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과 언론권력 간의 상관관계
보통의 의미에서 권력이란 정치권력, 더 구체적으로는 대통령의 권력을 의미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여기에 버금가는 권력이 하나 더 있다. 그건 언론권력이다.
언론이 매체를 통해 힘을 갖는 것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지만, 그 힘이 정치권력에 버금갈 정도로까지 기승을 부리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으며, 특히 그러한 힘에 마땅히 따라야 할 도덕이나 윤리 등을 헌신짝마냥 내팽개치고 있는 언론이 압도하고 있는 나라로는 아마도 선진국 어쩌구 하는 나라 가운데 우리가 거의 1,2위를 다투지 않을까 생각된다.
조중동으로 표상되는 우리의 언론권력은 노무현 대통령 집권시기 동안 인터넷 언론의 등장 등으로 많이 퇴색하긴 했으나 막강한 자본력과 수백명 기자들의 취재력을 바탕으로, 한 정권을 흠집내고 진정한 가치를 폄훼하는데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겠다.
지금 추세로는 매우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거나 아니라면 무소속의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언론권력의 입장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더 유리하겠는가. 순수하게 전략적 측면에서 바라보기로 하자.
왜 조중동이 이명박 후보에게 관대한가
조중동으로 표상되는 언론권력의 현재 최고선은 정권교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10년 집권을 이번에는 기필코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 지상의 명제인 것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마당에 이회창 후보의 등장은 말하자면 '평지풍파'다. 이명박이든 이회창이든 인물 자체는 그들에게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나, 이회창 후보의 등장으로 인해 만에 하나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에 흠집이 간다면 그것은 큰 문제다. 현재 언론권력이 '이명박 몰아주기'를 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도 있다. 언론권력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처럼 언론권력을 누르지는 못하지만, 권력운용이란 측면에서 그들을 철저하게 무시로 일관하는 사람일 경우에도 껄끄럽지만, 강력한 파워와 리더십을 갖고 있는 대통령도 역시 그들에게는 껄끄럽다. 김영삼-김대중 두 김씨는 이들 언론권력에게 그러한 사람이었다. 리더십은 없었지만 총칼이란 강력한 수단을 갖고 있었던 전두환 역시 이들 언론권력에게는 껄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명박-이회창 두 후보 가운데 이들 언론권력에게 더 껄끄러운 사람은 단연 이회창 후보다. 왜 그런가.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명박 후보보다 이회창 후보가 약점이 적기 때문이다. 아니, 이회창 후보의 약점은 이미 두번의 대통령선거를 통해 검증을 거쳤지만, 이명박 후보의 약점은 여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아니, 대선까지 남은 시간 등을 고려하면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증은 오히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BBK사건은 물론이고 선거법 위반과 증인도피 혐의, AIG특혜 의혹과 도곡동 땅 의혹 등 이명박 후보에게 걸려있는 의혹들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 의혹들은 사실 야당후보이기 때문에 묻히는 측면도 있다. 야당 탄압이니 뭐니 하는 기존의 전매특허가 아직도 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많은 의혹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란 언론권력의 충분한 거래대상이 될 수 있다.
대통령으로서 직무수행과 관련해 치명적 약점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지난 5년간 굶주려온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보증해줄 담보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 언론권력의 구미에는 이명박 후보가 더 맞는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에는 이 정권의 무기력함에 대한 반발도 많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즉 강력한 대통령을 원한다는 얘기다. 이런 지지자들에게는 아이러니가 되겠지만,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검증이 끝나지 않은 그의 많은 약점들로 인해 많은 부분 언론과, 야당과 타협해야 하는 처지에 빠질 개연성이 훨씬 높다.
즉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의 지지자들이 원하는 만큼 강한 대통령이 될 수가 없다는 얘기다. 클린턴은 집권기간 내내 르윈스키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 이명박 후보를 옥죄고 있는 많은 의혹들은 본질 면에서 르윈스키 스캔들보다 더 태풍급 위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의혹들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결코 해소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지금까지 그를 비호하면서 큰 사실은 한두줄로 보도하고, 작은 사건은 아예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국민들의 비호감으로부터 그들 차단시켜왔던 밀월도 끝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명박을 둘러싼 의혹은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더 큰 문제다. 후보일 경우에는 아직 대통령이 아니란 점이 마지막 보루이긴 하나, 대통령이 된다면 바로 그 보루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큰 약점을 안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기성언론권력에겐 더 호감이 가는 대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의 주변에서는 '강한 대통령 이명박'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이명박이 대통령 되면 밤길 조심하라며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하는 인간이 어디 모 탤런트만이겠는가. 이는 말하자면 '강한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의 극단적 반영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요 착시다.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최약체 대통령이 될 개연성이 훨씬 더 높다.
그렇다 하더라도 만일 이회창 후보가 출마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당선에는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이란 대안이 생긴 지금은, 정말로 BBK 사건을 비롯한 각종 의혹 폭로의 진척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지금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가 몇 %냐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정식으로 대선 레이스에 들어가게 되면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폭로와 검증이 가열차게 끓어오를 것이다. 그때 그와 같은 폭로나 의혹에 실망한 이들이 이회창이란 대안을 갖고 있다는 것이 현재로는 중요한 포인트다. 그래서 역시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동안 수차례의 선거가 그러했듯이, 온갖 여론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투표함을 까봐야만 분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역시 우리나라는 예측불허의 나라다.
덧글) 이회창이 출마하면 3파전이고, 그럴 경우 희망제로였던 범여권에게도 기회가 한 1~2% 생기는 건데... 정동영 민주신당 후보의 입장에서 호남텃밭 지지라도 온전히 받겠다는 전략인 민주당과의 합당은 그런 1~2% 가능성을 날려버린 전략적 오류다.
물론 정동영 후보야 민주당과 합당해 지지율을 20%대로 끌어올리고(호남의 지지만 온전히 받으면 그것도 가능하긴 하다), 그 여세로 범여권 후보단일화를 하겠다는 전략에서 이 일을 추진했겠지만, 세상 일이 자기 뜻대로만 흐르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대선을 포기하고 총선을 겨냥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개연성이 더 큰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문국현 후보측이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
민주당과의 통합보다는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 논의가 더 시급한 문제였다. 사실 민주당과의 통합문제는 대선 이후에 논의하더라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통합안해도 사실 문제는 없다. 호남이란 텃밭은 민주신당과 민주당이 나누는 것이지 여기에 한나라당이 끼어들 여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거꾸로 간 게 아니냐는 생각이다. 전략적 미스다.
ⓒ 서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