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께선 제가 26살때인 2007년 환경미화원 근무중 음주차량에 사고를 당하셔서 현장에서 사망하셨습니다. 그때가 11월이었으니 봉고차에 치이고 십미터 가까이 날아가 차디찬 바닥에서 숨을 거두셨겠죠. 사고후 엄두가 나지않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현장에 가보지 못하고 얼마후 가족들은 해외로 흩어졌습니다. 도저히 괴로움에 한국에서는 버틸수가 없었습니다. 출국전 용기를 내어 사고현장에 가봤습니다. 아버지가 쓸어져 계시던 모습대로 바닥에 칠해져있는 패인트 자국과 아직도 곳곳에 씻기지 않고 남아있는 핏자국, 그리고 자동차 파편들...몇시간을 멍하니 서서 눈물만 흘리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살아계셨던 그 패인트자욱옆에 좋아하시던 자판기커피와 평생 가족들 모르게 피워오신 담배 한개비에 불을 붙여 놓아드리고 또 그렇게 몇시간을 울다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아버지께서 80년대초부터 관광버스 운전을 하셨습니다. 제가 중학교때부터 아버지께선 저를 공터로 대려가 버스운전을 알려주곤 하셨습니다. 그게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던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때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서 가지고 계시던 관광버스 4대와 엄청난 빗을 떠안고 야반도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큰이모댁에 가게되었는데 당시 큰이모부도 사업이 힘들어져 열평남짓한 옥탑방에 살고 계셨고 저희 내가족은 옥탑방 거실에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얼마후 어머니는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판단에 모든 채무를 어머니 앞으로 돌리고 아버지와 이혼을 하셨습니다. 다행히 빗에서 자유로워진 아버지는 조금씩 빗을삭감해가고 있었고 큰이모댁에서나와 4번에 이사끝에 작은 월세집까지 마련하셨습니다. 그렇게 삶에대한 희망이 우리 가족에게 찾아옮과 동시에 재앙이 찾아올줄은 몰랐네요. 당시 56세이던 아버지는 버스회사에서 근무중 중앙차로에서 사고를 당하셔서 허리를다쳐 퇴직을 하시고 아버지의 과실이란 경찰과 버스회사의 판단에 보상금 한푼 못받고 퇴직을 당하셔서 집에서 요양을하셨고 아직 치료도 끝나지 않았는데 일을 하셔야 한다며 환경미화를 시작한겁니다. 그때 저는 야간근무를하고 새벽 5시에 집에 들어왔는데 물말은 밥에 김치하나와 식사를하고 나오시는 아버지와 마주쳤습니다. 왼지 측은하고 짠한마음에 창문으로 아버지가 출근하시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께서 사고를당하셔서 병원응급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누나와 서둘러 병원으로 갔는데 의사가 아버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단지 위험한 상태라고 하고 그렇게 앞에서 십여분을 기다리니 그 의사분이 다시 나오셔서 사망시각을 선고해 주십니다. 그런데 선고전까지 응급실 안쪽이 너무조용했고 저는 의사에게 외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냐 따졌습니다. 의사의말은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셨을때는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고 가슴부위가 너무심하게 회손되어 소생술이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에 어떻게 장례가 치뤄지는지도 모르게 삼일이 지나고 아버지를 뜨거운불속에서 화장하고 추모공원에 모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모셔두고 돌아왔더니 가해자측 사람이 와있었습니다. 가해자가 형편이 어려워 합의를 볼수가 없고 공탁금을 걸었으니 알아서하라는 상대방쪽 대리인의말을 듣고 우리가족도 합의를 원하지않으니 형사처벌하라고 처리했습니다.
그후 산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지네요...잔인하지만 아버지의 보험금과 유족연금으로 어머니의 빗을 갑고 시간이흘러 누나도 결혼하고 집에 아기도 생기고 나름 사람사는것처럼 살고있는데 우체부아저씨가 찾아왔습니다. 열어보니 법원에서 지급명령을 내렸네요. 아버지께서 한참 어려울때 대출을 하신것 같았습니다. 그나마 많이 갑으시고 300만원 남으셨는데 아버지의 사망후 지금까지의 이자가 천만원이라합니다. 가족끼리 의논을 해봤는데 300은 어찌해보겠지만 1300만원은 너무 버거운 금액이라는 결론이 내려져서 아버지껜 면목없지만 상속포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그런 법적 절차에 무지하던 저는 법원에 무료법률상담실이 있는것을보고 상담을 하게되었습니다. 전부터 변호사들의 권위의식은 알고 있었지만 사람이 들어왔는데 눈길한번 안주고 먼저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제가 변호사 앞에 앉아 소장을 보여주며 상속포기 절차좀 알려달라 부탁드렸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아버지의 부채를 왜 포기하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재산도 없고 현제 저의 형편도 어려워 어쩔수없이 포기를 해야한다고 말씀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 저를 멍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남겨주신게 없다구요? 그게 말이되요? 정말 한푼도 없어요? 죽을때 알몸으로 죽으셨어요?"라고 다그치고 이어서 "무슨 아들이란 사람이 아버지의 부채를 갑지않으려고 하냐"는 핀잔이었습니다. 그리곤 항소해도 의미없으니 그런생각하지말고 당연한채무를 받아들이란 충고와 정 항소해 보고싶으면 해보라는말과함께 답변서의 예제를 프린트해서 제앞에 던져주었습니다. 제가 잘못한것은 알고있습니다. 제가 상속포기를 함으로써 채권자도 피해를 보겠지요. 하지만 법조인은 중립에서 원고와 피고를 봐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편법을써서 아버지의 채무를 피하겠다는것도 아니구요. 정말 처음으로 사람에 대한 경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일 또 법원에 갑니다. 다시 상담을 받아서 녹취를 하려 합니다. 그런사람은 누군가를 변호할 자격이 없는것 같습니다.
법원에서 변호사에게 상처를 후벼파는 말을듣고 심난한 맘에 술한잔했더니 무슨글을 어떻게 쓰고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긴글 그냥 무시해 주시고 읽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냥 문뜩 아버지 생각에 울컥해서 위로를 받고싶은데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말할수있는 내용이 아니라서 모니터뒤에 숨어서 속마음좀 털어놨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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