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인가 99년인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IMF 터지고 한보 무너지고 금모으기 할때 하필 제가 공고 고3이라 취업을 나가야 했습니다.
자격증도 열심히 따서 선반,CNC,머시닝,밀링 4개 따놨었습니다. 물론 고삐리라 2급이지만
당시 오토 캐드가 전공인 상태라 나중에 기능장 되겠다고 호언하고 다녔었네요.
제도판에 그리다가 캐드로 넘어간 세대네요. 저희학교가 좀 많이 느렸지요.
당연히 삼성정밀 같은 곳에 들어가리라 생각했었는데 IMF 덕에 정말 단 한군데도 대기업 오퍼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선생님들은 다급해졌고 시골 어디라도 일자리만 있으면 무조건 밀어넣었습니다.
덕분에 동기들 손모가지 손가락 많이들 날아갔지요..
분위기에 편승한 탓일까...
돈 벌어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에 손을 든게 하필 경남 진주에 있는 ㅇㅇ정밀이라는 곳이었네요.
기계 만지게 해줄주 알았는데 가보니 그라인더로 다이캐스팅 사상을 시키더군요.
하루종일 그라인더랑 줄 이런걸로 대림 오토바이에 들어가는 엔진 케이스를 200개 가량 매일 갈고 문질렀습니다.
알루미늄 먼지가 얼마나 시커멓게 날리는지 점심 먹으러 갈때 공업용 퐁퐁으로 얼굴과 팔을 벅벅 문대야 겨우 구내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매일 일과가 끝나면 동네 목욕탕 닫기전에 뛰어가서 제일 마지막 청소하기 직전에 탕에 들어가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목욕탕 아주머니가 당연히 눈치 엄청 주지요...
콧구멍과 귓구멍에 석탄처럼 까만 먼지가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았지요.
기계 만지게 해달라고 애원해도 조금만 기다리라며 사람구한다고 ... 구한다고..
그라인더질 하다가 컴퓨레샤 냉각때문인지 손도 땡땡얼고 일하다 말고 세수하는척 울기도 많이 울었네요.
부모 없이 원에서 자라 초,중,고 살다보니 이 악물고 깡으로 살아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차오르는 설움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으로 이내 평정심을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딱 5개월 다니고 무작정 42만원 들고 상경했네요.
영등포에 가방하나 달랑 들고 내리는데 정말 무섭더구요.
친구가 사는 월방에 한달치 선납하고 플라스틱 사출 공장에 취직합니다.
뭐 썰로 풀자면 끝도 없고 지루하기만 한 내용이라 각설하구요.
얼마전 앨범을 뒤지다 첫 취업때 받은 급여 명세서가 보여 찍어보았네요.
정확히 21년 전 이네요. 명세서에 낙서해둔게 98년 8월이네요.
이게 7월 급여니 아마 취업한지 3달째 인가봅니다.
당시만 해도 주 6일 근무였지요.
연장근무도 54시간이 찍혀있네요.
저당시도 정말 작은 돈이었는데 지금보니 더 작아뵈네요.
당시에는 회사 옥상에 기숙사가 있어서 거기서 먹고자고 했네요.
타지에 와서 티브이도 핸드폰도 없어서 만화책 빌려보거나 소설책 보는게 여가의 전부였습니다.
매일 일끝나고 뜨끈한 공장 옥상에 올라가서 시원한 자판기 레쓰비 한캔 뽑아서
하늘보고 줄줄 울었네요.
시간이 무섭습니다. 어느덧 나이는 40이 되었고 애들은 잘도 크네요.
열심히 산다고 사는데 뭔가 뚜렷한 수는 안보이고 참.. ㅎㅎ
20년 전 이 명세서를 받을때 다시는 기름밥 먹지 않겠노라
뭐라도 배워서 책상앞에서 일하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었네요.
지금은 쬐깐한 광고대행사하면서 수건따위 만들어서 팔고 그러고 삽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쓸데없이 주절거려 봤습니다.
인생 뭐 있겠습니까.
누가 뭐라든 뚜벅 뚜벅 갈랍니다.
좋은 저녁들 보내십시오~!
받았는데~~
저는 개처럼 일하고 32만 원 받았어요.
저같은 경우엔 주당 98시간 일하고,
40만 원 넘긴적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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