진 또한 배기량 대비 고성능 엔진이였습니다. 등장 초기에는 2가지 엔진이 장착되었는데, 1,500cc급 SOHC 엔진인 B5-ME와 같은 배기량의 DOHC 엔진인 B5-DE가 탑재되었습니다. 출력은 SOHC가 92hp/5,500rpm 토크 13.5kgm/2,500rpm. DOHC가 105hp/5,500rpm 15kgm/4,000rpm을 발휘했습니다. 그중 DOHC 수동은 연비도 15.97km/l로 우수했죠. 물론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펑범한 1.5리터 엔진으로 보이겠지만 그 진가는 확장성에 있습니다.
DOHC 16V B5-DE MPI I4 엔진 헤드
B5 엔진은 원래 마쯔다가 설계하고 개발한 소형차용 직렬 4기통 엔진입니다. 1.1리터부터 1.8리터까지 있었습니다. 엔진 블락은 주철로 제작했고 헤드는 알루미늄, 웨트섬프 오일 방식에 MPI 다중 연료 분사 시스템, 그리고 밸트 구동식 캠축이 특징이였습니다. 그중 밸트 구동식인걸 감안해 밸트가 끊어져도 밸브가 실린더에 충돌하지 않는 방식을 채택, 실린더가 설령 TDC에 도달하고 밸브가 완전 개폐되어도 부딪히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런 성능 향상 덕분에 계기판은 비록 시속 180km까지 표기되었으나 계기판을 소위 '꺽어' 시속 200km까지 주행이 가능했습니다. 거기에 기아차 최초로 유럽과 북미 시장에도 진출하는등 큰 성과를 얻었죠. 또 94년형 모델부터는 최상급 GLX Image 팩에 한정하여 ABS와 에어백을 운전석 핸들에 장착하게 됩니다.
뉴세피아
1994년에는 약 2년만에 페이스리프트를 강행해 디자인을 보다 둥글게 다듬었습니다. 더 커진 디자인으로 기아차는 중형차와 같은 준중형이라고 홍보했고 이로 인해 판매율을 급속하게 늘었죠. 국내 최초로 안개등, 콤비 램프가 내장된 일체형 고광도 헤드램프를 적용했고 일체형 대쉬보드를 적용했습니다. 거기에 오디오 사양으로 도난 방지기능이 추가된 알파인 오디오를 옵션으로 적용했고 로터리 절화식 에어컨도 선택사양으로 존재했습니다.
기아 뉴세피아 차체 구조
안전성 개선 사양으로 T자 프레임 강도가 높아졌고 충격흡수 능력도 강화시켜 전면 패널과 뒷좌석까지 확대 적용했고 고장력 강판 사용 비율도 늘렸죠. 거기에 97년형부터는 조수석에도 에어백을 옵셕으로 장착했습니다. 이로 인해 95년부터 강화된 미국 연방 안전기준(FMVSS)을 적용, 54km/h 측면 충돌 안전성 확보를 위해 특수 보강재와 시트하단에 특수 프레임을 장착하게 됩니다. 거기에 NHTSA에서 에어백 없이 운전석 3스타, 조수석 4스타를 확보했고 에어백 장착 모델은 운전석과 조수석 모두 4스타를 얻었죠.
거기에 더 대단한건 주행 성능을 인정 받아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인 오토모터 운트 스포트지가 실시한 구매후 1년 이상 운행한 실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 2.25점을 얻어 도요타 코롤라, 시빅을 따돌려 소형차 부문 1위로 선정, 전차종 만족도중 포르쉐 911 2.31점, 벤츠 E클래스 왜건 2.30점에 이은 3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국민차로 선정되기도 했고 95년에는 국제 자동차 연맹 (FIA)개최한 호주 세계 랠리에 출전해 30개의 구간, 총 1,600km을 6시간 9분 37초에 완주해 NP3 비개조 부문 (1,601~2,000cc)는 물론 NP2 비개조 부문 (1,301~1,600cc)에서 1위를 달성했습니다. 유럽형 세피아인 5도어 해치백인 세피아 레오도 당초 94년 출시하려고 했지만 경영악화로 인해 96년 10월 24일이야 출시했고 시장 반응은 설렁했지요. 이후 96년 5월에 출시된 97년형은 리어 램프 디자인이 분활식으로 변경되게 됩니다.
이 오리지널 S-Car는 1997년 8월, 세피아 II가 등장하면서 단종을 맞게됩니다. 경쟁작에 비해 뛰어난 주행성능과 잘빠진 디자인, 거기에 안전성능까지, 세피아는 준중형의 기준을 높인 차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에 국내 첫 독자개발 플랫폼으로 개발된 승용차인점을 감안, 문화재청에서 자동차 등록문화재 보고서에서 후보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세피아의 의미는 Style Economy Power Hi-tech Ideal Auto에서 가져왔습니다. 세피아는 단순히 추억의 차가 아닌 국산 플랫폼과 디자인으로 자동차 한국의 새시대를 연 자동차라고 생각되네요.
재미있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봉고나인은 제가 없을때 운행한 차라 잘모르지만 세피아는 부모님이 예전에 타시던 차가 95년식 뉴 세피아라서 더욱 잘아는데요 페인트가 정말 질낮은걸 사용했고 기아차 특유의 들뜸 현상이나 고장도 있었지요. 말로가 엔진이 굳어버려 방치되었다 폐차되어서 쫌 아쉽네요. 어쨌든 세피아 이야기였습니다 ^^
공차중량 800킬로대 127마력 달리기 와인딩 최고의 머신이었는데요~~~지금도 어디서 잘달리고 있을겁니다
추천합니다
어느 평일 늦은 오후에 2차선 도로에서 시작하여 길 잘못들어서 ㅠ.ㅠ 골목길로 들어가서 후진도 불가한 오로지 직진만 가능한...그러는 중 비는 오고...골목을 나오니 이번엔 6차선도로....서서히 어둠은 내려오고... 그게 20년전이네요..
97년식 뉴세피아..
1.5 SOHC에 오토인게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쌩쌩하고 잘 나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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