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프랑스가 르노자동차의 산업 스파이 사건을 놓고 외교적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프랑스 르노자동차가 자사의 전기자동차 기술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 경영진 3명을 직무정지하고
조사에 착수하면서 시작됐다. AFP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자동차업체 르노는 정보 유출 혐의를 받고 있는 미셸
발타자르 부사장 등 임원 3명을 직무 정지시킨 데 이어 11일에는 이들을 본사로 소환, 사실상 해고절차에 돌입했다.
르노는 연루자들을 고소해 강력한 법적 대응 절차를 밟기로 했다. 그러나 발타자르 부사장 등 3명은 자신에 대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건은 처음에는 단순한 산업기술 유출 사건으로 보였으나 프랑스 언론이
중국 회사를 배후로 지목하면서 이 사건은 중국과 프랑스가 얽힌 외교적 사안으로 비화된 것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이번 사건에 중국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선 바 있다. 르 피가로는 11일
중국의 전력 회사가 문제의 르노 경영진 2명이 개설한 스위스 및 리히텐슈타인 은행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고
보도했다. 시사주간지 르 푸앵도 프랑스의 한 자동차 하도급 업자가 중국 바이어들을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 이번 르노차의 기밀 유출에 중국이 관련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프랑스 정부 소식통도 국내중앙정보국
(DCRI)이 르노자동차의 기밀유출에 중국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프랑스가 직간접적으로 중국을 겨냥하자 발끈하고 나섰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관련 보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이 사건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고 무책임한 것으로 중국은 결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박했다.
중국과 프랑스는 최근 몇 년 새 각종 이슈 때문에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 왔다. 중국과 프랑스는 2008년
티베트인들이 파리에서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을 계기로 관계가 얼어붙기 시작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그해 12월 티베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면담하면서 심각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당시 프랑스 유통업체 까르푸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중국 정부
역시 각종 회의와 지도자 방문을 취소하며 프랑스에 사실상의 보복을 가했었다. 양국 관계는 일정 시간이
흐르고 나서 프랑스가 중국에 화해 의사를 타진하고 양국이 물밑협상을 통해 관계 복원을 추진하면서 현재는
정상화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사이에 르노 산업 스파이 사건이란 악재가 터진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이 사건이 양국간 핵심 이익이 침해된 것은 아닌 만큼 외교적 보복까지 빚어졌던 과거처럼
심각한 갈등으로까지는 번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은 과거 세계 3대 철광석업체인 리오틴토
인수를 둘러싸고 스파이 소동으로 호주와 마찰을 빚었지만 이 사건은 티베트, 대만 문제 등 핵심이익과
연관된 사안은 아니어서 호주와 극심한 외교 갈등으로까지 비화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중국을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공식 발언은 삼가고 있는 상태다.
홍재성 기자 jsa@yna.co.kr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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