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1.8m, 세로 2m의 검은색 철제 상자 안에서 파란색 불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슈퍼컴 4호기였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최고성능 컴퓨터보다 200배 빠른 슈퍼컴은 수많은 가상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타이어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대지면적 3만4873㎡, 연면적 2만2823㎡ 규모의 금호타이어 중앙연구소. 용인에 있는 이 연구소는 금호타이어가2008년 착공했다가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건설을 중단했다.그러나 연구개발(R&D)를 통해 ‘기술 명가 금호’를 재건하겠다는 집념으로 연구소 공사를 재개해 지난 2일 완공했다.
미국 조지아주 공장을 먼저 지을 수도 있었지만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당장의 판매와 수익보다 미래를 내다보며 중앙연구소를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박 회장이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표현한 중앙연구소는 모두 1000억원이 투입됐다. 타이어 생산공장(1단계)을 지을 수 있는 돈이다. 특히 이번에 들여 온 슈퍼컴 4호기는 중앙연구소의 브레인으로 금호타이어가 추구하는 R&D 혁신의 중심에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IT부분을 관리하는 아시아나IDT에서 특별히 24시간 관리하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그 동안 시제품을 직접 만든 후 테스트를 통해 타이어를 개발했으나 앞으로는 슈퍼컴을 이용해 설계 초기 단계부터 가상 공간에서 타이어의 성능을 평가해 제품 품질을 높일 계획이다. 과거에는 뉴질랜드 설원에서 해야 했던 실험이 연구실로 들어온 셈이다.
슈퍼컴은 가상의 눈길을 만들고 그 위에다 새로 디자인한 타이어를 다양하게 시험해보며 장단점을 찾아낸다. 금호타이어는 이 과정을 '아이-무브'(i-MOVE)라고 이름 붙였다. i-MOVE는 3D로 타이어를 구현해 각종 성능을 검증할 뿐만 아니라 완성차에 적용했을 때 승차감까지 미리 파악해 볼 수 있다. 테스크 결과를 바탕으로 최적의 설계를 도출해 낸다.
금호타이어는 슈퍼컴을 통해 타이어의 총 개발 기간을 40% 단축하고, 개발비용을 6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판매되는 타이어의 품질은 20~30% 가량 개선하는 게 목표다.가상 테스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팀도 따로 운영해 지속적으로 테스트의 신뢰도를 높일 예정이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하면 기존에 5일이 걸렸던 시뮬레이션 과정을 하루로 줄일 수 있다”며 “개발 기간은 짧아지지만 성능 예측 신뢰도는 더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슈퍼컴은 중앙연구소뿐만 아니라 미국 애크론의 북미기술연구소(KATC),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기술연구소(KETC), 중국 톈진의 중국연구소(KCTC), 광주퍼포먼스센터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이용이 가능하다. 전세계의 연구소들이 중앙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결돼서 움직이는 것이다.
손봉영 연구본부장은 “각 연구원들이 진행하는 연구들이 슈퍼컴에 쌓이면서 빅데이터화 되고 그것이 다시 개발에 활용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계획”이라며 “당장의 가시적인 생산량보다는 미래를 위한 R&D에 힘쓸 계획이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는 용인 일대가 현대기아차, 르노 삼성, 현대모비스 등의 기술연구소가 들어서 있어 국내 자동차·부품산업 연구클러스터의 역할을 하고 있어 중앙연구소와 타 연구소간의 협업을 통해 최고의 타이어를 개발해 나갈 방침이다.
김남이 기자
출처-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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