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리더십’은 무엇인가
현 지지도는 ‘박정희·육영수 후광’… 자신만의 고유한 ‘정치상품’ 보여줄 때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가 생전에 청와대에서 가족식사를 하는 모습.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최근 한 TV방송에 나와 자신의 “허리둘레가 26인치 반, 몸무게는 30~40대와 거의 같다”고 밝혔다. 국가최고지도자를 꿈꾸는 박 전 대표가 국민적 스킨십 강화를 위해, 혹은 건강한 자신의 몸매를 강조하기 위해 허리둘레와 몸무게의 수치를 공개했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국가최고지도자가 되는 조건 중에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은 다른 어느 조건보다도 선행된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그렇게 선의로만 보지 않는다. “자신의 몸매에나 신경 쓰는 여성이라면 애초부터 국가최고지도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시각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몸매 자랑은 국민에 가벼운 인식
박 전 대표가 굳이 자신의 ‘얼짱 몸매’를 과시하며 ‘26인치 반’이라고 구체적 수치를 강조한 데서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는 국가최고지도자로서 국가적 난제보다는 자신의 몸매를 다지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의 일상이 그려진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가 여성으로서 ‘연약하다’는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한 번 더 각인시키고자 하는 안간힘의 발로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TV출연은 안타깝게도 김영삼 전대통령의 ‘새벽조깅’을 연상시킨다. “국가지도자가 여성이라면 남성과 달리 이런 데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겠구나…”하는 새삼스러운 인식을 국민들로 하여금 갖게 만들었다. 동시에 “요동치는 21세기 한국의 앞날을 위해서 여성지도자는 아직 시기상조야!”라는 생각을 국민들에게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박 전 대표도 물론 잘 알고 있겠지만 자신에게 쏠리고 있는 현재의 국민적 관심과 지지, 특히 50~60대들이 보여주는 그것은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에 대한 ‘식지 않는 그리움’을 박 전 대표로부터 대리충족하고자 함에 있을 것이다.
엄부자모로 대변되는 권위주의시대의 가부장적 가정문화 속에서 부대껴온 50~60대들은 ‘독재자 박정희’의 그늘에 숨어 ‘자애로운 어머니’로 일관한 육영수 여사의 체취를 박 전 대표로부터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걸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살벌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현실정치의 최고지도자가 아닌 ‘희생적 어머니상’을 박 전 대표에게서 새삼 확인하고픈 애절한 소망이었을 터이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 카리스마’의 진면목이라면 진면목이다. 자신에 대한 ‘국민적 인기도’와 대선을 겨냥한 차후의 ‘정치적 지지도’가 전혀 별개의 성격이라고 인식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5·31지방선거 직전 그가 당한 테러로 인해 ‘희생적 어머니상’은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정국을 강타했던 ‘박풍(朴風)’의 실체는 바로 박 전 대표의 이미지가 ‘자애로운 어머니상→희생적인 어머니상→제2의 육영수’의 이미지로 에스컬레이트됐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맞을 21세기의 한국은 ‘엄부자모’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시대가 결코 아니다.
박 전 대표는 양성평등 시대를 맞은 현시점에 남성지도자에게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여성 특유의 ‘부드럽고 청결한’ 리더십(소프트 앤 클린 리더십)에 기반한 고유의 정치상품을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 최근 자신의 지지도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여성이라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북 핵실험과 관련된 결과”라고 언급한 대목은 ‘여성대통령’을 지향하는 정치지도자답지 않은 패배주의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 ‘잡탕적 모습’ 정비 시급
박 전 대표는 지난 11월14일 선친 박정희 전대통령의 89회 생일을 기리는 한 모임에 참석, “지금 우리 국민은 (선친 때보다) 더 고통스럽다”면서 “이는 국가 리더십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목적지를 잃은 채 어두운 밤길을 헤매고 있는 양상이다. 박 전 대표가 지적한 ‘리더십의 부재’에서 비롯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박 전 대표에게서 난국을 돌파할 ‘박근혜 리더십’의 실체를 도무지 확인할 기회가 없다. 현단계에서 박 전 대표에게 국민들이 보내는 성원과 지지는 국가를 이끌어갈 최고지도자로서의 리더십도 아니요, 국가경쟁력을 극대화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지도력을 확인한 결과도 아니다. 박 전 대표가 “한국이 처한 오늘의 혼돈이 바로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됐음”을 인식했다면 서둘러 자신만의 확고부동한 ‘박근혜 리더십’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당당하게 떼어낼 자기만의 ‘21세기 한국적 리더십’의 실체를 보여줘야 한다. 국정시책이나 주장을 곁들인 여타 주자의 리더십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정치상품을 이제는 정치좌판에 보란 듯이 진열할 시점인 것이다.
현재 그의 국민지지도는 선친인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음덕과 후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역설적으로 박 전대표는 돌아가신 아버지 박정희를 넘어설 때라야 비로소 21세기가 요구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박 전 대표에게 남겨진 주요과제 중 또 하나는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잡탕적’ 모습을 시급히 정비하는 일이다. ‘수구꼴통’으로 불리는 수준 이하의 인사들과 건강한 보수주의자, 그리고 진보적 인사들이 한데 어울린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한지붕 세가족의 혼란스러운 정치집단이다. ‘잡탕밥 정당’ ‘비빔밥 정당’이라는 기왕의 국민적 비아냥을 해소하는 길이야말로 차기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지역성 극복의 지름길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고언을 한다면 여성으로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불임성’의 덫으로부터 한시바삐 빠져나오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지도자, 출산의 경험이 없는 여성지도자 모두에게 ‘불임성’이라는 딱지를 그리 쉽사리 붙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국민이 박근혜 하면 먼저 떠올리는 것이 ‘불임성’이라면 이에 대해 면밀한 대처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공주병’ 부정적 이미지 씻어내야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출산의 고통 끝에 자식을 키우면서 얻는 희로애락, 그 가운데서 자연스레 육화된 모성애·인간애야말로 불임성의 반대편에 있다 할 것이다. 불임성이라 해서 그것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또 다른 모성애와 인간애를 통해 불임성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가 바로 불우이웃(장애우) 돕기와 갓난아이 입양 등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 전 대표에게서 우리 국민들은 그러한 또 다른 모성애와 인간애를 통한 불임성 극복의 노력을 발견할 수 없다. 박 전 대표가 아이를 입양해 양육함으로써 본의 아닌 ‘불임성’으로부터 탈출하려고 노력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인간적 불임성’과 ‘정치적 불임성’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면 대통령을 꿈꾸는 그에게는 더 더욱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의 고언은 그에게 부정적 이미지로 고착돼가는 ‘공주병’을 한시바삐 털어내라는 것이다. 난마처럼 얽힌 오늘의 한국현실에서 ‘우아한 여성적 리더십’은 국가최고지도자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유신공주’ ‘독재자의 딸’이라는 반대파들의 대명사를 당당하게 돌파하지 않고선 결코 새로운 한국을 건설할 선봉장 대열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미화와 예찬을 벗어나 비판과 질시의 한복판에 서는 것도 크나 큰 용기라는 점을 거듭 지적해두고자 한다.
윤재걸 한국정치인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