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때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다 옥고까지 치르신 저희 부친이십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들으면 뭔가 양념친 재밌는 얘기인가 싶었는데
철이 들고서는 가감없는 진실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4월 혁명 당시 유공자들을 찾아서 포장하는 사업을 진행하더군요.
노무현 정부에서 받고자 하였으나 재수하셔서 멍박 정권에서 받게 되셔서 표정이 영 안좋으십니다.
반납할까 고민하시는 부친께....당시 있었던 민주화 운동으로 받는 상이니 대통령이 누구던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동료 친구들의 권유로 결국 받으셨네요. (하지만 행사장에서의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으셨습니다)
국립 4.19 혁명 묘지가 있습니다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더군요. 경건함이 느껴집니다.
참배하고...
아버지 친구분들 돌아봅니다.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 친구분들 익숙한 성함이 눈에 띄니 눈물이....
4.19 묘지도 명당(?) 자리가 있어보입니다만.........생전에 유공자 회원끼리 약속했다 합니다.
먼저 가는 순서대로 좋은 자리로 묻히는 것이 아닌 그냥 순서대로 묻히자....누구 하나 중요한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어찌 좋은 자리를 미리 찜하고 들어갈 수 있느냐?
그래서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4월 혁명 당시 돌아가신 분들은 1단의 맨 앞자리에 영면해 계시고
2단,3단 언덕까지도 점점 묘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부분 돌아가셨나 봅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는 3단 맨 마지막 구석 자리에 묻히시길 항상 기도하고 있습니다.
생존자들은 순서대로 묘지를 쓰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 들어갈지 아무도 모른다네요. 양지바른 곳에 묻히셨으면 하지만 순서는 정해지지 않았다니.......선열들의 약속을 따를 수 밖에 없네요. 저 어딘가에 아버지의 묘지를 쓰겠죠. 이런 내용을 알게 되니 더욱 그 분을의 결연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재주는 없으나 80 평생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존경하는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소사를 한번 적어봤습니다.
4월 혁명의 의미를 잊지만 않는다면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몰아낼 것들이 많지요
멋진 인생이기는 하나 본은은 순탄치 않은 길을 걸으셨네요.. 이젠 촌로가 되어 버리신....
아직도 저 분들 행사며 집회 따라다니며 목고리 내고 다니십니다.
깨우친 학생이셨을 가능성이 크신데
존경스럽습니다
학생 신분으로 쉽지 않은 용기와 결단력 추진력
그리고 옳바른 사고 방식 모두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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