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 가세는 점점 기울었다. 독채 전세를 살던 이씨 가족은 전세금을 빼 단칸방 월세로 이사했다.
이씨는 찬조연설로 알려진 이름 탓에 취직이 어려운가 싶어 개명도 고려하며 구직활동을 했지만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았다.
결국 이씨는 “내 이래 갖고 그냥 못 있겠다. 한 3년 고생해가 다른 장사라도 하면…”이라는 끝을 맺지 못한 말을 남긴 채 집을 나갔다.
“아무래도 내가 아를 잡은 거지. 아무래도 내가 더 볶았지. 내가 ‘우째 인간아, 사람을 그렇게 믿었노’라고 뭐라 카면
‘엄마, 나도 떳떳하고 싶어서 그랬는데…’카면서 눈물만 뚝뚝 흘립니다.”
이씨는 한두달에 한번쯤 어머니를 찾아 온다.
이씨 어머니는 “이씨가 일용직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무식해서 잘 모르지만은, 우리 아는 그냥 희생양이지예. 그래도 지가 어떡할 겁니까. 후회하지예. 백번 천번 후회하지예. 지 인생이 이리 돼뿌릿는데.”
안타깝습니다
너무 많은 이들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음.
그래도 저분께는 세상이 너무 가혹하네용..
너무 많은 이들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음.
그래도 저분께는 세상이 너무 가혹하네용..
결국 돈에 움직이는 노예일뿐
결국은 누군가의 도움은 받았네.
고등학생에서 갓 성인된 애들에겐 대학을 졸업하는 이들에겐 필요한
너무나 절실했던 잘살수있다는 희망을 내걸었던것이죠...다만 시간이흘러
거짓과 사기 투성이 었단걸 과거 20대가 지나면서 뼈저리게 깨닫게된게 현재의 30대입니다
아무리 시간이지나도 2030이 보수편이라는 개소리는 공감할 수 없죠
최저시급 제대로 보장못받는게 당연한 시기였으니까요
펨붕이들이 봐야할글이네요..
결과는 참 씁쓸하고 안타깝긴하지만
당시에는 저분 주변분과의 생각이 동일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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