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전차 티이거 개발시 두개 회사에서 제안서를 제출 합니다.
하나는 헨켈, 하나는 포르쉐
경합 끝에 헨켈사 제안 안이 채택이 되어 그 유명한 6호전차 티이거가 됩니다.
포르쉐 타이거 경우 개념이 앞서 나간 전차 였습니다.
엔진은 오로지 발전기 역활을 하고, 발전 된 전기이 이용 전기모터로 구동하는 방식 이였습니다.
문제는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다는능...
일단 생산 된 포르쉐 티이거 차제는 페르디난트 구축 전차 차대로 전용이 됩니다.
페르디난트 구축전차는 퀴스니히 티이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면장갑 200mm를 자랑 하는 중갑장을 자랑하는
괴물이였습니다..
웃기게도 전차 나 대전차포로 제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소련보병의 근접 대전차 공격에 당한게 꽤나 됩니다.
88mm 포 외는 근접보병에 대항 할 기관총 같은 자위용 무기가 없었거든요.
이 문제점을 해결 하고, 여러모로 개선 한게 엘리판트 구축 전차 입니다.
6호전차 티이거 개발시 두개 회사에서 제안서를 제출 합니다.
하나는 헨켈, 하나는 포르쉐
경합 끝에 헨켈사 제안 안이 채택이 되어 그 유명한 6호전차 티이거가 됩니다.
포르쉐 타이거 경우 개념이 앞서 나간 전차 였습니다.
엔진은 오로지 발전기 역활을 하고, 발전 된 전기이 이용 전기모터로 구동하는 방식 이였습니다.
문제는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다는능...
일단 생산 된 포르쉐 티이거 차제는 페르디난트 구축 전차 차대로 전용이 됩니다.
페르디난트 구축전차는 퀴스니히 티이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면장갑 200mm를 자랑 하는 중갑장을 자랑하는
괴물이였습니다..
웃기게도 전차 나 대전차포로 제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소련보병의 근접 대전차 공격에 당한게 꽤나 됩니다.
88mm 포 외는 근접보병에 대항 할 기관총 같은 자위용 무기가 없었거든요.
이 문제점을 해결 하고, 여러모로 개선 한게 엘리판트 구축 전차 입니다.
오래전 누가 한말이 있죠 독일패망원인 몇가지중 하나가 1940년대에 1930년대 기술을 가지고 1950년대 물건을 만들었기 때문에 패망했다고 ...........저시대에 미국이 컨베어밸트로 전차 찍어낼때 전차를 세워놓고 기술자들이 달려들어 만들었으니 생산성은 최악이어도 어쩌면 마에스터에 자존심 이었을까요 ㅋㅋㅋㅋㅋ
@피나니존나 예전에 왜 독일은 소련이나, 미국 처럼 대량생산이 가능한 주조제 전차를 안만들고,
노동력이 굉장히 들어가는 판금 가공 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본적 있습니다.
짧게 설명하면, 주철을 만들기 위한 대량의 연료인 석탄 매장량이 뒤받침을 못하는 산업구조에서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패망원인 중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게, 한정적 자원에 대한 효과적인 재분배 실패로 보더군요.
독일이 승승가도를 달리때는, 이게 눈에 보이 않았습니다만, 점점 수세에 밀리면서 이게 눈에 확들어
오고, 이 문제 대해 인지를 하고 있었지만, 권력층 과 군수기업 간의 이해 관계, 군 과 병종간의 이해 관계
로 인해 결국 개선을 못하고 패망을 했다고 합니다.
다양한 전차 와 구축전차,돌격포 등등 전시장 수준의 간소화 되지 않은 생산,보급,
대서양 방벽 만든다고 쓸데 없이 인력 과 자원 낭비, 패망의 순간에도 노르웨이에 50만 대군 상주,
아프리카 전선, 이태리 전선 등 확장 등등 말 입니다.
또 다른 원인 으로 바로 히틀러 자신 입니다.
군수산업 과 전시 경제 책임자인 슈페어는 굉장히 유능했고, 독일 산업 역시 그걸 뒤받침을 충분히
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히틀러가 민간산업 부터 무기 생산 까지 시시콜콜 간섭을 하는건 유명하죠.
단적인 예로 ME-262는 히틀러의 간섭이 없었으면, 최소 1년은 일찍 데뷔 했을 꺼라 합니다.
시제 모델을 히틀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줬더니, 히틀러가 일갈 합니다.
이딴 전투기 말고, 런던을 폭격 할수 있는 폭격기를 가져오라고 말 입니다.
덕분에 이제 전투기로 설계 끝내고, 시험만 남은 상태에서 폭장을 할수 있는 전투기로 바꾸냐고
시간 허비 합니다.....나중에 히틀러도 마지 못해 생산 허락 했지만 꽤나 늦은 시점 이지요.
페르디난트나 포르쉐 모두 동일인물입니다.
히틀러의 명령으로 독일의 국민차인 비틀을 개발한 엔지니어가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이고 2차 대전전까지 유럽의 자동차 경주에서 석권한 엔진분야의 전문가였습니다.
비틀을 베이스로 만든 독일군 다목적 차량이 공냉식 985cc엔진을 장착한 퀴벨바겐입니다.
당시로선 간단한 구조에 상당히 우수한 성능을 보여 줍니다.
이에 충격받아 등장한 차량이 윌리스 지프이지요. 4륜 구동 차량으로 성능은 퀴벨바겐을 능가하는 군용차량의 레전드이지요.
물론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는 전시 나치에 협력한 댓가로 징역형을 받고 복역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는 헨켈, 하나는 포르쉐
경합 끝에 헨켈사 제안 안이 채택이 되어 그 유명한 6호전차 티이거가 됩니다.
포르쉐 타이거 경우 개념이 앞서 나간 전차 였습니다.
엔진은 오로지 발전기 역활을 하고, 발전 된 전기이 이용 전기모터로 구동하는 방식 이였습니다.
문제는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다는능...
일단 생산 된 포르쉐 티이거 차제는 페르디난트 구축 전차 차대로 전용이 됩니다.
페르디난트 구축전차는 퀴스니히 티이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면장갑 200mm를 자랑 하는 중갑장을 자랑하는
괴물이였습니다..
웃기게도 전차 나 대전차포로 제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소련보병의 근접 대전차 공격에 당한게 꽤나 됩니다.
88mm 포 외는 근접보병에 대항 할 기관총 같은 자위용 무기가 없었거든요.
이 문제점을 해결 하고, 여러모로 개선 한게 엘리판트 구축 전차 입니다.
퓨리에서도 고증이 잘된게 티거 1대에 셔먼 5대가 붙어서 겨우 주인공의 셔먼이 티거를 잡죠.
하나는 헨켈, 하나는 포르쉐
경합 끝에 헨켈사 제안 안이 채택이 되어 그 유명한 6호전차 티이거가 됩니다.
포르쉐 타이거 경우 개념이 앞서 나간 전차 였습니다.
엔진은 오로지 발전기 역활을 하고, 발전 된 전기이 이용 전기모터로 구동하는 방식 이였습니다.
문제는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다는능...
일단 생산 된 포르쉐 티이거 차제는 페르디난트 구축 전차 차대로 전용이 됩니다.
페르디난트 구축전차는 퀴스니히 티이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면장갑 200mm를 자랑 하는 중갑장을 자랑하는
괴물이였습니다..
웃기게도 전차 나 대전차포로 제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소련보병의 근접 대전차 공격에 당한게 꽤나 됩니다.
88mm 포 외는 근접보병에 대항 할 기관총 같은 자위용 무기가 없었거든요.
이 문제점을 해결 하고, 여러모로 개선 한게 엘리판트 구축 전차 입니다.
노동력이 굉장히 들어가는 판금 가공 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본적 있습니다.
짧게 설명하면, 주철을 만들기 위한 대량의 연료인 석탄 매장량이 뒤받침을 못하는 산업구조에서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패망원인 중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게, 한정적 자원에 대한 효과적인 재분배 실패로 보더군요.
독일이 승승가도를 달리때는, 이게 눈에 보이 않았습니다만, 점점 수세에 밀리면서 이게 눈에 확들어
오고, 이 문제 대해 인지를 하고 있었지만, 권력층 과 군수기업 간의 이해 관계, 군 과 병종간의 이해 관계
로 인해 결국 개선을 못하고 패망을 했다고 합니다.
다양한 전차 와 구축전차,돌격포 등등 전시장 수준의 간소화 되지 않은 생산,보급,
대서양 방벽 만든다고 쓸데 없이 인력 과 자원 낭비, 패망의 순간에도 노르웨이에 50만 대군 상주,
아프리카 전선, 이태리 전선 등 확장 등등 말 입니다.
또 다른 원인 으로 바로 히틀러 자신 입니다.
군수산업 과 전시 경제 책임자인 슈페어는 굉장히 유능했고, 독일 산업 역시 그걸 뒤받침을 충분히
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히틀러가 민간산업 부터 무기 생산 까지 시시콜콜 간섭을 하는건 유명하죠.
단적인 예로 ME-262는 히틀러의 간섭이 없었으면, 최소 1년은 일찍 데뷔 했을 꺼라 합니다.
시제 모델을 히틀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줬더니, 히틀러가 일갈 합니다.
이딴 전투기 말고, 런던을 폭격 할수 있는 폭격기를 가져오라고 말 입니다.
덕분에 이제 전투기로 설계 끝내고, 시험만 남은 상태에서 폭장을 할수 있는 전투기로 바꾸냐고
시간 허비 합니다.....나중에 히틀러도 마지 못해 생산 허락 했지만 꽤나 늦은 시점 이지요.
두 사람 공통점이 중산층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권력기반이 어디서 나오는지 확실히 인지 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히틀러의 명령으로 독일의 국민차인 비틀을 개발한 엔지니어가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이고 2차 대전전까지 유럽의 자동차 경주에서 석권한 엔진분야의 전문가였습니다.
비틀을 베이스로 만든 독일군 다목적 차량이 공냉식 985cc엔진을 장착한 퀴벨바겐입니다.
당시로선 간단한 구조에 상당히 우수한 성능을 보여 줍니다.
이에 충격받아 등장한 차량이 윌리스 지프이지요. 4륜 구동 차량으로 성능은 퀴벨바겐을 능가하는 군용차량의 레전드이지요.
물론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는 전시 나치에 협력한 댓가로 징역형을 받고 복역하기도 했습니다.
페르디난트를 별도를 생각 하고 있었으니.....뜻밖의 정보에 감사 드립니다.
서스펜션도 수시로 교체해야하는 포르쉐 티거
서스펜션은 아예 설계도에 대놓고 자주 교체해줘야한다고...
그나마 페르디난트로 부활은 했으나 동부전선에서 전부 사라져버렸고..
비만쥐는 만들다가 활약도없이 그대로 끌려가 박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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