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가 욕받이 왕인건 맞지만, 그래도 선조때 류성용, 이순신, 김시민, 권율, 이이, 이황, 이항복, 이덕형, 사명대사, 서산대사, 허준.. 등등.. 세종을 제외하고 인재 풀이 넘쳐나던 시기이기도 했음.. 과연 선조가 그렇게까지 욕만들어먹을 정도의 위인이라 하기엔 그 시대 인재들을 통해서 보면 꼭 그렇지 많은 않은 것 같음.
이순신 징군의 전사 소식을 들은 진린은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면서 울었다함! 생전에도 이순신장군에게 전쟁이 끝난후 명마라로 가자고 청함! 명황제에게 높은벼슬 내리겠다고~ 진린이 단순히 이순신 빠여서 그런게 아니라 조선 조정 대신들 선조 하는꼬라지 보니 전쟁후에 포상보다는 제데로 대접도못받고 모함당할거라는 생각이 있었지 않은가~ 라고 해석하는 역사가들도 있음! 그만큼 선조(개새키) 및 조정에 또라이들이 전세판단을 못하고 특히 선조는 이순신을 병적으로 안믿음!
모든 신하들(류성룡까지..)반대했던 진급을 선조가 시켰습니다.
대충 5계급 특진....;;;;
정읍현감을 한방에 전라좌수사로...소령을 중장으로 진급시킨것
뭐...이후 잘 아시는것처럼 이순신 장군은 연전연승의 영웅, 선조는 백성버리고 도망간 양아치 취급을 받으니
선조의 질투심 대폭발..
내 나라 역사를 깔보는 일본인이 만든 호칭임
구국의 영웅, 성웅 이라는 칭호는 듣지못하겠죠
향간,내간,반간,사간,생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순신 장군께선 첩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알고계셨습니다.
쪼쟌한 선조에게 당할까바
전투중 전사한척 하고
은둔생활로 말년을 보냈을 거라는 썰도있음.
어쩔수 없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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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계에선 위험관리능력만 부각되고, 어디선 이순신은 생산력에 힘을
안 썻다고도 함. 이순신의 전승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저 정보정찰을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임. 전투 중에도 저 정찰선은 전투에 참전 안 하고 멀리 외해
그리고 내륙으로 보내서 왜군의 우회가 있는 지를 계속 정찰하게 한지라
깊은 만으로 들어간 해전에서도 피해없이 승리가 가능했던거임.
칠천량 패전도 정찰선의 보고를 무시했었을 가능성이 높음.
그리고 칠천량 해전이 벌어지기 전 미리 피하지 않았나 싶은게,
저 110여척에 달하는 정찰선의 반 이상이 추후 판옥선 12척만 남은
상태에서 이순신이 복귀하자 다시 합류했고, 정찰선을 잃은 이들은
어선으로라도 합류하여, 명량 해전 때 12척의 판옥선 뒷 편 멀찍이
100여척의 위장선단이 이순신 함대가 건재한 것 처럼 진을 짜고 대기 중
이었으니, 멀리서 보면 싸우기 전에 왜군도 이미 기가 꺾인 상태에서 전투가
붙은 거라 봐도 무방 함. 뒤에 빠져있던 우리의 판옥선 2척만 기가 죽은게 아님.
그의 수족도 뒷받침 되어야 하고...
사람을 따르게 만드는 능력이 가장 핵심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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