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과 5일 이틀 동안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에서 열린 '서킷런 2010' 행사가 끝난 뒤 행사
진행 미숙을 지적하는 얘기가 곳곳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매끄럽지 못한 이벤트 진행은 물론 부족한 편의시설로
참가자와 관람객의 빈축을 샀고, 불편한 숙박 문제까지 겹치면서 불만은 더욱 치솟았다. 이를 두고 한쪽에선 대회
운영법인인 KAVO와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GP)조직위원회가 그동안 소규모 행사만 진행했을 뿐 대형행
사를 치른 경험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기도 하다.
첫날 진행된 관람 이벤트는 더욱 세심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몇몇 관람객은 "이날 이벤
트 가운데 마지막 행사인 포뮬러카 시범주행을 제외하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없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특히 프로그램의 느린 진행속도를 문제로 지적하는 이도 있다. 한 관람객은 "고속서킷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라 기대
했는데 너무 느린 행사여서 아쉽다"고 말문을 연 뒤 "그러나 현역 레이서 카룬 찬독의 포뮬러카 시범주행은 정말 감
동적이었고, 10월 대회도 꼭 보러 오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실제로 포뮬러카 시범주행을 제외하면 관중들이 몰려 있는 메인그랜드스탠드 앞을 시원스레 내달리는 모습을 보인
행사는 없었다. 그런 탓인지 관중들은 포뮬러카 시범주행이 끝나자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큰 박수로 답하며 열
광했다. 그나마 포뮬러카 시범주행으로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부족한 편의시설도 이번 행사의 허점으로 드러났다. 행사를 주최한 KAVO 관계자는 3,000명 넘게 행사에 참석했다
고 밝혔다. 그러나 그 인원 모두 이용할 만한 편의시설은 분명 부족해 보였다. 먹고 마시며 쉴 공간도 마땅치 않아
우왕좌왕하는 관람객 모습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일반 관람객이 이용할 화장실은 경주장 1층에 마련된 간이 시설이 전부였다. 게다가 메인그랜드스탠드 맨 위
에 있는 VIP룸에서 화장실을 가기 위해선 아파트 8층 높이를 오르내려야 했다. 물론 원래 따로 화장실을 마련 중이
지만 VIP라고 불편에 예외는 없었다.
행사 두 번째 날 레이싱카를 타고 서킷을 도는 이벤트인 '택시드라이빙'은 CJ 슈퍼레이스에 출전하는 팀과 선수들
의 협조를 얻어 진행했다. 선수들 사이에선 자신들의 대회 1주일을 앞두고 이런 이벤트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
리라는 말이 나왔지만 모터스포츠 발전이라는 명분과 F1 서킷을 맛볼 수 있다는 실리 덕에 자원봉사(?)를 하게 됐
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미숙한 진행으로 경주차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선수도 지쳤다. 정확한 시간과 인원을 정해놓지 않았던 것.
급기야 마샬과 행사 진행 담당 직원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고, 참여 선수도 결정되지 않아 우왕좌왕했다.
기승을 부리는 늦더위로 에어컨도 없는 차 안에서 선수들은 비지땀을 흘려야 했다. 선수뿐 아니라 경주차도 더러
더위를 못이겨 엔진 과열로 주행을 포기한 사태까지 생겼다.
마지막으로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참가자들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 자동차 동호인들은 "서
킷에서 시원하게 달려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고생을 감수하고 이곳을 찾았으나 고생만 잔뜩 했다"며 "최소
한의 배려는 해 줘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푸념을 늘어놨다.
아울러 퍼레이드를 위해 참석한 동호회원들은 주유 문제로 불만을 제기했다. 한 회원은 "고급 스포츠카는 고
급유를 넣어야 하는데 서킷 주변에는 고급유를 파는 주유소가 없다"며 "그래서 주최측에 섭외를 부탁했으나
의없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몇몇 참가자는 셔틀버스 행선지 변경 공지를 듣지 못해 엉뚱한
곳에 내렸지만 해결방법은 없었다.
물론 이 같은 지적에 주최측도 할 말은 있다. 무더운 날씨 같은 변수가 많았고 특히 유료 행사가 아니라 무료
행사여서 질을 높이기엔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작은 오해가 크게 부풀려진 일도 적지 않다고 전했
다. 더불어 관객들은 서킷을 구경하고 싶어 초청해 준 사람들인데,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처럼 너
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KAVO 관계자는 "행사 진행과 편의시설은 프로그램의 진행 순서에 따른 관람객들의 동선을 고려
해 볼 때 전반적으로 큰 불편은 없었다"며 "다른 나라의 서킷도 비슷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게임장비는 물론 물과 주류 등 여러 협찬사가 참여해 편의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사실 국내에 포뮬러원 그랑프리는 낯설다. 특히 서킷에서 경주용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을 가진
사람은 더욱 드물다. 그렇기에 행사를 준비하는 주최측도 눈높이를 낮춰야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큰 대회를
자주 개최하는 유럽 눈높이가 아닌 이제 걸음마를 떼는 아이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서킷을 찾는 사람을 배려해
야 했다는 얘기다.
"서킷은 원래 이래요"라는 말은 변명에 불과하다. 처음 경주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강요할 이유는 없다.
티켓 값이 만만치 않다고 느끼는 게 일반적인데 그만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불편을 감수하
고서라도 서킷을 찾은 보람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이번 행사의 주인공은 레드불 레이싱 팀도 포뮬러카도 카룬 찬독도 아니다. 서킷이 주인공이다. KAVO는 대회 50
일을 앞둔 상황에서 서킷의 위용을 당당히 드러내고 그 위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서킷이 아
직 완성되지 않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걸로 보인다.
대회 개최에 앞서 준비 상황을 공개하고 성공적 개최를 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파티를 마련했지만 정작 주인공
이 파티복을 입지 못해 화려한 초대 손님에게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주최측은 이번 행사로 매우 아픈 '예방 주사'를 맞았다. 날씨와 예산 탓만 하기엔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번 행사를 진행하면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남은 46일이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 한국인 특유의 '하면 된다'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은 곤란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회 성공 개최를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스폰서에게는 성공의 확신을 주고 관람객들에게는 재미를 약속해야 한다. 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가 성
공적으로 열려 세계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대한민국이 다시 한 번 자랑스런 모습을 보이길 기대해 본다.
박찬규 기자 star@autotimes.co.kr
출처 - 오토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