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좀 긴데, 그래서 막판에 5줄 요약을 했으니
맘 급하신 분들은 맨 아래만 5줄만 읽으셔도 됩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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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은 영남과 호남지방이 가장 심했고
지금도 그런 편입니다.
자동차 번호판이 개정 되기 전(지역별로 앞자리가 다른) 한 때는
경상도 차가 전라도 주유소에 가면 주유소에서 거절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경상도에서는 전라도에서 만든 해태제과 불매운동을 하기도 했구요.
2015년인가.. TV조선에 김동길이란 이상한(?) 교수님이 나와서 이런 소릴 했습니다
"우리나라 지역감정은 고구마 백개 심자 삼국시대부터 생긴거다.
계속해서 전쟁을 했고 삼국통일이 돼도 절대로 통일이 된게 아니다."
한마디로 '헛소리'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대로 수백년간 그 마음을 오래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할아버지와 내가 생각이 다르고, 심지어 아버지와 나와도 생각이 다른데..
무슨 천년도 더 된 그 때의 지역감정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구요?
암튼~ 이건 절대로 아니구요.
(뭐 굳이 영향이 있다면 꼴랑 10% 정도..??)
가끔 어르신들께서는 이런 말도 많이 하시죠.
"그거 박정희 때 영남권만 개발을 해서 그래.
전라도가 박정희에게 완전 물 먹고 그 화풀이를 경상도에게 하는거지."
뭐.. 이게 100%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주 약간의 영향은 있죠.
일단 박정희가 처음 대통령이 되었던 1963년 5대 대통령선거
이 때 투표 결과를 보면..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 모두에서 고르게 박정희 후보가 우세했습니다.
즉, 이 때까지만 해도 특정 후보에 대한 지역감정은 보이지 않았다는거죠.
선거뿐만 아니라 지역들간의 감정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조금 과거로 올라가서 보자면...
우리나라 지형 상, 경상도와 전라도는 많이 다릅니다.
경상도는 산악 지형이 많고, 반면 전라도는 평야 지역이 많습니다.
예로부터 전라도는 쌀과 곡식이 아주 많이 나는 지역입니다.
전라도는 자체적으로도 다른 지역에 비해 꽤 풍족한 지역이었고
대신 경상도는 바닷가 어촌은 고기를 잡아 그럭저럭 먹고살만 했지만
산간지역은 많이 가난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박정희 정권에서 영남지역에 집중적으로 개발을 했던건데,
영남지역 개발을 집중적으로 한 중요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이시점에서 나와야 될 단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건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한게 아닙니다.
대한민국 제 4대 대통령인 윤보선 정권에서 시작한겁니다.
5.16 쿠데타로 박정희가 정권을 넘겨 받으면서 박정희가 그 공을 가로채서(?) 실행한거죠.
뭐.. 그렇다고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 업적을 폄하할 의도는 없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이룬 토대가 된건 사실이니까요.
(이건 여기서 생략하겠습니다. 주제에서 벗어나니까... ㅎㅎ)
월남전쟁이 끝날 때까지 박정희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35억달러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200조 정도의 엄청난 돈을 지원 받아서
경제 5개년 계획에 투입합니다.
우리나라는 6.25 이후 수출로 먹고 산 나라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수출을 하려면 항구가 발달해야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항구가 어디게요?
네.. 인천항도 크지만 단연 부산항이 1위입니다.(무려 인천항의 7배)
당시 인천이야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니 수도권과 충청, 강원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을 수출하기에는 좋았지만
아랫지방에서 배에 선적을 하려면 당연히 부산으로 가져가야 했는데
전 세계의 배들이 드나들기 좋은 곳이 인천일까요? 부산일까요?
당연히 부산입니다.
일단 인천항은 수심이 얕아서 대형화물선이 드나들기에 수월치 않고
또 해외에서 오려면 부산항보다는 멉니다.
당연히 수도인 서울과 부산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했고
수도권과 항구에서 가까운 경상도 지역에 더 투자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까지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농업중심국가였고,
따라서 전라도는 우리나라 농업의 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공업화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죠.
박정희정권 때 강원도나 충청도, 제주도는 지역개발 혜택을 받았나요?
아니죠.
근데 왜 충청도와 강원도, 제주도는 지역감정이 없을까요?
그러니 이게 지역감정 원인의 핵심은 아닌겁니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본론이 나옵니다.
1971년 대한민국 7대 대통령 선거
이 때 유력후보 2사람이 박정희와 김대중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5천만이 좀 넘고
그 중에 50%가 서울경기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1971년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약 3천만명 정도였는데
그 중에 절반인 1,500만명이 영.호남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선거에서 투표권자가 많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선거운동 하는거야 당연하구요.
그러다보니.. 당연히 영남,호남지방에서 대대적인 선거홍보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신민당 : 경상도 독재정권 타도하자
박정희 민주공화당 : 빨갱이한테 정권을 내줄 순 없다.
이게 당시 선거의 슬로건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중앙정보부 이후락은
"전라도에서 경상도를 싫어한다" 고 투표일 3일전부터 찌라시를 뿌려대기 시작합니다.
이건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한 엄청난 사건입니다.
이렇게 지역감정의 씨앗은 7대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불씨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정치권에서의 지역감정 이용은 지금도 여전합니다만... --;;
그리고 그 지역감정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입니다.
이건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워낙 큰 사건이었고,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거니까요.
이건 영화로도 많이 나왔죠.
"화려한 휴가(2007)", "택시 운전사(2017)"가 대표적입니다.
안그래도 지역감정이 슬슬 타오르고 있던 상황에서
경상도 출신의 대통령(전두환)에게 그토록 호되게 당했으니
지역감정이 안생기는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1987년 12월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어부지리로 당선됩니다.
왜 어부지리냐구요?
김영삼과 김대중의 사이는 동지이자 라이벌인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는 한사람만 나가자'고 합의를 했었는데,
두사람 사이가 틀어지면서 둘다 선거에 나오게 된겁니다.
(그 이유는 여기서 생략하겠습니다. 정치는 워낙 복잡하니까..)
결국.. 표가 나눠지면서
노태우: 36.6%, 김영삼: 28%, 김대중: 27%로.. 노태우가 어부지리로 당선된겁니다.
만일 단일화 했으면 당연히 노태우가 떨어졌겠죠.
이 때 지역감정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아래 표를 보면 알겠지만, 호남 지역에서 거의 압도적으로 김대중에 대한 표가 몰립니다.
반면 영남에서는 노태우와 김영삼에게로 표가 나뉘죠.
호남 입장에서는 오히려 노태우보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차이가 더 컸습니다.
이런 결과로 보면...
우익이냐 좌익이냐 , 즉 보수냐 진보냐의 개념보다는..
어느 지역 출신이 출마를 했느냐로 표가 갈렸죠.
김영삼은 노태우의 라이벌로서 민주화를 열망하는 후보이긴 했지만,
단지 경상도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호남지역에선 완전 완패를 당합니다.
그로부터 5달 뒤인
올림픽이 열리던 해 1988년 4월 26일
13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립니다.
그런데 노태우의 민주정의당은 125석밖에 당선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뭔가를 하려면 국회의원 과반수(150석)가 찬성을 해야 됩니다.
노태우는 이 때 안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굴립니다.
김영삼과 김대중 사이가 이미 개박살 나 있던 상태라 이걸 이용하기로 한겁니다.
먼저 70석을 차지하고 있던 DJ에게 톡을 보내죠.
"헤이 DJ, 너네당과 우리당 안합칠래?
니가 콜 하면 5.18 민주항쟁 진상조사도 하게 해주고 지지율도 팍팍 올려줄께."
"내가 총맞았냐? 국민들이 너 막으라고 나 밀어준건데
내가 너랑 합치면 나한테 날라오는 돌 니가 막아줄껴?"
'아~ 이러면 나가린데...
아니지.. 그럼 다음 타자가 있지.. 김영삼옹.'
김영삼에게 비슷한 까톡을 보냅니다.
"영삼옹, 이번에 나랑 합당하면 다음번 너님이 대통령하게 내가 물밑작업 다 해줄께.
전라도만 고립시키면 이 나라는 3년 후 다 니꺼야.
그리고 JP도 너님이 잘 꼬셔봐."
"코올~" (이런 빙X같은... --;;)
결국 1990년 1월
전 국민이 경악하는 "3당 합당" 발표를 합니다.
59석을 가지고 있던 김영삼당과 35석의 김종필당과 합쳐
무려 218석으로 "민주자유당"이란걸 창당합니다.
그리고 이걸 계기로 호남지역을 아주 철저하게 고립시킵니다.
산수 잘하시는 분 : 엥? 219석 아니예요?
어? 눈치 겁나 빠르시네. ㅎㅎ
네, 125 + 59 + 35 = 219라야 맞지요.
이 튀는 미꾸라지 한마리는 뭐지?
당시 김영삼당 소속이었던 노무현 의원
이 3당 합당에 대해 펄펄 뛰면서 분기탱천 합니다.
(미꾸라지라 해서 죄송합니다. -.-)
그리고 난 절대로 3당 합당에 찬성 못하겠다~ 하고
무소속 7명과 함께 8석의 꼬마민주당, 즉 '민주당'을 만듭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나라 정치는 보수와 진보로 나눠지는게 아니라
지역별로 당이 나뉘어져 있는... 정말 쓰레기입니다.
오죽하면 경상도당, 전라도당.. 이랬을까요?
우리가 부러워하는 미국만 보더라도
200년 넘게 민주당과 공화당 두 체제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당을 바꾸길 무슨 유니클로 계절별 옷 바꾸듯이 갈아치웁니다.
거기에 진보인지, 보수인지에 대한 정체성도 애매합니다.
조선시대 선조때부터 시작된 붕당정치로 여러번 말아먹었지만,
현 시점에서도 이놈의 정치는 바뀌지가 않습니다.
아마.. 우리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망하게 된다면
분명히 개념 안잡힌 정치인들 때문에 망할겁니다.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 때에 와서부터 그 지역감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노무현은 고향이 경상도입니다.
경상도 출신임에도 호남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줬습니다.
그래서 호남 주민들은 경상도는 싫지만 노무현은 좋다.. 라는 말까지 하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됩니다.(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
그리고 현재 문재인 대통령.
그 노무현 전대통령의 계보를 이어 여전히 지역감정을 없애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만... 친 페미니즘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네요. -_-;;
결론: 정치인들 때문에 지역감정이 생겼다. ㅅㅂ
하지만 국민인 우리들도 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치사한 정치인들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거기에 휘말렸으니까요.
정치인만 탓할게 아니란거죠. --;
*** 5줄 요약 *******
1. 박정희 정권에서 영남권만 개발한건 지역감정 원인의 핵심은 아님.
2.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이 선거에서 본격적으로 지역감정을 정치에 이용함.
(항간에는 김대중이 가장 먼저 지역감정을 이용했다는 썰이 많으나 도찐개찐임.)
3.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호남지방에서 대통령과 영남권에 대해 극도의 분노를 느낌.
4. 노태우가 1990년 3당합당을 하면서 호남을 완전 고립시켜 지역감정의 정점을 찍음.
5. 노무현 대통령부터 지역감정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하지만 50대 이상은 여전히 지역감정이 심함.
옛날에는 "지역감정"일지 몰라도 지금 현재는 "지역혐오"다.
지역감정이, 지역혐오까지 하게 됐는지는 굳이 설명안해도 알것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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