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945년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군이 국민학교에 찾아와 교장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교장선생님은 각반 선생님들께 아이들을 운동장에 집합시키라고 했고, 학생들이 모이자
교장선생님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벌수 있다면서 공장에 취업할 여학생들 손 들어보라고 합니다.
손을 든 여학생들 중에서 12-13세들만 뽑아서 데려간 그곳... 종군위안부
1945년 해방 되었지만, 해방되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일본 오키나와로 갔습니다.
일본 도카시키 섬에는 종군위안부 추모비가 있습니다.
오키나와 본섬 도마린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10분정도 서쪽으로 가면 도카시키 섬에 도착하고
항구에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면 산 정상부근에 돌로 만들어진 종군위안부 추모비가 있습니다.
일본으로 가기 전에 관련자료들을 최대한 수집해서 강제징용(남성)/위안부(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남성들이 하루 한끼 죽을 배급받으면서 고된 노동에 시달렸고
여성들은 강제로 당했지만 구중물 속 연꽃처럼 지조가 있었으며 (일본군 생존자 증언)
그들은 희망이 없는 삶속에서도 부모, 형제 그리고 자신의 고향을 무척이나 그리워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출국 3일전부터 하루 한끼만 먹었고
이국땅에 버려진 것처럼 일본에서도 혼자서 움직였으며
도카시키 섬에서는 차를 타지 않고 산 정상까지 40분동안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4일째 하루 한끼로 버티고, 1시간10분동안 배를 타고, 색소폰 가방을 메고서 40분동안 산을 오르니
마치 마라톤을 뛴것처럼 너무 배가 고팠고, 기운이 없어서 색소폰을 연주하는게 쉽지 않았지만
추모비에 태극기를 붙이자,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면서 태극기에 햇볕이 들기 시작했고
얼굴과 머리에 형언할수없는 전율이 느껴졌으며
연주가 끝나자 이슬비처럼 맞아도 기분좋은 비가 5분정도 내리더니 그쳐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돌아가신 영혼들과 교감하는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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