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관계가 약간 뒤바뀌었네요. 고종이 직접 청나라에게 요청을 먼저하였고, 그 이전 텐진조약을 명분으로 일본군이 재물포로 들어왔습니다. 조선은 이 조약이 있었던 일을 알길이 없었죠. 결국 동학농민혁명군이 진압되고 청군은 조선의 철군요청에 얌전히 응했지만 일본은 핑계대며 철군을 안하다가 경복궁을 장악해버립니다. 그래서 청일전쟁이 발발하죠.
nice2525 임오군란 민씨외척 어쩌구..검색하면 뻔히 나오는 얘기들이죠..임오군란 말하자면 신식군대와 구식군대의 차별에서 비롯된것인데.. 그안을 따져보면 당시 일본등 신식군대의 강함을 느낀 조선황실이 자국의 신식군 강화하려다 보니 일어난 갈등들이고 고혈어쩌고 하는데 결국 을미사변으로 일본의 눈엣가시였던 황후를 능멸한 사건은 반대로 민심이 일본에 대한 크나큰 적대감을 들게 했죠 의병도 봉기하고...민씨 외척 어쩌구 그러는데 합방 후 민영환이란 사람은 합방반대로 자결까지 합니다. 명성황후가 뮤지컬로 미화한게 아닙니다. 전 미화할 생각도 없지만 민비민비 하면서 민자영의 시해를 정당화 하려 했던 그런 일본의 역사 프레임에 놀아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황손은 상징적인 호칭일뿐이지 직업도 직함도
아녀~
대한제국 말년때 한일 병탄에 앞장섰던 이완용 윤덕영 이런매국노들 과 함께 압도적으로 한일 병탄에 협조했던 무리들이 당신네 황실 친족들이여
거기에 대해 사과와 부끄러움으로 남은여생 조용히 살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디서 수구꼰대짓을
하고다녀? 부끄러운줄 아시오
솔족히 고종이 힘이 없없지
아비는 선위한것도 아니면서 이래라 저래라 설교에
마누라는 러일 청일 전쟁에 나서서 백성파탄에
민씨 가족은 국가재산 뺏어 먹고
차라리 인천에서 강화도 조약 하기전에 미국 입항 허락하고.
미국에게 개방만 먼저 해줬더라면 지금보디 좀더 낫지 않을까요?
조선왕조에 대한 이미지 세탁이 참 잘되었지
어느 순간 부터 민비는 명성황후라는 명칭으로
고종은 나라를 위해 끝까지 독립운동은 지지한 왕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지만
실제로는 민씨 집안은 친일파 정도로 부패하였던 놈들이였고
고종은 여기저기 줏대없이 휘둘리다가 나라 뺒기 어리석은 왕이였다.
외척세력일본군대를 조선에 들인다 청나라가
일본군대 견제할 세력필요 하지않냐라고 하니
청나라 군대도 들인다..동학농민운동을 제압
하고 일본이랑 청이랑 한판 하는데 일본이
이긴다 이게 조선을 일본에 넘기는 시발점이다
민비이씨발년이 명성황후 어쩌고 저쩌고 하는
데 천하에 쌍년이다
연금지급액과 대우였음... 그리고 합방되자마자 친인척들과 왕실종친들 대관고작들이 마누라데리고 일본
미츠코시백화점으로 여행간거였음..
난 이완용이 총대멘거고 나머지 고종이하 모든 왕가사람들이 한패였다고 생각함.
그 시대 조선은 망할만 했네요.
지금도 조선이었으면 어쩔뻔...
그 시대 조선은 망할만 했네요.
지금도 조선이었으면 어쩔뻔...
3-40% 개대지들은 그런것들 지지하는 나란데? 솔직히 지금이 더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임
일제강점기 국민들은 아무 힘도 없었고 책임도 없었지만 지금 나라 망하면 2찍들 책임임
안 망할거라고 ? imf 어떻게 왔는지 봐라 그리고 지금 imf 오면 그 때처럼 극복 할 수 있을지 생각 해 봐
한국땅 오지말고 평생 꿈속에서 왕노릇하며 살어...ㅋ
외척세력일본군대를 조선에 들인다 청나라가
일본군대 견제할 세력필요 하지않냐라고 하니
청나라 군대도 들인다..동학농민운동을 제압
하고 일본이랑 청이랑 한판 하는데 일본이
이긴다 이게 조선을 일본에 넘기는 시발점이다
민비이씨발년이 명성황후 어쩌고 저쩌고 하는
데 천하에 쌍년이다
얇은 지식으로 쓰다보니 ㅋ
더 공부하겠습니다
어마어마한 부정부패+구식군대에 임금체불.
1년만에 구식군대에 임금을 한달치만 쌀로 대신해 주는데 그나마 썩은 벼와 모래를 섞어 줌.
신식 군대인 별기군은 겁나게 잘 해주는데.
구식군대 인내심이 터져버림=임오군란
민비가 임오군란 해결해 달라고 짱국에 도움요청=용산의 외국군대 주둔 시작
운요호 사건으로 들어와 있던 쪽국 공관이 임오군란으로 피해=위자료 청구 및 공관과 자국민 보호 명목의 쪽군 입국 계기.
민비가 대원군 짱국으로 위배보냄.
쪽국이 김옥균 뽐뿌질.
대원군을 다시 짱국으로부터 돌려받음과 동시에 입헌군주제 하겠다고 쪽국 등업고 반란.
당시 짱국 화력이 더 쎄서 쪽국 발뺌.
갑신정변 실패=텐진조약 탄생.
다시 민비의 흥청망청과 매관매직.
조병갑의 만석보로 동학이 터져버림.
고종과 민비의 요청으로 짱국이 들어오자 텐진조약에 의해 쪽국도 들어옴.
외국에 휘들리는 조정을 보며 이를 막기 위해 농민들이 조정과 전주화약 체결 후 짱놈들 철수.
쪽놈들 철수 안하고 오히려 한성 점거.
왕궁 피박.
쪽놈들 조약에 따라 철수하라는 짱놈들 요구 무시.
청일전쟁 시작.
쪽놈은 철수하라며 다시 동학 발발.
쪽놈들이 우금치에서 동학도를 학살에 가깝게 살육.
청일전쟁 쪽놈 승리.
짱놈들 있던 용산에 왜놈들이 자리잡음.
시모노세키조약.
짱놈들 우리나라에서 완전 손땜.
이후 점차점차 조선점령.
국권 피탈.
간단히 인과관계 정리했음.
지금은 그때 그래서 이렇게 됐음.
그때 그런건 그 전에 그래서 그런거였음.
그 전에 그런건 그런 이유로 그랬던 거임.
그때 그 이유는 당시 이래서 이랬던 거임.
당시 이랬던 건 어쩌고 저쩌고...
한도 끝도 없기에 인과의 경계구분이 중요함.
그래서 근대, 근현대, 현대로 구분짓는 시기를 나눟.
근대의 시작은 대원군집권기부터 해방까지임.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암울한 근대는 민비가 만든게 백프로임.
갖다 바친게 맞아요~
연금지급액과 대우였음... 그리고 합방되자마자 친인척들과 왕실종친들 대관고작들이 마누라데리고 일본
미츠코시백화점으로 여행간거였음..
난 이완용이 총대멘거고 나머지 고종이하 모든 왕가사람들이 한패였다고 생각함.
당시 국가의 주인은 국민보다 제왕이 우선이였음
조선왕실의 종묘사직만 이을수있다면
그것이 국가를 유지하는것이라 생각했던것
이완용은 국가의 실권은 넘겨주되
왕실의 보전과 안녕이 우선순위였지
아니면 또다시 동학군이나 서구외세에 당할판이였으니
경술국치이후 성난군중이 이완용의
집을 불태우자 고종이 새집을
지어준일도있음
이완용은 임금이 곧 나라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못한 조선의 신하였음
고종의 신변보호를위해 중국과러시아에
의존하다 그들이 도와줄수없다는걸알고
일본에 붙은것
왕족들 기득권 양반놈들의 무능함ㅡ
더이상 무슨말이 필요할까.
노망들린 노친네들이 503보고 여왕마마라하고 손바닥에 왕자새긴놈이 진짜 왕마냥 행세하는 세상에 왕정복고는 무슨ㅋㅋㅋㅋ
아녀~
대한제국 말년때 한일 병탄에 앞장섰던 이완용 윤덕영 이런매국노들 과 함께 압도적으로 한일 병탄에 협조했던 무리들이 당신네 황실 친족들이여
거기에 대해 사과와 부끄러움으로 남은여생 조용히 살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디서 수구꼰대짓을
하고다녀? 부끄러운줄 아시오
한옥마을에 집도내어주고
왕손이라고 칭하는 이씨넘뇬들 반성하고 아닥하고 살아라.. 븅쉰들아
씹선비..
나라를 내어준이 맞을듯요.
노래 부른 가수이네요
운명임.
어차피 왕조 핏줄 첫 시작은 밑바닥부터 시작인거고 그게 어쩌다가 권력잡은게 왕후장상일뿐.......
아비는 선위한것도 아니면서 이래라 저래라 설교에
마누라는 러일 청일 전쟁에 나서서 백성파탄에
민씨 가족은 국가재산 뺏어 먹고
차라리 인천에서 강화도 조약 하기전에 미국 입항 허락하고.
미국에게 개방만 먼저 해줬더라면 지금보디 좀더 낫지 않을까요?
맥아더장군 아버지가
단순 오락수단으로
원주민들 사냥놀이하고
미국현지에 동양인,아프리카원주민
데려다가 전시도 했어요
아시아인은 짐승취급한게
미국입니다
어느 순간 부터 민비는 명성황후라는 명칭으로
고종은 나라를 위해 끝까지 독립운동은 지지한 왕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지만
실제로는 민씨 집안은 친일파 정도로 부패하였던 놈들이였고
고종은 여기저기 줏대없이 휘둘리다가 나라 뺒기 어리석은 왕이였다.
국민에게 존경받을 일을 남긴 사람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은 게..
혹 인물이 있어서.. 그 후손이 옹알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골치아픈 일이겠는가...
일본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호위호식하고~ 본처 장려식 끝나자마자
상궁들여서 늦둥이 딸도보고~
과연 그분은 일제에 협력하신건지
항일하신건지 햇갈림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