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은 1924년 만주 지린에서 태어났다. 애초 김학순의 부모는 평양에 거주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등쌀에 중국으로 피신했던 것이다. 김학순이 태어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김학순의 부친은 세상을 떠났고, 김학순의 모친이 어린 김학순을 데리고 평양으로 내려왔다.
어렸을 적 김학순은 모친과 함께 교회를 다녔고 11살 무렵까지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다. 김학순이 14세 되던 때, 모친은 재혼을 했고 모친의 남편은 김학순보다 나이가 많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있었다.
모친의 재혼 이후 모친의 남편의 자녀들과는 잘 어울렸지만 모친의 남편에게는 정을 붙이지 못했다. 자연스레 모친과의 사이도 멀어졌고, 15세 되던 때 김학순의 모친은 40원을 받고 김학순을 평양에 있는 기생집 수양딸로 보냈다.
거기서 김학순은 기생 수업을 받았다. 2년 정도 권번에 다니면서 춤, 판소리, 시조 등을 배웠다. 기생 수업을 마치고 영업을 하려 했지만 나이가 17세에 불과해 허가를 받지 못했다. 김학순의 양부는 중국에 가면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김학순과 먼저 수양딸로 온 언니를 데리고 1941년 중국으로 떠났다.
마치 저게 김학순의 이야기인것처럼 써놨지만 사실 김학순은 기생 출신임.
픽션과 역사는 구분을 좀 해야지.
당시 식민지에 혈안이 된 열강들이 많았고 식민지 시민들은 노예라고 치자
근데
그 일본을 편드는 한국인들은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다
관심종자들은 관심을 먹고 자랍니다
훗날 일본과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저 만행들은 반드시 사과를 받아야한다
당시 식민지에 혈안이 된 열강들이 많았고 식민지 시민들은 노예라고 치자
근데
그 일본을 편드는 한국인들은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다
쪽빠리종족과 토착왜구종족은 완전히 멸종시켜야한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니 않게...
원숭이 쪽빠리들...
그런 전투에선 싸우려고 모인 사람들이고
일반 가정집에서 순사 여러명을 제압할수 있을거 같아서 그런얘기 하는건가?
도대체 무슨 주장을 하고 싶은거야?
고작 순사가 두려워 딸과 누이가 강제로 끌려가는 동안 멱살잡이라도 한번 했다는 기사 한 줄 없는거야?
왜냐하면 500년간 인신매매가 합법이였던 조선에선 딸을 팔았거나 공창에 지원하는 서녀와 얼녀들이 많았거든요.
아. 하긴 근대사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처음부터 대깨문이 안됐을테지만.
참고하세요.
부모욕 맥이지 말고 자삭해라
인간이기를 포기 하지 말아라
어렸을 적 김학순은 모친과 함께 교회를 다녔고 11살 무렵까지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다. 김학순이 14세 되던 때, 모친은 재혼을 했고 모친의 남편은 김학순보다 나이가 많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있었다.
모친의 재혼 이후 모친의 남편의 자녀들과는 잘 어울렸지만 모친의 남편에게는 정을 붙이지 못했다. 자연스레 모친과의 사이도 멀어졌고, 15세 되던 때 김학순의 모친은 40원을 받고 김학순을 평양에 있는 기생집 수양딸로 보냈다.
거기서 김학순은 기생 수업을 받았다. 2년 정도 권번에 다니면서 춤, 판소리, 시조 등을 배웠다. 기생 수업을 마치고 영업을 하려 했지만 나이가 17세에 불과해 허가를 받지 못했다. 김학순의 양부는 중국에 가면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김학순과 먼저 수양딸로 온 언니를 데리고 1941년 중국으로 떠났다.
마치 저게 김학순의 이야기인것처럼 써놨지만 사실 김학순은 기생 출신임.
픽션과 역사는 구분을 좀 해야지.
이 문제는 그냥 말하지마라.
이 댓글 안 단다고 굶진 않잖아.
편 따지지말고
우리 서로 최소한 사람처럼 하자.
우리 서로 사람처럼은 하고 삽시다.
한 사람이라도 더 기억하고 있어야됩니다.
하...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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