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임진년이 저물고 있다. 국내 산업계는 밖에서는 글로벌 경기 침체의 한파를, 안에서는 경제 민주화의 거센 바람을 맞아 힘겨운 시간을 견뎠다. 그 가운데 수출과 해외 진출에 활발히 나선 업종도 있고 고전한 업종도 있다. 연합뉴스는 국내 경제를 이끌고 있는 주력 업종들이 한 해 동안 어떻게 기업을 꾸렸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는지 2회에 나눠 점검한다.>
업종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올 한 해 풍랑 속에서 대부분 기업이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 분투했다.
전자·자동차 산업은 세계 시장이 침체한 가운데서도 해외에서 판매 호조를 보이며 선방했다. 철강·조선·정유는 유럽발 재정위기에 따른 장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고전했다.
◇전자산업 불황에도 '선방' = 세계 경제불황과 환율하락 등 악재에도 대체로 양호한 성적을 거두며 선방한 모습이다.
유럽·북미 등 선진시장 위축으로 세계 TV시장이 올해 사상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영상·생활가전 시장 여건은 좋지 않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IT부품산업도 PC 등의 수요 감소와 공급 과잉으로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년 내내 '비상경영'이란 말이 회자될 만큼 주요 기업마다 경영진들의 위기감은 컸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폰과 프리미엄 가전제품에서의 경쟁력을 앞세워 해외 경쟁사들을 따돌리며 세계 IT·가전시장 선두를 지켰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3 등 스마트폰의 세계적인 흥행몰이로 1~3분기 누적 매출액이 145조44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늘었으며 누적 영업이익은 20조6천992억원으로 89% 급증했다. 연간으로는 매출액 200조원, 영업이익 25조원 돌파가 점쳐진다. 세기의 소송으로 불리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스마트폰 특허 소송이 업계 최대 이슈로 부각됐지만 삼성전자의 상승세를 꺾지는 못했다.
LG전자도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배 가까운 1조177억원을 기록하며 한동안의 부진에서 벗어나 완연한 회복세로 돌아섰다. 특히 전략폰인 옵티머스G의 출시와 함께 적자를 내던 휴대전화 사업 부문이 분기 흑자로 돌아서 늦은 대응으로 고전한 스마트폰에서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중견 가전업체들은 크기를 줄이고 가격 거품을 뺀 실속형 가전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개념 가전들을 잇따라 선보이며 틈새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풍파를 이기지 못한 기업도 있다. 코웨이는 불황 속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인한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로 넘어갔다.
내년 전자업계는 장기화되는 불황에 맞서 힘든 싸움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등 주요 업체들은 이미 설비투자 축소 등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선두업체들은 차별화된 기술력과 프리미엄 제품 전략으로 IT·가전시장을 공략하는 공격적인 전략을 펼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해외서 달렸다 = 올해 세계 자동차 시장도 경기 한파를 비켜가지 못했으나 국내 자동차 업계는 선방했다.
내수 침체와 여름철 생산 차질로 안방 시장에서 주춤했으나 수출과 해외 생산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 판매를 늘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 1~11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총 415만6천318대를 생산해 국내에서 127만4천529대를 판매했고 289만5천636대를 수출했다. 작년 동기보다 내수 판매는 5.2% 감소했으나 수출은 1.6% 증가했다.
특히 현대·기아차를 중심으로 국내 업체가 현지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한 차가 크게 늘었다. 1~11월 해외 생산·판매는 332만1천857대로, 작년 동기보다 15.8% 증가했다. KAMA는 올해 연말까지 해외생산(360만대 추정)이 수출(320만대)을 처음 추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홍보관 딜라이트.(자료사진)
국산차 내수 시장은 수입차의 공세와 경기 침체는 물론이고 여름철 노조 파업에 따른 공급 차질로 얼어붙었다. 다만 정부가 9월 중순 자동차에 매기는 개별소비세를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1.5%포인트 내림에 따라 11월 판매가 소폭 증가했다.
경기불황과 고유가의 영향으로 경차가 잘 팔렸다. 1~11월 준중형 세단 아반떼가 가장 많이 팔렸고 바로 뒤를 경차인 모닝이 이었다. 또 스파크 6위, 레이 8위 등 국내 출시된 경차 전 모델이 10위 안에 들었다.
내수 부진 속에 자동차 업계에서는 인력감축 바람이 불었다. 한국지엠은 상반기 부장급 이상에 이어 연말에는 전체 사무직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르노삼성 역시 연구개발(R&D)과 디자인 부문을 제외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그러나 수입차는 올해 시장 점유율 10%를 돌파하며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11월 신규 등록된 수입차는 작년 동기보다 23.7% 증가한 12만195대에 달했다. 고객층이 다양해져 2천만~3천만원대 신차 출시가 잇따랐고 2천㏄ 미만 판매가 49.8%를 차지할 만큼 소형화 추세를 보였다.
내년 국내 자동차 시장 규모는 올해보다 1.2% 성장한 155만대(국산차 140만대, 수입차 15만대), 수출은 3.1% 증가한 330만대가 될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국산차 국내 판매는 올해 수준을 유지하는 데 그치겠지만 수입차는 내년에도 두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점쳐졌다.
◇불황 피하지 못한 철강 = 철강업계는 경기 침체와 철강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 최대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은 유럽발 재정위기 이후 차입금 상환을 위해 작년 하반기 이후 22억2천300만 달러 상당의 자산 매각을 완료했거나 추진 중이다.
국내 철강업체는 중국산 저가 제품의 수입과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주요 업체의 실적에서도 철강 업계가 처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포스코는 올해 1∼3분기 연결재무제표를 기준 매출액이 48조5천359억가량으로 작년 같은 시기보다 3.40% 감소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보면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영업이익은 2조9천143억여원으로 33.60% 줄었고 순이익은 1조8천246억여원으로32.30% 감소했다. 단독 기준으로 보더라도 매출액 5.20%, 영업이익 34.40%, 순이익18.00%씩 줄었다.
포스코는 자사의 영업이익률이 국제 철강사보다 2∼6% 포인트 높고, 시가총액과 신용등급 1위를 유지하는 점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고 있다. 제품경쟁력 강화, 핵심 업종을 중심으로 한 계열사 정리 작업 등을 추진하며 불황을 파도를 넘자고 내부를 다지고 있다.
업계 2위인 현대제철[004020]은 올해 3분기까지의 순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90% 늘었다. 하지만,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4.80%, 28.60%씩 줄어드는 등 역시 경기 침체의 영향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철강 시장의 내년 전망도 그리 좋지 않다. 세계철강협회는 내년 전 세계 철강수요가 14억5천490만t으로 올해보다 3.2%가량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올해 10월 전망했다.
지난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 2012 전시회에서 LG전자가 부스 입구 중앙에 총 14대의 올레드TV를 이용한 조형물을 선보인 모습.(자료사진)
◇장기 불황 늪에 빠진 조선업 = 상선 발주가 많은 유럽 시장의 경제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조선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 조선·해운 분석업체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한국 조선업계가 수주한 선박은 604만8천957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작년 동기의 1천353만2천324CGT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 상선 시장에서 발주가 급감했고 중국 조선사들의 저가 경쟁으로 신조선가가 곤두박칠쳤다. 들어온 선박 주문이 취소되는 사례도 많았고 선수금보다 잔금의 비중이 높아진 지급방식도 조선사에 부담을 더했다.
상선을 주로 만드는 국내 중소 조선사들은 경영난에 허덕였다. 삼호조선 등 중소 조선사가 올해 폐업했거나 폐업 위기에 몰렸다.
대형 조선사들은 해양 플랜트를 중심으로 수주를 이어 갔으나 경영 환경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은 조선·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올 1~11월 작년 동기보다 35% 적은 193억달러를 수주했고 삼성중공업은 올해를 보름가량 남겨둔 현재 90억달러를 수주해 작년 한 해의 150억달러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중공업은 사상 처음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조선·해운업을 두 축으로 한 STX그룹도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섰으며 해운 계열사인 STX팬오션 지분을 매각해 조선업 중심으로 그룹 사업구조를 재편하기로 했다.
올해 대형 조선사들은 특수선과 드릴십,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설비) 등 원유·천연가스 생산과 관련한 해양플랜트 수주에 집중해 활로를 모색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해양부문 수주 비중은 80% 안팎에 이른다.
내년에도 추세가 이어져 국내 기업들은 중국 경쟁업체보다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가격이 높은 고부가 선종과 해양 플랜트 수주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또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하는 추세인 만큼 연비 효율이 높은 그린십 개발·생산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롤러코스터' 탄 정유산업 = 작년 고유가 덕에 호황을 누린 정유사들은 올해의 경우 롤러코스터를 타듯 극심한 변동을 겪었다.
1분기에는 고유가 구조가 이어지면서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비교적 선전했지만 2분기부터 국제유가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가운데 정부가 알뜰주유소·전자상거래용 석유제품 수입 등 석유유통구조 개선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정유사들의 사업 환경을 더욱 악화시켰다.
다만 정유사들이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려 전체 매출의 60% 이상으로 수출을 확대하면서 성장 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휘발유·경유 등의 석유제품은 올해 역대 최고인 560억달러(추정치)의 수출 실적을 달성, 반도체·조선 등을 제치고 우리나라 수출품 1위 자리에 등극했다.
2013년에는 국제유가 하락이 지속하면서 정유사들이 올해보다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수출 성장률도 올해 10%에서 내년에는 5~6%대로 추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합뉴스 산업팀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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