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서울욘사마 이00 입니다.
저의 학창시절은 선생님들이 폭력과 욕설 과도한 채벌이 난무하던 시기 였습니다.
그 중 국민학교4학년때 담임뇬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도 안나지만 진정 치매 겪다가 고통스럽게 죽었길 바랩니다.
당시 우리집은 매우 가난하여, 교회 지하실에 불법으로 개조한 집에서 살았습니다
반지하도 아니고 완전지하에 낮에도 형광등이 필수 였습니다.
부엌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공동 수도에 화장실도 불법개조한 쪽방 6가구가 같이 사용했죠...
당시 저는 서울 강서국민학교에 다녔는데, 공부를 잘하지도 못한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4학년이 되었는데.. 담임뇬이 계속 부모님 오시라고 저를 다그칩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지만.. 어떤 뜻인지 아시기에 한번도 가지 않으셨습니다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담임뇬이 저에게 가하는 학대,폭력, 욕설은 늘어만 갔고.. 당시에 어머니께 전학을 시켜 달라고 졸랐을정도 입니다.
어머니가 자주 오시는 급우들과 저같은 놈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하늘과 땅 차이 였습니다.
어머니가 자주 찾아 오는 급우는 교실 맨 앞에 앉혀 놓고,, 수업하다 말고 머리를 쓰담아주고 심지어는 안아 주기도 했죠
그 급우는 기세가 당당해지다 못해 거의 반에서 일진이 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해 자기보다 못한 급우들을 패고 행패 부려도.. 담임은 저를 비롯한 피해자들에게 벌을 세우거나 심지어는 몽둥이로 팼습니다.
그 일진 급우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다 청소를 못했는데.. 청소 안했다고 저를 팹니다..
과학실험시간에 또 다른 일진 급우가 끓는 물을 저에게 엎은 적이 있습니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지만 저는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담임뇬은 저를 팼습니다...
양호실에 가라고도 안했습니다. 그냥 수업하다 말고 끓는 물을 뒤집어 쓴 저를 팼습니다.
한번은 반 급우의 부모님께서 분필세트를 사서 방문 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분필세트를 집어 던지면서 이런건 학교에서 꽁짜로 나오는 거니 이런건 가지고 오지도 마라.
이럽니다..
또 한번은 반 급우의 부모님께서 박카스를 두상자 사서 방문 했습니다.
그 다음날 박카스 상자를 가지고 오더니 바닥에 던지면서 누굴 거지로 아냐고 했습니다..
이런 담임뇬을 겪고 나니 그 다음에 만난 담임들이 거의 천사로 보일 정도 였습니다.
지금은 살았는지. 뒤졌는지 모르겠지만. 살았으면 치매 걸려서 고통스럽게 살다 뒤지길 진심 바랩니다.
부평*중 1학년 4반 첫 담임선생님으로 부임하셨던 이현숙 선생님 존경하고 감사했습니다.
철없던 저에게 큰 깨우침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 늘 큰 존경과 감사함을 맘속에 간직하고 바르게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60줄이실텐데
항상 건강하시고 편한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To Sir with Love
진짜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선생, 일진놈 새끼들.. 그리고.. 공부..
제 친구는 고교 졸업 후.. 군대 가기전 담임을 찾아갔는데.. 고교때 담임이 아예 기억도 못했다고 합디다...
그 다음부터는 안 찾아 갔답니다.
김희정?? 김희경?? 이라는 선생년
교탁앞에서 맨날 침 찍찍뱉고 폭력성 오졌음
그리고 늙은 할배선생 부자집 딸래미 맨날 쳐업고
우리 선영이 똥빨아 먹으라던 할배
도라지 담배 사오라고....
이놈도 미친 놈이었죠
지금 같으면 고소 당할 선생들 많았죠
윤웅상 선생님.
차별없이 모두를 사랑해 주셨던 유일한 선생님.
보고싶습니다.
오히려 운동부가 더 폭력과 차별,, 그리고 촌지가 심하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대전 가양국민학교 4학년때 마 씨 여선생..
여기서 같은 국민학교 출신을 보니 방갑네요
저도 1학년때 제담임이였던 김기x 선생님을 잊지못하네요 짝꿍이랑 얘기하다 걸렸다고 저만 귀싸대기 수십대를 후려쳤던 내담임..알고보니 저희집만 담임을 찾아뵙지 않았다고 1년간 심한차별대우를 했던...그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수치심과 공포심을 알게 해준 선생님 보고싶네요~^^
제가 학교 다니면서 두번이나 주변 학교를 새로 세워서 강제로 배정 했었습니다.
저랑 비슷한시기이신거 같네요..
근처에 학교 새로 생겨서 전학 많이 갔었죠
강월초등등...
아이디도 비슷하시네요 ㅎㅎ
신기한 맘에 댓글 달아봅니다!
당시 신월동이 논 밭을 갈아 엎고 빌라나 양옥단독 주택을 많이 신축하여.. 전학생,입학생이 많았습니다.
제가 3학년때인가땐 한반 130명이 넘었을 정도 였죠.. 그것도 2부제. 오전반,오후반...
한반 130명 넘었다고 하면 다들 안 믿습니다..
그러다 인근에 2개의 국민학교가 신축되어 강제로 전학 되었습니다. 저는 강서국교에 남았죠
강서국교도 원래 한동짜리 였으나. 소나무동산을 밀고 한동을 더 신축했었습니다..
제가 살던 시기엔 남부순환도로 건너편은 논,밭에 산이었습니다
지금의 신월7동이죠... 국민학교 1학년때부터 소풍을 가면 꼭 거기만 갔습니다... 갔던데 또가고 갔던데 또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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