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난리 끝에 아주 작은 뼈조각 하나 때문에 '크릭스톤 팜스'에서 생산한 미국산 쇠고기의 반입이 금지되고, 다시 같은 회사의 2차 수입분이 초조하게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한다고 몰래 수입을 추진했던 이 사태는 이렇게 끝난 것이냐? 물론 아니다. 길고 긴 광우병 문제의 첫 발을 우리나라가 갓 떼었을 뿐이다.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가 했던 '짓거리'의 전례를 볼 때, 이 사건은 결국 우리나라에서 광우병 환자가 발생해야 끝이 날 것이다.
이 정도 되었는데도 문제의 근원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일련의 일들을 총지휘하는 사람이 한명숙 총리이고, 그에게 조언하면서 사태를 이 지경까지 끌고온 사람들이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기 위해서 현 상황에서 몇 가지 오해와 앞으로의 문제점을 잠깐 생각해보도록 하자.
[오해①] 미국 사람도 다 먹는 쇠고기인데, 뭘!
1년 전 우리나라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앞장서서 열었던 사람은 미국에 유학 혹은 연수갔던 경제 관료들이다. 이 사람들의 생각은 단순하다. "어차피 미국 사람들도 다 먹고사는 쇠고기인데, 왜 유독 우리나라 시민단체만 문제가 있다고 하느냐? 좀 지나친 것 아니냐?"
일견 그럴 듯 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식습관이 미국과 전혀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티본 스테이크와 햄버거를 제외하면 미국에서는 쇠고기 뼈를 먹거나, 부위를 혼합해서 갈아먹는 요리법이 별로 없다.
햄버거야 어차피 정크푸드. 미국은 철저히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식품 시장과 부자들이 먹는 식품 시장이 분리되는 추세다.
가끔 토크쇼 같은 곳에서 논란할 때 외에는 별 소리가 없다. 방송에서 햄버거 안 먹겠다고 한 번 말했다가 수십억원짜리 소송이 걸린 어느 유명인 사건 같은 때에나 잠시 얘기될 뿐이다. 고가의 유기 축산만 먹는 맨해튼 거주자들은 미국에 살더라도 광우병과 전혀 상관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하이엔드 마켓'이 별도로 분리된 것도 아닐뿐더러 식습관이 쇠고기를 삶아서 만드는, 소위 '쇠고기 베이스'로 만드는 음식이 워낙 많아 전국민에게 고르게 위험을 나눠갖게 된다. 부자라고 별로 안전하지도 않은, 이상한 평등이 존재하는 셈인다. 이런 나라에서는 쇠고기 관리가 훨씬 엄격해야 한다.
살코기만 썰어먹는 나라와 뼈째 우려먹는 나라
우리나라 식약청 관리 기법과 수준이 좀 엉성하기는 해도, 외교부와 재경부의 고급 관리들이 우리나라 잘 살게 한다고 설쳐대기 시작한 작년 말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쇠고기가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았다.
그 가장 큰 증거가 수입국 관리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딱 4개의 국가로부터 쇠고기를 수입한다.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그리고 문제의 미국산 쇠고기. 그렇게 네 나라로부터만 쇠고기를 사올 정도로 나름대로 온 국민이 먹는 쇠고기를 깐깐하게 관리하던 나라였다. 광우병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되면서 세 나라만 우리나라 시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지금 한명숙 총리 뒤에서 조언하는 그 재경부 공무원들이 식품행정에 나서서 설쳐대기 이전까지의 일이다. 라면에서 떡국, 냉면, 설렁탕 그리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파는 안성국밥까지, 우리나라 음식에서 '쇠고기 베이스'가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별로 없다.
살코기를 나이프로 썰어먹는 미국과 뼈와 고기를 우려서 국물로 음식을 만드는 우리나라는 식습관이 전혀 다르고, 그래서 한 조각이라도 위험성 물질이 이런 대량 제조과정에 들어가면 온 국토가 순식간에 공포 특집으로 바뀌게 된다.
[오해②] 개방하면 소비자 후생이 높아진다? 공부 좀 하시지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이 재경부 관리들이 6~7월경에 한참 외친 게, 수입하면 농산물 가격이 저렴해져서 소비자 후생이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미FTA의 가장 큰 지지자는 소비자들이고, 여성들이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는 했다. 경제학 공부를 너무 오래 전에 해서 그런 것 같다.
제품 질이 같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고가 시장과 저가 시장이 나뉘어지면 이들의 말이 옳다(마치 바나나처럼 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식품시장은 국민소득 1만불을 넘어서면서 급격하게 '하이엔드 마켓'으로 변화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주부가 차려주는 음식 먹고, 접대 받으면서 비싼 음식 먹는 재경부 고위관리들이 이해하기에는 약간 좀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요약하면 미국에서의 '웰빙'이 '하이엔드 마켓'이라고 불리는 특수 시장의 일반화를 뒷받침했던 문화 마케팅이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편할 것이다.
터무니 없는 가격, 사기꾼같은 웰빙 시장
우리나라에서 이 하이엔드 마켓으로 제일 처음 넘어간 식품 시장은 분유시장이다. 주로 뉴질랜드나 호주산 분유를 수입하는데, 미국과는 달리 비율에 따른 기준이 없다. 이 때문에 얼마나 이 유기농 분유를 넣는지 불투명한 채 터무니없는 고가에 팔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너무 비싼 돈을 우리나라 엄마들이 이 분유에 지불하고 있지만, 아직 기준 마련도 없는 채로 소위 사기꾼 시장처럼 움직인다.
미국 식품협회가 가장 강점을 보이는 시장은 이유식 시장이다. 이것도 양상은 같다. 수입산 유기농을 국내에서 섞어서 만드는데, 원가와 가격이 별 상관없는 하이엔드 마켓의 전형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기농 이유식이 이제 시장에 대한 절대 지배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어차피 원료는 전부 수입한다.
우리나라의 식품 수입 경향은 중국 중심의 원재료 수입에서 점차적으로 중간가공품 등 2차 상품으로 바뀌는 중이다. 이 상황에서 미국산 제품 열어줘봐야 농수산제품 중 1차 재료는 거의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수입될 제품들은 고가의 하이엔드 마켓으로 직행하게 된다. 그나마 그게 낫지 않느냐? 국내 유기농 생산기반이 완전히 무너지면 현재의 유기농 제품은 관세가 없어지더라도 더 비싸진다.
괜히 소비자 후생을 높인다고 국내 생산기반만 무너뜨려봐야, 완전히 미국식품협회의 고가 마케팅과 독점 이윤만 높여주게 된다.
바로 이런 시각에서 미국 광우병 파동을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한우, 현재로서는 믿음도 안 가고, 턱도 없이 비싸다. 그런데 이거라도 버티고 있는 게 국내에 수입될 외국산 쇠고기 가격을 일정 수준에서 제어하고, 이런 방식 외에는 하이엔드 마켓을 조절할 방법이 없다. 여기에 우리의 슬픔이 존재하는 셈이다.
너무 순진하고 너무 바보같은 경제 관료들
인도 농민과 하류민의 비극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반복될 것인데다가, 우리나라의 경제관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큰 회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언젠가 우리나라 식단이 완전히 카길한테 넘어가야 이 사태가 끝날 것이다.
크리스톤 팜스를 비롯한 몇 개의 소규모 작업장들은 고가 시장을 수작업 방식으로 선점하면서 버티고 있는 회사들인데, 카길의 쇠고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대량 생산방식의 차이 때문에 뼈조각을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수작업 방식을 사용할 수 있는 소규모 수입을 몇 번 하면서 시장친화성을 높인 다음에 본격적으로 카길이 들어온다는 것이 대체적인 미국 전략이다.
그렇지 않다면 '뼈없는 살코기'에 90일 미만의 냉장육이 먼저 국내 시장으로 밀고 들어온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원래 식품 산업의 시장 진출은 고가의 고급품이 먼저 길을 열고, 그 다음에 저급품이 밀고 들어온다.
일단 미국산 쇠고기의 시장이 열리고 나면, 그 다음에 들어올 카길사 제품이 진짜 골치 아프다. 우리나라 종자와 농약 시장은 실질적으로 몬산토-카길 연합체한테 거의 넘어간 셈이다. 카길은 식품 메이저 중에서 독점화 전략과 독점 가격관리 기법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단 카길에게 시장 지배력이 넘어가고 나면, 저가의 제품도 고가에 사야 하는데, 이 상황이 제일 억울한 상황이다. 카길이 지배하는 미국의 소비자 운동단체가 오죽하면 '채식'을 가장한 '쇠고기 안 먹기'를 운동 전략으로 내세우겠는가.
이 길고 긴 전쟁의 첫 단추에 우리나라가 들어간 셈인데, 너무 억울한 것은 재경부와 외교부의 바보같은 관료들 몇 사람만 아니었다면 시달리지 않아도 좋을 카길사의 협박에 우리나라가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OECD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광우병 미발생국가인 우리나라는 이를 근거로 매우 강력한 규제 장치를 마련해도 WTO 체계에서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기는데, 한미FTA 한다고 바보 같은 경제관료들이 너무 큰 걸 넘겨줘버렸다. 카길이 어떤 회사인지 몰라도 너무 모른다. 선키스트나 델몬트 비슷한 회사 아닐까 하는 순진한 생각이 우리나라를 너무 어려운 싸움 한 가운데로 밀어 넣어 버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다음 단계는?
광우병에 대해서는 한국 소들이 미국 소에 비해 우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일단은 시장이 버티겠지만, 이 시간은 길게 잡아도 5년도 못 될 것이다. 그냥 시장에 들어오기 어려운 미국 시장이 국내 한우의 제품질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공개하는 소위 장외투쟁을 시작하면 현 상태에서는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우리나라 슈퍼에서 한우라고 비싸게 파는 쇠고기들은 순전히 '애국심 마케팅'에 해당하지만, 국제 기준으로는 중급 판정 이상을 받기 어려운 것들이고, 특히 지난 3년 전부터 강화되기 시작한 강화된 코덱스(CODEX) 기준을 들이대면 '기준 미달' 판정을 받기 딱 좋을 것들이다.
당장 항생제 기준을 들이대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면, 통과할 소가 우리나라에 몇 마리나 될까? 호주산 청정육보다 한우가 낫다고 할 기술적 근거는 거의 없는데, 지난 몇 년 동안 '고가 브랜드화'한다고 오히려 우리나라의 쇠고기의 국제적 안정성이 더 낮아졌다. 물론 통합축사 관리 같은 거 도입한다고 생난리를 쳤지만, 그동안에 국제적인 축산 방식이 유기축산으로 대폭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빅뱅'의 시간이 더 가까워진 셈이다.
광우병 기준으로는 한국 소가 안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한 균형 상태인 것이다. 카길한테는 당분간 버틸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 축산 농가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어쩔 것이냐?
우리 소가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광우병에 대해서는 그렇다. 그러나 전체적인 기준으로는 천만의 말씀이다. 한우에서 그동안 죽어라고 품질 개량한 것은 '마블링'에 집중되어 있는데, 도대체 이 엄청난 분량의 옥수수가 어디에서 오는가? 다 미국 아닌가?
사실상 미국 옥수수를 한우라는 소위 '캐리어'를 통해서 먹고 있는 이 엄청난 모순 앞에서 '한국 소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말할 자신은 나에게는 없다.
축구로 따진다면, 피파 랭킹보다 한국산 쇠고기의 랭킹은 더 밑으로 처진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벼짚단 같은 것으로 만들게 되는 유기비료도 생산이 안 된다. 코텍스 기준에 맞는 농약치지 않은 볏집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품질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마블링을 만드는 옥수수는 거의 생산되지도 않는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놓고 판단하면, 재경부와 농림부의 높은 고급관료들은 어차피 축산은 어려운 것이니까 그냥 이 기회에 한미 FTA와 바꾸자고 편하게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실털만한 희망들...
우리나라 음식에서 쇠고기를 전부 뺄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라도 변화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미국 카길과의 쇠고기 전쟁을 수행하던 유럽이 '항생제'에서 역전의 전기를 잡은 것이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항생제 없는 쇠고기'라는 기준으로 카길 앞에서 버티고 있다. 국내산 쇠고기가 지금보다 비싸지더라도, '안전한 쇠고기'라는 기준에서는 최소한 수입산에 대한 경쟁력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블링' 기준으로 국내 한우를 개량해서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이라는 '꽃등심'이 안전할까? 그렇지는 않다. 이런 '고가 브랜드' 방식의 기준은 언제라도 진짜 '국제적 안전' 기준이 적용되는 순간 눈송이 녹듯이 녹아 사라져버릴 허망한 기준이다.
이 잣대를 사회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바꾸는 길만이 쓸데없는 세금의 낭비를 줄이고, 이미 축산에 진출한 농가들을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하며, 우리 시장의 일부라도 안전하게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지킬 수 있는 길이다.
어차피 한국의 국민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식품산업의 하이엔드 경향도 점차 높아질 것이고, 자기 아이들에게 광우병 위험인자가 있는 쇠고기를 먹이거나 항생제로 사육된 쇠고기를 먹이고 싶은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위험한 급식을 먹기를 바라는 부모들도 없다.
보조금, 규제, 지원정책, 국가 기준 그리고 문화와 같은 것들이 이 특수한 시장의 정책적 요소들이다. 재경부의 경제관료들처럼 아무 것도 모르면서 소비자 후생 얘기하는 것도 최악이지만, 농림부의 '애국심 마케팅'도 전환의 시간만 놓치는 셈이지 결국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이 두 바보 집단의 양 극단 위에서 불안하게 시장 갈 때마다 지갑과 브랜드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멍청한 일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값싸고 안전한 쇠고기'는 정부의 역할인데, EU 회원국 중 스무 개 이상의 국가들이 다 하는 일을 왜 경제규모 10위라고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못하는 것인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한미FTA에 연동시킨 축산 정책"으로는 나중에 시장도 잃고, 건강도 잃고, 신뢰도 잃고, 소비자들만 낭패를 보는 이상한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다.
하여간 노무현 정부는 용감해야 할 데에서는 주저하고, 엉뚱한 데에서 용기와 뚝심을 보여주는 묘한 정부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쇠고기 시장은 까닥하면 웰빙이 아니라 서바이빙(sur-viving) 시장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다. 행복하기 위한 소비가, 생존을 위한 소비로 전환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