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남자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 G37S 쿠페에 대한 소고 )
다람쥐 첫 바퀴 같은 생활이 지겹다면서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밤새 영어 단어를 외운다. 좀 더 나은 직업을 얻기 위해 청춘을 태워 공부를 한다.
멋진 여자를 사귀어 청혼하고 결혼도 한다. 그리고 자식을 낳아 뒷바라지 하느라 기러기 또는 참새 아빠도 마다하지 않는다. 노후를 준비해야하니 하루의 처신도 괴롭다. 기분 내고 싶은 것 있어도 ‘참아야 하느니라.’
‘지름신’은 신들 중에서 가장 물리치기 힘든 유혹의 여신이다. 그러나 얇은 지갑을 생각하면 미래의 신상을 위해 ‘참아야 하느니라.’
남자는 그렇게 살아간다.
모범적인 가장을 생각해보자. 밖에서는 일 잘하고 친절하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물론 돈도 잘 벌어온다. 외모가 준수하며 깔끔하다. 담배는 태우지 않고 술도 취하는 법이 없다. 뭍 여인들의 관심을 넘치게 받지만 딱 한 사람 아내만 사랑한다고 외친다. 퇴근이 늦어도 바로 집에 와서 아이들과 책읽어주고 놀아준다. 처갓집 경조사를 먼저 챙기고 안부 전화도 꼬박 드린다. 결혼기념일엔 일류 호텔로 외식을 하고 선물도 잊지 않는다. 물론 철마다 해외여행을 예약한다. 노후를 위한 준비성도 철저하다. 멋진 세단을 타고 아내 먼저 문을 열어 태워주며 운전 중에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다. 설사 무례한 운전자를 만나도 웃으며 양보한다. 차선을 바꾸면 손을 들어 인사를 해준다...
갑자기 숨이 막혀온다. 불전에 주인공이 부처님이고 성경에 주인공이 예수님이라면 우리 집에 주인공이 ‘나’ 인가? 넓은 세상에 주인공은 못 될 지언즉 코딱지만 한 내 집에서 나는 주인공이 되는가? 아무래도 자격 미달임에는 틀림없다.
아들들은 아버지를 모방하거나 또는 싫어하면서 자란다. 요새 아들들이 자라면서 부쩍 두려워지는 것이 있다. 나를 닮거나 싫어하는 것이 있음은 지당한데 칭찬거리를 닮아야 할 것이요 부끄러운 것을 멀리해야 함이 옳은 데 반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닐까?
중년의 속박이 어느 세월에 담쟁이 넝쿨처럼 얽혀 있다. 그러면 과연 청년이었을 때는 자유로웠을까? 어차피 그 때는 가진 것이 너무 적어서 소심했고 상상은 가득했지만 좋은 직장 또는 좋은 직업이 삶의 지향점이 아니었던가?
역시 그 때의 하루도 ‘참아야 하느니라.’가 일상이었다.
남자의 욕망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리고 어디로 달려가는 것일까?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오늘을 산다. 그럼 그 희망의 끝은 어디일까?
자유란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도시인으로 살아가는 家長은 사소한 용기조차에도 걸려 넘어진다. ‘참아야하느니라’를 되뇐다. 분명 ‘저용량 湧氣 결핍증’이 진화된 현대 남성의 약점이리라.
세단을 버리고 쿠페를 샀다. 브랜드를 던지고 내 갈증 해소하기를 택했다. 솔직히 더 달리고 싶었다. 턱없는 값으로 포장하는 것에 질려서 실속으로 채우기로 했다. 이제는 내가 선택하고 싶은 그대로 솔직하게...용기가 부족해서 넘어지는 우를 이제는 범하지 않으려고 작심을 했다.
가치 있는 가장으로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삶에 핵심은 균형 잡힌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일도 잘하고 준수하고 가정에 충실하며 사회적 책무도 지키는 그런 것들...
독일제 세단이라면 그런 느낌이다. 오래가도 그저 두루뭉술하게 인정받는 가치
같은 것들...중년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지치지 않는가? 지겹지 않은가? 포장된 삶에서 찾아오는 권태로움.
G37S를 만나서 지금까지의 나를 버릴 용기가 있는 지 시험에 들게 되었다. 그냥 보거나 몇 번 타고 다니기에는 미혹할지 몰라도, 중년 나이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가장이 한 번 타려면 머리를 팍 숙여야 하고 뒷자리는 없는 것보다 좀 나을 정도에 트렁크는 간신히 가방 몇 개 놓을 정도의 차를 타고 다닌다. 그것도 문짝 2개짜리(?)를...남들이 부러워하는 은색 독일 세단을 버리고...
결과적으로는 G37S를 선택했다. 다른 누가 타려면 내 차에 맞추어서 타세요라는 심보다. 뒷자리는 좁고, 하체는 너무 딱딱해서 도로 요철에 머리까지 진동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멋’을 즐기고 달리는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기꺼이 타시어도 됩니다.’ 라고 말한다.
남성의 유전적 진화는 너른 들판에서 짐승을 쫓아서 달리고 쏘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현대인의 신체적인 진화는 오히려 중성화를 요구한다. 사냥감을 노리듯 거칠게 산다면 이제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 도시 속에 사는 남성의 진화를 어디에다 담아낼까?...차는 아닐까?
활을 쏘고 싶은 마음으로 자기 차가 화살처럼 달려주기를 바라고 튼튼한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고 싶은 충동을 고성능 차로 대신한다.
쿠페는 남성 유전인자의 도시적 진화 산물이 아닐까? 그 속에는 점유의 속내가 있다. 가족중심보다는 나 중심의 세계를 담는다. 그리고 강력하다. 동승자가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코드가 같은 사람이 은밀하게 타야 제 맛이 날 것 같다.
불룩한 실루엣이 다소 과장되어 보이지만 내실이 꽉 차서 맘에 든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목표를 향해 질주하기도 안성맞춤이다. 콕핏에 갇힌 나만을 위한 공간. 음량을 아무리 높여도 찢어지지 않는 깔끔한 사운드. 도로에서 차들 사이에 묻혀 있으면 군중에 하나처럼 얌전한 데 내가 원할 때는 엔진룸에 가득한 포효로 맹수처럼 깨어난다.
성능이나 제원은 카탈로그를 보면 안다. 우리가 진짜로 알아야 할 것은 그 속에 담긴 가치다. 왜 그렇게 만들었는가? 왜 하필 그렇게 세팅을 했는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가? 정말로 내가 그것을 소유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가 이다.
일상의 지겨움을 던져 버리고 너른 광야로 가고 싶은 길에 G37S 쿠페를 만났다. 비록 갑갑한 아스팔트 위에 머무르지만 내 마음은 이 차에 오르면 광야로 원정을 떠나는 기분이다. 올 가을에는 코스모스 피고 갈대가 무성한 호숫가 한적한 곳으로 아내와 둘이서만 여행을 떠나고 싶다.
아내가 고맙다. 눈만 봐도 남편의 속내를 캔다고 하더니 불쑥
“이번에 차를 바꾸면 스포츠카 같은 것 타고 다녀봐.”
“더 늙으면 타라고 줘도 못해. 큰 차는 다음에 더 늙어서 타도되잖아.”
어쩌다 자동차 전시장 부스에 세워진 G37S 쿠페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아내가 내게 한 말이다.
"올 가을에는 당신 마음에 뭐가 꿈틀대는 가 싶더니 이 차가 들어있었구나. 누구하고 바람이 났나했더니..."
저는 차에 대해서 기술적인 언급은 피하려고 합니다. 정보가 오픈되고 공유되는 세상이니 굳이 중언부언 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차는 적어도 오너로서 오랫동안 두고 쓰다 보면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됩니다. new BMW530i를 타면서 매력에 흠뻑 젖어 지내다가 이번에 다른 사람에게 떠나보내고 G37S 쿠페를 새롭게 식구로 맞이하였습니다. 이번에 차를 고를 때는 좀 더 나 자신과 아내만을 위해서라는 가치를 두고 바라보았습니다.
얽혀 있는 중년 나이의 마음속에 멋진 쿠페를 담았습니다.
2007년 9월 중순에...차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남자의 마음엔 항상 일탈이 존재하지요. ㅋㅋㅋ
멋진 글입니다...
저도 몇 년 지나면 눈으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공감하게 될 글 같네요...
저도 50이되면 페라리에 빨간색 스카프와 파란색 장갑을 끼고 달릴 것입니다.
좋은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