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합과정중 일부 발췌
참모들은 이철승의 본부를 찾아가 전라도라는 지연을 근거로 김대중 지지를 부탁했다. 그러나 이철승은『정치와 고향선배를 몰라보는 김대중을 지원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김대중은 이날 밤 청진동 일대 여관에 나뉘어 여장을 풀고 있던 대의원들에게 이희호, 김상현 등을 대동하고 찾아가 일일이 큰절을 한 후 지지를 호소했다.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들은 표의 이탈을 막기 위해 각 계보별로 집단투숙을 하면서 다른 계보요원의 침투를 막으려고 파수군까지 세워 두었다. 그러나 김대중은 서슴없이 적진에 뛰어들어 큰 절을 올리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에 앞서 김대중은 지난 8개월 동안 전국의 지구당을 누비며 대의원들을 설득했다. 이러한 강행군으로 조직의 밑바닥을 다졌다. 민주당 신파에 속했던 김대중은 민주당 구파가 주도권을 잡은 신민당에서 비주류에 속했다. 신파 원로인 정일형과 박순천의 지지를 받았으나 열세를 면할 수 없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김대중은 김영삼과는 반대로「저인망 어선」「베트콩 작전」이라고 불릴 만큼 하부조직을 파고드는 데 힘을 기울였다.
9월 28일 밤 김대중은 동아방송의 김 모 기자를 만나 두 가지를 부탁했다. 그는 야당가의 움직임을 한 눈에 꿰뚫고 있었다(이 나라에는 ‘정치군인’도 있고 ‘정치기자’도 있다. 숫자로 따지면 후자가 전자보다는 몇 배 많을 것이다. 그뿐인가. 정치목사, 정치신부, 정치승려, 정치학생, 정치앵커, 정치검사, 정치교수, 정치교사, 정치시민단체 등 ‘정치’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 존재가 매우 많다. 정치군인만 비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
『김형, 난생 처음의 부탁이오. 지금 고흥문 사무총장이 엄청난 돈을 풀고 있다는 정보가 있는데 이 시간부터 돈을 쓰지 말길 바란다는 내 말을 전해주시오.』
김대중과 고흥문은 국회 재정경제위 소속이었다.
『다른 하나는 김의택 전당대회의장에게 내일 아침 당헌개정안이 상정되면 우리 쪽 개정안에 손을 들어 달라고 전해 주시오. 떨어지더라도 정치생명은 유지해야 하니 이 두 가지 부탁을 제발 들어주시오.』
김대중은 9월 29일 아침 대회장인 시민회관 입구에 수백 명의 지지자들을 동원, 멜빵을
메고 함성을 지르도록 했다. 지지자들은 김대중의 대형 사진을 붙인 피켓을 들고 입장하는 대의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피켓에는「金大中 同志를 大統領 候補로!」「勝利의 旗手 金大中 同志 萬歲!」라고 써 있었다.
투표 전 이철승은 신상발언을 통해 김영삼을 밀겠다는 서약이행을 선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상발언이 봉쇄되었다(이것을 정치공작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격분한 이철승계 대의원들은 모두 백지투표를 하였다.
대의원 투표결과는 김영삼 421표, 김대중 382표, 무효 84표(이중 78표가 백지 투표, 이철승 계보의 투표였다)였다. 과반수인 443표에서 김영삼은 22표가 모자랐다. 계산대로라면 대의원의 40%를 차지하는 유진산계, 두 번째로 큰 계보인 이재형계의 약속, 그리고 서약대로라면 이철승마저 김영삼을 지원하게 되어 있으므로 대의원 3분의 2의 지지를 받게 되는 김영삼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진산직계표와 이재영 계보표가 상당수 이탈한데다 이철승 계보가 백지투표를 한 것이다. 과반수 득표자가 없자 40분간의 휴회가 선포되었다.
무효표를 주도한 이철승계 참모 조연하는 자파 대의원들을 한 데 모아놓고 “우리가 끝까지 캐스팅 보트를 쥐기 위해서는 굳게 결속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김대중은 과반수에서 61표가 모자랐으므로 이철승 계의 백지투표 78표만 얻으면 2차 투표에서 역전할 수 있었다. 김대중은 이철승의 참모 조연하와 직접 협상했다.
“조 선배님, 저는 선배님과 고향도 같으려니와 선배님의 도움으로 신민당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더욱이 김영삼은 경상도입니다. 저를 밀어주십시오.”
“이 조직표는 素石(이철승의 호)이 다져놓은 기반입니다. 소석의 앞날을 위해 무엇을 약속하겠소?”
“선배님, 무엇이든지 요구하시는 대로 각서를 쓰겠습니다.“
“정치인에 있어 위상이란 자신의 지위로 말하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대통령후보 지명을 받게된 사람은 경륜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야당의 제일인자가 되고 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통령 후보라 해서 어떻게…”
“거두절미하고 소석(이철승)을 위해 어떻게 하겠소?”
“앞으로 전당대회의 총재 경합은 물론 다음 대권 경쟁이 있을 시 그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겠습니다.” (김대중은 명함에 이같은 내용을 써서 서명을 해 조연하에게 건넸다)
김대중이 이미 박정희 보다 정치적으로 먼저 이용했는데요??
한도끝도 없을듯 ....
어쨌든 잘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게 큰오류를 범했다고 하시는 말씀은....
제,생각은 좀, 그런거 같습니다,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 역사관이 같을수는 없는거라....
아무튼 참고는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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