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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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김영삼 따라갓으면 승승장구했을 위치에있던
노무현 하지만
3당합당에 반대하고 꼬마민주당을 끝까지 지킨다
여기서부터 가시밭길이 시작된다.
10년..동안 3번 출마하며 닦아놨는데도...
역시 어려웠다.
텅빈..유세장.. 홀로 연설
다시 낙선
무소속이 아닌 ..끝까지 민주당 간판달고 당당하게
홀로 지역주의타파 위해 부산에 도전. 낙선을 반복하셧던 그분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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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8년 후
부 울 경 민주당
압승..
이게 다 노무현이 뿌린 씨앗 덕분
그가 없는 경남에서
김경수가 당선됐다.
-_-)b
그가 없는 경남에서
김경수가 당선됐다.
-_-)b
조까라마이싱이다
-_-)ㅗ
고마워요 자한당 ㅋㅋㅋㅋㅋ
보고싶습니다
보고파요ㅠㅠ
노
무
현
대
통
령
그곳에서 편히 쉬시길.. ㅠㅠ
아는 내용이지만 또봐도 이런거 보고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렇지않다면 도대체 무엇을 봐야 가슴이 뭉클하겠습니까
추천!
강자 앞에서 더 강했던 노무현
노무현문재인
공터연설)내가 보기에 그의 정치역정, 그의 생애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역설적이게도 대통령 당선 등 영광의 순간이었다기 보단 잇따른 낙선, 탄핵 등의 고난과 좌절의 순간이었다. 그가 좋아했던 바보라는 별명과는 별개로 승부사란 세간의 평가에서도 보듯이 매번 정면돌파하고 정세를 반전시켜 오뚝이처럼 일어서던 그였기에 필요없는 갈등과 승부를 즐겨하고 심지어 함정으로 유도하는 간교한 마키아벨리스트로까지 오해와 억측을 사기도 했었다. 정치적 반대자, 패배자들의 자기변명, 덮어씌우기였지만 그의 지사적, 투사적 풍모로 볼 때 고난과 좌절의 순간에 오히려 더욱 힘을 내고 도전하는 스타일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젊었었기도 하려니와 그런 고난과 좌절의 순간에 그의 눈은 가장 날카로왔었고, 그의 머리는 가장 맑았었고, 그의 피는 가장 뜨거웠었다. 그렇게 그와 그의 정적들은 끊임없이 일합을 겨루워왔고 때론 지고 때론 이기기도 하였지만 모두들 그 앞에서 악역과 조연을 자처하며 본 모습과 밑천을 드러내고야 마는 시험을 피하지는 못했었다. 그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다소간의 열등감을 느끼는 피하고픈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그에 의해 가짜와 진짜가 나뉘고 옥과 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은 한나라당, 조중동뿐만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한겨레와 경향 오마이까지 무차별적이었다. 정치인이 아닌 심지어 난다긴다하는 논객, 시민운동가, 지식인, 교수, 학자들까지 그로 인하여 원치 않은 시험에 임하였다. 그렇게 거대한 파도와 맞서고 세찬 폭풍우를 넘나들었던 시절이 오히려 그에겐 황금기였다. 그런 그가, 그렇게 강인했던 그가 갔다.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돌이켜보면 검찰수사와 관련된 글을 제외하고 그가 마지막으로 올렸던 글이 ‘관용’에 관련된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길이도 짧았고 예전보다 날카로움이나 힘이 덜 했었다. 그때부터 심적 압박과 고통에 힘들어하고 있었던 거다. 결국 그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했다. 가엾다. 그에게 있어 읽고 쓰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만큼이나 소중하지 않았던가.
슬프다. 아쉽다. 그립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출처: http://emeng.tistory.com/256 [레몬, 때론 먹의 향내가 나는 글과 음악 그리고 사람]
보고 싶어요.ㅠ
그거보자마자 진짜 눈물이 미친듯이 흘렀다.
꺼억꺼억은아니지만 콧물까지 나올정도로
진짜 신기했다..그당시에는 그렇게 존경하지도 그냥 남들이 말하는 서민대통령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였다 생전 마주치도 이야기해본적없던 사람이 돌아가셨다는데 눈물이났다.
참 신기했다..그런데 더 황당?한건
우리 어머니도 울고계셨다ㅡㅡ
왜우냐고 물어보니 그냥 눈물이 나신다고 하셨다.
지금도 올라오는 그의 사진이나 글들을 보면
찔끔찔끔 눈가가 젖는다.
그의 노래방사진을 제일 좋아하는데 그 사진을 보면 먼가 마음이 아프다.
그냥 그렇다..
당하시고 나서야... 아...지켰어야 했구나 우리가 지켜드렸어야 했구나...뒤늦은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죄송하고...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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