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합성능개발실의 주행시험로 테스트장
제네시스와 최근 출시된 중형차 i40, 쏘렌토·카니발에는 종전 현대·기아차의 차량과 다른 특징 몇 가지가 있다. 차체 강성이 높
아지고 소음과 진동이 줄었으며, 고속주행 안정성이 높아졌다. 독일 유명 메이커가 만든 차량과 비슷해진 셈이다. 이는 한국 소
비자들이 지적해온 국산차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2~3년 만에 차량 완성도를 이처럼 끌어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현대·기아차 남양종합기술연구소 ‘총합성능개발실’이
변화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어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합성능개발실은 소비자의 기호나 요구를 파악해 차량 개발에 반영
하고, 완성차가 나오면 소비자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됐는지를 종합평가하는 조직이다. 소비자 기호를 정확히 파악하는 작업은
차량 판매와 직결된다. 메르세데스나 벤츠, 폭스바겐, 일본 도요타 같은 대형 메이커에서도 총합성능개발실 위상이 점차 높아
지는 이유다.
총합성능개발실은 어떤 차를 만들 것인지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개입한다. 북미나 유럽, 중국, 한국 소비자 기호를 분석해
연구·개발 부서에 전달하는 것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서스펜션, 소음·진동 등 각 파트가 개발하는 시
스템을 최적화하는 ‘튜닝 작업’에 투입된다.
젊은층이 선호하는 벨로스터에는 강력한 파워트레인과 날카로운 핸들링을 부여하고, 에쿠스는 안락한 승차감을 추구한다. 각
각의 차에 ‘맛과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연주할 곡을 정하고 오케스트라를 조련한 뒤 관객에게 선보이는 ‘지휘자’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22일 “기획 단계가 끝나고 시작 차가 만들어지면 동력 성능은 좋은데 소음이 심하거나, 승차감은 뛰어나지만
핸들링이 나쁜 차가 나오기도 한다”면서 “이런 불균등한 성능을 조율하는 작업을 총합성능개발실이 중심이 돼 진행한다”고 말
했다.
완성된 차를 ‘고객 눈높이’에서 평가하는 작업은 총합성능개발실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차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는 불쾌하
지 않은지, 시트는 편안한지, 승차감과 핸들링은 좋은지, 고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잘 달리는지, 진동이나 소음은 견딜 만한지 등
을 차주 입장에서 낱낱이 분석한다.
지난해 총합성능개발실 직원 80명이 차량 평가를 위해 남양연구소 정문을 통과한 횟수는 1만5000회에 이른다. BMW나 폭스바
겐 등 경쟁차를 몰고 나간 횟수도 5000회가 넘는다고 한다. 그만큼 다양하고 세밀한 분석·평가를 하는 것이다.
차를 종합평가하려면 차량 전체 이해도와 지식이 높고, 테스트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총합성능개발실 직원 대다수가 파워트레
인, 조향 등 다른 파트에서 수년간 일한 전문가들인 이유다.
현대차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총합성능개발실 직원들은 BMW 성능을 따라잡기 위한 ‘타깃차’라 불렀는데, 요즘은 ‘참고차’라고
만 부른다”며 “내부적으로 세계적인 명차인 BMW에 견줄 만한 차를 만들고 있다는 자신감이 자라는 셈”이라고 말했다.
■ 축구장 12개 면적 시험장에 시속 220㎞ 고속주회로도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에는 고속주회로와 범용 시험장, 실제 도로를 재현한 모형로 등 테스트 시설이 갖춰져 있다. 총합성능개
발실 소속 테스트 드라이버는 도로에 나가기 전 이곳에서 차량을 평가한다.
범용 시험장은 축구장 12개 면적을 합친 규모다. 조향을 하면서 핸들링이나 제동 성능, 서스펜션 등 기본적인 차량 성능을 평가
한다. 전체 길이 4.5㎞의 타원형 고속주회로에서는 최고속도 등 엔진과 변속기 성능이 운전자 의도만큼 나오는지 분석한다. 45
도가량의 경사로인 1차선은 시속 220㎞까지 고속으로 달리며 차량을 테스트할 수 있다. 모형로는 맨홀과 파인 곳, 높낮이 차이
가 있는 곳, 과속방지턱 등 일반 도로를 6~7개 코스에 재현해 놓았다. 실제 운전자들이 경험하는 길을 본떠 만든 공간이다. 실
제 도로에 나가지 않고도 승차감과 차체 강성 등을 테스트할 수 있다. ‘라이딩 앤드 핸들링’ 코스에서는 승차감과 조정 안정성을
평가한다. 시골길·산길처럼 고불고불하고 굴곡이 심한 도로가 이어진다.
테스트에는 계측장비가 동원된다. 최고속도와 순간가속도, 차 쏠림 등을 포함한 모든 경쟁 차 데이터가 저장돼 있어 비교·평가
를 할 수 있다.
총합성능개발실 직원들은 실제 소비자 관점에서 차 성능을 평가하기 때문에 계측장비보다는 드라이버의 감각과 경험에 의존
하는 경우가 많다. 우형복 총합성능개발2팀 중형파트장은 “까탈스러운 소비자의 눈으로 차량을 평가하기 때문에 계측장비로
는 찾을 수 없는 미세한 단점도 포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윤석태 총합성능개발실장 “안전에 중점, 승차감도 겸비한 차 만들 것”
윤석태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총합성능개발실장(56·사진)은 입사 이후 줄곧 자동차 성능 평가를 맡아온 전문가다. 30년 전
기술을 제휴한 일본 업체 미쓰비시의 도움으로 그랜저(일본명 데보네어) 최초 모델을 개발할 때부터 테스트 업무를 보고 있다.
윤 실장은 “요즘 남양연구소에서는 미쓰비시 차를 테스트하지 않는다”며 “그만큼 현대·기아차의 기술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 요즘 소비자는 어떤 차를 선호하나?
“차에 대한 기호는 3~4년 주기로 변한다. 몇 년 전에는 승차감을 많이 따졌다. 요즘은 안전한 차로 경향이 바뀌었다. 안전에 중
점을 두면서 승차감이 좋은 차가 현대·기아차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 소비자의 기호를 잘못 파악해 실패한 사례가 있나?
“유럽 전략형 첫 차종 ‘i40’는 승차감 위주로 만들었는데, 출시 몇 달을 남겨두고 유럽 딜러들이 차를 못 팔겠다고 아우성이었
다. 고속주행 안정성이 높고, 거친 노면에서도 버텨주는 강한 차체를 원한 것이다. 서스펜션 세팅을 부드럽게 하다 보니 제법
빠른 코너링에서 차가 버텨주지 못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 ‘i40 2015년형’은 고속주행 안정성과 코너링이 개선됐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가을 독일에서 유럽 딜러들을 대상으로 시승회를 열었다. 레이서로 활동한 딜러단 대표가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 ‘새로 개발한 차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성능을 낼 수 있느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11월 출시 예정인 신형 에쿠스는?
“최근 시작 차를 만들었고, 총합성능개발실이 평가용 1호차를 받았다. 집중 평가 기간을 거쳐 벤츠S 클래스나 BMW 7시리즈에
버금가는 최고급 세단으로 튜닝할 예정이다.”
◆ 같은 시기 BMW 뉴7시리즈가 나오는데...
“신형 에쿠스에는 벤츠S 클래스와 BMW 7시리즈보다 나은 기능을 몇 가지 이상 넣을 것이다. 과거에는 이들 업체를 따라가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최근 우리 직원들은 ‘현대차 이래도 되는 거야’라는 얘기를 종종 한다. 해외 유명 브랜드에 연연하지 않고
목표를 높게, 멀리 잡고 간다는 것이다. 11월 초쯤 출시되는 에쿠스를 보면 현대·기아차가 자기 길을 걷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준 선임기자
출처 : 경향신문
날짜 : 2015/2/2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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