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때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장면을 직접촬영한 비디오 테잎을 보면서 신촌 어느 골방에서 동지들과 분노를 삼키지 못해 눈물을 삼키며 마셨던 쓰디 쓴 그 소주를 잊지 못합니다.
뿌옇게 흩날리는 최루탄과 지랄탄 속에서 무수하게 날렸던 화염병과 돌멩이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외쳤던 독재타도 ! 군부타도 ! 전두환은 물러가라!!
숱하게 드라마나 영화로 회자 되었던 그들의 만행을 덮기에 급급하고 숨기기에 바빴던 역대 정부들...
진작 용서를 빌어야 할 놈들은 죽고, 용서를 받아야할 사람들은 오롯이 그 아픔을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얹고 살아야 되듯 그렇게 남았습니다. 아픔이... 슬픔이...
내가 이 영화를 아직 보기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극장 안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불쑥 일어나서 전두환과 그 일당들을 향해 거침없는 욕설을 뱉을거 같아서... 차마 보기가 겁이 납니다.
그 당시 수배로 같이 도망다니던 동지들이 그립고 또 세월이 지나도 변절자없이 아직도 분기탱천한 선.후배들이 고맙습니다.
간혹 서울의봄 후기가 올라오는걸 보고 그시절이 생각나 두서없이 몇 자 적어봅니다. 죽어서도 지옥에서 고통받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하.나.회! 새끼들아!!!!
전 국민학생이고 친구의 형은 운동권 대학생이었죠. 사복경찰이 갑자기 들이 닥쳤고 담 넘어 도망가려던 그 형을 잡아서 개패듯 폭력을 휘둘러 피투성이가 되어간 그 형을 수갑채워 끌고 가던 모습.
내가 이 나이먹고 보니 고작 스물초반의 어린애이었을뿐인데...그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전두환 물러나라 외친것으로 그리도 죽일듯 몰아가야 했다는게...
국가 내란죄로 엄히 처벌해야합니다.
후손들도 나라에서 잘살지 못하도록이요.
국가 내란죄로 엄히 처벌해야합니다.
후손들도 나라에서 잘살지 못하도록이요.
미화되어지기도 하지만
이런 사건에 대한 기억과 기록은 절대로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봅니다.
땅속에서도 고통받아 마땅하고
살아 생전엔 무조건 속죄하며 갚아나가야 할텐데
머시기 광분하고 잡지책 컬러본 흑백본
보았으예 칼막스.레닌이 어쩌고 저쩌고
얄마 낼 출근해야니깐 1절만해라리
재미없다 했지요.
창문마다 두터운 솜이불로 막아두고
벌벌 떨면서 지새우다, 이러다 우리가족들도 모두 죽을성부러 거리로 뛰쳐나가 온종일'전두환은 물러가라'를 외쳤지요.
그러한 사실을 15년 넘게 외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걸 보고 더 기가 막히더군요.
지금도 가슴이 답답합니다
감사합니다
ㅠ.ㅠ
이 나라가 북한과 다를게 무언가 싶습니다
전 국민학생이고 친구의 형은 운동권 대학생이었죠. 사복경찰이 갑자기 들이 닥쳤고 담 넘어 도망가려던 그 형을 잡아서 개패듯 폭력을 휘둘러 피투성이가 되어간 그 형을 수갑채워 끌고 가던 모습.
내가 이 나이먹고 보니 고작 스물초반의 어린애이었을뿐인데...그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전두환 물러나라 외친것으로 그리도 죽일듯 몰아가야 했다는게...
가해국인 일본이 한국을 증오하는것과 같은 맥락인게 역시 쪽바리들 피는 어디 안 가네요..
하긴 부끄러운걸 알면 경상도나 쪽바리 짱깨란 소리 안 듣겠죠
한숨 함께 쉬어주는 사람이 있어 좋습니다.
돌아온 문솔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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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0 | 최종방문 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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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신고와 반대 부탁드립니다 ^^
그 주도했던 새끼 지지자 또 그당에 있는 새끼들은 뭐야?
니미 얘기하고자 하는게 뭐야?
내가 반말 잘 안하는데… 존대할 가치가 없어서 한다
국딩때 학교 파할때면 동네엔 늘 펑펑하고 최루탄 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코밑에 치약을 발라주고 하교를 시키곤했죠
저희 집으로 고대형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숨겨달라고도 하고
최루탄 뒤집어써서 수돗가에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씻던 형들이 기억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의 20대와는 너무 다른 삶을 살던 20대들이었죠
다들 너무 감사하고 고생하셨습니다
졸개들은 잘먹고 잘살고 있잖아요.
내내 욕 나옵니다.
당직경찰이 무기고 열쇠을 그냥 내주더라구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른들 틈바구니에 보는데 너무 충격적인게 많았지만 포승줄로 움직이지 못하게 여러사람을 손발 묶어두고 탱크 바퀴가 그 사람들 머리 위로 지나가는 장면은 지금도 잊지 못하는 장면 입니다.몇년 전에 광주 큰고모네 사촌형네들은 당시 중학생였는데
애길 들어보면 피해가 없어서 그런지 나쁜기억이 없데요??
그런 형님&누님들덕에 이리 편하게... 너무 감사합니다!!!
민주주의를 이루기 정말 힘들었는데 또 윤항문덕에 또 후퇴하고 있네요
전두환 정권당시
광주와 서울 곳곳에서 대학생, 고등학생 시민들 정말 엄청 민주주의 위해서 투쟁 했는데..
저도 그 당시 박달나무 곤봉에 머리가 깨져 뇌가 나오고 눈이 튀어나와 돌아가신분 너무 많아 보았고요
중고등학생들도 처참하게 구타 당해서 피펌벅이 되있는 것도 많이 보았습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정말 잘 알고 있다보니 지금에 우리나라가 너무나 걱정스럽습니다.
서울의봄에 나오는 반란군 놈들 초급장교일 때 안면이 있으셨고, 그 중 한놈과는 오래 함께 근무하셨습니다.
5.16때 육군CID에 계셨는데, 서울 반란군 진압 준비들어갔다가 미군 명령으로 중단되었고, 동기 몇 분은 반란군과 교전했다는 이유로 추후 곤욕을 치룹니다.
반란군이 쿠데타에 성공한 것이 결국 일본군 2류인 만주군 넘들이 대한민국을 차지한거라고 저에게 말씀하신 적 있습니다.
당시 육해공에 광복군 출신 장성들이 소수지만 남아 있었는데 쿠데타 이후에 거의 옷벗었지요.
박통이 일본말과 일본군가를 좋아해서 누군가의 추천으로 안가 술자리에 자주 불러가셨습니다.(국민당시절 일본군 점령지에서 일본인학교를 다니심)김지미씨가 제일 예뻤다고. 술자리에서 거의 일본말로 대화.
박통이 된장찌개와 막걸리 좋아한다고 사람들이 칭송할 때, 개가 웃을 소리라고 자주 힐난하셔서 어머니가 입조심하라고 여러번 경고하셨다고.
전두환이 중령 막 달았을 때, 경남 진주에서 군인사들 모임이 있었는데 두환이보다 군선배들이 많음에도 육사 출신들이 두환이를 상석에 앉혀서 몹시 불쾌하셨다고 합니다. 버르장머리없는 놈들이라고.
두환이는 박정희와 차지철이 키운 버르장머리없던 정치군인입니다.
90년대까지 516때 반란군 진압에 나셨던 동기 분들과 성신여대입구역에 있던 사무실에서 자주 만나셨습니다.
지금은 대전현충원에서 매일 만나시겠지요.
친일파와 정치군인들로 더럽혀진 대한민국의 군정통성이 사라지지 않고 그나마 버티고 있는 건 5.16, 12.12 군사반란 때마더 정의롭게 맞서 싸우신 참군인들 덕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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